KT 업무상 정신질환으로 산재신청자 ‘또’ 나와
피해자 “내가 아니라 회사가 미쳤다”
지난 2년 새 5명 정신질환으로 업무상 재해 판정
김미영 기자
지난 24일 KT에서 또다시 ‘회사의 감시와 왕따 등 차별행위로 인한 정신질환’을 호소하는 산재신청자가 발생했다.
KT는 지난 2년 사이에 5명의 노동자가 회사측의 감시와 미행 등 노골적인 차별행위에 의한 정신질환을 겪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업무상재해를 인정받은 바 있다. 당시의 사례가 인력퇴출 프로그램으로 불리는 ‘상품판매전담팀’ 소속으로 전출돼 회사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한 차별행위 피해자였다면, 이번에는 경우가 완전한 인격말살 프로그램이나 다름없다.
지난 24일 업무상 스트레스로 산재를 신청한 K씨는 올해로 22년째 KT에서 근무하고 있다. 지난 1984년 서청주전화국에 입사해 올해 4월27일까지 연고지인 청주에서 케이블 및 선로 유지보수 업무를 담당해 왔다. K씨는 회사로부터 노골적인 차별행위가 가해진 것은 지난 2001년 KT노조 충북 가경분회장 임기가 끝난 이후부터라고 주장하고 있다. K씨는 2001년 청주에서 충주로 발령난 이후 2002년 충북 영동으로 근무지가 변경됐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2년이 안 되는 기간 동안 K씨의 근무지는 4차례나 바뀌었으며, 올해 4월에는 급기야 영업부서로 이전돼 담당업무까지 바뀌었다.
부서장이 회식자리에서 ‘왕따’ 지시
시험보고 90점 달성하라 ‘업무촉구서’
K씨는 연고지가 달라질 때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며 홀로 자취방에서 생활해야 했다. 보통 연고지 외 발령자에게 사측은 사택을 지원했지만 K씨는 예외였다. 하지만 K씨는 “근무지 변경은 그나마 참을 수 있었지만 22년간 선로 일만 해온 기술자에게 전화기를 팔아오라며 영업직으로 발령낸 것은 ‘나가라’는 말과 다름 없었다”고 말한다.
K씨는 처음해보는 영업업무에 적응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왕따’가 됐다. K씨에 따르면 우연히 회사 승강기 안에서 만난 직원 한명이 “팀장이 K씨와는 말도 하지 말고 도와주지도 말라고 해서 어쩔 수 없다”며 나직이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같이 말도 하지 말고 밥도 먹지 말라’는 지시는 ‘왕따프로그램’의 시작일 뿐이었다. K씨는 영업사원이라면 당연히 부여받는 관리고객도 선정되지 않았다. 그리고 KT 영업사원 누구나가 이용하는 사내프로그램인 e-KMSS에도 이름을 올릴 수 없었다. 그리고 K씨는 회사로부터 출장비를 단 한푼도 지원받지 못한 채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 자동차 기름값을 대며 영업활동에 나서야 했다. 팀장은 K씨의 핸드폰을 가지고 오라고 해서 수시로 통화기록을 살펴보고 K씨의 자취방을 훔쳐 보다 달아나는 사람마저 생겼다.
하지만 이보다 더 괴로운 것은 매주 월요일마다 팀장실로 불려가 시험을 보는 일이었다. 팀장은 K씨에게 영업업무와 관련된 50문항을 주고 30분 동안 풀게 했다.K씨는 “매주마다 시험을 봐야한다는 생각에 월요일이 돌아오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다”고 말했다. “9월 들어서는 팀장이 빨간색 펜을 던져주면서 정답을 부르고 저보고 채점을 하라고 하더군요. 생애 가장 치욕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팀장 앞에서 시험지에 빨간색 펜으로 쳐 내려갈 때마다 드는 비참함이란…. 그 자리에서 확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회사는 K씨에게 5월8일 1차 업무촉구서를 발부했다. 내용인즉슨 ‘시험에서 60점을 달성하지 못했으니 경각심을 가질 것과 다음 시험에서는 70점을 달성하라’는 것. 그리고 6월7일에는 ‘80점을 달성하라’는 내용의 업무촉구서가 날아왔다.
K씨는 업무촉구서를 받은 이후부터는 회사에 출근하는 것 자체가 무서워졌다고 한다. 또 자취방에 돌아가도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7월 K씨는 큰 결심을 하고 팀장에게 ‘본인 적성이나 의사에 전혀 관계없는 영업업무를 맡으며 도저히 정상적인 영업실적을 내기가 불가능하다’며 ‘본인은 물론 회사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본래 업무인 선로 유지보수 일을 맡겨달라’고 건의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8월23일 회사로부터 돌아온 답은 ‘징계성 경고장’. 상품판매 부진을 질책하는 내용과 다음 시험에서 90점에 도달하라는 요구였다. 처음에 60점을 말하던 회사는 90점이 넘지 않는다며 경고장까지 보낸 것이다.
그때부터 K씨는 ‘내가 미친 것이 아니라 회사가 미쳤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회사로부터 항상 감시당한다는 생각에 고객방문이 없을 때는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전주 시내를 돌면서 전봇대에 붙어 있는 경쟁사 유인물을 철거하는 작업도 했습니다. 그런데 9월12일 또다시 7차 업무촉구서와 징계성 경고장이 날아오자 나도 죽고 나를 괴롭힌 사람들도 죽어야겠다는 생각만 들더군요”
K씨는 9월6일부터 우울증성장애로 정신과치료를 받다가 9월18일 적응장애로 충북대학교 정신병동에 입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