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경주 뒤에 신음하는 마필관리사
열악한 임금, 산재사고 위협…”‘말’ 보다 못한 사람도 있다”

이대호 기자/매일노동뉴스

결승점을 향해 먼지를 일으키며 박진감 넘치게 질주하는 경주마, 뒤 이어 터지는 수많은 관중들의 환성과 탄성. 경마장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그러나 이 화려한 모습은 구석진 마방에서 말을 길들이고, 훈련시키고, 관리하고, 레이스를 준비하는 마필관리사들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직업이지만 마필관리사는 이제 갓 목장에서 온 어린 말을 어엿한 경주마로 만들어 우승 테이프를 끊게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과천 서울경마장에는 현재 475명의 마필관리사들이 있다.

마필관리사-기수-조교사-마주

우리나라 경마는 한국마사회가 시행한다. 과천과 부산과 제주도에 마사회가 소유한 경마장이 있다. 그러니까 마사회는 경마를 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판에서 직접 뛰는 것은 경주마지만 이를 둘러싸고 의외로 복잡한 인적 구성이 자리 잡고 있다.

우선 말을 소유한 마주들이 있다. 현재 서울경마장에는 500명 정도의 마주가 1,420두의 말을 소유하고 있다. 이들이 모인 단체가 마주협회다. 예전에 우리나라 경마는 마사회가 말까지 소유한 단일마제로 시행됐다. 마사회가 판과 도구까지 다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93년 선진 경마제도를 도입한다는 명목으로 마사회가 말을 개인들에게 분양했다. 개인마주제가 도입된 것이다. 마주들은 이때부터 생겼다.

마주들로부터 경주마를 위탁받아 경주를 책임지는 사람들이 조교사들이다. 서울경마장에는 현재 54명의 조교사들이 있고 이들도 조교사협회를 구성하고 있다. 조교사들은 개개인이 사업자등록을 낸 사장들이다.

조교사들 각각은 마주들로부터 위탁받은 30두 안팎의 말과 기수 1~2명, 마필관리사 8~10명으로 한 팀을 구성해 운영한다. 조교사는 경마에서 감독 역할을 한다. 조교사들이 54명이니까 서울경마장에는 경마에 출전하는 팀이 54개가 있고, 사업장도 54개가 있는 셈이다. 59명의 기수들은 기수협회를, 마필관리사들은 노조를 구성하고 있다. 마주와 조교사, 기수, 마필관리사들은 모두 경마를 통해 마사회와 관련돼 있지만 마사회 소속된 직원은 아니다.

서울경마장에서 경마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시행된다. 1000~2000m까지 7종목이 있고 하루 12번의 경기가 펼쳐진다. 1400두가 넘는 경주마들이 매주 경기에 출주하는 것은 아니다. 한 조 30두의 경주마 중에 보통 6~7두만 출주한다. 한달에 한번 꼴이다. 출주하고 나면 2주 동안 회복하고, 2주 동안은 다음 출주를 위해 준비한다.

경주마는 1군부터 7군까지 등급이 나뉜다. 갓 들어온 말은 7군으로 분류돼 1,000m를 뛰고, 계속 승수를 쌓아 승급해야 더 먼 거리를 뛸 수 있다. 등급에 따라 상금도 다르다. 최고의 경주마만이 1군까지 승급해 2,000m를 뛸 수 있다.

사장은 조교사, 뒤에는 마사회

마필관리사들의 직접 고용주는 마사회가 아니라 조교사들이 모인 조교사협회다. 조교사협회와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단체교섭과 임금교섭도 조교사협회와 벌인다. 그러나 조교사들은 경마를 통해 상금을 따먹는 사업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마필관리사들에게 줄 것이 없다. 마필관리사들의 임금과 근로조건, 복지 등 예산을 실제로 쥐고 있는 곳은 마사회다. 따라서 마필관리사노조의 요구도 최종적으로는 마사회를 향할 수밖에 없다.

마사회는 마필관리사 개인당 5,200만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여기에는 마필관리사들이 쓰는 작업복과 장갑, 장구류 등에 대한 비용이 모두 포함돼 있기 때문에 마필관리사들의 연봉은 이 보다 훨씬 적다.

마필관리사노조는 10년차 조합원들의 평균 연봉이 세금을 떼고 나면 2,500~2,600만원 정도에 불과하고, 20년을 근무한 조합원도 4,000만원 미만이라고 밝혔다. 마사회 직원들의 임금은 공공기관 가운데 최고 수준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경마를 위해 일하는 마필관리사들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임금을 받고 있다.

임금만이 마필관리사들 수입의 전부는 아니다. 마사회는 경마 결과에 따라 마주와 조교사, 기수, 마필관리사에게 경쟁성 상금을 지급한다. 상금의 6% 정도가 마필관리사의 몫이다. 그러나 이 6%도 팀에 소속된 8~10명의 마필관리사들이 나누어야 하기 때문에 생각만큼 큰 액수는 아니다.

마필관리사노조는 잘 나가는 팀에 소속된 마필관리사들이 받는 경쟁성 상금이 1년에 600만원 정도고, 승수를 쌓지 못하는 팀의 경쟁성 상금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마필관리사노조는 경쟁성 상금을 지속적으로 축소하고 기본급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경쟁성 상금에 의한 임금 편차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2000년 9%에 이르던 경쟁성 상금은 지금 6% 정도까지 줄어들었다.

경력 쌓아 조교사 될 수도

조교사협회는 매년 10명 정도의 마필관리사를 뽑고 있다. 나이가 25세 이하이면서 몸무게가 65kg 미만이어야 지원할 수 있다. 말을 타야 하기 때문에 몸무게 제한이 있다. 주로 체육대학 졸업생들과 군 전역자, 경마 관련 학과 졸업생들이 지원하는데 최근에는 경쟁률이 10대 1에 이를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여성을 제한하는 규정은 없지만 현재 마필관라사 중에 여성은 한명도 없다.

체력시험으로 1차 시험을 보고 통과한 사람은 마사회에 위탁돼 4개월 동안 기초교육을 받는다. 교육을 마치고 나면 다시 면접을 봐 최종합격자를 선발하는데 이들은 1년 동안의 수습기간을 거쳐야 정식으로 채용된다. 마필관리사의 정년은 60세다.

마필관리사는 경마가 있는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쉬지 못하는 대신 월요일과 화요일에 쉰다. 격주 휴무제 시행으로 월요일은 돌아가면서 절반만 쉬고, 화요일은 당직자만 빼고 온전하게 쉰다. 오전 5시에 출근해 오후 3시에 퇴근한다. 마필관리사 1인당 3두의 경주마를 관리한다. 각종 훈련과 마필 끌기, 치료, 장제, 마방 관리까지 마필관리사들의 일과는 빡빡하게 짜여 진행된다. 체력이 따라주지 않으면 버티기 힘든 직업이다.

마필관리사들은 일정한 과정을 거쳐 조교사가 되기도 한다. 현재 54명의 조교사 가운데 14명 정도가 마필관리사 출신이다. 마필관리사가 되고 난후 3년이 지나면 말을 탈 수 있는 조교승인 시험을 본다. 이 자격을 취득하고 3년이 지난 후 다시 조교보 시험을 본다. 조교보는 조교사의 업무대행자다. 조교보 자격을 딴 후 5년이 경과하면 마사회에서 시행하는 조교사 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지고 이것을 통과하면 조교사가 된다.

조교사는 대부분 기수 출신이다. 기수는 500승을 기록하고 명예기수가 되면 면접만 보고 조교사가 될 수 있다. 마사회 경마교육원에서 일하는 승마교관들도 경력이 10년 이상 되면 조교사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말은 조교사를 가장 좋아한다”

사람들은 말을 대부분 말을 동경하지만 직접 만지거나 보기는 힘들다. 동경의 대상인 말을 다루는 마필관리사들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고 말에 대한 애정도 각별하다. 경력이 많은 마필관리사들은 말과 소통할 수 있다고 한다. 배가 고파서 우는 소린지, 아파서 우는 소린지 알 수 있다. 경주에 나갈 때는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아무에게나 다가오지 않고 주인에게만 다가온다.

마필관리사는 경주마와 5년 정도를 같이 보낸다. 처음 목장에서 온 2세 말을 받아 조련해서 경주마로 만들고 이들이 무리 없이 1군까지 올라가서 은퇴할 때가 되면 7세가 된다. 이 기간 동안 길들이기에서 조교 훈련까지, 사료 주는 것에서 배설물을 치우는 것까지가 모두 마필관리사들의 몫이다.

자신이 관리하던 경주마가 중간에 사고로 죽으면 마필관리사들은 눈물을 흘리며 슬퍼한다. 사고사 했거나 안락사한 말들은 서울경마장의 말 무덤에 묻힌다. 마사회는 매년 5월에 마령제를 열어 말의 영혼을 달랜다.

한 마필관리사는 “마주도 있고 기수도 있지만 말들은 사료 주고 똥 치워주는 마필관리사를 가장 좋아 한다”며 “때로는 말 때문에 산재를 입기도 맑고 큰 눈을 하고 쳐다볼 때면 자식 같은 생각으로 보살핀다”고 밝혔다.

박봉철 마필관리사노조 위원장
“사회생활은 말의 기백과 박진감으로”

박봉철(50) 마필관리사노조 위원장은 “말과 많이 닮았습니다”라는 기자의 말을 듣고는 기분 좋게 웃었다. “말로 먹고 사는 사람이 말과 닮았다는 것보다 더 큰 칭찬은 없다. 얼마나 말과 가까워지고 사랑했으면 외모까지 닮았을까 하는 말이지 않느냐”는 해석까지 달았다.

실제로 박 위원장은 말과 많이 닮았다. 희끗희끗한 머리와 수염하며, 다소 긴 얼굴에 부리부리한 눈까지. 마필관리사노조 위원장에 꼭 어울리는 외모였다.

박 위원장은 사람의 인생살이도 말로 풀어냈다. “맑은 눈과 쌍꺼풀 진 모습을 보면 청순함을 느끼지만 달리는 모습과 힘찬 발소리에는 기백이 넘쳐난다. 사람의 인생도 평상시는 아름답고 맑은 자태를 간직하면서도 사회생활에서는 박진감 넘치는 기백으로 목표를 향해 돌진해야 한다.”

58년 부산에서 태어난 박 위원장은 군 제대후 건설회사에서 토목기사로 10년을 근무하다가 93년 2월 마사회에 마필관리사로 입사했다. 얼마 안 있어 개인마주제가 도입되고 마필관리사들은 그해 10월 노조를 결성했다. 박 위원장은 1대 노조에서 환경규찰부장을 시작으로 이후 조직부장, 조직국장, 대의원 등을 맡으며 노조활동을 했다. 2005년부터 노조 6대 위원장을 맡고 있다.

박 위원장은 “2000년 총파업 당시 조직국장으로서 조합원의 요구를 쟁취하지 못해 마음의 빚을 지고 살았다. 노조를 이끌면서 마사회 직원들에게 비해 형편없이 열악한 조합원들의 임금과 복지와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