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도 외면하는 ‘산재율 전국1위’
해마다 3명 중 1명 사고…안전설비 확충, 위험수당 현실화 필요

이대호 기자/매일노동뉴스

‘낙마’, 갈비뼈나 대퇴부가 부러지는 일은 예사고, 때론 머리가 깨지기도 한다. 까딱 잘못되는 날에는 목숨까지 잃을 수 있다. 말 잔등에 오르는 순간 항상 경계하지만 사고는 부지불식간에 찾아온다. 말은 사람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기계가 아니라 생물이기 때문이다. 작은 소리 하나에도, 뒹구는 낙엽만 보고도 놀라서 앞발을 쳐드는 겁쟁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경주마를 관리하고 훈련시키는 일이 직업인 마필관리사들은 항상 말에서 떨어질 위험에 처해 있다. 낙마뿐만이 아니다. 말에게 떠밀려 넘어지고, 말발굽에 채이고, 진탕에서 미끄러지기 일쑤다. 심지어는 말에게 귀와 코를 물어뜯기기도 한다. 그야말로 고삐 풀린 망아지 길들이기고, 악전고투다.

이렇게 서울경마장 450여명의 마필관리사들이 작업과정에 사고를 당하는 건수가 한해 평균 156건. 이 가운데 타박상 정도에 그쳐 요양신청을 하지 않고 공상처리 하는 것이 83건이고, 업무상 재해가 인정돼 병원치료를 받고 요양을 한 산재가 62건이다. 공상과 산재를 포함한 사고율 34.2%, 산재율 14.1%. 전국 평균 산재율 0.63%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부동의 산재율 전국 1위다.

연간 3명중 1명이 사고를 당하기 때문에 전체 450여명의 마필관리사 가운데 하루 평균 12명이 출근하지 못하고 치료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연평균 62건의 산재 가운데 76%에 해당하는 48건이 1개월 이상의 치료를 요하는 중상이다.

지난 2000년 3월 마필관리사 고(故) 오재학씨가 낙마로 입원했다가 숨졌다. 경주로에서 기승훈련을 끝내고 방향전환을 하던 중 말이 갑자기 요동을 치는 바람에 낙마하면서 말발굽에 채였다. 예상하지 못했던 행동과 통제할 수 없이 순식간에 벌어지는 상황, 마필관리사들은 누구나 언제 닥칠지 모르는 산재위험에 심각하게 노출돼 있다.

마필관리사들은 적어도 3~4년에 한번 꼴로 크고 작은 사고를 당한다. 경력 10년이 넘으면 몸이 만신창이가 된다. 말굽에 채여 갈비뼈가 몇 개 나가고, 밟히고 접질려 손가락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떠밀려 넘어지면서 앞니도 나간다. 근육통과 타박상으로 몸은 성할 날이 없다. 장해 판정을 받은 마필관리사들도 많다. 2001~2005년 발생한 산재 가운데 한해 평균 13명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장해 판정을 받았다. 현 재직자 가운데 71명이 장애인일 정도다. 더 심각한 것은 사고 후유증이 허리디스크와 근골격계질환 등 2차 발병의 원인 된다는 것이다.

사고율이 높기 때문에 보험회사에서도 이들을 꺼린다. 서울경마장 마방에서 만난 한 마필관리사는 “사고가 워낙 잦기 때문에 보험회사에서도 일반상해보험에 우리는 잘 가입시켜 주지도 않고, 가입하더라도 보험료가 높아 남들은 3만원이면 받을 혜택을 우리는 10만원을 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마필관리사들이 겪고 있는 이 같은 위험한 상황은 이들의 직접 사용자인 조교사협회는 물론 경마 시행자인 한국마사회도 당연히 알고 있다. 노동부에서는 이곳을 집중관리대상 사업장으로 지정해 놓고 있다.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직 훈련을 통해 순치되지 않은 말들의 돌발행동이다. 특히 망아지나 악벽마가 일으키는 사고는 그야말로 원인불명이다. 또한 말은 주변 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바람에 깃발이 나부껴도, 물웅덩이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도 요동을 친다고 한다. 간접적인 원인은 환경적인 스트레스다. 야생의 습성을 가진 말이 2~3평의 좁은 마방에 갇혀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돌발행동이 심해진다.

마필관사노조는 근본적인 대책으로 선진국처럼 기본적인 순치교육을 받은 말을 경주마로 써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직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장기 과제다. 당장은 충분한 작업공간과 조명시설, 환기설비 등이 갖춰져야 한다. 인력 보충과 워킹머신 설치가 필요하다. 또 마방이 모여 있는 마사지역의 위험 시설물을 없애고, 안전설비를 갖춰야 한다. 물론 2000년 이후 변함없는 위험수당 3만원도 현실화돼야 한다.

박봉철 마필관리사노조 위원장은 “하다못해 산재예방 수칙을 담은 홍보판이라도 설치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다”며 “경마를 시행하고 있고, 경마장과 마사지역을 소유하고 있는 한국마사회가 하루빨리 산재예방을 위해 우리의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2007년02월01일 ⓒ민중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