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수발하다 중증 걸리는 ‘간병인’
여성비정규노동자와 건강① 소개소-병원-환자 삼각고용 …산재적용‘제로’

구은회 기자/매일노동뉴스

소득이 적은 사람이 소득이 많은 사람보다 건강하지 않다. 학력수준이 낮은 사람도 학력수준이 높은 사람보다 건강하지 않다. 우리 사회는 건강 불평등 심각하다. 이 가운데 여성이 가장 많이 종사하는 서비스업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 상태는 매우 심각하다. 산업재해 예방의 사각지대에 처해있다. <매일노동뉴스>는 3회에 걸쳐 ‘건강은 곧 사치’라고 인식하며 살아온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봤다.

<연재 순서>
1회-서서 일하다 골병든 계산원
2회-화상위험에 노출된 조리사
3회-간호하다 병에 걸리는 간병인

장기입원 환자들에게 간병인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우리나라 병원은 별도의 수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환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자기 돈 들여 간병인을 고용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환자 개인이 간병인들에게 지불하는 간병료는 연간 2천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병원, 노인시설이나 요양원 등에서 일하는 간병인수는 약 25만명 수준. 이 중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간병인 수는 약 4만2천여명에 달한다. 대부분의 간병인들은 유료소개소를 통해 환자를 알선 받은 후, 환자와 직접계약을 맺어 환자로부터 간병료를 받는다.

간병인들이 환자로부터 받는 간병료는 병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평균적으로 12시간 근무하면3만5천원, 24시간 근무하면 5만원을 받는다. 이는 식대와 교통비가 모두 포함된 금액으로, 하루 8시간으로 환산하면 1만6천666원에 불과하다. 이를 226시간으로 환산하면 47만814원에 불과하다.

24시간 내내 근무하는 간병인의 경우, 대부분 일요일 오후 2시에 병원으로 들어와 다음주 토요일 오후 2시에 근무를 마친다. 주6일을 24시간씩, 총 144시간 근무하는 셈이다. 일반인들의 세배가 넘는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근무를 마치는 토요일에는 환자 목욕, 시트 교환 등을 마친 후 보호자와 간병 업무를 교체하고, 다음날일 일요일 오후 2시 병원으로 돌아와 그날 오전에 하지 못했던 업무를 마저 처리해야 한다. 사실상 일주일 연속 근무다. 공식적으로 쉴 수 있는 시간인 토요일 오후2시에서 일요일 오후 2시 사이에는 청소나 빨래 등 일주일동안 밀린 집안일을 처리해야 한다.

* 간병인의 필수품, 인공눈물과 위장약

서울에 위치한 한 종합병원에서 간병인으로 일하는 박미자(50·가명)씨. 한시도 환자 곁을 떠날 수 없다는 박씨는, 병실 정리정돈부터 환자 용변 보조까지 하루 24시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새벽 5시께 본격적인 간병준비를 시작하는 박씨는, 병실 정돈을 시작으로 환자의 배변 점검, 환자 세면 및 목욕, 환자 옷 갈아입히기, 산책 동행, 식사 보조, 약물 투여, 의료기구 관리, 운동 보조, 욕창 예방을 위한 환자 체위 변경 등을 보조한다.

자신의 몸무게 보다 더 무거운 환자를 하루에도 수차례 돌려 누이고, 환자가 이동할 때마다 무게가 나가는 의료기구들을 같이 움직여 줘야 하는 박씨는 허리 통증 때문에 고생 중이다.

일주일 내내 건조한 병원 안에서 생활하다보니 안구건조증 증세도 생겼다. 눈에 인공눈물을 넣지 않으면 눈을 뜨기도 힘들다.
이렇듯 하루 24시간 내내 환자 곁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부담스러운 일이다. 박씨가 근무하는 병원은 간병인들을 위한 별도의 휴게공간을 마련해 두지 않기 때문에, 간병인들은 잠깐 짬을 내 쉬려고 해도 맘 놓고 앉아 있을 공간이 없다. 쉴 공간만 없는 게 아니라, 옷을 갈아입을 공간도 없다. 박씨는 보통 화장실이나 병실 커튼 뒤에서 옷을 갈아입는다.

환자의 식사수발을 마친 뒤 본인의 식사를 챙기다 보니, 식사시간도 늘 불규칙하다. 일주일치 먹을 밥을 얼려와 전자렌지에 녹여, 국물도 없는 밥을 급하게 먹는다. 먹는다기 보다는 목으로 넘긴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박씨는 늘 위장약을 챙겨 다닌다.

* “간병인 열명 중 아홉, 근골격계 질환”

환자가 건강을 회복하도록 돕는 일을 하는 간병인들은 정작 장시간 고된 노동을 하며 스스로의 건강은 돌보지 못하고 있다. 의료연대노조 서울대병원간병인분회 정금자 분회장은 “간병인 10명 중 9명은 근골격계 질환과 안구건조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침대의 자세를 고정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레버를 돌릴 때(반복동작) △환자를 들어올리기 위해 침대에서 손을 뻗을 때(불편한 자세) △경사로를 오르기 위해 의자나 침대를 밀 때(힘을 많이 쓸 경우)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는 환자를 손으로 들어올릴 때(무거운 물체를 들 때) △환자가 넘어지는 것을 막거나, 바닥이나 침대에서 환자를 일으켜 세울 때(무리한 힘 사용) 간병인들의 몸에 ‘골병’이 찾아온다. 이른바 ‘근골격계 질환’이다.
간병인들에게 주로 나타나는 근골격계 질환은 어깨 근육에 손상이 생기는 ‘회전근개손상’, 어깨·팔·손의 ‘힘줄염’(건염), 손에 통증이 생기는 ‘수근관증후근’(손목터널증후근) 등이다. 또 만성적인 허리 통증이 디스크(추간판탈출증)로 발전하기도 한다.

24시간 근무에 따른 수면 부족과 병원 내 건조한 공기는 안구건조증으로 이어진다. 정상인들이 눈을 부드럽게 떴다 감을 수 있는 것은 눈을 얇게 덮고 있는 눈물의 층이 윤활유 역할을 하기 때문. 그러나 건조한 환경에 오래 노출 될 경우, 눈물의 양이 줄거나 기능이 감소되면서 안구건조증이 나타난다.

안구건조 상태에서 눈을 비비거나 더러운 손으로 눈을 만지게 되면 각막 상피가 손상될 위험이 있고, 심해지면 결막염 등 염증이 생기기도 한다.

* 환자 수발하다 병 옮기도

장시간 노동으로 체내 면역력이 약해진 간병인들에게 ‘직업성 감염질환’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직업성 감염질환이란 직업상 박테리아, 바이러스, 곰팡이 등 감염질환을 일으키는 미생물과 접촉할 가능성이 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감염 질환을 말한다. 대표적 질환으로 결핵과 간염, 충진, 수두 등을 들 수 있다.

감염 경로는 혈액이 묻는 주사바늘에 찔리는 경우, 입 눈 코 등의 점막이나 손상된 피부에 혈액이 노출된 경우, 공기를 통한 병원성 바이러스 감염 등이다.

직업성 감염질환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손을 자주 씻고, 보호구를 착용 하는 등의 주의사항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상자기사 1 참조> 그러나 대부분의 병원이 간병인에게 환자가 앓고 있는 질환의 감염성 여부를 일러주지 않고, 체계적인 대비책 교육 역시 실시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정금자 분회장은 “간병인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며 “병에 걸리지 않을까 하는 심리적 부담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환자나 보호자를 대면하는 과정에서 간병인들이 받는 스트레스도 만만찮다. 대인서비스업종 종사자들에 주로 나타나는 ‘감정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간병인들에게도 나타난다. 간병인들은 특히 자신을 고용한 환자나 보호자들로부터 인격적 무시를 당할 때 가장 힘들다고 호소한다.

정금자 분회장은 “어떤 환자는 간병인에게 ‘내 돈 주고 고용했으니, 내가 잠들더라도 당신은 자지 말라’는 등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한다”며 “환자들이 간병인들을 ‘식모’ 대하듯 할 때 자괴감에 빠진다”고 말했다. 정 분회장은 또 “간병인 대부분이 여성인 탓에 종종 남성 환자에 의한 성희롱이나 성폭력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 소개소-병원-환자 삼각고용 … 산재 적용 ‘제로’

이렇듯 간병인들은 육체적·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지만, 산재보험 적용은 전혀 받지 못한다. 불안정한 고용상의 지위 때문이다. 간병인은 사용자와 노동자 간 맺는 단일근로계약과는 달리 알선업자(사실상의 지배관리), 병원(사실상의 사용관계), 환자(형식적인 임금지급) 사이의 ‘삼각고용관계(triangular relationship)’에 놓여 있다. 노동력을 실질적으로 사용하는 사업주의 법적 사용자책임이 불명확해지고 불가피하게 중간착취가 발생하는 구조다. 이와 관련 노동부는 지난 2001년 간병인의 근로자성 여부를 판단해달라는 질의회시에 대해 “간병인과 환자가 직접 근로계약을 맺고 환자가 직접 간병인에게 간병료를 지급한다면, 환자를 간병인의 사용자라고 봐야한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 같은 구조 속에서 간병인들은 근로계약은 환자와 맺지만, 소개소나 병원으로부터 업무지휘 및 노동조건에 대한 규정을 받고 있다. 특히 간병인들은 소개소에 월 평균 5만 원 이상의 수수료 외에 교육비, 의복비, 신발값 등을 지불하고 있지만, 4대 보험 등 법적 보호는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 노동계는 “간병서비스는 병원이 환자에게 제공해야하는 기본적인 의료서비스이고, 간병인의 업무수행에 병원이 직간접적으로 개입돼 있기 때문에 병원이 간병인을 직접고용 해 환자들에게 간병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간병인이 병원과 사용종속관계에 있는 노동자라는 점을 인정하고, 노동법을 적용해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건강까지 보호하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노동부가 발표한 ‘특수고용종사자 보호대책’에서 간병인에 대한 산재적용은 다시 한번 배제된 상태다.

한편 의료계 전문가도 간병인들의 직업병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근무시간 단축 등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임형준 한림대성심병원 산업의학과 교수는 “간병인들에게 주로 나타나는 근골격계 질환과 안구건조증, 직업성 감염 등이 근본적으로는 장시간 근무에서 비롯된다”며 “우선적으로 적절한 휴게시간이 보장돼야 하며, 각종 질환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병원의 의사나 간호사들이 간병인에 대한 예방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또 “간병인들이 힘을 덜 쓰고 일 할 수 있도록 병원측이 적절한 보조기구를 제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2007년02월02일 ⓒ민중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