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토론회,

노동건강연대 임준 운영위원의  발제를 중심으로 소개한  기사입니다. 

‘반쪽짜리’ 산재보험 50년…”판 갈아 엎자”

[산재보험 50년 토론회] “직업성 질환 원인 추적? 무의미하고 비효율적”

최하얀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7.10 14:17:41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도입된 지 50년이다. 급격한 산업화가 진전되던 1964년 도입된 이 제도는, 애당초 노동자 건강을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그보다는 산업재해 발생에 따른 개별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생산 과정에서의 리스크(위기)를 줄임으로써 체제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목표였다는 설명이 더 설득력 있다. 
9일 국회에서 열린 산재보험 50주년 기념 ‘산재보험 실태와 개혁 방안’ 토론회에서 임준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 또한 이같이 산재 제도의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다 보니 “산재보험제도가 가진 문제를 하나씩 고쳐나가는 방식으로는 노동자 건강을 제대로 지킬 수가 없다”며 “산재보험 제도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즉 아예 판을 갈아 엎는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미 산재보험제도의 낮은 급여 보장성, 허술한 ‘재활 후 직장 복귀’ 체계, 자영업자·농민·특수고용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해외 근무 노동자·미신고 사업주 사업장의 노동자 등에 대한 배제, 개별 사업주들의 산재 신청 방해 및 거부 문제 등은 여러 차례 문제로 지적돼 왔다. 
무엇보다 전체 취업자의 약 60%만이 적용받는 ‘반쪽짜리 보험’이 된 데엔, ‘사회보험’이란 이름에 걸맞지 않은 ‘낮은 제도 접근성’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건강보험과는 달리, 산재 제도에선 아프고 다친 당사자(또는 보호자)가 직접 근로복지공단을 방문해 산재를 신청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도 공단의 지나치게 엄격하고 협소한 승인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업무 관련성 입증 노력을 노동자가 기울여야 해 수개월에서 수년에 걸친 양측 공방과 소송전으로 이어지기 일쑤다. 
임 운영위원은 “복잡한 행정 절차와 낮은 접근성은 사회적 비용도 키우고 건강할 권리도 지켜지 못하고 있다”며 “노동자가 아프거나 다치는 상황이 발생하면, 그 이유가 무엇이든 치료받고 소득 손실을 보전받으며 건강한 모습으로 일터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재해의 직업성 유무에 따라 건강보험과 산재보험이 별도의 보장 체계를 유지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전면적 검토가 필요하다”며  ‘통합적인 노동자 건강보험제도’ 구축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임 운영위원은 “스웨덴 등 북유럽 복지국가는 불건강으로 발생하는 결과가 동일하면, 그 원인이 무엇이든 동일하게 보장해줘야 한다는 ‘보편주의 원칙’을 노동자 건강에도 적용하고 있다”며 “특히 질병의 원인을 한두 개의 원인으로 국한하는 게 불가능하고 거의 모든 질병이 적든 많든 업무 관련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엄격하게 업무 내용과 질병의 인과관계를 추적해, 특정 질병만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는 현행 산재보험은 매우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했다. 
장기적으로는 북유럽처럼 직업성 질환이든, 비직업성 질환이든 건강보험 체계에서 요양급여를 받고, 산재보험은 소득손실이 발생하는 모든 질환을 상대로 상병수당(휴업급여)을 지급하는 사회보험 기구로 확대 개편하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프레시안 자료사진

ⓒ프레시안 자료사진


“직업성 질환 원인 추적? 무의미하고 비효율적”
물론 이는 현재 50% 수준에 그치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무상의료 수준으로 획기적 강화된다는 조건”에서야 의미 있는 제도 변화다. 
임 운영위원은 “당장 산재보험을 없애는 것은 물론 시기상조”라며 “단기적으로는 산재보험의 협소한 인정기준과 청구 및 승인 절차를 개선하고 보장성 수준을 높이며 적용 범위를 확대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그는 “원인주의에서 결과주의로의 시각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쉽게 말해, 아프거나 다치게 된 원인을 따져 보상 여부와 그 수준을 결정하기 보다, 아프거나 다쳤다면 일단 제도의 보호를 받아야 한단 얘기다. 
임 운영위원은 “원래 원인주의 시각의 장점은 재해 노동자를 특별히 보상할 수 있다는 점으로, 초기 산재보험의 일련의 급여들이 다른 사회보험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설계되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산업기술이 자동화되고 발전하면서 단순 사고성 재해 비중이 줄고 직업병 및 직업 관련성 질환 등이 증가하고 있다”며 “이와 같은 ‘선진국형 산재’에서 질환의 원인을 추적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비효율적인 일”이라고 강조했다. 
“사업주 신고에 맡겨선 안 돼…사업체 등록 때 의무 가입도록”
아울러 현행 산재보험 체계에서 배제되는 노동자가 시급히 제도 안에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특히 지난 4월 국회 통과가 또 좌절된,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산재 적용 의무화부터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 관련 기사 보기 : ‘산재보험 민영화’ 물꼬, 국회가 터주나)
특수고용노동자들 중 보험설계인과 골프장 경기 보조인 등 6개 특례 업종 종사자들은 현행법에 따라 다른 특고 노동자와 달리 산재보험 당연 가입 대상이다. 그러나 ‘본인이 신청하면 적용 제외’한다는 법 내 독소조항이 있어, 그 가입률은 채 10%가 되지 않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오세종 대한보험인협회 대표는 “보험업계는 설계사들에게 강제로 산재보험 의무화를 반대 서명을 받아 설계사들이 산재 의무화를 반대하는 것처럼 하고 있다”며 “그러나 정작 설계사들은 산재보험에 가입하고 싶어한다. 당연히 의무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고 산재보험 적용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자 국정과제”라는 점도 재차 지적했다.  
임 운영위원은 산재 배제 노동자를 줄이려면 “사업주 신고에 맡길 게 아니라, 건강보험 직장 가입자처럼 개별 노동자 정보에 기초해 보험료를 부과하고 징수하는 제도로 변화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이와 함께 “사업주의 자진신고가 아닌 사업체 등록 단계부터 의무 가입하도록 제도를” 바꾸어야 보험의 사각지대가 줄어든단 설명이다. 
이날 토론회는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주관하고 정의당 심상정 의원,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장하나·이인영·한정애 의원과 ‘산재보험 50년 일하는 모든 이들의 산재보험과 안전할 권리를 위한 공동행동’이 공동 주최했다.      최하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