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노동자 사망… 이게 당연한가요?

현대제철 아르곤가스 질식사 사건 2심 판결 앞두고 판사에게 보내는 탄원서

14.09.30 17:04l최종 업데이트 14.09.30 17:24l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작은 사회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입니다. 저는 주로 대기업의 산재사망 사고를 모니터링하고 산업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여러가지 활동을 합니다. 

그 중에는 사망사고가 난 대기업을 고발하는 일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가 이런 일을 하는 이유는, 그동안 산재사망 사고가 발생한 기업이 제대로 처벌받은 적이 없었고(2011년 4명의 하청 노동자가 질식사했던 이마트 프레온가스 질식사 사건에서는 고작 벌금 100만 원이 부과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이 일터를 더욱 위험하게 만들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아르곤가스에 질식되어 사망한 노동자들, 책임질 기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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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진종합병원 장례식장의 현대제철 당진공장 사망자 합동 분향소에 한 동료직원이 찾아 향을 피우고 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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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10일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5명이나 되는 하청노동자가 아르곤가스에 중독되어 한꺼번에 숨지는 참사가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현대제철소에서는 연이어 사망사고가 발생하고 있었습니다(관련기사 : 가스는 무독성이라는데 또 사람이 죽었다). 사고가 날 때마다 언론에도 비중있게 보도되었고, 불안한 현장의 노동자들이 ‘제발 죽지 않게 해달라’는 싸움을 벌여왔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노동자가 5명이나 질식해 사망했음에도 회사는 변명하기에만 급급할 뿐, 어떻게 책임지겠다고 했는지 그 내용 등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습니다. 사고는 거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 사고가 발생한 지 3일 만에 2건의 추락 사고가 추가로 발생했습니다. 그곳에서 계속 일을 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불안할지 가늠조차 하기 어려웠습니다. 

사고 직후 전 당진으로 갔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유족분들을 뵈었습니다. 원청회사인 현대제철 관계자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동료 노동자들과 하청회사 관계자만 고개를 숙인 채 있었습니다. 사망한 노동자는 25세, 30세, 32세, 35세, 42세였습니다. 

그 분들의 짧은 삶을 상상했습니다. 누구는 이제 막 사회에 나와 자리를 잡았을 것이고, 누구는 이제 좀 일이 익숙해졌다 했을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있는 집도 있습니다. 아마 어느 누구도 자신의 죽음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분들의 가족 어느 누구도 죽음을 준비하지 못했을 시간이었습니다. 

그 아픔을 감당하지 못하고 곧 장례식장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속한 노동건강연대 당진의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현대제철을 고발하고, 시간이 흘러 오는 10월 2일 2심 재판이 열릴 예정입니다.

여기서 잠깐 부연 설명을 하면, 현대제철 대표이사를 고발한 건 검찰 무혐의 판정으로 기소조차 되지 않았습니다(관련기사 : 9개월 동안 10명 사망한 현대제철… 검찰, 대표이사 무혐의 통지), 대신 산업안전보건법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부사장(생산본부장으로 안전보건관리총괄책임자이자 중대재해예방 책임자)을 비롯한 관련 노동자 6명이 기소가 되어 형사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1심 판결에서는 현대제철에 벌금 5천만 원, 부사장에게는 징역 실형 2년, 나머지 노동자들에게는 금고와 집행유예, 사회봉사명령이 내려졌습니다. 다만 부사장에 대한 실형 2년은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 집행하지 아니한다고 하여, 부사장에게는 현재 아무런 불이익도 받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2013년 11월 1심 판결문을 보았습니다. 판사님이 많이 고민하시고, 내린 판결이라 생각합니다. 지난해 1월 삼성불산누출 사고로 5명의 하청노동자가 사망한 것을 시작으로 대기업의 하청노동자들이 큰 사고로 인해 계속 사망하기 시작했고, 노동부도 특별근로감독을 벌여, 사고가 난 대기업에서 1천 건이 넘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을 잡아내기도 했습니다.

판사님도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가, 단지 하청노동자가 잘못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다양한 증거 속에서 하청 노동자들의 사망사고는 안전에 대한 회사의 무책임과 무관심 그리고 오로지 빠르게 공정을 진행하길 바란 회사의 욕심 때문에 일어난 사고라는 것도 아셨을 것입니다.

판사님께 탄원서를 쓰게 된 이유는, 1심 판결에서 유예된 부사장에 대한 ‘구속’을 집행해 주시길 요청드리기 위함입니다. 판사님이 선고할 수 있는 최고 형을 선고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리기 위함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사회가 안전해질 수 있을까요

지금 저와 판사님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많이 불안합니다. 지난 4월 16일 일어난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연이어 사고가 터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사회가 안전해질 수 있을까요?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 주변 분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쉽게 바뀌기는 어렵겠지요.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과정에서 사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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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5월 이후 현대제철에서 발생한 사망사고 리스트. 계속되는 죽음으로 12월 5일 현대제철에서 대국민사과와 안전경영 혁신을 발표했지만 바로 그 다음날 하청노동자 한 명이 사망했다.
ⓒ 노동건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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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일을 하다가 사람이 죽어도 기업에 큰 불이익이 없었습니다. 언론에서 많이 다룬 큰 사고라 하더라도 세상은 곧 잊고, 기업에 대한 처벌은 늘 아주 가벼웠습니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최고 목표인 기업에게 안전은 늘 뒷전이 되는 구조가 공고하게 자리잡았습니다. 그 구조가 ‘안전하지 않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것은 아닌지 성찰해 보아야 할 시점입니다.

다수의 연구에서는, 적어도 80% 이상의 산재사고는 예방을 통해 막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르곤가스 누출 역시 충분히 예방이 가능했습니다. 원·하청간의 의사소통 체계가 제대로였다면, 원청 기업인 현대제철에 책임의식이 좀 더 있었더라면 절대 발생할 수 없는 참사였습니다. 

무심하게 5명의 생명을 앗아간 아르곤 가스 사고가 있기 전에도 사고는 물론 있었습니다. 언젠가 현대제철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연쇄 사망을 다룬 TV 뉴스에서, 너덜너덜해져서 제 기능을 할 수 없어 보이는 그물망을 보았습니다. 그곳으로 사람이 떨어져 죽었습니다. 대기업이 어떻게 저럴 수 있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 영상이었습니다. 그런 일터에서 노동자들에게 일을 시켜온 기업입니다. 

저는 그 영상을 보면서 ‘미필적 고의’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1심 판결에서는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형 집행을 유예하며 책임자인 부사장을 구속시키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제대로 처벌받지 않은 기업들의 산업현장에서 한 해 2천명이 넘는 소중한 사람들이 생명을 잃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사고가 어떻게 확장될지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산재보험을 연구하러 유럽에 가신 한 교수님이 한 관계자에게 어떻게 하면 산재사망을 줄일 수 있냐고 물었답니다. 돌아온 대답은 뭐였을까요? “어떻게 사람이 일을 하다가 죽을 수 있나요?”라는 반문이었습니다. 

존경하는 판사님, 물론 한국과 유럽의 문화는 매우 다르지만, 한 번만이라도 ‘어떻게 일을 하다가 사람이 죽을 수 있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가지고 이 참사를 바라봐주시길 부탁합니다. 

제 마음 같아서는 일반 살인 사건과 뭐가 다르냐고, 그 관점에서 조직의 책임자를 처벌해달라고 간청하고 싶지만, 지금 법 구조 상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한 번만 물어봐 주시길 청할 뿐입니다. 

“노력하고 있다”는 기업 말만 들어서는 안 됩니다

재판이 열리는 10월 2일을 지켜보겠습니다. 1심 판결이 날 때와 지금 2심 재판이 열리는 시점 사이에 현대제철의 노동 환경이 얼마나 나아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사고 이후 회사 측은 안전진단을 하고 신규인력을 더 채용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으나, 현재 하청 노동자들의 피부에 직접 와닿는 변화는 단 한 가지, 완장 찬 사람만 더 많아졌다는 것 뿐입니다. 

실제 그러나 아르곤 질식 사망 사고 이후에도 2명의 사고가 있었고, 같은해 11월  26일에는 같은 종류의 질식 사고가 또 발생해 1명이 사망하고 8명이 병원에 실려가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런 고질적이면서 참담한 기업이 제대로 운영되기까지는 아주 많은 것이 변해야 하고, 많은 비용이 투자되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 일은 시간을 가지고 꾸준히 지켜봐야 할 문제입니다. 그러니 잘 하고 있다는 기업의 입장만을 듣고 재판장님이 선처하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형사처벌을 제대로 받아야 그 기업도 발전할 것이고 더 나아가 다른 기업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부디 많은 국민들이 사법부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글이 실림과 동시에 재판부로 보낼 예정입니다.

* 2015년 1월 8일 있었던 2심 선고에서 부사장은 결국 집행유예로 풀려났습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1140600025&code=94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