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발생한 집단 수은 중독, 범인은 바로…
[기고] ‘지금까지 괜찮았다’ 주관적 인식이 죽음 부른다
송한수 조선대학교 교수
1988년 문송면 군이 온도계 제조 업체에 근무 중 수은 중독으로 사망했다. 그의 나이 15살이었다. 공장에서 온도계에 수은을 주입하는 작업을 하다 수은 증기 흡입으로 수은에 중독됐다. 문제는 이런 사고가 2015년에도 발생했다는 점이다. 광주광역시 하남산단에 위치한 남영전구에서 집단 수은 중독 사건이 발생한 것. 왜 이런 일은 반복되는 걸까. 문송면 군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노동건강연대에서 이에 대한 이유와 대안을 고민하는 기고 글을 보내왔다.
남영전구 집단 수은 중독 사건
광주광역시 하남산단에 위치한 남영전구에서 집단 수은 중독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2015년 3월 중순부터 4월 중순까지 진행된 형광등 생산 설비 철거 업무 과정에서 발생하였다. 본격적인 철거 작업은 3월 말부터 4월 초순까지 2주간 이루어졌으며, 주로 지하 작업장 형광등 제조 설비의 철거 과정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에게 고농도의 수은 노출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수은이 철거 현장 바닥에 굴러다녔다는 증언과 당시 현장 사진이 있으며, 산소 절단, 철거 작업이 수은의 확산과 증발을 촉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건은 처음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가 집중적인 철거 기간에 약 2주간 직업 철거 업무를 수행했던 60세 김 모 씨가 산재 요양 신청을 하면서 알려졌다. 김 모 씨는 작업 이후 온몸에 두드러기와 가려움증이 생겼으며, 이후 기력 저하, 손발 저림, 입술 떨림 등의 증상이 발생하였다. 그러다가 걷기 어려워지고 젓가락질도 제대로 못할 정도가 되자 6월 중순경 전북 소재 대학병원을 방문하여 수은 중독으로 진단받고 치료에 호전이 없자 8월 4일경에 서울성모병원으로 전원하였다. 김 모 씨는 산재요양신청을 하였고, 이러한 상황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언론보도를 통해 소식을 접한 당시 철거 업무 작업자들이 추가로 산재 요양 신청을 하면서 이 사건은 집단 중독 사건이 되었다. 산재 신청 후 역학 조사를 거치면서 산재 승인은 11월 17일에 결정되었다.
문송면 수은 중독 사건의 데자뷔
이 사건을 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1988년에 발생한 문송면 군 수은 중독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문송면 군 사건은 15세의 문송면 군이 공장에서 온도계에 수은을 주입하는 작업을 하다가 수은 증기 흡입으로 수은 중독이 발생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 문송면 군은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약 2개월간 근무하였다가 두통, 전신 통증, 불면증, 전신 장애, 식욕 감퇴, 피부 가려움 등의 증상을 겪었다. 발병 후 1개월 뒤인 3월 9일 서울대병원에서 수은 중독으로 진단받았으나, 회사 측은 책임을 회피하였고, 노동부는 요양 신청서에 사업주 날인이 없고 진단 병원이 산재 요양 기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산재 승인을 반려하였다. 이후 여론이 악화되자 6월 20일이 되어서야 산재 요양 승인서를 발급하였다.
문송면의 증상은 그 이후 호전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옮겨 치료받던 중 장마비와 심한 구토로 이물질이 기도를 막아 질식으로 사망했다. 이후 진상 조사를 통해 확인된 바에 의하면 문송면이 일했던 작업장은 5평 이하 크기의 폐쇄된 공간이었고, 기숙사 텃세가 심해 그 작업장에서 잠을 잤다. 겨울철 추운 날씨를 난로를 켜놓고 견뎠다. 그리고 이미 협성계공 다른 노동자들도 수은 중독 증상이 있었으나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지금까지 괜찮았다’ 주관적 위험 인식의 위험
“일하다가 간혹 피부 발진이 생기곤 한다.”
남영전구 직원들이 철거 용역 업체 직원들에게 전한 말이었다. 이에 대해 철거 용역 업체 직원들은 ‘피부 이상이 생길 수도 있지만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는 뉘앙스로 받아들였다. 아마도 남영전구 직원들은 수은을 오랫동안 취급한 경험이 있었고, 작업 중 수은 노출이 있다는 사실도 알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들은 수은 노출로 다소 귀찮은 증상이 생길 수는 있으나,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 그 생각은 틀린 것은 아니다. 만약 공기 중 수은이 통상적인 수준에만 머물렀다면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철거 작업은 그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예외적인 상황이었다.
문송면이 일했던 협성계공의 사업주나 관리자들도 간혹 작업 시 수은 노출이 있었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문송면이 심각한 수은 증상을 호소하였을 때, 보상을 노리고 증상을 과장되게 드러낸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15세의 소년이 겨울철에 기숙사 대신 차가운 작업장에서 창문을 닫고 난방을 하며 잠이 들었을 때 수은 노출 수준이 얼마나 더 증가할지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수은 중독의 다른 예외적인 상황은 가열 때문에 고농도의 수은 증기가 발생하는 경우다. 다행히 이번 사건에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산소 절단 과정에서 수은이 순간적으로 고폭로가 이루어졌다면, 화학성 폐렴에 의해 사망할 수도 있었다.
대부분 사고는 다른 예외적인 상황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대부분 직업병이 장기간 노출 때문에 발생한다. 그래서 이러한 위험 인식 자체가 위험요인이 된다. 오랫동안 반복해서 경험해왔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경험적 인과론이다. 50년간 담배를 피워온 사람이 ‘나는 지금까지 폐암에 걸리지 않았으므로 담배는 폐암의 원인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위험 인식은 작업 현장에서 흔히 관찰된다. 그래서 산업안전보건교육을 시행하여 이러한 현장의 경험적 인과론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수은 중독의 진단에서의 혼란
당시 현장에서 철거 작업을 하던 노동자들은 문송면이 겪었던 것과 유사한 증상을 겪었다. 대부분 가려움을 동반한 피부 발진이 있었다. 일부에서는 손과 발의 피부 증상이 지속되었다. 두통, 전신 근육통, 무기력감, 식욕 저하, 불면증과 같은 모호한 증상이 생겼다. 이런 증상은 흔히 두드러기나 감기 몸살로 여겨지며 곧바로 수은 중독이라고 의심하기 어렵다. 손과 발의 저림과 떨림, 감각과 운동 기능에 이상이 생겼을 때 비로소 단순한 감기 몸살로 보기에 특이한 상태가 되면 신경계 질환을 의심하고 수은 중독과 같은 문제를 고려하게 된다. 따라서 증상 초기에 진단이 늦어지는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수은 중독은 단지 의학적 검사만으로 진단되는 질환이 아니다. 진단을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수은에 노출될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에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특수 건강 검진 제도가 시행된다. 특수 건강 검진은 위험물질을 취급하는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건강 검진이다. 특수 건강 검진을 시행하는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는 건강 검진 이전에 노동자가 다루는 위험물질을 사전에 파악하고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건강 영향을 평가한다. 이러한 검진은 노동자가 자신이 어떤 위험물질을 다루는지 파악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하도급에 의해 시행되는 단기간 철거 작업은 특수 건강 검진을 시행하지 않고 있다. 단기간에 진행되는 작업이고, 작업 조건은 수시로 바뀌고, 작업 대상의 위험 요인에 대한 정보 접근이 한계적인 상황으로 인해 사실상 특수 건강 검진은 적용하기 어려운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도적 예외 상황이 사건의 원인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산재요양 승인까지, 너무 긴 시간
이번 사건의 피해자들은 다행히 증상이 완화되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적게는 수 주에서 많게는 수개월 동안 알 수 없는 무기력감, 통증, 불면증으로 일상적인 생활에 큰 지장을 받았고, 직업 활동을 하기 어려운 상황을 겪었다. 이러한 가운데 그들은 집단 수은 중독 사건의 언론 보도로 인해 큰 불안감을 느껴야 했다.
문제는 이러한 사건을 겪은 피해자들에 대한 책임있는 대처다. 피해자들은 고용노동청의 명령으로 임시 건강 진단을 받았지만 법률적, 의학적 상담과 지원은 받지 못했다. 그리고 산재 요양 신청 후 그 결정을 기다리는 데까지 수개월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는 1988년 문송면이 겪었던 상황과 본질에서 다르지 않았다. 문송면은 스스로 직업병임을 증명해야 했고, 그 증명을 통과한 이후에야 지원과 보상을 얻었다. 정황과 조건상 불의의 사고로 인한 것임이 추단되는 상황에서도 통과의례처럼 거쳐야 할 증명과 승인의 과정. 이 과정은 객관성과 공정성이라는 외피를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야만적이다. 왜냐면,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에게 또 다른 고통을 얹는 것이기 때문이다. 약간의 부작용이 있더라도 직업병 사건이 명백한 상황일 경우, 먼저 지원하는 보다 인간적인 제도는 불가능한 것일까?
집단 수은 중독 사고 조사 보고서를 남겨야
완벽한 제도는 없고, 예외적인 상황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사건 발생 자체보다 사건에 대한 대처에서 선진국의 면모가 드러난다. 사건의 팩트를 파악하고,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원인 분석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의 산재 사고는 다양한 위험 요인들이 동시간대, 동일 장소에서 작용한 결과 발생한다. 사고 사례를 면밀하게 파악하는 것만으로 놓치고 있었던 위험 요인을 이해할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나라 산업 재해 통계와 사업 재해 원인 조사가 사고의 원인에 대한 정량적인 정보를 제공해 준다면, 이러한 사고 조사 보고서는 질적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사고 조사 보고서는 예방 전략을 수립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하며, 한 사회의 시스템을 발전시키기 위해 매우 중요한 방법론이다. 그리고 완성된 사고 조사 보고서는 공개되는 것도 중요하다. 산업 안전 보건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시스템을 보완하기 위한 참고 자료가 될 것이고, 산업 안전 보건 교육의 참고 문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관리 감독은 완벽하지 않다. 사업주가 이윤 동기에 따라 은폐하거나 법 규정을 피하려는 시도를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취하는 행정적 조치는 유사업종의 사업주에 보내는 중요한 시그널이며 수많은 재원을 투자하여 시행하는 산업 안전 보건 사업만큼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사건의 최종적 책임 소재를 어떻게 두느냐, 처벌 수위를 어떻게 두느냐는 매우 중요한 결정이다.
모든 사고는 사고 이후 대처가 중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유사한 사고는 언제든지 반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