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물질 ‘직업병’ 허위진단 심각
① 특수검진기관 운영실태
2007-04-18 오후 2:08:17 게재

인체위험 기준치 넘어도 ‘정상’ 판정일쑤 … “사업주·검진기관 유착 때문”

수은과 벤젠, 톨루엔 등 유독성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60여만명의 노동자가 엉터리 특수건강검진으로 피해를 당하고 있다.
지난해 말 노동부가 특수건강검진을 시행하는 전국 120개 기관을 일제히 감사한 결과 1곳을 제외한 모든 곳이 허위건강진단과 무자격자 사용 등 심각성을 드러냈다.
노동계는 검진기관과 사업주가 유착해 노동자 건강을 멍들게 하고 있는 데도 감독기관인 노동부가 방관만 해왔다고 비판하고 있다. 유해위험물질을 취급하는 노동자에 대한 특수건강검진 실태와 문제점을 살펴봤다.

인체에 해로운 유해화학물질을 취급하는 노동자에 대한 직업병 관리에 구멍이 뚫렸다. 각종 중금속과 유기용제 등의 기준치가 넘었는데도 특수건강진단(특수검진)기관은 ‘정상’ 판정을 내려 허위로 진단하고 있다. 이에 대해 노동계와 일부 전문가는 특수검진기관이 비용을 부담하는 사업주와 유착돼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유해물질 온몸으로 퍼져도 ‘정상인’ = 노동부가 지난해 말 120개 특수검진기관을 일제히 감사한 결과, 대전에 있는 한 검진기관은 혈액에서 기준치를 훨씬 초과한 납 성분이 검출됐는데도 정상 판정을 내렸다. 혈액 중 납농도가 ‘60’을 넘어설 경우 ‘직업병유소견자’(D1) 판정을 내려 예방이나 치료조치를 취해야 하지만 이 기관은 노동자 2명의 혈중 납농도가 ‘90’이 넘는데도 정상 판정을 했다.
주영수 산업의학 전문의는 “임상적으로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상태”라며 “그 정도 납농도에 대해 정상판정을 내린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의들은 납이 인체에 지속적으로 축적될 경우 위장장애와 빈혈증의 증세가 생기며, 신경근육장애와 말초혈관 축소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기관은 이밖에도 유기용제를 취급하는 13명의 노동자한테서 간기능이 기준치를 넘었는데도 정상판정을 내리는 등 직업병 관리에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지난해 4월 부산의 한 피혁업체에서 일하던 중국동포 김 모(34)씨는 ‘디메틸포름아미드’(DMF)라는 간에 치명적인 유해물질을 취급하다 사망했다.

◆특수검진비용 100% 사용자 부담 = 김씨는 이에 앞서 지난해 2월 부산 백병원에서 특수건강진단을 받았지만 정상판정을 받고 작업을 계속하다가 ‘전격성간염’으로 숨졌다.
노동계는 특수검진기관의 엉터리 진단이 사업주와 병원간의 유착관계에 근원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환경연구소 국장은 “병원들이 특수검진을 유치하면 일반건강진단 유치도 유리하기 때문에 사업주의 눈치를 보는 것 같다”며 “사실상 사업주가 가지고 있는 검진기관 결정권을 노동자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지난 10일 ‘특수건강진단 제도개선 토론회’를 열고 “특수검진을 통해서 직업병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직업병으로 드러날 경우 노동자가 퇴사강요를 받기 때문에 스스로 숨기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국특수건강진단협회 김철웅 사무국장은 “특수검진은 사업주가 비용을 100% 부담하고 있다”며 “사업주가 마음에 안들면 진단기관을 바꿔버린다”고 말했다.
사실상 이들 기관이 사업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임을 인정한 것이다. 노동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유기용제와 특정 화학물질 중독으로 사망한 노동자는 23명에 달해 직업병 관리에 대한 총체적 수술이 시급하다는 여론이 높다.

백만호 윤여운 기자 hopebaik@naeil.com

● 특수건강진단이란
177개 유해물질 취급 노동자 대상

특수건강진단(특수검진)은 177개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각종 유해성 물질에 대한 중독정도 등을 진단해 직업병을 예방하기 위한 제도이다.
노동부는 전국 120개 특수검진 기관을 선정해 노동자들의 검진을 의무화하고 있다. 검진대상 유해물질은 톨루엔, DMF(디메틸포름 아미드), TCE(트리클로르 에틸렌), 벤젠, 메틸 등이 포함된다.
지난 2005년 기준으로 특수검진을 받는 대상은 3만5335개 사업장에서 66만8000여명이다. 하지만 실제 특수검진을 받아야 하는 노동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노동계는 추정하고 있다.
특수검진 항목은 △과거병력·작업경력 및 자각·타각증상(시진·촉진·청진 및 문진) △혈압·요당·요단백 및 빈혈검사 △체중·시력 및 청력 △흉부방사선 간접 촬영 △혈청 GOT, GPT 및 총콜레스테롤 등이다.
특수검진을 실시하는 기관은 2006년말 현재 대학병원 36곳, 보건협회 15곳, 산재의료관리원 7곳, 일반 병·의원 등 120곳이다. 특수검진기관은 검사결과를 사업주와 한국산업안전공단에 30일내에 보고해야 한다.

문진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