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병 유소견자’ 2005년 고작 1명
② 정부 직업병 통계부실 심각
2007-04-19 오후 1:48:12 게재
검진기관 1곳서만 13명 은폐 의혹 … 발병전 사전대처 불가능
수은과 벤젠, 톨루엔 등 유독성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60여만명의 노동자가 엉터리 특수건강검진으로 피해를 당하고 있다.
지난해 말 노동부가 특수건강검진을 시행하는 전국 120개 기관을 일제히 감사한 결과 1곳을 제외한 모든 곳이 허위건강진단과 무자격자 사용 등 심각성을 드러냈다.
노동계는 검진기관과 사업주가 유착해 노동자 건강을 멍들게 하고 있는 데도 감독기관인 노동부가 방관만 해왔다고 비판하고 있다. 유해위험물질을 취급하는 노동자에 대한 특수건강검진 실태와 문제점을 살펴봤다.
유해화학물질로 인한 노동자의 직업병 예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관련 통계가 부실해 심각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5년 유기용제에 중독됐을 가능성이 높은 ‘직업병유소견자’가 정부공식 통계로는 불과 1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같은 해 대전의 한 특수건강진단기관 1곳에서만 유기용제를 다루는 5개 사업장 13명의 ‘직업병유소견자’가 ‘정상인’으로 둔갑했다.
◆통계상으로는 걱정 없어 = 노동부 산하기관인 한국산업안전공단에 따르면 지난 2005년 특수검진을 받은 노동자는 64만6892명이다. 이 가운데 직업병이 의심스러운 ‘직업병유소견자’는 2192건이 접수됐다. 광산 등에서 일하다 발생하는 진폐증과 ‘소음성 난청’이 2135건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하지만 정작 문제가 되는 나머지 유해물질 등에 따른 직업병 의심자는 57건에 불과하다.
특히 납이나 수은 등 중금속을 뺀 순수한 유해화학물질에 의한 의심자는 불과 6명으로 집계됐다.
이에 대해 산업안전공단 관계자는 “한 사람이 두 개 이상의 항목에서 의심자로 처리될 수 있으므로 정확한 직업병유소견자는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산업안전공단은 전국 120개 특수검진기관에서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노동자의 검진결과를 보고받아 관련 직업병의 예방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실제로는 의심자 투성이 = 지난해 노동부가 특수검진기관을 일제히 감사한 결과 대전의 한 기관에서만 유기용제중독 의심자 13명이 모두 정상으로 판정 받았다. 이들은 모두 톨루엔과 DMF(디메틸포름아미드)의 농도가 기준치를 초과했으며, 간 기능에 문제가 있었지만 모두 정상인으로 처리됐다. 작업수행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판정을 받았고, 사후관리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도 톨루엔 등이 인체에서 기준치를 넘어 검출됐는데도 3명의 노동자를 정상으로 처리했다.
전문가들은 유기용제중독 의심자가 별도의 예방조치를 취하지 않고 같은 환경에서 지속적으로 일할 경우 직업병이 발병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해 4월 부산에서 유해물질인 DMF(디메틸포름아미드)에 중독돼 사망한 중국동포 김 모씨가 숨지기 불과 80일전에 특수검진에서 근무가 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던 것이 대표적이다.
노동부 감사결과 이처럼 ‘직업병유소견자’(D1)가 ‘정상인’(A)으로 처리되거나 ‘일반질병유소견자’(D2) 등으로 허위로 진단한 경우가 120곳 가운데 107건에 달했다.
◆“직업병 의심자 제대로 드러나야” = 상황이 이처럼 심각한 데도 노동부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당장 정상인으로 판정받은 ‘직업병유소견자’에 대한 통계조차 집계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각 지방청별로 자료가 집계돼 있어서 정확한 통계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언제라도 직업병 발병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이들에 대한 정확한 통계와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환경연구소 국장은 “직업병유소견자가 직업병으로 전환하는 것은 상식”이라며 “이들에 대한 정확한 통계도 없이 대책마련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조심스런 의견도 있다. 주영수 산업의학 전문의는 “각종 생물학적노출지표 등 몸에 이상이 있을 때는 작업환경과 밀접한 인과관계를 따져야 한다”며 “화학물질에 어느정도 노출됐는지 등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