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프레시안의 기획 연재기사 <조선소 잔혹사>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노동건강연대는 2014년 5월 시작한 현대중공업의 해외투자자 대응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UN 기업과 인권 포럼에 참가 해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사망 문제를 집중적으로 알렸습니다. 프레시안에 연재되었던 <조선소 잔혹사>를 영어로 번역해 발간한 책을 들고 참가했습니다. 세계 각국의 인권활동가들과 언론, 그리고 현대중공업의 투자자와 선주사 까지도 많은 관심을 보이는 자리였습니다. 특히 몇몇 선주사와는 한국에서의 만남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현재 <조선소 잔혹사> 영어판은 노동건강연대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특히 번역에 참여해주신 노동건강연대 회원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조선소 잔혹사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사망이 쇼킹하다고?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지난 4월, 이메일이 왔다. <Norwegian engineering magazine Teknisk Ukeblad>라는 노르웨이 잡지사 기자였다.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사망 문제를 취재하고 싶다고 했다. 2014년 5월 구성된 ‘현대중공업 비정규직 산재사망사고 네트워크‘에서 외국 투자자와 선주사에 사망사고와 각종 산재문제 관련 정보와 질의서를 보내면서 외신에도 보도자료를 보냈었다.
이메일을 받을 당시, 현대중공업은 노르웨이 선주사로부터 세계 최초로 건조되는 원통형 FPSO인 ‘골리앗‘ 제작을 마친 상태였다. 노르웨이 기자는 자국 선주사가 의뢰한 배를 만드는 데 그렇게 많은 한국 노동자가 죽는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 듯했다. 곧바로 이메일을 보낸 기자와 긴밀한 소통 속에서 3건의 기사가 만들어졌다. 그 기사는 현대중공업에서 만든 ‘골리앗‘이 노르웨이에 도착할 즈음에 세상에 공개되었다.
ⓒ노르웨이 기사화면
2014년 5월,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이 계속 죽어가던 시기였다. 이미 5월이 되기 전, 상반기에만 7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비난 여론이 있었지만, 기업은 개의치 않는 듯했다. 현대중공업이 있는 울산에선 여전히 배가 만들어지고 있었고, 사람들은 위험에 처해 있었다.
한국은 산재사망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나라이다. 단적으로 영국에서 1명이 사망할 때, 한국에서는 12명이 사망한다. 다양한 요인이 이런 차이를 만들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국 사람이 일하다가 더 많이, 더 자주 죽는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사망은 다른 OECD 가입국을 압도한다. 그렇다 보니 한국에서는 일하다 죽는 게 당연한 일로 여긴다. 반면, 해외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노동건강연대의 한 연구자가 스웨덴에 갔을 때, 한국의 높은 산재사망률을 줄이는 방안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며 질문을 던졌다. 돌아온 대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람이 일하다가 왜 죽나요?”
어느 나라에서 기업을 운영하느냐에 따라 노동자의 생명은 길을 달리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은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현대중공업의 투자자나 배 제작을 요청하는 선주사는 주로 해외에 있다. 특히 유럽에 몰려있다. 그들이 돈을 내서 만드는 배가 이렇게 위험하게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현대중공업 비정규직 산재사망사고 네트워크(이하 네트워크)’는 2014년 6월, 노르웨이와 네덜란드 연기금에 첫 편지를 발송했다. 2004년부터 2013년까지 사망한 노동자 명단과 구조적 이유를 전했다. 4만 명에 달하는 하청노동자들의 위험한 처지도 함께 전했다. 하청업체의 무책임함과, 그것을 유도하는 원청인 현대중공업, 가장 위험한 처지에 놓여있는 5분 대기조인 물량팀의 존재도 이야기했다. 그리고 책임 있는 투자를 요청했다. 노르웨이‧네델란드 연기금은 현대중공업 투자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네덜란드 연기금자산운용(APG)의 아시아본부로부터 연락이 왔다. 7월 4일, 아시아본부 지속가능‧지배구조 담당자가 울산을 방문했고, 그 길에 동행해 하청 노동자들을 직접 만났다. 이사회 등을 통한 구조적 해결 방법을 모색하기로 했다.
2014년 8~9월에는 두 기관으로부터 답변을 받았다. 특히 네덜란드 공적연금(ABP) 문서에는 “For ABP this is shocking information that raises a lot of questions that have to be answered by the company.(ABP의 입장에서 이는 현대중공업이 대답해야만 하는 많은 질문들을 제기하는 충격적인 정보입니다)” 이런 문장이 있다.
길가에 콘크리트를 붓는 작업을 할 때도, 우주복처럼 생긴 보호복을 착용하고 일하는 나라에 사는 그들에게, 일을 급하게 하다가 떨어져 죽고, 질식사 하고, 깔려 죽는다는 이야기는 꽤나 놀라웠던 듯했다. 이 소식을 중요한 주제로 다룰 것이며,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을 조선소에 대해서도 알아보겠다는 내용의 답변을 보내왔다.
노르웨이 중앙은행 산하 투자관리청(NBIM. Norway Bank Investment Management)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답변을 보내왔다. 노르웨이 중앙은행은 8000개 이상의 회사의 투자와 글로벌 주식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를 운용하는 중요한 관점 중 기업의 위험에 관한 부분은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UN 글로벌 컴팩트, OECD 기업지배구조원칙을 따른다는 내용이었다. 현대중공업의 산재사망 문제도 이러한 원칙에서 검토하겠다는 취지였다.
이후 NBIM에서는 2015년 3월에도 편지를 보냈다.
“우리는 OECD 가이드라인을 특별하게 따르고 있다, 우리는 기업들이 국제적으로 승인된 기준과 조약을 준수해야 한다고 믿으며, 위험관리절차의 단계로서 현대중공업의 상황을 확인하고, 2015년 3월, 현대중공업 이사회에 통보했다. 우리는 윤리위원회에 위의 사실을 통보했고,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윤리위원회의 결정사항을 따를 예정이다.”
이러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특별히 이런 사실을 알려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전해왔다.
인권 가이드라인을 철저히 지키는 해외 기업들
이러한 반응을 보인 이유는 세 가지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OECD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이다. OECD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은 1976년 제정되었고 2011년에 제5차 개정안이 발표되었다. 가이드라인은 OECD회원국이 다국적기업에 부과하는 행동기준(standard of the activities)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OECD가입국에 근거를 둔 다국적기업은 ①활동장소에 관계없이 ②국제적으로 인정된 모든 인권을 존중할 책임을 진다는 것, ③직접 부정적 인권영향을 야기하거나 그에 연루되어도 안 되며, 사업관계를 통해서도 인권침해에 연결되면 안 된다는 것, ④인권존중정책을 선언해야 하며, ⑤인권침해를 방지하거나 완화하기 위해서 실사(human rights due diligence)를 실시해야 한다는 것, ⑥발생한 침해에 대해서는 구제절차를 제공하거나 구제에 협력해야 한다. 이 가이드라인은 권위있는 국제기구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국제적 보편성을 띤 규범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1)
또 다른 하나는 UN Global Compact다. 이는 2000년 공식 출범하였는데, 국제사회에서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이행함으로써 세계화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의 해결에 일익을 담당하며, 인권·노동·환경·반부패의 네 가지 영역에서 10개의 원칙을 준수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UN Global Compact는 기업의 행위나 활동을 강요하거나 조정하는 규제수단이 아닌 관계로 법적 구속력은 없으나, 2015년 기준 161개국 이상에서 8368개의 기업이 참여하고 있으며, 유엔과 기업이 직접 인권원칙을 준수하기로 약속하는 방식이다.2)
마지막으로 ‘OECD 기업지배구조원칙’은 1999년 OECD 각료회의가 제정하고 2002년에 개정한 일종의 지침으로서, 주주와 이사회의 권리와 책임, 이해관계자의 존중, 공시 등에 관한 원칙적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문서 자체는 법적 구속력이 없지만,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려는 다수의 정책입안자, 투자자, 기업들에 의해서 권위있는 지침으로서 수용되고 있다.
이러한 세 가지 원칙에 비춰볼 때, 현대중공업의 산재 사망사고는 투자운영회사 입장에서도 문제시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일하다 사람이 죽어나가는데도 이를 방관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방기한 일이기 때문이다. 자기네가 투자하는 회사가 그런 행동을 취하는 것은 투자자인 입장에서 불편할 수밖에 없다.
사람 죽는 구조를 ‘모르쇠‘로 일관하는 현대중공업
이렇듯 해외의 반응은 지금의 구조가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현대중공업은 사태를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2014년 9월 29일, 네트워크는 현대중공업에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의 산재 현황‘과 ‘산재안전‘ 관련한 몇 가지 질의‘를 보냈다. 6월, 현대중공업그룹인 현대미포조선에서 하청노동자 3명에 대한 질식사고가 있었고, 8월 또 한명의 하청 노동자가 사망한 직후였다.
질의서에는 ①산업안전보건위원회의 역할과 성과 ②‘안전경영 쇄신을 위한 종합개선대책‘에서 밝힌 3000억 투자의 구체적 내용 ③안전보건공단에서 실시한 ‘현대중공업 종합진단 결과’에 대한 주요 내용과 대응 계획 ④위험과 재해의 전가, 사내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산재은폐와 차별 현황 ⑤산업재해 관련 정책 및 성과의 정기적인 보고여부 및 공개여부 ⑥6월 현대미포조선 사내하청 노동자 3인의 질식사고, 8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1인의 사망사고 이후 최근까지의 경과 ⑦CSR보고서 중 ‘인권‘, ‘노동‘, ‘사회‘ 지표의 보고내용 추가, 총 7가지의 항목으로 구성되었다. 답변 기한을 10월 20일까지로 두었으나, 현대중공업에서는 현재까지도 아무런 응답이 없다.
그래서일까. 11~12월 동안, 2명의 하청노동자가 사망했고 올해에도 두 명의 노동자가 사망했고 한 명의 노동자가 현재 의식불명이다. 현재도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은 죽고 있고, 올 해 초부터는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하청업체를 폐업시키고 있다.
하청노동조합은 여전히 하청노동자들에게 큰 들숨을 쉬고 문을 두드려야 하는 존재이다. 업체 폐업, 하청노동조합 가입으로 인한 블랙리스트에 오른 노동자들이 현대중공업 정문에서 100일이 넘도록 노숙농성을 하고 있는 사이, 현대중공업의 대주주인 정몽준의 FIFA 회장 출마 소식도 들려온다.
우리나라 하청노동자들은 언제까지 이런 구조 속에서 목숨을 내놓고 일해야 하는 걸까. 지금 상황으로는 이런 상황이 지속해서 반복될 듯하다. 해외 연기금에 보낸 편지를 한국 국민연금에도 보냈다. 한국 국민연금도 현대중공업의 주주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보낸 답변으로 글을 마무리 한다.
“귀 기관이 요청하고 있는 사안은 국민연금의 안정적인 투자수익 제고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명확하지 않으며, 또한 만일 국민연금이 개별기업의 경영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 간섭하는 경우 자본시장법상 경영참여로 간주되어 5%공시, 10%공시, 단기차액반환 등에 있어서 국민연금이 받고 있는 예외적용 혜택을 상실하게 되어 운용상의 직접적인 제약을 받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국민연금의 책임투자와 관련되어 현재 여러 이해관계자들로부터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고 있으며 책임투자의 범위와 한계에 대해서는 기금의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아직 합의에 이르고 있지 않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현행 기금운용 규범체계 내에서는 귀 기관의 요청사항을 국민연금공단이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참고
1) 기업에 의한 인권침해와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이상수
2)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슈와 대응 방안, 고동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