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이야기
현명한 건강검진
김정민 / 청주의료원 직업환경의학과
출장검진에서 있었던 일이다. 수검자들이 밀려들어 시장통 같은 분위기 속에 중년의 남성이 나에게 물었다. “검사(문진) 항목에 ‘정상’이라고 체크하셨는데, 무슨 근거로 그렇게 적습니까?” 잠깐 생각하다가 이렇게 답했다. “‘비정상’적인 소견이 없으니 ‘정상’입니다.” 검진이 부실한 것 같아 물었을 그에게 나는 이상한 선문답을 하고 말았다. 역학교과서에서 읽었던 글귀가 갑자기 생각났었기 때문이다. “질병이 없는 정상인이란 충분히 검사받지 않은 사람일 뿐이다(a normal individual is a person who has not been sufficiently examined).”
영화 ‘꾸뻬 씨의 행복여행’에서 주인공 헥터는 ‘때론 진실을 모르는 게 행복일 수 있다’고 행복의 팁을 전한다. 갑상선암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찾아내고 있는 한국에서 곰곰 생각해볼 말이다. 검사 항목이 많을수록, 검사가 비쌀수록, 문제를 많이 찾아낼수록 좋은 검진일까. 이와 관련해서 우리는 흔히 쓰게 되는 단어가 ‘과잉’이다. ‘정상과 비정상’만큼이나 ‘적정과 과잉’이라는 대응은 경계가 모호하다. 하지만 분명 과잉 진단은 존재하고 유해한 추가 검사와 과잉 치료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안전하게 운전하려면 액셀과 브레이크를 적절히 다뤄야 하듯, 유익한 건강검진을 받으려면 필요한 검사와 불필요한 검사를 구별할 줄 아는 ‘헬스 리터러시(health literacy)’가 필요하다. 또 무슨 공부를 하라는 거냐는 귀차니즘이 발동한다면 건강검진은 국가건강검진이면 충분하다고 정리해도 괜찮겠다. 국민건강보험에서 제공하는 일반 검진과 암 검진만 충실히 받아도 당신은 A학점을 받을 수 있다.
검진의사로 일하면서 수검자에게 자주 언급하는 주의 사항이 있다. 1) 검진은 증상이 없는 정상인이 받는 것이다. 일단 몸에 이상이 느껴져 불안하다면 동네 주치의를 찾거나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 2) 검사를 위해 금식이 필요하더라도 당뇨약을 제외한 필수적인 처방약(혈압약 등)은 아침 일찍 소량의 맹물로 복용해도 좋다. 물론 주치의와 상의하는 게 기본이다. 3) 위암 검진은 위장조영검사보다 위내시경검사가 좋다. 4) 대장내시경검사에서 정상이라고 판정을 받은 경우에는 5년 뒤에 대장내시경검사를 받으면 충분하다. 5) ‘수면’내시경검사는 틀린 용어다. ‘진정’내시경검사가 바른 용어다. 푹 자고 일어났다면 사실 진정제 용량이 과했던 것이다. 6) 방사선 노출이 많은 CT 검사는 피해야 한다. 특히 나이가 젊을수록 그렇다. 7) 종양표지자검사라는 혈액검사도 피해야 한다. 결국 수치가 정상보다 높지만 암은 아닌 것 같다는 애매모호한 결과를 듣게 될 확률이 높다. 이 경우 ‘사서 고생을 한다’는 말이 딱 맞다.
2012년부터 미국에서는 ABIM(미국내과의사인증기구) 재단을 중심으로 70여 개의 전문학회가 참여한 ‘현명한 의료이용(Choosing Wisely)’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과잉 진단과 불필요한 치료를 막기 위해 의사와 환자에게 표준 권고안을 제시하고 있다. 2014년 이런 ABIM 재단에서 미국 의사 600명에게 불필요한 검사를 하게 되는 이유를 물었다.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1) 의료사고가 걱정돼서(52%), 2) 혹시 모르니까(36%), 3) 환자를 안심시킬 정보를 얻기 위해(30%), 4) 환자가 거듭 요구하니까(28%), 5) 환자를 만족시키기 위해(23%), 6) 최종 결정권은 환자에게 있으니까(13%), 7) 환자와 충분히 상담할 시간이 없어서(13%), 8) 수입을 위해서(5%), 9) 새로운 기술이라서(5%). 불필요한 검사가 의사의 방어적 목적이나 환자의 요구로 인해 실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사회가 불안하니 건강에 대한 불안도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의료 이용자가 성숙해져야 과잉 진단(검진)을 막을 수 있다. 새삼 ‘불행을 피하는 것이 행복으로 향하는 길은 아니’라는 헥터의 조언을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