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기록하고 되짚다1

속 깊은 대화 :

앞이 보이지 않게 된 노동자들과 함께 한 1

 

대담 참여자 : 김명희 / 편집위원,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상근연구원

                  박혜영 /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비가 내리던 지난 6월의 어느 날서울의 한 카페에서 노동건강연대 박혜영전수경 활동가들과 메탄올’ 이야기를 나누었다청년 노동자들의 메탄올 중독사건이 세상에 알려진지 1년이 넘었다이 날도 두 활동가 모두 다음 스토리펀딩의 마무리를 장식할 토크 콘서트 준비에 정신이 없었다그동안 사건을 알리는 언론 인터뷰는 많이 했어도오랜 시간 차분하게 앉아 자신의 지난 활동을 돌아보고 이야기를 나눈 것이 처음이라고 했다이야기는 길어져서점심을 먹고 자리를 옮겨서도 계속되었다인터뷰는 편집위원인 김명희가 진행하고시민건강증진연구소 영펠로우 류한소가 기록과 정리를 맡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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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병원을 찾아갔던가서 만난 것

김명희이번 메탄올 사건의 발단부터 지금까지 가장 가까이에서 피해자들과 함께 이 문제를 다뤄왔는데뭐가 제일 보람 있었고제일 아쉬운 건 뭐였는지 얘기해주세요.

박혜영가장 보람 있었던 건무작정 병원을 찾아갔던가서 만난 것여섯 명 중 두 명은 병원에서 만났고두 명은 수소문도 하고트위터에 어떤 간호사가 올린 글 보고 쪽지 보내서 무작정 찾아가게 되었고… 하루하루 피해자 찾느라고 인터넷을 얼마나 뒤졌는지 몰라요두 명은 나중에 사무실로 제보가 온 건데요사실 처음에 엄청 경계를 하셨는데 일단 만나서 얘기를 들은 것가족이나 지인 이외의 첫 사람인 거라서뭐랄까사건으로 다가갔다기 보다는 인간의 삶으로 다가갔다고 그래야 되나그런 경험을 한 것 같아요흩어져있는 피해자들과 관계를 맺는 게활동하는 내내 힘들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는데계속 관계 맺음을 했어요그래서 더 자세한 상황을 세상에 알릴 수 있게 되었고피해자들도 서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돼서그게 보람 있는 것 같아요아쉬운 건노동계에서 폭넓게 이 사건을 함께 대응하지 못한 것처음에는 뭔 상황인지어디서부터 풀어야 하는지 몰라서각자 대응하다가 굵직한 요구 같은 걸 못 만든 게 아닌가 아쉬움.

제대로 대응을 못했단 건 어떤 거죠?

피해 당사자들은 만났지만사건이 일어났던 인천부천 지역과 상황을 공유하고 무엇인가를 도모하는 일을 못했어요인천 지역은 건강권 운동을 하는 분들이 계셔서이 분들이 적극적으로 해주셨죠노동자들은 자기가 메탄올을 쓰는지조차 모르는데 메탄올 피해자 찾는다고…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부천은 그것조차 안했거든요그걸 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상의할 수 있는 조직이 없었다고 해야 하나작년 10월 초에 추가 제보 들어오고 나서야 답답한 마음에 부천을 무작정 갔죠가기 전에 민주노총에 물어봤을 때부천 지역에는 조직이 없다는 대답만 들었고그래서 한국노총부터 찾아갔죠비정규센터랑 이주민 센터도 찾아갔어요이 사건을 알고 있는 데가 없더라구요그 때 후회를 했죠진작에 찾아왔으면 어땠을까물론 이 사건을 혼자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어려운 일이기는 했지만… 나중에, ‘누가 운 나빠서 눈이 멀었다며?’, ‘그런 일이 있었다더라는 얘기가 공장 주변에 돌았다 하더라구요김영신전정훈 씨도 사건이 알려진 지 9개월 만에 알려지고현장이랑 멀리 있어서 그리 된 게 아닌가 싶어요.

나 방송하면 피해자 줄일 수 있어요그럼 할래요

일로서 제일 어려웠던 건 뭐예요?

기자들 상대하는 것 (웃음). 산업 담당 기자들한테 연락이 많이 와 가지고… 노동을 생판 모르는 기자들이 1부터 다 물어보니까.

근데 그들이 왜노동 기자가 아니라?

삼성 LG 얘기가 나와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헤아려보니까 5~60명은 넘게 만난 것 같은데왜 힘들었냐면사건이 일어난 맥락을 설명해야 되니까노동재해의 역사부터 설명을 해야 했어요제가 1년에 몇 명의 노동자가 일 하다가 죽는지 아시나요 물으면 안다는 사람이 한 5% 되려나위험의 외주화 이런 말은 들어봐서 아는데사망은 정말 몰랐다는 거죠. 1년에 2천명이 죽는 거는파견노동에 대해서도 한두 시간 인터뷰를 해 가면기사에는 대기업 하청 문제만 나와요초창기에는 언론에 피해자 인터뷰가 제법 나갔어요당사자는 몸도 마음도 아프고 힘든데자꾸 인터뷰를 해야 한다고 연락이 와그래야 사람들이 관심을 보인다고힘겨워 하는 당사자 설득하고 같이 울고다독이고 또 가족들이랑도 양해 구하고한다 안한다 했다가 그 때 정말 마음이 힘들었죠가족들이 언론을 굉장히 꼼꼼하게 모니터링 하셨는데기사에 사실관계가 다른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거나 개인정보가 생각보다 많이 나가면 그걸 다 나한테 항의하세요기자랑 인터뷰 할 때 말씀하신 건데그거 고쳐달라고 나한테 뭐라고 하니까난 또 밤늦도록 기자들이랑 실랑이 벌이고고쳐지기도 하고 안 고쳐지기도 하고당사자들이나 가족한테 미안하고중간에 시사매거진 2580 촬영할 때아무도 인터뷰 못하겠다고 하고나도 공중파에 그렇게 나가는 건 지금 상태에서 많이 힘들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근데 갑자기 새로운 피해자가 나온 거에요이진희 씨그 날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이현순 씨한테 전화가 왔어요. “나 정말 하기 싫은데또 다른 피해자가 나왔다면서요내가 방송하면 더 피해자 줄일 수 있어요나 그럼 할래요.” 하는 거에요그날 전화통 붙들고 얼마나 울었는지..

네이버 기사에 댓글 다는 활동가

그럼 본인이 활동가로서 성장한 부분은 뭘까요?

이런 민망한 질문을… 저는 감성적인 사람이라서차분하게 정리하는 버릇은 생기긴 했어요자칫하면 관성에 따라 일하게 되는데이번 경험을 하면서 그걸 경계하는 훈련이 되었어요지식인 사회가 얼마나 편협한지를 깨닫기도 하고

깨달음을 얻으셨군요.

너무 부끄러웠어요진짜트위터우리가 보는 페이스북이랑 언론그 바깥의 세상을 맞닥뜨렸다는 생각이 들고편하게 운동했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반성을 하고

지식인 사회에는 뭐가 제일 놀라거나 실망한 거예요?

지식인 사회는 일단은 이런 사건이 벌어지면평론을 먼저 시작하는 것 같애(웃음). 민주노총도 그렇고

민주노총이 지식인입니까?

박 글쎄요지식은 많죠그 지식이 현장이랑 괴리된 것 같아요처음 사건 터지고 같이 해보자는 제안을 기대했거든요우리는 당사자들이랑 관계가 있고현장 노동운동에는 현장의 감각이 있으니까그런데 민주노총 현장에서는 이 일을 몰랐고중앙에서는 어땠냐민주노총이 직업환경의학회한국 산업보건학회한국 직업건강간호학회랑 같이 국회에서 토론회를 개최한다면서 저한테 전화를 했어요. ‘토론회 할 건데 장소 좀 빌려봐 봐’. 그 황당함은 말로 못해요전문가들 모여서 토론회를 할 때인지 모르겠고,. 결국 토론회를 하더군요토론회에도 오라는 얘기조차 못 듣고포스터 보고 찾아 갔죠보고 있는데정말 저들이 이야기하는 것 때문에 사건이 발생한 건가예방책이라고 제시한 걸 하면 정말 예방이 될까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그 분들도 충격을 많이 받았다고 하고여러 각도에서 분석을 했어요근데저들이 현장파견노동의 현장무정부상태인 그 현장을 정말 알고 있는 걸까 의구심이 들었어요또 파견 노동이 아니라 영세사업장 건강관리 문제메탄올 문제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생각도 했어요그동안 산업보건이라는 게 저런 식으로 되어 왔구나현실은 없고 서류만 있었구나토론회 다 끝나고 손들고피해자들은 이렇게 지낸다이거 좀 생각해달라이렇게 한 마디 하고 말았는데그 뒤로도 노동부에서 노동계랑 미팅을 엄청나게 했대한 달에 한 번 이상어떤 내용이 오고 갔는지는 지금도 몰라요들은 일이 없으니

그 노동계라 함은 민주노총?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노동안전보건 담당자요그래도 피해자 문제는 내가 젤 잘 아니까상의도 하고다양한 각도로 하면 좋았겠지만그런 상의는 이루어지지 않았어요많이 아쉬웠어요좀 더 상의하고폭넓게 대안도 내서 현장을 더 들여다보는 활동을 했으면 어땠을까제가 사건 대응에 지쳐서 좀 휴식을 취하다가 9월 말에 전정훈 씨랑 김영신 씨 새로 제보받고 바로 기자회견 급하게 열었잖아요그리고 김영신 씨랑 같은 회사를 다니던 양호남 씨 누나를 만나러 수원에 JTBC 기자랑 가 있는데 민주노총에서 전화가 왔어. “내가 뭘 해야 되냐?” 이러는 거예요뒤늦게 부천 지역엘 찾아갔더니 이 사건에 대해서 아무도 모르고 있더라구요그래서 같이 선전전이라도 하자 했더니 유인물을 만들어 오라는 거야뿌려주겠다고지역에서 상의 해보고 의견을 내 보겠다이런 얘기가 나올 줄 알았어요우리는 지역 상황을 잘 모르기도 하고단순히 피해자만 찾는 것보다는파견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나 행동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갔는데.

그러니까 민주노총 라인 안에서도?

한국노총도 다를 것 없고지역 비정규센터도 몰랐어외국인 노동자 센터도 몰랐고그렇게 찾아다녔는데이 문제를 아는 데가 한 군데도 없었어요.

신문에도 제법 나왔는데…?

아니 한번이라도 얻어 걸려야 될 거 아니야얼마나 기사가 많이 나왔어시사프로그램도 다 나왔고저는 초반에 민주노총 중앙에서 부천이나 인천 쪽이랑은 이 문제를 가지고 상의를 했을 줄 알았어요그래서 추가 피해자는 진짜 없다고 생각했거든요근데 나중에 부천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부천이나 인천 지역에는 없는 거냐 한탄을 했더니, “거기 찾아가 봐” 그래서 뒤늦게 찾아간 거야.

만약에 유사한 일이 또 벌어진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죠?

팀을 잘 꾸려야 된다관성적인 연대대책위 같은 거 필요 없고해서도 안 돼대책위 같은 건 하면 실무만 늘어나정말 끔찍해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걸 찾아야죠지금 꾸리라 그러면 뭐 부천인천비정규센터 이런 데 찾아갈 것 같아안산 비정규센터도 포함하고파견 문제 하는 조직 포함하고하여튼 무슨 서울에 60개 조직 연대체이런 건 안 돼.

기존에 하던 중앙 단위의 이런 게 아니라?

서울에서 할 수 있는 역할도 있겠죠그런데 현장에서만지역에서만 알 수 있는 내용들이 있거든요지역의 정서와현장 상황 이런 것들그런 것들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그래야 싸울 수 있는 당사자도 한명이라도 더 생기고작년에 제가 네이버 지식인이나 언론 기사 중 파견메탄올 관련된 글들에 댓글을 달고혹시 유사한 피해자가 있는지 찾는 일을 했어요그 댓글에궁금한 게 있으면 전화 달라고 사무실 전화번호를 엄청 뿌렸거든요사고가 발생하고 몇 달 후에 사고 난 세 개 업체 중 두 개에서 일을 했다는 사람에게 전화가 왔어어떻게 알고 전화했냐고 했더니, “댓글에 전화하라고 써놓으셨잖아요” 하더라고요. 1~2월에 사고가 났는데 전화 온 게 5월쯤이었어요왜 이제야 전화했냐고 하니까자기는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는데같이 회사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지나가면서 누가 눈이 멀었다더라 이런 얘기를 들었대요그래서 검색을 해봤다면서 이것저것 물어보더라구요그 분은 저랑 다섯 번 정도한 번에 1시간 정도씩 통화를 했어요폐업한 업체가 어디 가서 다시 회사를 차렸는지노동환경은 어땠는지누가 어떤 방식으로 공정에 투입되는지 등을 자세하게 들었어요중간 중간에 계속 노동법에 대해서 묻는 거에요한국노총 노동상담소에도 실제로 찾아가셨고도움도 받았어요. 10월에 새로 피해자가 밝혀지고 나서그 분을 만나 또 새로운 이야기를 듣기도 했죠. 88년생인데고시원에서 어떻게 사는지 얘기도 듣고… 그 분은 결국 공장 일 그만 두고 건설현장에서 일해요건설현장이 일 하는 시간은 비슷한데 돈은 더 많이 줘서 그게 더 좋대요후배 활동가들이 이런 일을 하면현실을 제대로 알면서 그 일을 하는 사람들과 무언가를 도모하는 일을 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지옥문이 열린 걸 보는 듯했다

전수경 활동가는 이 사건이 있는 동안 세월호 특조위말하자면 좀 바깥에 있었잖아요박혜영 활동가하고는 상황이 달랐을 것 같아요어떤 생각들을 했는지 얘기해주세요

일단 엄청난 사건이라고 생각했죠이중 구조화된 노동시장 밑바닥에서 뭔가 지옥문이 열린 걸 보는 기분맨 밑바닥부터 무너져가는 시스템을 빨아들이는 지옥을 보는 것 같았어요.

시민사회나 노동의 대응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했어요?

공무원 사회만 칸막이가 있는 게 아니라 이쪽도 칸막이가 있어요이게 소수 단체만이 아니라노동계가 같이 대응해야 될 일이었는데너무 전문주의적이고 기능주의적으로 칸막이를 쳐버린 것 같았어요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전문가가 대응 과정이나 정부와의 대화 라인을 독점한다든가… 이 분야의 활동 시스템이 전문가 중심으로 되어 있고… 사실 메탄올 사건이 부천이나 인천 노동현장이 아니라 우리 같은 단체로 들어온 건우연히 초기 진료를 담당했던 전문가가 우리 회원이기 때문에 그리 된 것도 있지만지역에서 활동하던 일반노조노동 상담소지역 네트워크 이런 데가 작동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아요.

현장에서 얘기가 들어온 게 아니라 병원의 진료현장을 통해서 왔죠.

지역별로 비정규센터들이 있고지자체 보조를 받으면서 운영되고 있는 곳도 많은데이곳들이 원래 지역 기반으로메탄올 피해자 같은 사람들을 만나고 권익을 보호하려고 있었던 조직일텐데… “공장마다 파견이 많더라서로 이름도 모르고 일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다” 이런 말 해주는 현장 활동가가 없었던 것 같아요.

논의를 확대해 볼게요전수경 활동가는 세월호 특조위에서 안전과 관련된 포괄적 의제를 다뤘잖아요원전부터 시작해서 노동에 이르기까지그 2년의 과정을 거치면서 본인이 달라진 게 있나요?

관점시각은 거의 변하지 않았어요전문가들의 밥그릇거기 맞춰서 셋팅된 관료공무원 조직이게 공고하게 자리잡은 상황에서 전반적인 사회적 의제와는 소통이 가로막히고전문적이고 기능적인 영역만으로 문제가 축소되었는데노동운동이 그걸 또 그대로 받아서 하다 보니 노동자 권리나 건강문제가 보편적 의제로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왔어요세월호를 보면서 안전건강이 민주주의정치 문제라는 생각이 더 강해진 것 같아요.

특조위 가서 사회제도에 대한 시각이 더 강해진 것 같아요.

산재보험이든 노동부나 안전공단이든 이런 데 유달리 관심이 많았던 이유는자기 권익을 보호할 조직이 없는 대다수의 시민들에게노동자들에게 가장 큰 변화를 주는 거니까그 안에서 밥그릇을 차지하고 있는 관료 행태나 관료에 기생하는 전문가들이런 사람들에 대해서 항상 관심이 많았죠.

따뜻한 관심?

서로 붙어먹고 사는 그 시스템을 깨뜨리고 다시 세팅할 수 있으면 좋겠다노동조합이 없는 대다수 90% 사람들에게 맞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너무 답답해 가지고 차라리 산재보험을 없애고 다시 시작하든지’ 이랬더니 대표가 나보고 왜 무정부주의자가 되어서 왔냐고 하더라고.

한국 남자들은 메타포를 이해하지 못해요 (웃음). 무정부주의에서 죽어나는 건 사회적 약자예요.

청년 담론에서도 배제된 생산직 노동자들

이제 본격적으로… 이번 메탄올 사건에 여러 층위의 문제가 겹쳐 있는데 하나씩 원포인트로 이야기해봅시다.

노동에 대한 사회적 습관사회적 무관심위험하고 힘든 노동은 그냥 이야기거리로 소비되고… 옛날 이야기 같지만 현실에서 엄연히 존재하는데사회적으로 발언권 없는 사람들로 계속 채워지면서 여기에 무심했던 이 사회습관이라면노동계도 너무 하던 대로만 하고.

: ‘그러려니’ 하는 것?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은 있었지만그럼 너네가 알아 와 봐 이런 식이거든요.

전수경 활동가는 어떻게 생각하세요가장 약한혹은 결정적 고리라면?

최근에 한국사회 청년세대와 관련된 책들이 꽤 많이 나와 있더라구요혼자 사는 청년들의 라이프스타일사회적 기업… 청년 유니온이 최저임금 이야기를 다룬 책도 있기는 하지만이를테면《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의 그 열정에도 끼지 못하는 저학력 저소득층의 육체노동자현장 실습생들의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더라구요청년 담론에도 포함되지 못하는 정말 밑바닥 저수지에 있는 청년들아무런 문화자본도 없고 사회적 네트워크도 없는 그 사람들의 문제가 메탄올로 드러난 건데… 키워드 하나를 꼽는다면그거 같아요불평등.

메탄올도 아니고 영세 사업장이란 키워드도 아니고.

영세사업장, 5, 50, 300인 이렇게 나누는 건 정부가 관리하기 편하라고 만든 기준이고전문가들의 밥그릇도 더 많이 생기는 것이고. 50인 미만 사업장 관리한답시고 그걸로 계속 돈을 벌잖아요사업장 경계를 넘어서 그냥 흘러 다니는 육체 알바 노동자들실업자계절공이런 젊은 육체노동자들의 경우에는 규모별로 되어 있는 정부의 관리 제도가 아무런 힘을 못 쓰고 있잖아요정부가 이걸 영세사업장공장 문제로 보는 건 경로 의존성도 있고갑자기 흔들 수도 없는 상황이니까… 그래서 차라리 산재보험제도를 없애버리고 근로복지공단도 없애고 일반 보건의료체계로 흡수해서 개별 국민에게 접근하는 시스템으로 바꿔야 그 사람들을 그나마 포착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리고 뭔가 되게 정형화돼서 사업체가 굴러간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어떨 때는 10명이 일하고 어떨 때는 100명 일하는데 어쩌란 말이야(웃음).

상상의 지평이라는 건 굉장히 벗어나기 어려운 것 같아요상병수당휴업 급여이런 문제만 해도공무원이나 대기업 다니는 사람들은 아파서 이틀 못나가도 월급이 깎이지 않잖아요그런 것에 대한 상상이 없는 거야휴업 급여가 왜 필요한 건지상병 수당이 왜 필요한지인식의 지평 안에 없어요책을 통해서 학습을 해도경험치가 따라오지 못하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파견 이슈 대신 메탄올

정부 대응에서는 뭐가 제일 문제였나요?

언론플레이를 너무 잘하는 거야기자들 불러놓고 엄청 설명해대고잘하고 있으니까 칭찬해 줄 건 칭찬해주라 그러더라구근데 우리가 왜 칭찬까지 해줘칭찬은 남들이 해주면 되지(웃음). 나는 이미 박근혜 때문에 화나 있었거든파견법을 확대하라 그래서나중에 메탄올 대책 보니까 짜놓고 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파견 문제가 완전 빠지고처벌에서도 그렇고노동부 담당자도 파견 문제로 볼 생각은 안 했어요.

의도는 모르겠지만 프레이밍 자체가 물질 중심으로 축소돼 있었다그래서 그것이 이 문제를 엉망으로 만드는 데 고리 역할을 했다이렇게 보시는 거죠?

총체적으로는 그렇죠.

노동부 안에서는 이게 파견고용 문제로 가는 걸 막으려고 했을 텐데다행인지 불행인지 고용 정책의 실패나 파견제도로 가지 못한 게 있어요고용정책 실패로 확산되는 걸 막을 수 있게일주일 안에 소화기로 다 뿌려서 진화해버릴 수 있도록 도와준 셈이니까정부로서는 성공을 한 거예요당시 박근혜가 밀어붙였던 파견확대 문제로 전혀 옮아가지 않고 불을 껐으니까노동 쪽에서 파견 문제로 쟁점으로 만들었어야 하는데 그걸 못했어요.

전문가 입장에서는 이걸 빨리 알려줘야 환자들을 찾아낼 수 있다이런 생각이지 이걸로 파견 이슈가 점화되는 걸 막겠다 이런 건 아니었잖아요.

그렇죠그 문제는 전문가가 할 일도 아니고이쪽이 잡아채서 할 수 있는 역량이 없었던 거죠.

21세기의 전근대적 자본주의

사측의 대응은 어땠나요?

사측이 너무 많아이번 사건은(웃음). 일단파견사업주는 사고 대응한 게 일절 없었죠사고 당시에 산재 은폐하려고 했던 파견회사가 한 개 있었어요전정훈 씨한테 어차피 산재 안 되니까 몇백만 원 받고 합의하자고 거의 협박해서 합의서 받아갔죠파견회사들은 파견법 위반으로만 재판을 받았고이게 산업안전보건법상 문제가 됐으니까 사용사업주도 문제가 된 거죠사용사업주들은 각각 다른데 예를 들면 처음에 만났던 피해자들이 일했던 덕용 ENG에서는 이렇게 위험한 걸 줄 알았으면 우리 가족이 다 나와서 일을 했겠느냐’ 이렇게 말하는데 거짓말은 아닌 거야그러니까 피해자가 억울하니까 메탄올을 마셨다그거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자기가 십년 이상 이 일을 했고 이 업계에서 제일 오래된 사람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죠사회적 이슈도 되고노동부도 찾아오고영업 정지 처분 내려지고 이러니까 사업주들도 겁이 나서 돈을 조금씩 줬죠당시의 병원비근데 어차피 산재보험으로 돌려받았어최근까지도 연락을 안 한 사업주들도 있고요미안하다고 초반에 병원비를 좀 내주던 사장들도시간이 지나면서 미안한 감정도 사라지고자기들도 억울한 마음도 들고 그러면서 연락도 뜸하게 되고민사 소송까지 들어가고 형사재판 받게 되니까 연락 뚝 끊겼죠그러다가 형사재판에 합의서가 필요하니까 다시 찾아오는 사장도 있어요합의를 하려고 돈을 얼마를 준다 그러고근데 금액이 너무 턱없이 작아요그러다 지난 10월에 피해자 2명이 더 나타났고 그제서야 부랴부랴 합의를 더 하네 이런 얘기를 했는데뒤로는 재산을 빼돌렸죠재산을 빼돌리느라 바빴을 거야기계가 한 대에 2~3억 정도 한다 그러는데 3개 사업장 기계가 50~70대 가량 있었단 말이야.

그럼 100억이네?

사업주들 두세 명이 동업을 하거나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서 했다고 했는데민사소송 들어가서 보니까 모두가 재산이 1원도 없어사업주들은 다양한 각도로 자기 살길을 찾았겠죠나중에 재판 가서 BK 테크 사장을 만났는데 자기 부모가 장애가 있다고… 누구보다 장애인 가족의 마음장애인의 마음을 잘 아는데 자기가 정말 재산이 없어서 그동안 연락을 못했다고합의해 달라고… 그러면서 돈도 한 푼 안 주고(웃음). 그 회사가 메탄올 사건 터지고 노동부 점검까지 하고 난 후에 사고가 난 곳이잖아요그런데도 연락 없이 지내다가 최근 형사재판 때문에 찾아오고 연락오고 했죠그래도 다른 사업주들은 피해자들한테 조금의 위로금이라도 중간 중간에 주곤 했어요.

발주처들은 어때요대기업.

일단은 이게 3차 하청이잖아요. 1차 하청한테 연락이 왔어처음에 사고가 나고 막 이랬을 때. ‘거기는 영세하고 돈도 없고 그래’ 그러면서 자기한테 애기하라는 거야(웃음). 그래서 우리가 요구안 내는 거 보시라고개별적으로 할 얘기 없다고 하고우리가 발주처에원청에 세 번의 질의서를 보냈잖아삼성이랑 LG는 하청의 안전관리를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고 해하청 계약 담당자만 있고산업안전 쪽 사람은 그냥 원청회사 관리만 할 뿐이지하청 기업의 위험에 대해서는 신경을 안 쓰는 거죠이번 사건이 발생했을 때 누가 이걸 담당해야 되냐 시끄러웠다고 하더라고그건 그들의 사정이고처음에 사건 터지자마자이게 3차 하청인데 왜 자꾸 원청한테 책임을 돌리냐 이런 댓글이 엄청 많았어요대기업이 만들어 놓은 견고한 원하청 구조가 빛을 발한 게 아닌가 싶어요그래서 특별하게 그들이 눈에 띄게 대응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고 생각해요질의서 답변 내용을 보면 ‘1차 하청까지 우리는 책임진다’ ‘2, 3차 하청은 1차 하청이 알아서 할 일이다’ 이렇게 일관된 주장을 하고 있어요. ‘그러나 메탄올은 더 이상 쓰지 않는다.’ 여기도 메탄올 문제로 접근하는 거죠우리는 메탄올이 핵심이라고 주장하는 게 아닌데아직 피해자들에게 말 못한 게 있는데심장이 두근거려서원청 답변서에 물 90%에 식품첨가제가 함유된 메탄올 대체재를 개발했다고 써놨더라고.

대기업들이 이렇게 하는 걸 가능하게 한 요인이 뭘까요?

적어도 자본주의를 제대로 하려면 정부가 기업 간에 공정거래할 수 있게 관리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이 CNC 업무가 진짜 3차 하청인지도 잘 모르겠어요적어도 기록으로 관리되는 시스템에서 파악할 수 있는 정도의기업간 경제활동으로 잡힐 수 있는 그런 수준이 아닌 것 같아요세계 11위 경제규모를 갖고 있다는 나라에서, 1960년대 이후 산업화가 진행될 때 미처 정리되지 못한맨 밑바닥 노동이 지금까지 있는 것 같아요전자산업 공급망 측면에서 보면 관리되지도 않고 관리되기 어려운 데서 일어난 일들인데노동자 관리도 전혀 안 되고… 전근대적 상황이잖아요.

어렸을 때그런 거 안 했어요라디오 부품 이런 걸 집에서 막 만들었거든요그러니까 공장에서 동네에 이걸 쫙 뿌려 가지고 그걸 집에서 손으로 조립해서… 푸댓자루로 가져다가 이렇게 했는데…. 이게 지금 기계가 2억이잖아요기계가 비싸서 가내 공업을 못할 뿐이지 기계가 만약 한 10만원이었으면 집에 나눠주고 옛날에 했을 그런 방식의 연장선상이 아닌가..

지금도 공단지역에 많아푸댓자루 왔다갔다 해.

그러니까 기계가 비싸서, 2억이라서 그렇게 못하는 거야그렇게 하고 싶은데 너무나눠주고 세척해 와라 이렇게 하고 싶지 않을까.

이렇게 생산하는 방식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졌을 리가 없잖아요갑자기 재벌 그룹이 발명해낸 게 아니라 바닥부터 있던 걸 얘네는 어쨌든 이용한 거죠예전에 반월공단 이런 데 다녀보면 안전공단 지원금 받아서 공장에 보건관리 한다고공장마다 다니면서 사장들 혈압 재주고 커피마시고 나오고 그러거든요노동부가 그렇게 해왔는데이런 메탄올 같은 일이 터진 거죠.

전문가의 책임윤리란 무엇인가?

전문가 문제는 두 가지로 지적했던 것 같아요하나는노동 분야가 취약했기 때문에 전문가가 주도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건 전문가의 잘못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두 번째는 실제로 전문가들의 대응이나 프레임이 잘못된 것사건 대응 과정에서 전문가학회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해 주시죠.

사실 그들이 뭘 했는지 잘 몰라노동부랑 그들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들이 뭘 잘 했다잘못했다 말할 수 있는 게 잘 없고.

근데 전문 학회들도 노건연을 통해서 이 사건을 인지하고 여러 활동을 한 거잖아요근데 그것에 대한 피드백은?

전혀 없었죠학회들은 초반에는 좀 떠들썩하더니 그 후에는 잘 모르겠어요.

지난 30년 동안 한국사회에 개입하려고 했던 전문가들이이번 메탄올 사건을 보면서 어떤 책임의식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해요얼마만큼의 반성적 성찰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87년 이후에 현실을 바꾸자고 사회 각계로 나갔던 지식인전문가 영역 중에서 사실 현장과 접점이 있는 학문이란 게 몇 개 없잖아요고용구조나 노동시장 문제비정규직의 문제라고 뭉뚱그려 말하는 것을 넘어서 구체적으로 불평등차별을 드러낼 수 있는 영역이 이쪽이고 이런 접점을 가진 현장이 별로 많지가 않아요전문가들이 이렇게 현실을 알 만한 영역이 별로 없잖아요최저 임금 가지고 경제학자가 무슨 실천적 활동을 하겠어근데 이 영역은 지식인들이 현장으로부터 자기 성과를 빨아가고정부한테서 연구과제 따가고자기가 연구자로서 성장하고… 정부 관료로 가있는 이들도 많고저는 그렇게 생각해요현실을 착취만 할 뿐이지 바꾸지 못한 것에 대해서 참 마음 편하게들 있구나.

다 같이 반성하러 갈까?

책임감을 가진 전문가들은 없고현실을 착취하면서 자리를 잡은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성이 없는 것 같아요견제비판의 목소리도 없고제가 특조위에서 가장 열 받았던 순간 중 하나가 위원장한테 자문위원 임명장 받은 교수가 있어요그 사람이 마이크를 잡고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 엄청난 책임감을 느낀다다시 한 번 잘해보겠다’ 이렇게 말하는 거에요. ‘저 교수가 정말 책임감을 느끼면 세월호특조위 자문위원장을 또 하고 싶을까

너무 냉소적이야.

안전이 개인 책임이다노동자 부주의론을 만들어왔던 사람들이 다시 자리를 차지하고그런 사람이 특조위 오는 걸 왜 못 막는지 생각해 봐야죠.

홈페이지 보고 하세요

산재보험 이야기 좀 해 볼게요사실 이번에는 산재 승인이 되게 빨리 되었잖아요신청부터 재활 단계에 이르기까지 박혜영 활동가가 가장 가까이서 다 봤는데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얘기해 주시죠.

산재 신청하고 일주일도 안 돼서 승인 나오는 것 보고 황당했죠내가 지금 반올림 백혈병 사건 3년째 하고 있었잖아산재 신청만이 사건에 관련된 공단지사가 3개였는데 어디는 이걸 사고로 보고 어디는 질병으로 보고질병으로 분류하면 판정위원회를 열어야 되는 건데바로 승인이 나는 걸 보면서 이건 완전 운빨 아니냐당사자한테는 다행이었지만제도가 작동하는 방식이 이렇게 자의적이구나 불쾌했어요그리고 10월에 만난 피해자들의 첫 질문은 자기가 산재보험을 신청할 수 있느냐는 거였어.

나도 해도 되느냐?

초창기에 만났던 피해자들도 자기들이 산재보험 신청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못 믿었어요파견 제조업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산재보험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또 스스로 4대 보험 가입을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4대 보험을 자기가 선택하지도 않았는데내가 월급 좀 더 받으려고 산재보험을 안 들겠다 말했는데 이렇게 하면 죄 아니냐이런 질문을 하는 거에요설명을 해도 굉장히 주눅이 들고 의구심을 가졌어자기가 산재보험을 신청할 수 있다는 것에서류를 준비하면서 보니까 와이건 개인이 할 수 없는 일이구나신청이라는 장벽이 처음부터 작동하는구나정부는 신청서를 낸 것에 한에서만 주는 거지무엇이 더 필요할까당사자가 어떻게 해야 된다이런 설명은 일절 없고.

신청서 낸 건 해주지만 추가적 정보를 더 주고이런 게 없었다는 얘기죠?

전혀 없었고… OO씨 경우에는 자살 시도를 했는데 정신과 질환 추가 상병 신청을 해야 하잖아요신청을 했더니 근로복지공단에서 그냥 질병판정위원회를 연 거야자살시도를 했던 피해자를 불러다놓고 네가 정말 힘들었느냐를 캐물은 거지그래서 엄청난 모욕을 당하고 울다가 나온 거죠내가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게 비정상적인거냐죄를 짓고 있는 거냐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인정 받았지요?

인정은 받았어그것도 역시 근로복지공단이 뭔가 여러 가지 고려를 했겠죠.

정신과질환 인정받기 되게 힘들잖아요.

나는 사실 그때 무슨 생각을 했냐면그래도 정신과입원까지 했고 이런 게 소식이 들어가면 근로복지공단에서 전화는 한 통 하지 않을까어떤 치료를 더 받는 게 좋지 않을까 조언해줄 관심 정도는 있지 않을까더군다나 이게 혼자 찾아간 사건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많이 관심이 있었던 사건이니까피해자들이 계속 정신적 문제를 겪으니까 이 문제를 제도 안에서 풀어보자 싶어서 근로복지공단 홈페이지를 열어놓고 어떤 사업을 하는지 쭉 관찰한 다음에 어디 전화를 하면 되겠다 싶어서 전화를 여러 군데 돌렸어요근데《나다니엘 블레이크》가 되었어요(웃음). 두 시간 전화 연결어디로 돌렸다가 어디로 돌렸다가 결국엔 마지막으로 다시 지사로 갔는데 지사에서는 우리는 그런 것까지 다 못한다이런 대답을 받았고.

: ‘그런 것의 그런 건 뭐죠?

예를 들면 ㅁㅁ씨 경우에는 근로복지공단 병원에 있으니까 병원에서 정신치료를 한다거나 재활이랑 연결시키는 게 있어요그냥 일반병원에 있거나입원해도 치료할 게 없어서 집에서 있는데이 사람들이 정신과 상담이나 치료를 받고 싶을 때 어디에 찾아갈 수 있는가그게 궁금했던 거죠뒤져보니까 찾아갈 데가 없더라구요근로복지공단 홈페이지에는 제도가 있다고 하는데현실에서 찾을 수는 없어나는 그나마 전문성이 있는 사람인데도 못 찾아냈고또 하나는 이제 시간이 지나면서 요양이 끝나고 장애로 넘어가는데, ‘요양 끝나면 장애급여 신청하세요란 안내도 아무도 안 해줬어당사자들이 아무런 안내도 못 받는다면 장애 등급을 신청하는 건 불가능하더라구그래서 우리가 카톡방에서 요양기간 언제 끝나는지 서로 확인을 하고 먼저 끝나는 사람들부터 일단 장애 등급을 신청했는데 우여곡절이 많았죠병원을 계속 왔다갔다 해야 되는데맞물린 게 동사무소 장애등급이었어요동사무소 장애등급 받는 것도 또 신청을 해야 된다는 사실을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르고 근로복지공단에서도 아무도 안 알려줬고피해자들이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으니까 동행할 사람을 제도적으로 확보하려면 동사무소 장애등급을 신청해야 되는데돌고 돌아 얽혀 있었어요그래서 결국 각자가 병원 원무과 돌아다니면서 해야 됐죠피해자 가족들은 다들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스케줄 맞추기도 힘들고내가 같이 가거나 친구가 같이 가서 장애등급 신청을 양쪽에 하게 되고.

근로복지공단이랑 동사무소랑 서로 연락을 안 하나 봐요

그게 화가 나… △△씨는 혼자 고군분투해야 되는데동사무소에 가서 장애등급 신청하러 왔어요어떻게 하면 되나요” 하니까 홈페이지 보고 하세요” 이랬대(웃음). “저 시각장애인인데요” 그제서야 얼굴 쳐다보고 책을 하나 줬다는 거야.

점자책?

아니.

그냥 책?

(웃음).

아니 홈페이지 보는 거랑 뭐가 달라?

장애인 복지관도 궁금하고궁금한 게 너무 많아서 물어봤지만 동사무소에서 제대로 아는 게 없어. CC씨한테 그 얘기를 듣고 화가 나서 같이 시청을 가자해서 인천 시청을 둘이 같이 갔어장애인 복지과를 찾아갔더니 동사무소를 가셔야죠여기는 그런 것 안합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지그래서 동사무소에서 이런 대우를 받고 왔다그랬더니 원래 우리가 이런 거 안 해주는데라며 또 책자를 줘.

그 놈의 책(웃음)

그 다음에 동사무소 공무원 이름을 아느냐” 이렇게 물어봐그래서 계속 우리를 담당할 사람인데 고민에 빠졌지어쨌든 말을 했어왜 이렇게 연결을 안 해주느냐 했더니거기는 노동부 관할이고 여기는 복지부 관할이라 안 한다우리는 노동부가 당연히 해주는 줄 알았다이런 대답을 인천 시청 공무원이 했지그리고 나서 돌아 나오는데 동사무소에서 전화가 온 거야. “불편한 점 있으십니까?” (웃음지금 산재보험 장애등급을 신청하고지자체 신청을 동시에 했잖아두 개 다 연금이 나오는데 그 연금을 두 개 다 받는 게 아니라 두 개 중 하나를 선택해야 돼그런 걸 아무도 안 알려줘결론적으로 어떤 제도에 대해서도 한 번도 미리 들은 적이 없다연결고리도 없다.

의료비 등 문제나 휴업급여는 어때산재보험도 비급여가 있지 않아요?

그건 개인이 내야 돼.

부담이 얼마나 되는 것 같아요?

일단 피해자들이 다 장애등급이 달라요병원에 있거나 완전 새카맣게 안 보이시는 분들은 간병급여가 같이 나오는데간병급여도 신청을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서 한동안 헤맸어급수가 다르고 액수가 차이가 나서비급여 치료를 받게 되잖아그 부분은 개인 부담으로 남아 있고다행인지 불행인지 치료가 많지가 않아요시신경은 손상됐고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에시신경 손상 이외의 뇌 손상 같은 경우에는 재활을 받아야 되는데 그래서 병원에 있는 분들 중심으로 비급여가 생기고 있죠.

휴업급여는 잘 나오고 있어요?

사람마다 다르고 마음이 아픈데회사가 미안하다고 일당을 많이 써준 데가 있고 그냥 있는 대로 써준 데가 있어서 휴업급여도 차이가 나요. OO씨는 앞이 안 보여 일을 못하는 건 같은데 조금 희미하게 보인다고 급수가 차이가 나서 연금을 못 받게 되고돈이 조금 나오고울분이 쌓이는 거야.

근로복지공단 어쩌지

이 문제 해결하려면 산재보험제도 어떻게 해야 해요?

진짜 그 생각 많이 들더라고근로복지공단 얘넨 대체 왜 있는 거야?

지금 시스템으로는 안 되는데사회보험청이나 이런 게 있기 전에는 안 될 것 같아.

왜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근로복지공단은 기본적으로 자기네가 사업주 책임보험을 대행해준다고 생각하지 사회보험으로 생각을 안 하기 때문에공단이 왜 1주일 만에 산재승인을 해줬느냐이건 당연히 공단 판단이 아니라 노동부 판단으로 했을텐데산재나 이게 얼마든지 정치적 쟁점이 된다는 걸 알고 대처한다는 방증이잖아요쟁점으로 만들기 전에 힘 빼버리는 거지역으로 근로복지공단이 사회적 발언권이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무언가를 해줄 하등의 유인책이 없는해줄 이유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뭘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거예요?

지금의 고용구조 하에서 산재보험 시스템으로 커버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근로복지공단 자체 개혁으로는 불가능한 영역이고노동정책으로는 안 될 것 같아사회복지 영역에서 이걸 빨아들이는 방식으로 완전히 바꾸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구체적으로 산재보험과 건강보험의 통합이런 것을 생각하는 건가요?

나는 그게 너무 절실하다고 생각해요ㅁㅁ씨나 △△씨가 눈이 안 보이는데또 어떻게든 일을 해야 되는 사람들이니까 일자리를 구했어그러다가 나중에 또 아팠네그럼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해노동이 너무 파편화되서 지금 근로복지공단에서 이걸 감당하는 건 말도 안 되고 할 수도 없고….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어?

일정한 정도의 보장성 확대이런 개혁이 이슈가 아니라 아예

아휴 보장성 확대는득 보는 사람이 어느 정도 될까산재보험 신청을 할 수 있다는 걸 아는 사람들 정도가 되겠죠공원에서 OX 퀴즈를 깔아 놓고 내가 잘못하면 산재신청 못 한다에 전부 다 O를 체크했거든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다.

내 친구 부모님산재 신청 포기했잖아가장 큰 이유가회사가 산재보험을 주는 줄 알고 계시더라고얘는 연구소에 있었으니까 지도교수가 사실은 사업주였단 말이야어떻게지도교수님한테 그러냐그게 아니라 나라에서 주는 거라고 설명했는데 그게 이해가 안 되시는 거야.

너무 존재감이 없어산재보험이.

경제활동인구를 2천만이라고 쳤을 때정규직 1/3, 비정규직 1/3, 자영업자 1/3 이렇게 놓고 보면산재보험이 거의 70% 가까운 사람들에 대해서 놓치고 있는 거에요새 판을 짜지 않으면 사실 개혁은 어렵다는 거죠그런데 양 노총이 이렇게 요구할 가망이 별로 없고피해 당사자들은 그 정도의 목소리를 낼 여력이 없고… 그래서 이건 위로부터 개혁해야 될 것 같은 생각도 들어요.

댓글들 보니까 대기업 정규직들은 무상 의료 수준이라서… 그래서 완전 그냥 모르는 것 같아보상도 어렵고 치료도 어려운 세상을.

정부가 나서서 조직없는 노동자들 보호하라

조금 근본적인 얘기위험의 생산 이야기를 해봅시다원청발주처에 대해서 윤리 경영사회적 책임 경영 이런 것을 가지고 가는 전략이 적절한 건지그들의 책임은 어디까지일까요?

이번에 UN에서 영신 씨 발표하는 날 아침거기 세션 의장한테 삼성이 장문의 메일을 보내왔는데 자기들이 어떻게 개선을 했는지 그런 내용들이었대요그런 걸 보면 사회적 압력이 분명히 존재하는 건 맞는데딱 거기까지 아닌가 싶어요.

현대 중공업 하청 노동자 사망 문제 가지고 선주사한테 압박을 가하는 활동을 했는데그 후에 현대중공업 사측이 달라진 게 없어요지불 여력이 되는 기업평판이 중요한 기업들한테만 극소수 노동자들이 보상 싸움 하는 게 현실이죠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건 사실이고요책임투자 이런 이야기도 하지만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투자자의 선의에 기대서는 사회가 바뀌지 않잖아요이런 활동이 나름 의미는 있지만 보완적이거나 부수적으로 활용되어야 하는데… 노자 간에 힘의 균형이 안 맞고 계속 지기만 하니까 조금 곁눈질을 해보는 거라고 할 수 있는데그렇게 해서 자본이 바뀌지는 않죠현대중공업 보면 노자간의 대립 구도조차 형성이 안 될 만큼 압도적으로 노동의 존재감이 없기 때문에그것을 자본의 선의에 기대서 해결할 수 있다면 사실 자본주의가 아니게 되는 거죠.

원포인트 해결 고리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지금 노동이 매번 깨지는 상황에서결국 정부의 개입밖에 기댈 데가 없다고 생각해요가장 많은 자원과 인력을 가지고 있는 거대조직이 정부인데그 정부에서 대다수 국민의 이해를 보호하는 방식의 경제개혁이런 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희망이 없을 것 같은데

사업장 근로감독 이런 게 아니라구조 자체의 개혁 없이는 해결이 안 된다는?

구조 개혁 자체가지금은 적어도 위로부터의 개혁밖에 안 보이고노동운동이나 시민운동의 힘으로는 최소한의 공정한 자본주의조차도 한국사회에서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성군을 만나야 되는 거야 우리?

그런 것 같아되게 비관적이지어쨌든 지금 정부가 자원과 인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걸 잘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것도 애매한 지점에 있는 것 같아그 활용이라는 게 현실에선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느냐면 나 누구 국장 안다’ ‘나 누구 비서관이랑 친하다’ ‘그 사람한테 얘기해서 어떻게 하겠다’ 이런 건데이게 세력으로서 푸시해서 하게 하는 게 아닌 거잖아요그러니까 위로부터의 개혁도 말이 좋아 위로부터의 개혁이지아는 사람 통한 읍소상소문 쓰는 거랑 비슷한 거 같아요.

여전히 집단적 운동이 중요하다

 

이번에 메탄올 보니까 노동부는 노동운동에서 집단적으로 대응할까봐 걱정했는데노동계는 집단적 대응의 기억을 다 잊어버리고 너도나도 전문가가 되어서 달려들었던 것 같아집단의 힘으로 투쟁하고 이런 건 없어졌는데동시에 하층육체노동자들을 스토리텔링으로 소비하는 것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 같아요가령 뭐 하청 노동자알바편의점… 인터넷 설치 기사가 살해당하고 편의점 알바노동자가 살해당하고… 사회적으로집단의 힘으로 푸는 게 불가능해지니까 스토리로 소비하거나 감성으로 소구하는 방식어떤 연대의 정신이 남아있는 거라고 볼 수도 있지만조직의 힘이나 집단의 힘으로 풀려고 하는 시도가 없는 게 가장 큰 문제 같아요.

구의역 사건 같은 건 좀 다르잖아요.

구의역 사건도 그렇지만알바 노조에서 시급 만원 제안했던 게 몇 년 후 대선 공약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면기존 조직노조가 아닌 곳에서 시작된 이슈를 나중에 조직노동이 받은 건데그런 거 보면 좋아졌다고 해야 하나구의역 사건은 집단의 힘으로 조직되었다기보다 스토리텔링의 힘이 컸다고 생각해요열아홉 살에 사발면… 빈곤 청년의 스토리텔링이죠그 후에도 지하철이나 철도에서 사고가 계속 나더라고요그러니까 구조를 바꾸는 건 확실히 집단의 힘이 있어야집단의 힘이 없으면 안 바뀌는 거죠.

구의역 겪으면서 처음에는 스토리텔링이었지만 사회적 문제로 만드는 힘은 여전히 대중에게 있구나 생각했어요조직 노동이 뭔지도 헷갈려요노동조합으로 조직돼야만 조직된 힘인가사람들이 기존과 다르게 조직되어 움직이면 그게 조직된 힘인가구의역에서 사고가 나고옆의 노조 활동가에게 스크린도어 사건 세 번째라고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될까 했더니, “그러게요우리 기관사들 힘들겠어요” 이래요사고 나면 기관사들 힘든 건 맞지만사람들이 구의역 오고 추모하고 포스트잇 붙이기 시작하니까 조직노동이 움직이기 시작한 거지그래서 뭐가 뭐를 견인하는가어떤 게 사회적 힘인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이 들었어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돼?

우리는 불안정 노동자 이슈로 하는 노동단체로 활동한 지 꽤 됐다고 생각하거든요물론 비는 영역도 있지만이제 불평등 문제에 조금 더 집중해서 새 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메탄올 사건 이후에 들어온 회원들을 보면정말 이것만은 막았으면 좋겠는데 이런 거 하는 데가 여기밖에 없더라 하면서 조용히 가입한 사람들이 있어이런 사람들이랑 같이 현실을 발굴하는

새로운 세대의 회원들이란 말인 거죠?

연령대는 다양한데 그런 의미를 찾는 사람들이호객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오는 걸 보면 그런 사람들을 더 만나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제는 진짜 하나 정도는 바꿔야 되지 않을까목소리 없는 노동자들이 자기도 모르게 좀 편해지는 거 하나를 꼭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마음이 되게 급한데, 5년 동안 하나 만들고 또 다음 5년에지금부터 10년 정도는 실제로 노동자들의 삶이 조금 나아지도록 만들어야 된다건강보험이든 산재보험이든하나 바꿔 내서 문해 능력이 있건 없건제도에 대해서 접근성 자체를 좋게 해주는 것을 하나 정도는 만들어줘야지 성과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실제로 노동자 민중의 삶을 좀 나아지게 해야 하는 거지.

긍정적인 이야기로 마무리하려 했는데끝내 그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네요(웃음). 이만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