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경영공학이라는, 문과도 이과도 아닌 전공을 했으면서 공학도의 시선으로 영화를 감상하고 평가한다는 것은 약간 낯간지러운 일인 것 같다. ‘공학은 아름다워! 공학을 통해 세상은 더 좋아질 거야’ 라는 생각을 버린 지 오래 되기도 했다. 어린 시절 공룡퍼즐 100조각을 질리지 않고 가지고 놀았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멋진 것에 설레었을 뿐 아니라 ‘어벤져스’에 나오는 외계생명과 비브라늄 같은 미지의 물질이 어딘가에 존재할 거라고 믿었다.
곧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공상가’로서 글을 써본다.
‘쥬라기 월드 : 폴른 킹덤(이하 쥬라기 월드)’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신작이다. 기존의 시리즈인 ‘쥬라기 공원’ 3부작에서는 ‘유전공학’을 통해 호박석에서 DNA를 추출하여 상업적 목적으로 쥬라기 공원을 만들어서 생긴 문제를 다루었다. 기술 진보에 따른 윤리 문제, 예측 불가능한 위험을 얼마나 수용할 것인가의 문제 말이다. ‘쥬라기 월드’에서는 기존의 고민들과 더불어 이제는 ‘공존’의 현실을 제기하고 있다. 인간 외의 다른 생명체에 대해 인간이 흥망성쇠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인가, 심도 깊은 질문을 던진다. 심지어 영화의 배경을 2018년으로 설정하면서 이야기에 현실감이 더해졌다.
영화는 위협으로 느꼈던 공룡에 대한 인식이 공룡보호연대가 설립될 정도로 변화된 상황에서 시작된다. 화산폭발로 인해 멸종위기종 공룡 11개의 개체들이 위험에 빠진 상황에서 갈등이 촉발된다.
보호해야 하는가? vs 멸종하도록 놓아두는 게 맞는가?
‘걸음마도 하기 전에 뛰려고 했었던 젊은 시절에 대해 반성하고 있지… 공룡들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그저 빠져주는 것이야’ – 벤자민 록우드
‘벤자민 록우드(이하 벤자민)’는 쥬라기 공원의 공동창립자이다. 그는 철저하게 다중방호시스템을 구축하여 공룡들을 격리시키고 각계의 주요 전문가들을 통해 정밀안전진단을 하여 공룡들을 통제가능하다고 여겼다. 그리고 결국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빠르게 깨닫는다. 쥬라기 공원에서 시스템이 폭주하고 자유를 얻은 공룡들이 인간을 위협하면서, 결국 공룡들이 공원을 탈출하는 과정을 경험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공룡 보호의 입장을 취하는 것을 보면서 공룡에 대한 ‘트라우마가 적었나?’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룡을 풀어주는 것은 과학기술 맹신에 대한 회개였던 것 같다. 과학기술에 대한 환상이 깨진 벤자민은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쥬라기공원을 벗어난 공룡들은 이제 더 이상 ‘유전공학을 통해 복제한 볼거리’가 아니라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체‘ 임을 깨달은 것이다.
‘제가 또 공룡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나요? 자칫하면 공룡들이 지구에 활보하게 될 수 있는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 이안 말콤
‘이안 말콤(이하 말콤)’ 박사는 쥬라기공원 사건의 생존자이다. 그는 수학자로서 과학기술 때문에 벌어질 위험을 계속 이야기해 왔다. 벤자민의 제안으로 공룡구출 팀이 꾸려지자 말콤은 말한다. 공룡 구조작전을 실행하는 것은 큰 인명피해를 일으킬 수도 있으니, 책임을 져야 하기에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고.
과학기술은 죄가 없다?
‘그 연구가 초래할 결과를 생각해 보았나요?’ – 오웬 그레디가 앨리 밀스에게
앨리 밀스는 벤자민의 재산을 관리하는 사람이고, 공룡 구조를 명목으로 자신의 이득을 얻기 위해서 구출한 공룡을 팔아넘기려 한다. 공룡구조팀의 일원인 오웬 그레디가 훼방을 놓으려하자 록우드 저택의 지하시설에 감금한 상황에서 위와 같이 말한다.
공룡 경매장이 되어 버린 록우드 저택에서는 애완용으로 키우기 위해 공룡을 사려는 사람, 기념품으로 사려는 사람, 유전자 조작을 한 공룡을 무기로 사용하려는 사람 등 각종 인간 군상이 몰려든다. 그렇다. 과학기술 자체는 죄가 없다. ‘신기술’들이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서 새로운 것을 보는 사람들의 태도는 대체로 ‘매우 긍정적이고 막대한 이익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 속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들은 이런 긍정적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인도의 보팔가스 참사, 챌린저호 폭발사고, 쓰리마일 원전사고, 체르노빌 원전사고, 후쿠시마 원전사고 등을 보면 기술 맹신의 결과는 참혹했다.
챌린저호 폭발사고 사례만 봐도, 당시 사고원인인 ‘0-ring이 결함’이라는 한 마디 안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챌린저호 발사를 앞두고 커지는 ‘사회적 기대감’ 앞에서, 추운 날씨로 인해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발사 시점을 미뤄야 한다는 엔지니어의 말은 묻혀버렸다. 시간압박과 자금압박 때문에 간과했던 것들이 엄청난 사고를 일으켰다. 사고로 7명의 우주비행사가 사망했지만 마땅히 처벌할 대상이 없었다. 말콤 박사의 우려는 공룡의 공격에 대한 것이 아닌 인간에 대한 것이었다.
대응과 적응의 필요한 이유
‘다 살아 있는 거잖아요 나처럼’ – 메이지 록우드
존재하는 것을 부정하기란 쉽지 않지만 해야 할 때가 있다. 영화에서도 격리시설에 가두어 둔 공룡을 환기장치가 고장 나는 바람에 풀어주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공룡구출팀이자 공룡보호연대의 대표인 클레어 디어링은 격리시설의 문을 모두 열어 공룡을 내보내는 버튼을 누르지 못한다. 하지만 메이지 록우드(이하 메이지)는 공룡을 살리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메이지는 벤자민의 딸이 죽자 유전공학을 통해 복제한 인간이지만 벤자민을 할아버지로 사랑한다. 살아서 따스한 숨결을 내뱉고 들이쉬는 메이지의 존재는 생명에 대한 고민을 남긴다.
영화지만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상황이고 다른 형태로 일어나고 있다.
대응과 적응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기가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