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와 스트레스는 간을 병들게 한다”
<기고>박영만 변호사·산업의학전문의
김미영 기자/매일노동뉴스
얼마 전 서울고등법원은 ‘공무원이 직무를 수행하며 과로와 폭음을 한 것이 간 질환을 악화시킨 점이 인정된다’며 1심 판결을 뒤집고 간질환으로 인한 사망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였다. 2002년 대법원은 ‘과로ㆍ스트레스가 간질환을 발병 및 악화시킨다는 명백한 의학적 근거가 없다’는 대한간학회의 의견을 받아들여 간질환이 스트레스로 악화되더라도 이를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지 않는 판결을 계속해서 내려왔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기존 대법원 판례를 뒤집는 결과로, 앞으로 대법원이 이에 대해 어떤 판결을 내릴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스트레스가 간에 미치는 영향은?
그동안 많은 연구에서 스트레스가 고혈압, 심장병, 위궤양의 중증도와 진행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에 비해 간염과 스트레스에 대한 연구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래서 간염, 간경화, 간암에 대해 과로로 인한 업무상 질병을 인정할 수 있는지가 아직까지 논란꺼리이다.
그렇지만 임상에서는 간염환자가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에 증상이 악화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특히 알코올성 간질환을 가진 환자는 스트레스가 증가하면 간 염증과 섬유화가 증가된다고 한다. 또한 만성간염 자체가 환자에게 정신적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과거에는 스트레스가 간에 미치는 영향을 단순하게 생각했다. 즉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으로 혈관이 수축하면 간세포에 대한 혈액공급이 줄어들어 간이 저산소성 손상을 받는 것으로 생각했다. 근래에 와서야 스트레스 반응 시 분비되는 호르몬 등이 간에 다양한 생리적 효과를 미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일단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축의 반응성이 떨어진 만성간염 상태에서는 스트레스 자극을 받더라도 부신피질호르몬을 충분히 분비하지 못해 간염은 더욱 악화될 수 있다.
그리고 스트레스 자극은 우리 몸에 있는 교감신경계에서 ‘카테콜아민(Catecholamine)’을 분비하게 한다. 카테콜아민이란 우리 몸에서 교감신경작용을 일으키는 일련의 화합물로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에피네프린이 있으며 이는 간에서 염증을 증대시키고 간세포 괴사를 촉진시킨다. 노르에피네프린은 간세포에 염증을 일으키는 한편 체외실험에서는 면역세포 활성에도 영향을 미치고 T 림프세포(Th2)를 증가시킨다.
노동은 운동과 다르다
급성간염과 같이 간기능이 급속도로 악화된 상태에서는 안정이 필요하다. 서있는 상태보다 누워있을 때 간으로 가는 혈액량이 많아져 간세포 재생에 필요한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할 수 있기 때문에 의사들은 누워서 쉴 것을 권장한다. 또한 환자 자신이 간염 증상을 심하게 느끼고 간기능 이상소견이 심한 경우에도 휴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증상과 간기능이 호전되고 있는 상태에서는 조기에 일상 업무로 복귀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만성간염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육체적 활동량이 간기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만성간염 환자들은 보통 특별한 증상이 없으나 일부는 허약감과 함께 쉽게 피로를 느끼기 때문에 스스로 육체적 활동량을 줄이고 자신이 좋아하던 스포츠를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육체적 활동량을 감소시킨다고 만성간염에서 자연적인 경과가 호전된다는 근거는 아직 없다. 오히려 장기간 육체적 활동량을 감소시킴에 따라 더욱 쉽게 피로해지고 골다공증과 근육위축, 정맥혈전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간경변증인 경우에도 간기능을 충분히 유지하는 상태에서는 경보나 산책, 수영, 에어로빅과 같은 육체적 활동에 신체가 잘 적응하며 이러한 활동 때문에 합병증이 증가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다만 비대상성 간경변증 환자에서는 가벼운 운동은 허용하나 과격한 운동은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 연구결과는 주로 적당한 운동과 식이요법을 통해 체중이 감소하면 간질환을 호전시킨다는 내용이므로 그것을 고된 육체적 작업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과 같은 정도로 판단할 수는 없다. ‘간기능이 호전되면 업무로 복귀하는 것이 좋다는’ 것도 일상적인 업무에 복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과로를 해도 괜찮다는 의미는 아니다.
모순에 빠진 간학회의 결론
대한간학회(이하 간학회라고 함)에서는 과로나 스트레스가 기존의 바이러스성 간질환을 악화시킨다는 이론적 근거는 없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간질환 관련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 2001. 대한간학회) 간학회는 “간질환이 있는 환자가 휴식을 하면 증상이 완화되고 또 병세가 악화되는 경우에 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휴식이 간질환 자연경과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현대의학에서는 급성간염, 만성간염 환자에게 철저한 안정보다는 가급적 조기에 사회로 복귀하도록 권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학적 측면에서 기존 간질환이 악화되는 것은 과로나 스트레스보다는 건강관리를 부적절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여기서 부적절한 건강관리란 △자신의 간질환을 이해하지 못하여 어느 상태인지를 파악하지 않고 간과하거나 △정기검진을 받지 않거나 그 결과를 소홀히 하는 경우 △간에 유해한 각종 약물(한약, 양약, 민간약, 건강식품 등)을 무분별하게 복용했을 때 △과음 △의사의 권유에 따르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하지만 이는 모두 과로와 스트레스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즉, 자신이 간염에 걸렸는지 모르는 근로자가 과로에 시달리다 보면 자신의 건강에 소홀해질 수 있고 몸이 아파도 의사를 찾아가 검진을 받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각종 건강식품도 대부분 가족들이 과로에 시달리는 근로자를 생각해서 권하는 것들이다. 근로자가 과음을 하는 것도 스트레스 자극이 일으키는 행동변화로 볼 수 있다. 과도한 스트레스 자극을 받은 근로자 중 일부만이 과음을 한다면 개인적인 습관 탓으로 돌릴 수 있겠지만 다수 근로자가 과음을 한다면 이는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강경화 등의 2001년 논문, 김의숙의 2002년 논문).
한편, 간학회는 증상이 심하거나 40세 이상인 간염환자는 육체적 활동량을 제한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반대로 생각하면 이러한 경우는 과로가 간질환 악화요인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과로사는 사회적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과로에 시달리는 40대 이상에서 많이 발생한다. 간질환이 있는 장년층 근로자가 과로하면 기존 간질환이 악화되어 과로사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증상이 비슷한 간질환과 과로, 속단할 수 없어
간질환이 있는 환자는 병이 악화되고 있어도 정작 환자 자신은 아무런 증상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과로가 일으키는 신체증상과 간질환 증상은 매우 비슷하다. 그래서 환자들은 전신 피로감, 식욕부진, 오심, 구토와 같은 증상이 나타나도 이를 과로나 스트레스 때문인 것으로 생각하여 적절한 검사와 치료 없이 지내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간염환자에서 증상이 악화되는 이유가 과로 때문에 그러는 것인지 간염이 자연적으로 악화된 때문인지 명확하게 구별할 수 있을까?
특히 과로가 간질환을 악화시킨다는 명확한 의학적 근거는 없다고 하지만 전혀 무관하다는 근거도 없기 때문에 현재 가진 의학적 지식만으로 단정하기는 곤란하다. 때문에 단순히 현재 의학적 지식이 밝혀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섣불리 과로와 간질환 악화가 무관하다는 일반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은 옳지 않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직업병은 한번 발생하면 되돌리기 어려울 뿐 아니라 근로자 건강과 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산재법의 입법목적상 업무상 질병을 판단할 때에는 과로와 스트레스가 미치는 영향을 주의 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현행법은 업무상 유해요인에 노출되기 이전에 순수하게 개인적인 사유로 발생한 질병이라도 업무와 관련해서 악화되었다면 ‘업무상 질병’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건강한 사람이라도 스트레스 때문에 음주량이 증가하는 등 생활습관이 변하기도 하며, 간염 치료를 게을리 하거나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때문에 스트레스는 간염 경과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문의; 법률사무소 의연(02-598-4600)
2007년05월30일 ⓒ민중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