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제로’만이 선로 위 목숨을 지킬 수 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 하청노동자 금천구청역 사망 사고
2019년 9월 2일 오후 5시 17분, 한국철도공사(이하 코레일)의 수도권 1호선 금천구청역과 수원역 사이 모든 구간에 대한 광케이블 개량 공사를 발주받은 A업체 소속 하청노동자 정씨(44)가 선로에서 열차에 치여 사망하였다. 정씨는 18년이라는 세월 동안 통신 기술 업무를 해오다 지난 7월 1일, 내부 통신 배선 공사를 주 업무로 하는 A업체로 입사하였다.
사고 당일 정씨의 역할은 현장 작업에 들어가기 전 작업 노동자들에게 안전교육을 시키고, 작업 도중 열차 통행을 감시하는 등 작업 노동자의 안전 관리를 맡는 ‘안전관리자’였다. 작업 노동자들은 금천구청역과 석수역 사이 특정 구역의 선로 주변 3m 땅속에 매설된 광케이블의 상태 등을 확인하는 업무를 진행하였고, 노동자 2명과 함께 실제 작업 현장과 떨어져 금천구청역 선로 주변을 걷던 정씨는 등 뒤에서 오는 열차에 치였다. 이후 정씨는 현장에서 응급조치를 받고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끝내 사망하였다. 함께 걸어가던 노동자 2명은 열차에 스치기만 하여 가벼운 부상만 입었으나, 동료인 정씨가 열차에 치이는 것을 옆에서 목격해야 했다.
사고 이후 고용노동부는 해당 작업에 대한 작업중지명령을 내렸다. 이 사고에 대해 코레일은 정씨가 임의로 작업 현장으로부터 1.5km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여 당일 작업과 무관한 업무를 본 후 현장으로 복귀를 하다 당한 사고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근로감독관의 현장조사에서 사고 당시 정씨와 동행한 노동자의 증언에 따르면, 정씨는 작업 도중 추가 인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추가 인원으로 올 수 있는 다른 노동자를 만나기 위해 역 부근으로 이동하였다고 한다. 결국 정씨는 당일 업무를 원활히 수행하기 위한 작업을 수행하러 잠시 작업 현장을 벗어났다가 열차에 치여버린 것이다.
다시 한번, “위험은 외주화된다”
철도·전력·가스 등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공공부문의 업무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네트워크 산업’이라 할 수 있다. 업무 내용과 처리 방식 및 과정에 대한 원활한 전달과 소통체계가 서비스의 질, 나아가서는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중 철도 및 지하철에는 역무와 승무원, 기술(전기·신호·궤도·통신·기계·건축·토목), 차량, 관제 등 다양한 직종이 근무하고 있다. 안전하고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이 여러 직종의 노동자가 소통하며 협업해야 한다.
유럽과 미국 등은 안전과 서비스 질을 평가할 때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평가한다. 최고 경영진부터 현장업무를 보는 노동자까지 평등한 관계를 맺는 수평적인 조직문화일수록 좋은 평가를 받는다. 한국의 경우는 따져볼 것도 없이 이와 상반된다. 그리고 한국의 상명하달식의 수직적인 조직문화의 중심에는 ‘외주화’가 있다. 외주를 받는 하청업체의 노동자와 정규직 직원 간의 불평등 관계, 더 나아가 하청업체와 발주처(원청) 간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업무에 대한 정보는 있겠으나 의견을 소통하는 것이 힘들고, 현장에 대한 안전 정보는 늘 부족하다.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의 대처 과정 또한 복잡해졌다. 현장 노동자가 하청업체에 연락을 취하고, 하청업체는 다시 원청에 연락하여 대처 방안을 물어보는 동안 골든타임을 놓치기 일쑤이다.
더불어 ‘시공 기간 단축’까지 문제가 된다. 비용을 아껴 이익을 조금이라도 더 내기 위해 공사기간이 부족함에도 무리하여 일을 진행하거나, 단축하려고까지 노력해야 한다. 그렇기에 정해진 하루 작업량은 다음날로 넘어가면 노동자들은 질책과 재계약 위험을 피부로 느껴야 한다. 정씨의 사고를 다시 떠올려보자. 애당초 사고조사를 하는 작업에 충분한 인원이 들어갔다면 정씨는 위험을 무릅쓰고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설령 사람이 모자랐어도 인력 충원을 위해 잠시 현장을 벗어나야 한다는 연락이 빨리 열차 관제실에 공유되었더라면, 혹은 공사를 빨리 진행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없었어도 정씨는 살 수 있었다.
이명박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은 코레일 노동자들의 외주화를 부채질했다. 2009년, 코레일은 5000명의 현장 직원을 감축할 것이라 발표하였고, 이것의 여파로 직원들이 맡고 있던 정비 업무, 작은 역에서의 업무를 비롯하여 사망사고가 빈발해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해 위험업무로 분류된 선로 유지·보수, 열차 연결 업무 등이 주로 외주화하였다. 사망한 정씨처럼, 선로 가까이서 작업하는 노동자들은 열차가 운행하는 한 항상 열차에 치일 위험 부담을 가지고 작업할 수밖에 없음에도 외주화는 진행되었다.
이것이 잘못된 선택임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많은 사고가 일어났다. 하지만 매번 외주화는 물리지 않고도 노동자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는 듯, 대책들만 줄기차게 나왔다. 2015년 8월 29일 강남역에서 홀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하청노동자가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어 사망하였다. 이후 서울메트로는 ‘승강장 안전문 특별 안전대책’을 마련해 선로 작업을 2인 1조로 진행토록 나섰지만, 1년이 채 되지 않은 2016년 5월 28일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하청노동자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했다. 2016년 9월 13일에는 김천역에서 야간에 선로 보수작업을 하던 하청노동자 2명이 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그 이후에도 선로 위 죽음은 계속되고 있다. 광운대역에서, 노량진역에서, 온수역에서, 그리고 이번엔 금천구청역에서 노동자가 죽어나갔다.
지금 당장, 비정규직 제로가 필요하다
정부와 코레일이 사고 이후 발표하는 대책들이 이루어진다면 선로 위 노동자가 사망할 확률을 ‘줄일’ 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언제라도 누군가가 또 죽을 수 있는 확률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공공기관의 존재 이유는 모든 시민의 안전과 편리함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공공기관은 그 누구보다 산업재해 예방에 앞장서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반복되어 발생하는 산재사고를 수습하기에만 급급하며, 그마저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 과연 그 ‘시민’에서 소속에 따라 생명 값이 낮게 매겨진 노동자들이 제외되는 것에 동의하는 국민이 있을까.
정부는 위험의 외주화를 근절하기 위해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를 보이며 2017년 5월, 인천국제공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찾아갔다. 하지만 지금 주위를 둘러보면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제로를 외치는 삭발을 한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고공과 한국도로공사에서 점거농성을 하는 톨게이트 노동자, 파업을 다짐한 코레일 자회사 노동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직접고용을 위해 싸우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더욱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정부와 기관에게서 외면받고 있다.
통계로서야 겨우 수면 위로 드러나는 선로 위 많은 죽음들, 더 나아가 매일을 죽음의 공포에 떠는 노동자의 공분은 정부와 기관에게로 향하고 있다.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일상적 안전 업무를 맡는 노동자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제로가 필요하다. 이제는 정부와 공공기관이 구두로 끝날 약속과 노동자들의 현실을 겉도는 대책이 아닌 행동을 취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