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원문보기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48196.html

막히고 또 막히고

노동건강연대와 아름다운재단, 산재 지원사업으로 산재 노동자 20명 심층 인터뷰…회사 협조 구하기 어렵고, 신청 절차도 복잡

‘산업재해’라고 하면 사람들은 주로 대형 사망사고를 떠올린다. 언론을 통해 각인된 효과다. 그래서 산업재해는 내 피부에 잘 와닿지 않는 단어다. 직장에서 넘어져 발목 인대가 찢어진 경우, 장시간 앉아서 일하다 허리 디스크가 생긴 경우, 기계를 다루다 손이 베인 경우, 우리는 산재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산재보험으로 보상을 신청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할까.

노동자들은 경미한 부상을 대부분 묻고 넘어간다. 개인 돈을 쓰든 건강보험이나 실비보험을 이용하든 스스로 해결한다. 산재보험으로 보상받으려면 상당한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산재가 은폐되는 환경에선 큰 부상도 은폐되고 만다.

도대체 한국에서 얼마나 많은 산재가 은폐될까. 주로 어떤 집단에서, 왜 산재가 은폐될까. 산재를 당하고도 산재보험으로 보상받지 못한 노동자는 어떤 일을 겪을까. <한겨레21>은 아름다운재단, 노동건강연대, 윤소하 정의당 의원실과 협력해 산재은폐를 처음으로 집중 분석했다. 산재보험이 ‘그림의 떡’이 된 원인과 해결책도 찾아봤다.

아름다운재단과 노동건강연대는 2019년 한 해 동안 ‘산재보상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지원사업’을 했다. 산업재해를 당한 뒤 경제적 곤란을 겪는 노동자들에게서 신청받아 그중 70명에게 생계·법률 지원을 했다. 그리고 산재가 왜 빈곤으로 이어졌는지 알기 위해 전문 인터뷰어 3명(홍은전, 홍세미, 하금철)에게 의뢰해 재해자 20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이들이 경제적 곤란에 빠진 이유는 다양했지만, 가장 큰 공통점은 산재보험 신청 문턱이 너무 높다는 것이었다. <한겨레21>은 20명의 인터뷰 내용을 받아 산재 신청 과정의 어려움을 정리했다. 인터뷰 대상자는 모두 가명으로 처리했다.

산재 신청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사업주의 고의적인 방해와 비협조였다. 20명 중 16명이 이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이들은 대부분 소규모 사업장 소속이었다. 앞서 <한겨레21>이 윤소하 정의당 의원실을 통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산재은폐 자료를 받아 분석한 결과에서도 건강보험 가입자 수가 300명 이하인 사업장에 소속된 은폐자 비율이 87.1%였다.

대기업의 하청을 받는 소규모 회사들은 ‘위험의 외주화’ 탓에 상대적으로 산재가 많이 발생한다. 그런데 산재 사실을 외부로 알리면 회사가 원청에서 일감을 못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회사는 산재를 신청하지 말고 공상(회사 자체 보상·산재은폐의 일종)으로 보상해주겠다고 노동자에게 읍소·설득·압박·협박하는 일이 잦다.

일자리 걸고 신청해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대부분은 회사와의 관계가 나빠지는 걸 원치 않아 이런 요구를 따르게 된다. 그런데 공상은 대부분 산재보다 불리하다. 당장 치료비와 생계보장에는 차이가 없을지라도 추후 합병증이 생기거나 재발했을 때 회사가 보상해준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김지수(33·남)씨는 ○○중공업의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2013년, 비 오는 날 자재를 옮기다 철판 위에서 미끄러져 오른쪽 발목을 심하게 다쳤다. 사장은 ‘죽을 때까지 책임질 테니 산재 처리하지 말고 공상 처리하자’고 했다. 몸이 회복되면 복직도 해주고 평생 같이 가는 거라고 설득했다. 그런데 다친 부위가 낫지 않고 계속 악화되자 회사의 태도가 차츰 달라졌다. ‘언제 복귀하냐, 왜 또 수술을 하냐’는 식으로 김씨를 의심했다. 김씨는 회사가 언제 자신을 버릴지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에 결국 2014년 산재 신청을 했다. 그 뒤 합병증이 생겨 오른쪽 다리를 절단했다. “당시에 산재 처리 안 하고 공상 처리했으면 이렇게 절단했는데 어디 가서 이 많은 돈을…, 산재 처리했으니까 이만큼 지원받았지 아니면 다 개인이 부담해야 해요.”

최재호(74·남)씨는 2012년 건설현장에서 맨홀 아래로 떨어져 목과 척추를 심하게 다쳤다. 현장소장은 ‘산재 신청하면 회사가 망한다’고 읍소했다. 그래서 공상으로 처리했는데 치료비와 생활비를 6개월간 주고 잠적해버렸다. 최씨는 산재 신청 방법도 제대로 모르는데 누구를 상대로 싸워야 하는지 몰라 난감했다. 심층 인터뷰를 한 20명 중 7명은 이런 식으로 회사가 산재 신청을 방해했다.

비정규직에게 산재 신청은 일자리를 걸어야 하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전은미(46·여)씨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업무를 위탁받은 민간업체에 소속돼 방범지역 감시카메라(CCTV)를 모니터링하는 업무를 하던 2017년, 청사 계단에서 굴러 오른쪽 발목 인대가 파열됐다. 현장소장은 병원에 찾아와 산재 신청하면 재계약에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고 협박했다.

공상으로 보상해주지 않으면서 산재 신청에 비협조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우식(34·남)씨는 회사 공식 체육대회 때 아킬레스건을 다쳤다. 회사는 그날 행사가 강제성을 띠지 않은 직원들의 자발적 모임이었다고 근로복지공단에 보고했고, 결국 산재 불승인이 됐다. 김수엽(45·남)씨는 산재 증거를 수집하러 회사에 들어가야 했는데, 회사가 사업장 출입을 막아 들어가지도 못했다. 직원들이 함께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모임에서도 탈퇴당하고, 권고사직 요구를 받았다.

노동자가 산재 신청을 하려면 사업장과 관련해 여러 정보가 필요하다. 허유걸(53·남)씨 회사는 주소를 안 알려줬고, 박상규(46·남)씨 회사는 사업자등록번호를 안 알려줬다.

35%만 “산재 신청하겠다”

 

가뜩이나 몸을 다쳐 힘든데 산재 신청 과정에서 회사와 다투다보면 대부분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전은미씨는 같은 계약직 동료들이 재계약이 안 될까봐 목격자 진술서를 써주지 않았다. 전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 배신감은 겪어보지 않으면 몰라요. 정말 죽고 싶어요. 너무 울었어요. 동료들한테 받은 배신감이 더 커요.” 결국 동료가 아닌, 같은 공간에서 일하던 다른 회사 소속 직원에게 목격자 진술서를 받아 산재를 신청했다.

국민건강보험이 용역 발주해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수행한 ‘산재은폐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누수 방지 방안 연구’(2018) 보고서에는 업종과 사업장 규모 등을 안배해 노동자 1090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가 담겼다. 1090명 중 산재가 발생하면 무조건 산재로 요양 신청을 할 거라는 노동자는 35%에 불과했다. 나머지 65%는 공상으로 처리하거나 건강보험으로 개별 처리할 것이라고 답했다. 산재를 산재보험으로 처리하겠다는 응답이 저조한 이유를 알기 위해 13가지 질문을 던졌다. 각각 5점 척도로 답을 받았는데 ‘매우 그렇다’와 ‘그렇다’ 비율의 합이 가장 높게 나타난 질문 두 가지는 이것이었다. ‘회사 및 원/하청업체로부터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고’(74.5%), ‘산업재해 건수 증가로 인해 회사가 불이익 받을까봐’(63%).

즉, 내가 산재 신청을 했을 때 회사가 외부로부터 불이익을 받게 되고, 그 여파로 결국 내가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을 것 같아 산재 신청은 안 할 거라는 답이었다. 그 뒤를 ‘산재 신청 절차가 복잡해서’(62%), ‘산재 신청해도 승인이 되지 않거나 않을 것 같아서’(61.8%), ‘산재 처리자에 대한 부정적 조직문화 때문에’(60.7%) 등이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폐업한 회사 서류 도장 받아오라고 하기도…

회사가 방해하지 않아도 가뜩이나 산재 신청은 어렵고 복잡하다. 노동자가 직접 근로복지공단에 요양 및 휴업급여를 신청해야 하는데 생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전문 용어가 난무한다.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사람도 없다. 노무사·변호사를 선임할 여유가 있거나 회사·노동조합의 도움을 받는 노동자는 드물다. 산재전문병원에 입원해 병원 쪽 도움을 받거나 가족이나 지인이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경우, 과거 신청 경험이 있어 학습된 경우는 그나마 낫다. 혼자서 산재를 처음 신청하려는 노동자는 막막함이 앞선다.

성지은(42·여)씨는 배관 개·보수 업체에서 일하던 2018년, 무거운 릴선을 옮기다 허리 디스크가 생겨 수술받았다. “전 노무사 비용을 낼 만한 처지의 사람이 아니라서, 꿈도 못 꿔요. 신청서는 뭐가 뭔 소리인지 너무 모르겠고 스트레스를 받는 거예요. (한숨) 이게 도대체 뭔 소리야? 나도 모르는 말을 갖다가 겨우 어떻게든 썼어요.”

성씨는 다행히 산재 승인을 받았으나, 휴업급여 종결일까지 허리가 완전히 낫지 않았다. 이 경우 재요양 신청을 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너무 어려워 알아보다 결국 포기했다. “휴업급여 종결일에도 허리가 많이 아팠어요. 신경이 확실히 손상됐대요. 근데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은 거예요. 방법도 모르고 누구한테 물어봐야 할지도 모르겠고, 정말 미치겠는 거예요.”

근로복지공단은 재해 경위가 명확하지 않은 노동자가 산재 신청을 하면 사실인지 검증하기 위해 여러 가지 문서를 제출하도록 한다. 그런데 노동자가 현실적으로 구하기 힘든 자료를 요구할 때도 있다. 이성호(59·남)씨는 TV 브라운관을 만드는 전자회사에서 22년간 일했다. 마스크도 없이 각종 화학물질을 다루다 천식에 걸렸다. 2015년 회사가 갑작스럽게 폐업한 뒤 치료비가 없어 고생하던 이씨는, 8개월 뒤 산재보험제도를 알고 신청하게 된다. 그런데 공단에선 신청서에 사업주 날인(2018년 폐지)을 받아오고 목격자 진술서를 비롯해 여러 서류를 준비해오라고 했다. 이씨는 폐업한 회사에서 어떻게 서류를 받아오냐고 따졌지만 통하지 않았고, 결국 산재 신청을 포기했다.

이씨는 2016년 비슷한 업종의 다른 회사에 취직해 일하다 넘어져 왼쪽 골반을 다쳤다. 회사가 반대해 산재 신청은 못했다. 그러다 자꾸 상태가 심각해지자 1년 가까이 지나 산재를 신청하려고 공단에 갔다. 공단에선 사고 전 의무기록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씨는 사고 전 의무기록을 어디 가서 구해오냐고 따졌지만 통하지 않았고 이번에도 포기했다.

고령자는 퇴행성 질환으로 의심받아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와 질병의 인과성을 따진다. 특히 재해자 나이가 많으면 해당 업무와 무관하게 생긴 퇴행성 질환이 아닌지 의심한다. 퇴행성 질환으로 판단할 경우 산재 보상은 받기 어렵다. 정기 건강검진을 받던 직장인은 사고 전 의무기록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이씨처럼 건강검진을 못 받던 노동자는 사고 전 의무기록을 구하는 게 어렵다. 이 경우 산재 심사에서 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산재 신청 과정의 어려움은 결국 앞서 살펴본 산재은폐로 이어진다. 해결책은 산재 신청의 문턱을 낮추는 것이다. 다음 기사에서 자세히 다룬다.

산업재해 겪은 20명의 갈림길

‘2019 산재보상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지원사업’의 일부로 심층 인터뷰한 20명의 산업재해 신청 과정을 표로 정리했다. ‘회사의 협조 여부’와 ‘신청 절차의 어려움’이 산재 보상 결과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산재를 겪은 20명은 크게 두 가지 갈림길을 만났다. 먼저 재해자가 속한 회사의 태도에 따라 길이 나뉘었다. 회사가 산재 신청에 협조적으로 나온 경우(4명)는 산재 승인까지 비교적 원만하게 이르렀다. 이들 4명은 산재보험에서 ‘건강보험 적용 예외 항목(비급여)’을 보상해주지 않는 문제, 노동능력을 잃은 정도에 비춰 보상이 부족한 문제 등에 따라 경제적 곤란을 겪고 있긴 했다. 하지만 산재 신청 과정에서 시간·비용·감정적 손실을 상당히 줄일 수 있었다.

회사가 산재 신청에 비협조적으로 나온 경우(16명)는 산재 승인까지 험난한 과정이 기다렸다. 이들 16명 중에서도 산재 신청 절차상 어려움을 겪지 않았던 9명은 그나마 운이 좋은 축에 속했다. 가족과 지인 중에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거나, 과거 산재보험을 이용해봤거나, 노동조합 활동을 했던 사람 등이다.

그러나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없는 경우(7명) 심각한 곤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산재 신청을 아예 포기하고 치료비를 스스로 감당하거나 산재를 신청해도 불승인됐다. 일부는 재신청과 소송을 거친 끝에 조금이라도 보상을 받았지만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었다. 그사이 극심한 빈곤을 겪거나 마음의 상처를 얻는 일이 많았다.

심층 인터뷰한 20명 중 산재를 신청한 사람은 17명이고, 이 중 승인된 사람은 15명이었다. 일반 재해자의 산재 신청·승인 비율보다 월등히 높다. 이는 표본의 특성 때문인데, 시민단체 지원사업에 신청할 정도면 상당히 적극적으로 산재를 알아본 노동자라고 봐야 한다. 이렇게 정보에 밝은 노동자도 산재 신청 과정에서 온갖 곤란을 겪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