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석면공장, 주민들이 위험하다
환경운동연합, 부산지역 가동 공장 확인… 역학조사 등 필요
윤성효(cjnews) 기자

안병규(56·대구)씨는 가슴을 찌르는 느낌이 들어 얼마 전 병원을 찾았다.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진단을 했는데 다행히 현재까지는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부인이 앓고 있는 ‘악성중피종’에 같이 걸린 게 아닌지 걱정이다.

부인은 대구에서 검사를 받다가 올해 초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정밀진단을 받았다. 며칠 뒤 담당의사가 불러 갔더니 “혹시 페인트나 석면 공장에 다닌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30여 년 전 석면공장에 다닌 적이 있다”고 대답했더니, 의사의 입에서는 ‘악성중피종’이란 말이 튀어 나왔다.

중피종은 주로 폐를 둘러싸고 있는 흉막, 위나 간 등을 보호하는 복막, 심장을 싸고 있는 심막 등의 표면을 덮고 있는 중피 등에서 발생하는 종양. 석면이 호흡기를 통해 체내에 침투한 다음 평균 20년이 넘는 잠복기를 거쳐 발생하는 석면 관련 대표적 질병이다.

“부산 6개 공장 주변 주민 100만명 고위험군”

안씨는 1976년부터 4년간, 1988년 8개월가량 부산 연제구에 있던 ㅈ화학에 다녔다. 부인도 1977년부터 2년간 같은 회사를 다녔으며, 직장에서 만나 결혼한 것. 이들 부부가 다닌 회사는 석면제조공장이었다. 현재 이 회사는 경남 양산으로 공장을 옮겼으며, 회사 이름도 바꿨다.

안씨 부인은 회사로 찾아가 산재 인정을 받기 위한 요양신청을 요구했다. 마침 당시 같이 근무했던 사람이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있어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관련 서류를 주고 왔는데, 안씨 부인은 며칠 뒤 회사로부터 “회사에 다녔다는 서류가 없다”며 “도장을 찍어줄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안씨 부인은 회사 다닐 때 찍었던 사진을 찾고 옛 동료들의 진술도 확보해 산재를 신청해 받아들여졌다. 안씨와 같이 일했던 김아무개(부산·3년간 근무)씨도 같은 병을 앓고 있으며, 산재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그리고 같은 병으로 산재 신청 중에 있는 옛 동료가 2명이 더 있다.

ㅈ화학은 1969년부터 1992년까지 부산 연제구 연산동에서 석면방적공장을 가동했다. 안씨가 다닐 때는 주야 총 120여명이 근무했다. 역학조사를 벌일 경우 ‘악성중피종’을 앓고 있는 환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환경운동연합과 부산환경운동연합, 시민환경연구소는 2일 “정부는 1급 발암물질 석면의 환경노출로 인한 주민 발암 피해조사를 즉각 실시하고 피해자 구제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이 단체는 부산대 의대 등에서 ‘석면공장에 의한 인근 주민 환경영향’을 조사한 결과, 석면공장 인근 주민들의 암 발병률이 다른 지역보다 무려 11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업체 “주민까지 책임져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단체들에 따르면, 24년간 국내 최대 석면방적공장이 가동되었던 ㅈ화학으로부터 2㎞ 이내에 살았던 주민 11명이 악성중피종에 걸려 대부분 사망했다.

이들은 “과거 부산지역 석면공장이 밀집해 있었던 곳으로 시민들의 이번 피해는 예고된 것”이라며 “지난 10년간 부산지역 4개 대학병원에서 악성중피종 감시체계를 통해 확인된 사례는 석면공장 인근 주민들의 암 발병률이 부산 전체의 7.8배에 이르렀다”고 이 단체는 덧붙였다.

또한 사하구 장림동 ㅎ화학은 1960년부터 1992년까지 32년간, 사상구 덕포동 ㄷ아스베스트는 1974년부터 현재까지 34년간 석면공장이 가동되었는데, 그 공장 주변에서 1년 이상 살았던 주민 14명이 모두 같은 병에 걸렸다고 한다.

환경운동연합은 “이들 세 곳의 석면공장으로부터 2㎞ 안에 살았던 인구는 50만명이 넘고, ㅈ화학 주변에는 주택가뿐만 아니라 불과 10m 거리에 초등학교가 있어 초등학생들까지 석면 분진에 노출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밖에 부산에는 ㄷ산업(덕포동), ㅁ광섬(삼락동), ㅅ화학(남산동), ㅎ석면(하단동), ㅌ가파씰(송정동) 등이 가동되었거나 지금도 가동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은 “이들 8개 공장이 가동된 기간을 모두 고려한다면 100만명 이상의 부산시민들이 석면에 노출된 고위험군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

환경운동연합은 환경부·부산시·전문가·환경단체 등이 참여하는 ‘석면 피해대책 민관합동기구’ 구성과 옛 석면공장 인근 주민들에 대한 전면적인 역학조사 실시, 석면공자 가동실태 정보공개와 현재 공장의 가동 중지 등을 촉구했다.

환경부, 석면관리종합대책 준비 중

이에 대해 ㅈ화학 관계자는 “악성중피종 자체가 석면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근로복지공단에서 그렇게 인정했다면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느냐”면서도 “하지만 주민들에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에서도 기업체에 부담을 지운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안병규씨 부인의 산재에 대해, 그는 “30년전 자료가 회사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분이 인우보증을 통해 주장해서 받아들여진 것으로 안다, 근로복지공단에서 확인작업이 들어왔을 때 회사 차원에서 제출할 서류는 없다고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부와 부산시는 석면공장과 관련한 피해 주장에 대해 다양한 대책을 세우고 있다.

환경부 유해물질과 관계자는 “정부는 석면관리종합대책을 세워놓고 있으며, 부산지역 역학조사도 포함되어 있다”면서 “현실적으로 당장에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예산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내년 예산을 확보해 본격적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석면으로 인한 질병이 확인될 경우, 원인자 부담이 원칙이며 원인자를 찾을 수 없거나 불분명할 경우 국가 예산으로 지원할 수 있다”면서 “이와 관련해 환경보전법 제정도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부산시 환경보존과 관계자는 “얼마전 부산시 차원으로 대책회의를 한 차례 했는데, 오는 8일 부산시청 환경국장 차원으로 대책회의를 계획하고 있으며, 이 자리에는 교육청과 노동부도 참여하며 석면이 지하철에도 일부 사용되어 부산교통공사 측에서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역학조사 등에 대해서는 중앙정부와 유기적인 관계로 통해 하게 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