궂은 일 해치우는 슈퍼우먼, 건강은 ‘엉망’·
‘봉사’로 포장, 최저임금 지급·산재처리도 안돼
매일노동뉴스/ 김미영기자
지난 1996년 서울시가 노인복지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제기하며 자치 예산을 투입해 만든 가정도우미제도. 서울시가 예산을 보조하고 각 구청에서 직접 고용한 가정도우미 노동자들은 독거노인이나 장애인 가정을 방문해 반찬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집안정리, 목욕수발까지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한다.
서울시는 애초 1개동 1도우미로 시작해 가정도우미의 수를 2천여명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1999년까지 그 수를 점차 늘려나갔다. 그러나 외환위기가 닥친 이후 1999년부터 가정도우미 수가 줄어들기 시작해 1999년 634명이었던 것이 현재 300여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때문에 가정도우미 노동자의 노동강도는 2배 이상 늘었지만 업무 상 사고조차 제 돈을 내어 치료할 정도로 이들의 건강은 외면당하고 있다. 법정최저임금이 조금 넘는 임금에도‘봉사하는 마음으로 한다’고 말하는 이들의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찾기 위해 서울가정도우미노동조합과 한국노총 산업안전환경연구소가 나섰다.
이에 <매일노동뉴스>는 지난 20일 한국노총 산업안전환경연구소가 진행하는 가정도우미노동자의 건강실태조사 현장에 동행해 문제점을 집어봤다. 편집자
서울시 마포구청 소속 가정도우미 노동자 홍표경씨(56). 어찌나 걸음이 빠른지 헉헉 거리며 쫓아가도 뒤처지기 일쑤다. 사실 올해로 10년째 이 일을 하고 있는 홍씨의 걸음이 처음부터 이렇게 날쌘 것은 아니었다. 하루에도 서너집은 방문해야하는데다 홍씨가 오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할머니, 할아버지 때문에 그의 걸음은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가정도우미 노동자들은 유독 교통사고나 골절사고를 많이 당한다. 비탈진 골목길을 눈과 빗속에서 빨리 걷다보니 넘어져 다치는 경우도 많고 휠체어 탄 장애인과 함께 이동하다가 제때 피하지 못해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오전에 지체장애인 목욕수발을 하느라 기운이 다 빠졌다고 하지만 홍씨의 날랜 걸음은 오후가 되면서 더욱 빨라졌다. 이렇게 도착한 집은 대흥동의 한 임대아파트. 6년 전 중풍으로 쓰러져 오른쪽 팔과 다리를 못 쓰는 할아버지와 그 할아버지 병수발을 하다가 중풍으로 왼쪽 팔, 다리가 마비된 할머니 내외가 사는 집이다.
“몸이 많이 불편하신데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다정하게 사세요. 커피 한잔을 타더라도 오른쪽을 못 쓰시는 할아버지가 컵을 잡고 왼쪽이 불편하신 할머니가 물을 따르시죠.”
홍씨를 반기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인사를 드리는 순간부터 그의 손이 빨라졌다. 혼자서는 걸을 수도 없는 할머니 목욕은 홍씨의 몫이다. 혼자 들어서기도 비좁은 임대아파트 욕실에서나오는 홍씨의 몸이 흠뻑 젖었다.
“오늘은 그래도 일찍 끝났네요 제일 힘든 게 지체장애인 목욕수발이에요. 어떤 때는 80Kg이 넘는 분을 휠체어에서 들어서 욕실까지 옮기는 것만 해도 어질어질할 정도죠”
미리 장 봐온 찬거리를 손질하던 홍씨의 손은 어느새 빨래를 게고 방을 훔치고 있다.
“그래도 요즘에는 나라에서 지원을 많이 해서 수혜자 환경이 많이 좋아졌죠. 10년 전만해도 사는 게 말도 못했죠. 부엌이 없어서 하수구에서 빨래를 했다니까요”
홍씨는 사람들 앞에 손을 내놓는 게 가장 부끄럽다고 했다. 주부습진 때문에 갈라져 터진 손을 언제나 꼭 잡고 있는다.
임대아파트를 나서서 아현동의 골목길을 돌아서 30분을 족히 걸어가 도착한 옥탑방. 73세 치매할머니가 혼자 사는 집이다. 들어서자마자 지독한 오물냄새가 코를 찔렀다. 수도꼭지 하나 덜렁 있어 부엌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입구에는 할머니가 싸놓은 똥이 짓뭉개져 있다.
“할머니 옷 갈아입자”
욕을 하면서 한사코 거부하는 할머니와 씨름하던 홍씨는 발톱에 똥이 끼었다며 손톱깍기를 찾았다.
“사실 가정도우미 일하면 감염이 제일 무서워요. 이 일하면서 수혜자분들이 돌아가시는 경우도 종종 목격하거든요. 구청에서 1년에 한번 건강진담을 하는데 일반적인 검사라 자비를 들여서 종합검사를 하기도 해요”
오물로 더러워진 이불과 옷가지를 세탁기에 집어넣고서야 홍씨는 허리를 폈다. 오늘은 다행히 날씨가 좋아 빨래가 잘 마를 것 같다. 빨래를 널어놓은 채 수혜자 집을 나섰다 소나기라도 내리면 홍씨는 퇴근한 후에도 다시 돌아온다고 한다.
“할머니한테는 저밖에 없는데 어떻하겠어요”
최저임금이지만 ‘봉사하는 마음으로’
홍씨는 오전 9시 소속된 마포구청으로 출근 짤막한 보고와 회의를 진행하고 하루에 3~4 가정을 방문한다. 홍씨가 담당하는 수혜자는 모두 6명. 매 가정을 이틀에 한번씩 번갈아 방문해 온갖 일거리들을 도맡아 해결한다.
한달에 홍씨가 받는 월급은 70만원이 조금 넘는다. 상여금이 조금 나오긴 하지만 모두 합쳐봐야 1년에 1천200만원을 넘기기가 힘들다. 퇴근한 이후에도 수혜자에게 긴급전화가 걸려오면 다시 방문한다. 하지만 연장근로수당이나 휴일수당 같은 법정수당은 받아본 적이 없다. 지난 추석에는 수혜자 가운데 한 명이 갑자기 병원으로 실려가는 바람에 병실을 밤세도록 지켰다. 병원측에서 보증인이 없다는 이유로 홍씨를 보내주지 않는데다 명절이라 간병인조차 구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홍씨는 “일은 정말 고되지만 나보다 더 어렵게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시는데 외면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며칠전에는 같이 일하는 동료가 일을 그만두고 김밥집에 취직해 속상하다고 털어놓았다.
“이걸로 먹고살기 힘들죠. 하다못해 식당에 가도 이것보다 일 적게 하고 받는 돈은 많으니까”
집에서는 이제 그만하라고 성화이지만 홍씨는 60세 정년까지 계속 이 일을 할 생각이라고 한다.
“이 일을 하려면 그게 있어야돼요. 맨날 똥사놓고 이불에 뭉게놓고 하는데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밉지가 않아.”
일에 대한 만족도 ‘최고’ 그 이면에는…
비단 홍씨뿐만 아니다. 가정도우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97%가 ‘일에 만족하고 있다’고 답했다. 최근 돌봄노동 분야로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는 자활노동자와 달리 가정도우미의 경우 자격기준에 특별한 조건이 없어 생계형 일자리가 아니라는 점도 작용을 하지만 가정도우미노동자 대부분은 “봉사하는 마음으로 일하기 때문에 희생도 감내할 수 있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안전환경연구소 국장은 “내년부터 시행되는 노인요양보험으로 가정도우미 형태와 같은 돌봄노동 일자리는 5만여개 이상 급증할 것”이라며 “그러나 현재 서울시 가정도우미제도에서 보여지듯 일자리 수 늘리기에 급급한 나머지 일자리 질 저하는 불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지금부터라도 ‘봉사와 희생’으로 포장하기 이전에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찾아나서야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