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정보화로 노동자만 ‘골병’든다
전산·정보화로 근골격계 질환 늘어, 비정규직·하청용역도 확대

매일노동뉴스/김미영 기자

요즘 병원에서 ‘종이차트’를 찾아보기 힘들다. 환자들도 굳이 건강보험증을 들고 방문할 필요가 없다. 대신 병원노동자들은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접수와 수납을 받고 환자의 상태와 투약 상황 등을 기록한다. 급격한 전산·정보통신의 발전은 병원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대한정보의료학회가 지난 2005년 공동으로 조사할 결과에 따르면 원무업무는 전체 병원 96.8%가, 보험청구 업무는 93.9%가 전산화를 완료했다. 그렇다면 병원의 전산·정보화는 노동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전체 인력 줄고 비정규직은 늘고

일반적으로 전산·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편리’를 동반한다. 그러나 여기서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할 점은 ‘누구’와 ‘무엇’을 위한 편리인가라는 점이다.
1990년대 환자들은 병원을 방문하자마자 건강보험증을 내밀고 접수를 한다. 예전에 방문한 적이 있던 병원이라면 환자진료기록을 찾기 위해 간호사는 캐비넷을 뒤진다. 그러면 의사가 진료를 보고 처방전을 써서 간호사에게 건네준다. 혹은 의사가 더 큰 병원에 가보라며 커다란 엑스레이 필름이 담긴 봉투를 주기도 한다.
2000년대 환자들은 병원을 방문해서 주민등록번호를 알려주면 EDI(전자문서교환)을 통해 건강보험공단과 바로 진료비청구 등을 처리한다. 의사들은 OCS(처방전달시스템)을 통해 환자에 대한 처방정보를 간호사에게 온라인으로 전하고, 환자의 엑스레이 필름은 PACS(의료영상 저장 및 전송시스템)을 통해 역시 온라인으로 전달된다. 그리고 환자의 질병과 관계되는 모든 사항과 병원이 제공한 검사, 진단, 치료 및 결과에 관한 정보가 EMR(전자의무기록)을 통해 남게 된다.
9일 보건의료노조가 발표한 ‘의료기관 전산·정보화 실태와 문제점,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이러한 변화는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고 있다. 보고서는 “병원에서 전산화, 자동화가 급격히 진행됨에 따라 노동시장 유연화가 진행되고 있다. 진료부분에서 임시직과 계약직이 확대되고, 비진료업무에는 하청용역이 확대되고 있다. 일례로 서울대병원은 전산화를 진행하면서 원무과의 인력을 줄이고 무인수납기와 콜센터 등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기도 했다.

업무속도 빨라지고 할 일은 더 많아지고

또한 서울대병원에서 EMR 경험연수가 2년 이상인 노동자들과 1년인 노동자들의 업무스트레스를 비교한 결과 EMR을 1년 더 경험한 노동자들의 스트레스가 39.3%나 높게 나타났다.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은 EMR 도입 이후 56.1%가 정신적 피로감이, 52.2%가 육체적 피로감이 증가했다고 답했다.
보고서는 “전산화의 도입으로 업무속도가 빨라졌지만 그만큼 더 많이 일해야하기 때문에 간호사의 경우 기록시간과 인계시간이 늘었으며, 간호사가 해야하는 스크린, 검사 수도 많아졌다”고 지적했다. PACS를 도입하고 있는 병원 역시 이를 담당하는 노동자의 업무를 가중시키고 프로그램의 빠른 업그레이드로 노동자의 교육시간도 그만큼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의료노조가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전국 23개 병원사업장 조합원 27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료기관 전산·정보화에 따른 환자 정보 보호, 노동조건 변화 실태조사’ 역시 비슷한 결과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르면 전산·정보화로 본인의 작업량은 45%가 변화없다고 답했으며 22%는 오히려 늘었다고 답했다. 시간당 업무량은 54%가 변화없다고 했으며 25%는 되레 증가했다고 응답했다. 또 27%가 육체적 스트레스가 증가했다고 답했으며 40%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증가했다고 밝혔다. 72%는 작업 중 휴식시간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골병’ 부르는 전산·정보화

보고서는 또한 “전산화로 인한 근골격계 질환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면서 “실태조사 결과 85%의 응답자가 VDT(컴퓨터단말기) 증후군을 호소하고 있으며, 목(65%), 어깨(78%), 팔·팔꿈치(43%), 손·손목·손가락(51%), 허리(38%)에 통증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줄줄 새는 ‘개인 건강정보’
정보보호 교육 미흡, 병력 유출로 고용차별 발생

병원의 전산·정보화시스템의 또 다른 문제는 환자의 개인정보 유출이다. 당신이 만약 고용주가 실시한 건강검진을 받았다면, 당신의 비만정도까지 회사는 알 수 있다.
진료정보는 그 어떤 정보보다도 개인의 신체적·정신적 상태에 대한 포괄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며, 또한 집약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이러한 진료정보는 실제로 환자의 사회적 고립뿐 아니라 생명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높은 수준의 보완을 요구한다.
하지만 보건의료노조 ‘의료기관 전산·정보화에 따른 환자 정보 보호, 노동조건 변화 실태조사’ 결과가 의미하는 바는 심각하다. 이에 따르면 자신의 업무와 관련없는 전반적인 환자정보에 접근이 가능하다는 응답이 63%로 나타났으며 타인ID나 비밀번호를 사용한 적이 있다는 응답도 63%에 이르렀다.
특히 10명 중 7명은 정보보호와 관련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으며, 보완서약서를 작성했다는 응답은 고작 5%에 불과했다. 또한 병원 내 정보시스템 관리를 외주업체에 맡기고 있다는 병원도 31%에 이르렀다. 이는 환자 정보 유출이 무방비상태에 놓여있음에도 이에 대한 별도의 보완장치가 거의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 개인 의료정보는 고용관계에서 차별을 야기하기도 한다. 전염병 병력은 간호사 자격을 취득하는데 결격사유가 아니지만 대부분의 국공립, 일부 사립병원을 제외한 많은 종합병원에서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를 간호사로 채용하지 않는다.

2007년10월11일 ⓒ민중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