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하도급 감시’ 불 꺼진 한전…배전업체 난립·과당경쟁 ‘방관’
분신 보고도 “당사자들 책임”…노동계 “규제방안 마련을”
황예랑 기자
적지 않은 노동자들이 임금체불과 장시간 노동으로 일하다 결국 노동재해로 쓰러지는 건설현장은 대표적인 ‘노동권 무법지대’다.
지난 27일 분신한 인천지역 전기원 정해진씨가 속한 전국건설노조 인천건설지부만 해도, 지난 7월 이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부당노동행위, 임금체불 등으로 인천지역 전기공사업체들을 경인지방노동청과 그 산하 지청에 진정·고발한 사건이 100여건에 이른다. 그만큼 건설노동자의 노동환경이 열악하다는 증거다.
분신한 정씨처럼 높은 전봇대 위에서 고압전선을 만지는 전기원들의 경우, 사고 위험이 더욱 높다. 고압전류에 감전돼 손을 잘라야 하는 사고도 예사다. 최대 공사발주처로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한국전력의 ‘배전공사 현장 안전사고 발생현황’에 파악된 감전·추락사고는 2005명 20명, 2006년 15명이었다. 그러나 한국전기안전공사의 ‘전기재해통계분석 자료’를 보면, 2005명 130명, 2006년 128명이 특고압선 현장에서 감전사고를 당했다.
하지만 노조는 이 통계조차도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게다가 노동재해를 입고도 산재처리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건설산업연맹 자료를 보면, 건설현장 노동재해를 당한 경우 공상 처리가 47%, 본인 치료 29%, 산재 처리는 20%로 나타나 있다. 분신한 정씨만 해도 일하다 허리를 다쳤지만 산재로 처리되지 않았다고 한다.
전기공사의 산재는 “공사 발주자인 한국전력의 책임도 있다”고 업계와 노동계 인사들은 말한다. 지난 18일 한국전력에 대한 국회 산업자원위 국정감사에서 임종인 의원은 “한전에서 인증한 배전공사 시공업체가 3252개사에 이르는데 이 가운데 올해 상반기 실적을 보면, 그 가운데 절반인 1500여개 업체만 계약해 일거리를 얻었다”며 “업체 난립에 따른 과당 경쟁과 관리감독 소홀로 안전사고 등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건설노조 송주현 정책기획실장은 “하도급 범위를 정해놓은 전기공사법 시행령과 달리, 협력업체들이 실제로는 낙찰을 받은 뒤 다른 업체에 하도급을 주고 있다”며 이는 노동자의 열악한 처우와 산업재해로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송 실장은 “산업안전과 공사품질 등을 고려해 한전이 협력업체들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방안을 제도적으로 마련하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전 쪽은 “위장하도급 신고가 들어오면 점검을 나가긴 하지만 적발이 쉽지 않다”며 “입찰자격 제한 등 관련 기준 개정을 추진해 보겠다”고 말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