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유화공단 화학물질 유출 빈발..시민불안
연합뉴스|기사입력 2007-10-29 07:30 |최종수정2007-10-29 16:33

1960-70년대 지어진 ‘노후 플랜트’로 사고 급증 추세

회사 ‘안전불감증’도 한몫..”안전교육센터 설립 필요”

(울산=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한국의 ‘산업수도’ 울산의 대형 석유화학 플랜트에서 유해가스 유출과 폭발사고 등 화학물질과 관련된 안전사고가 잇따라 발생, 현장근로자와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화학물질 유출사고가 잦은 것은 울산 석유화학 공단 플랜트 대다수가 1960~70년대에 지어져 핵심설비 뿐 아니라 탱크, 수송배관 등 전반적인 시설이 낡은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사고가 날때마다 관리자들이 감추기에 급급해 하는 등 업체들의 ‘안전불감증’도 사고 예방 실패에 한 몫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 최근 유해물질 유출사고 잇따라

지난 7월과 10월, 울산의 석유화학 공단에서는 암모니아가스 유출, 차량 탱크로리 폭발, 벤젠 탱크 파열 등 5건의 화학물질 유출사고가 일어났다.

지난 5일 플라스틱 필름 제조사인 K 회사에서는 폴리에스테르가 들어있던 차량탱크로리가 폭발했고, 16일에는 유안비료 생산 공장인 C 회사의 벤젠락탐 저장탱크 윗부분이 폭발, 발암물질인 벤젠이 대기로 유출되는 등 울산시 남구 석유화학공단에 입주한 업체들에서 10월에만 2건의 화학물질 유출사고가 일어났다.

특히 C 회사에서는 지난 2월과 4월, 7월에 황산가스와 암모니아 유출사고가 났는데도 최근 또 화학물질이 유출됐다.

이와 함께 지난 18일에는 울산시 울주군 온산읍 화산리의 폐수처리업체인 S 회사의 폐수 저장탱크에서 폭발사고가 발생, 근로자 2명이 중화상을 입기도 했다.

울산노동지청 등에 따르면 울산지역공단 내에서 발생한 폭발 및 화재사고는 2005년 60건, 2006년 70건, 올들어서는 최근까지 40건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또한 1990년 이후 울산 석유화학공단에서만 30여 명이 숨지고 1천억원이 넘는 재산피해가 난 것으로 추산된다.

◇ 시설 대부분 노후..위험요인 상존

1962년 건설된 울산미포국가산업단지와 1973년 세워진 온산국가산업단지 등 울산의 주요 공단들은 국내에서도 가장 오래된 플랜트 시설을 갖추고 있다.

물론 오래 전에 공단이 건설됐다고 해서 울산의 석유화학업체의 설비와 부품이 모두 낡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업체들이 설비의 내구연한에 따라 개보수와 부품교체 작업을 꾸준히 해 오고 있고, 소방당국과 산업안전기술공단 등 관계 기관으로부터 정기 점검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유업체들을 제외한 석유화학업계 대부분이 경영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제대로 된 설비 재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시설이 전반적으로 노후화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 유화업체 관계자는 “유화업계가 호황일 때와 비교해 개.보수 작업과정이 일부 생략되거나 간결해진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맹독성 위험 물질을 취급하는 석유화학공업의 특성상 설비 노후화는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져 엄청난 인명과 재산피해를 가져올 수 있어 정기적인 설비 개보수와 부품교체 등에 대한 철저한 관리감독이 요구된다.

◇ 업체들 사고 감추기 급급..’안전불감증’

사업장들의 ‘안전 불감증’도 유출사고를 부르는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최근 화학물질 유출사고가 난 회사들 중 상당수는 사고직후 관련 내용을 관할 행정당국에 신고조차 하지 않고 자체 처리하려다가 언론사들이 사고 소식을 듣고 취재에 들어가자 발뺌 하는 등 사고 감추기에 급급한 행태를 보여 비난을 샀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사망재해가 2명 이상 발생하거나 위험물질의 누출, 화재, 폭발로 노동자의 사망 또는 부상을 동반한 ‘중대산업사고’의 경우에 관계기관 신고를 의무화하고 있다. 이는 곧 중대산업사고가 아닌 경우 굳이 관할 노동지청에 신고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업체 관계자는 “현행법상 인명피해나 중대한 피해가 발생하는 중대산업사고는 반드시 신고해야 하지만, 그 외의 작은 사고들은 자체 처리하고 사후에 신고해도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회사 차원의 소방안전 시스템과 별도로 관련 기관에 사고가 신속히 신고되는 체계가 정밀하게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울산대 생명화학공학부의 신승부 교수는 “1번의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29번의 사고가 있으며, 그 전에는 300번의 경미한 징후가 있다는 ‘1:29:300 법칙’이라는 게 있다”며 “최근 사고들은 ’29’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언제 대형사고가 발생할 지 모르는데, 사고 원인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사고 대비할 체계적 시스템 마련돼야

울산노동지청은 최근 잇따라 화학물질 유출사고가 일어난 유화업체 C 회사에 대해 지난 24~25일 산업안전 특별감독을 실시, 안전관리 의무 소홀로 이 업체 사업주를 사법조치할 방침이다.

울산노동지청은 공무원과 산업안전 전문가 등 20여 명의 인력으로 구성된 ‘중대산업사고 예방센터’를 지난 2004년 4월부터 운영해오고 있다.

이 센터는 울산과 부산 등지의 131개 석유화학업체를 전담해 산업안전관리 감독업무를 전문적으로 하고 있으며, 특히 PSM(Process Safety Management) 등급제라는 ‘화학공정 안전관리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울산노동지청 관계자는 “각 석유화학 플랜트가 화학공정을 어떻게 관리하겠다는 계획서를 올리면 세 단계 등급을 매긴다”며 “공정별로 미흡한 점이 있으면 계획서 보완지시를 내리기도 하고, 계획서를 낸 업체들은 연 1-2회 이행실태 점검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울산소방본부는 최근 전국 시도 소방본부 관계자들과 기업체 방화관리자들을 초청, ‘국가산업단지 재해방지 심포지엄’을 개최, 최근 잇따르고 있는 각종 석유화학 플랜트 사고를 미리 방지하기 위한 방안 모색에 나섰다.

그러나 시 차원에서 산업안전에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도 높다.

울산대 신승부 교수는 “화학공단이 주거지와 인접한 울산의 특성상 시 차원에서 주민들의 안전대책에 나서야한다”며 “시가 가칭 ‘안전교육훈련센터’ 등을 설립, 업체 관계자 뿐 아니라 일반 시민을 상대로 사고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시스템이 정착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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