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한 달 맞은 심일선 산재의료관리원 이사장
“산재의료관리원 본연의 설립목적에 충실하겠다”
매일노동뉴스 김미영 기자
“일하다 다친 노동자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다시 일할 수 있다는 희망입니다. 산재의료관리원은 전 세계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시설을 마련해 재활사업에 모든 역량을 집중할 계획입니다”
재활치료는 고가의 시설을 요구하는 반면 수익성은 낮아 민간병원에서는 꺼리는 분야이다. 대형병원은 ‘돈이 안된다’는 이유로, 개인병원은 ‘시설과 인력이 없다’는 이유로 산재환자의 재활치료를 천덕꾸러기 취급한다. 하지만 지난 6일로 취임 한달을 맞은 심일선(51) 산재의료관리원 이사장은 재활치료의 전문화야말로 산재의료관리원이 나아갈 방향이라고 말한다. 매년 공공기간 경영평가에서 하위권을 맴돌고 있는 산재의료관리원은 지난해 165억원의 적자를 보았다. 병원계에서 ‘수익성이 없다’고 정평이 나있는 재활치료를 산재의료관리원의 ‘미래’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심일선 이사장의 독특한 이력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산재의료관리원 수장은 역대로 노동부 관료 출신들이 맡아왔다. 심일선 이사장은 산재의료관리원 이사장 가운데 최초의 노동계 출신이다. 88년 한국은행노조 초대위원장을 거쳐 97년에는 현 사무금융연맹의 한 축이었던 민주금융노조연맹 위원장을 맡아 ‘넥타이부대’를 이끌었다.
‘노동계 출신’이기에 그는 더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기관장으로서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면 다행이지만, 실패할 경우 ‘노동계 출신이라서’라는 비판이 따라올 것입니다. 그래서 더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산재의료관리원 본연의 목적으로 돌아가겠다”
지난달 23일 산재보상보험법이 40년만에 개정되면서 산재의료관리원은 대변신을 눈앞에 두고 있다. 산재보험시설의 관리·운영 주체이지만 법 개정 전에는 이에 대한 법적근거가 부칙에 임의적으로 정해둬 투자재원 조성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이번 법 개정으로 설립 및 기금출연 근거가 명확해진 산재의료관리원은 공공의료 시설로서 시설투자·재활사업 등 공익사업 수행을 위한 법률적 기반이 마련됐다. 그 결실은 내년 7월 재출범한 ‘한국산재의료원’으로 집약될 예정이다.
“산재의료관리원의 설립목적은 산재환자들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해 조속히 사회에 복귀시키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산재보험시설로서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인데 재활전문화와 병원별 진료특화가 그 해답이 될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노동자가 일하다 기계에 손가락이 잘렸다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이 산재의료관리원이 될 수 있도록 전면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하겠다는 게 심 이사장의 구상이다. 재활전문병원화는 이미 시행 중에 있다. 인천과 대전·창원병원이 현재 ‘재활전문센터’로 개편됐고, 2008년 중에 안산·순천병원, 2009년에 태백·동해병원이 잇따를 예정이다.
재활전문화뿐 아니라 병원별로 진료분야 특화도 꾀하고 있다. 인천중앙병원의 경우 수지접합, 안산·순천병원은 척추질환, 창원은 근골격계질환, 대전과 동해병원은 관절질환, 안산·태백·순천·동해병원은 진폐 전문병원으로 거듭난다.
“재활치료 서비스의 공급부족은 결국 산재환자들의 피해로 돌아갑니다. 산재노동자들이 적절한 재활치료를 받는다면 지금과 같이 장기요양으로 고통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더구나 산재기금과 국가생산력에도 손해를 끼칩니다. 2009년까지 313억원을 투자해 7개 병원에 재활전문센터 설치를 완료할 예정입니다.”
재활전문병원화가 최고의 경쟁력
하지만 논란도 있다. 노동조합은 지금의 종합병원 형태에서 재활전문병원으로 개편될 경우 오히려 산재환자들에게 충분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가 어렵다고 우려한다. 또 고용불안이 가중된다는 점에서 반대하고 있다.
“노조에서 반대하는 이유는 재활전문화가 조직의 외소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걱정 때문입니다. 부수적으로 고용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도 하고 있지요. 하지만 산재의료관리원 산하 전국 9개 병원의 현재 인프라나 시설은 다른 대형 종합병원을 따라가기에 버거운 것이 사실입니다. 정부 투자가 무한정 이뤄진다면 몰라도 지금과 같은 형편에서는 ‘재활전문화’가 최고의 경쟁력이 될 수 있습니다. 재활전문병원으로 자리매김할 때 이용률은 더 높아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실제로 산재의료관리원의 재활시설은 아시아에서는 최고규모를 자랑한다. 인천재활전문센터에 들어선 수중재활치료 전문시설인 아쿠아클리닉은 뇌손상이나 근골격계질환 치료에 있어 국내 최고 수준이다. 태백과 경기도 화성시에 건립된 케어센터도 고령의 장기요양 산재환자를 위해 이용비용 대비 최고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또, 2011년 대구재활병원의 건립이 완료되면 우리나라 재활의료에서 명실상부한 ‘메카’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진화하는 공공의료 서비스 선보이겠다”
재활전문병원을 위한 시간표가 확정되고 산재보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산재의료관리원의 발걸음은 더욱 분주해졌다.
산재의료관리원은 최근 U-헬스서비스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현재 경기도와 아주대의료원과 공동으로 시스템 구축을 진행하고 있으며 서울대병원과도 물밑에서 논의하고 있다. 이를 통해 산하 9개 병원과 인접한 보건소 및 사회복지시설과의 원격 진료협력체계를 갖추게 되면 비정규직·이주노동자 등 열악한 근로환경의 노동자에게 의료복지서비스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분진이나 진동, 온·습도 등 최첨단 환경측정센서를 이용해서 산재취약 사업장에 대한 작업환경 원격모니터링과 노동자의 건강관리 등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심일선 이사장은 “앞으로는 이러한 원격진료서비스를 강원도 산골같은 의료기관이 없는 지역으로도 확대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공공성과 수익성,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산재의료관리원의 경영상황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정부로부터 연간 200억~250억원 상당의 보조를 받고 있지만 매년 100억~2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올해도 산재환자수가 전반적으로 감소해 114억의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 등과 함께 재활진료 수가를 개발 중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들어간 비용에 비해서는 턱없이 낮다. 재활전문병원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할 산이다. 심일선 이사장은 그래서 무엇보다 국가의 지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느 정도 적자를 예상하고 뛰어들고 있습니다. 산재의료는 특성상 공공성이 강한 비수익사업입니다. 사업장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한 산재노동자에게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해 하루 빨리 사회에 복귀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는 공공기관으로서 당연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당연히 국가가 그 짐을 함께 져야합니다. 물론 우리 기관에서도 불필요한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수지개선을 해야겠지요.”
심 이사장은 공공성과 수익성,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수익성에서도 소홀함이 없어야한다고 말한다. 스스로 달라지려는 노력을 보일 때 국가 지원 요구도 당당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서 인사평가와 보수체계를 성과중심으로 개편을 검토하고 있다.
“노동조합에서도 공공성을 강화해야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측면도 있습니다. 공공기관의 대표적인 병폐인 ‘철밥통 의식’을 깨야합니다. 스스로 노력하고 개선할 때 ‘적자’를 보는 시각도 달라질 것입니다”
“협력적 노사관계 정착시킬 것”
조직체계·인사·임금제도 개편은 내부에서 격렬한 진통을 수반한다. 심일선 이사장은 “노조와의 진정한 동반자적 관계를 통해 이를 해결해나가겠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노동조합에서도 노동계 출신 이사장이 오니까 ‘선배’가 왔다고 하더라고요. 취임사에서도 강조했듯이 노조와의 동반자적, 협력적 관계를 만들어나갈 생각입니다. 협력적 노사관계라 하면 상투적인 표현으로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협력적 관계는 노조를 존중할 때 가능합니다. 노사관계에서 부족하기 쉬운 것이 ‘소통의 기술’인데요.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는 마음으로 대한다면 얼마든지 소통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심일선 이사장은
심일선 이사장은 75년 한국은행에 입사해 여신관리실·국고부·총무국 등을 거쳐 2003년 총무국 부국장으로 퇴직했다. 한국은행 재직시절인 88년 한국은행노조 초대위원장에 당선됐으며, 97년에는 현 사무금융연맹의 한 축이었던 전국민주금융노조연맹 위원장직을 수행했다. 2003년 청와대 정책실 자문위원, 한국노동교육원 객원교수 등을 두루두루 역임했다. 2004년 6월부터 지난 6월까지 3년간 산재의료관리원의 상임감사를 맡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