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참사는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 낳은 비극
노동계 “원청업체, 노동자 직접 채용해 안전교육 실시해야”
매일노동뉴스 구은회 기자
이천 화재참사가 안전보건규정 미준수에 따른 ‘인재’라는 지적이 높은 가운데 노동계는 “건설현장의 불법 다단계 재하청 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 동일한 유형의 사고가 되풀이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도급 과정을 거칠수록 공비가 줄어드는 구조 속에서 안전교육과 설비투자비용을 부담할 하청업체가 과연 얼마나 되겠냐는 지적이다.
실제 이번 이천 냉동창고 화재참사로 사망한 40명 중 37명이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인 것으로 확인됐다. 건설현장에는 유성ENG 등 6개의 하청업체가 투입됐으며, 이 가운데 동신·한우기업·HI코리아 등 3개사가 유성ENG로부터 배관설비와 전기설치, 파이프보온 등의 공사를 각각 재하청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동신 등 재하청 업체들은 ‘십장’으로 불리는 시공참여자들에게 공사물량을 다시 재하도급한 것으로 밝혀졌다.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은 건설현장의 다단계 하도급을 통상 2단계까지만 허용하고 있다. 발주자가 일반·종합건설업체인 원청에 도급을 맡기고, 원청이 전문건설업체에 하도급을 주는 식이다. 전문건설업체가 다시 다른 업체에 재하도급을 주는 것은 불법이다. 그렇지만 건설업자들은 공사비를 절감하기 위해 여러 단계의 재하도급을 거치고 있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오래 전부터 ‘공사비 남겨먹기’, ‘임금 떼먹기’라며 강도 높게 비난해 왔다.
문제는 공사비 절감 차원에서 관행화된 재하도급 구조 속에서 각종 안전보건 규정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노동부 등 관리당국의 감독 소홀이 더해지면서, 건설현장의 대형참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불법 다단계 과정에서 근무한 노동자의 경우 사고를 당해도 산재보험 적용을 받기 어려워, ‘죽은 자만 억울한’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 속에 자리잡은 ‘야리끼리’ 관행도 건설현장의 대형참사를 부르는 원인 중 하나다. 야리끼리는 일정량의 일을 할당받아 끝내는 ‘물량 도급’ 방식이다. 오늘 일을 빨리 끝내야 내일 일을 찾을 수 있는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은 시간에 쫓겨 근무해야 하기 때문에 안전수칙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박종국 건설노조 노동안전국장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잘 알면서도 감독 책임을 소홀히 한 정부에 이번 사고의 책임이 있다”며 “이천 화재참사와 같은 끔찍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원청업체가 노동자들을 직접 채용해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정부가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