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청소노동자 건강실태
유해물질인 세척제 사용하면서 알려주지도 않아

매일노동뉴스 조현미 김미영 기자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청소노동자는 43만2천411명(2005년 기준). 전체 임금노동자 100명 중 3명꼴이다. 이들 가운데 77.4%인 33만5천여명이 비정규직이다.
공공장소와 사업장, 주거공간에 이르기까지 청소노동자가 없는 곳은 없지만 정작 ‘위생과 청결’을 책임지고 있는 청소노동자의 건강권은 단 한번도 주목받지 못했다. 유해물질이 포함된 독한 세척제로 변기를 닦고, 감전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지하철 철로를 씻어내고 있는 청소노동자의 위험천만한 노동환경을 <매일노동뉴스>가 들여다봤다. <편집자주>

지하철 막차가 끊기는 새벽 1시. 승객들이 모두 떠나고 지하철역 셔터가 내려지는 순간 본격적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지하철 청소노동자들이다.

칼바람이 매서웠던 지난달 23일 밤 6호선의 한 지하철역. 역사 안에 있는 용역대기실을 찾았다. 청소노동자들이 청소를 하다 잠시 쉬는 공간이다. 실내는 어두웠다. 청소노동자 김현숙(60·가명)씨는 “역무실에서 절전하라고 해서 불을 하나만 켜 둔다”고 말했다. 밥을 해먹는 간이주방에는 마포걸레 3개가 쾌쾌한 냄새를 풍기며 걸려 있다. 김씨는 “걸레가 바짝 마르지 않으면 물청소 때 바닥이 미끄러울 수 있어 어쩔 수 없이 주방에서 말린다”고 했다.

지하철 역사 야간청소는 보통 3명이 담당한다. 저녁 8시30분까지 출근해 9시부터 청소를 시작해 이튿날 첫차가 다니기 시작하는 새벽 6시에 끝난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승객들이 있는 12시 전까지는 주로 역사 출구 주변을 청소한다. 본격적인 청소는 밤 12시부터. 자정이 되자 김씨는 장화를 신고 고무장갑을 꼈다. 그리고 화장실로 향했다.

명칭도 성분도 모르는 세척제

김씨는 사용할 세제를 섞기 시작했다. 바가지에 가루비누를 넣고, 시중에서 흔히 ‘락스’라고 부르는 살균제와 또 다른 액체를 넣었다. 김씨는 자신이 사용하는 세제의 성분은커녕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그저 원액에 물을 ‘1:3’의 비율로 섞어서 쓴다고만 했다.

<매일노동뉴스>가 확인한 결과 김씨가 사용하는 세제는 모노에탄올아민 등을 포함하고 있는 고농축 다목적 세척제로 밝혀졌다. 사업주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노동자가 쉽게 볼 수 있도록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비치해야한다. 세척제에 포함된 화학물질의 이름과 취급상의 유의사항, 경고 내용을 나타내는 그림 등의 경고표지 부착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최소 300만원에서 최대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그런데 김씨는 세제의 이름도 모른 채 통의 색깔로 세제를 구분하고 있었다.

올해로 4년째 지하철 청소 일을 하고 있는 김씨는 “지하철에서 일하기 시작한 이후로 기침도 나고 목도 간질간질하다”고 했다. 또 손과 발에 물집이 생기고 가렵기도 하다.
“밤새도록 화장실, 대합실, 역무실을 돌아다니면서 청소하고 나면 어깨, 팔이 뻐근한 것은 말도 못해요. 온 몸에 파스를 붙이면 좀 나은데 기침 나고 손발이 간지럽고 눈이 따가운 것은 참을 수가 없어요. 그래도 저번에는 회사 관리자가 피부약이라고 잔뜩 사다가 나눠주더라고요.”
김씨가 빠른 속도로 철수세미에 세제를 묻혀 변기를 닦으며 말했다. 워낙 수세미가 거칠어서 세제가 종종 눈에 튀기도 한다. 김씨는 “어떨 땐 급한 마음에 세제 묻은 장갑으로 눈을 비비기까지 한다”며 “정해진 시간 내에 청소를 해야 하기 때문에 조심하려고 하지만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하철 청소 일을 시작한 이후로 시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물질안전보건자료의 ‘위험·유해성 및 응급조치 요령’에 따르면 김씨가 사용하는 세제의 경우 눈에 자극이 발생할 수 있으며 장기간 흡입시 두통이나 메스꺼움이 발생할 수 있다. 피부에도 자극이나 발열이 생길 수 있으므로 오염된 의복이나 신발은 즉시 버려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또 눈과 피부의 접촉을 피하기 위한 보호안경이나 마스크를 착용하고 반복적인 장기 피부접촉시 보호의를 입어야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김씨는 고무장갑과 고무장화 외에는 별다른 보호장구를 착용하지 않고 있었다.

무거운 청소도구 옮기면서 허리병 생겨

지난달 28일 찾아간 1호선의 또 다른 지하철역. 그곳에서 ‘야간기동대’ 박순분(45·가명)씨를 만났다. ‘야간기동대’는 말 그대로 야간에 여러 역을 옮겨 다니며 청소를 하는 팀이다. 박씨는 다른 노동자 세 명과 함께 밤 11시부터 아침 6시까지 청소를 한다.

규모가 큰 역에서는 보통 5일, 작은 역에서는 4일 동안 청소를 해주고 역을 옮겨 다닌다. 문제는 청소도구다. 역을 옮겨 다닐 때마다 호스, 마포걸레, 세제, 바닥 닦는 기계 두 대, 양동이를 지하철에 실어 날라야 한다. 세제는 한 통만 15kg이 넘는다. 한 역에 머무르는 동안 서너 통은 필요한데 이 모든 청소장비를 네 명이 옮겨야 한다. 특히 전동차 문이 열린 잠깐 사이에 청소도구를 한 번에 옮기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박씨는 “값이 비싼 기계는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청소 도구는 역마다 구비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반복적인 동작이나 무리한 힘의 사용, 부적절한 작업자세로 발생하는 노동자의 근골격계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유해요인 조사나 작업환경 개선, 의학적 관리 등의 프로그램을 실시하도록 돼 있다. 근골격계질환 부담 작업을 하는 사업장의 경우 3년마다 한 번씩 유해요인 조사를 비롯한 예방프로그램을 실시해야 하지만 박씨는 금시초문이다.

안전교육은 유명무실, ‘알아서 해라!’

다만 박씨는 한 달에 한 번씩 안전교육을 받는다고 했다. 이마저도 유명무실하다.
‘청소할 때 호스나 전선에 승객이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라’, ‘청소하다가 생기는 승객 안전문제는 노동자들이 직접 책임져야 하니 알아서 조심해라’ 등 청소노동자보다는 승객의 안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박씨 역시 사용하고 있는 화장실 세척제나 대합실이나 역무실에 광을 내기 위해 쓰는 광택제 등에 어떤 성분이 들어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박씨는 “지금까지 그 어떤 회사에서도 세제의 성분이나 위험성에 대해서는 말해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매일노동뉴스>는 박씨가 사용하는 광택제를 가져다 한국노총 산업환경연구소에 성분분석을 의뢰했다. 그 결과 에톡시산 노닐페놀설폰산, 나트륨 자일렌 등 화학물질이 포함되어 있었다. 산업안전공단에서 제공하고 있는 물질안전보건자료에 따르면 눈과 피부에 자극을 미칠 수 있는 건강위험성이 존재하며, 사용빈도가 높거나 노출이 심한 경우 호흡용 보호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 장기간 반복 접촉시 피부균역이나 피부염이 있을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감전 위험 도사리는 철로 물청소

지하철 역사에서 청소해야 할 곳은 한두 군데가 아니다. 승객들이 오고가는 대합실, 승강장, 출구 밖, 계단, 심지어 철로까지.

김현숙씨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철로를 청소한다. 전동차가 몰고 오는 먼지를 제거하고 승객들이 버린 쓰레기를 주워야하기 때문이다. 안전문제가 뒤따르는 곳이라 미리 역무실에 신청해서 허가가 나야 청소도 할 수 있다.

전선이 사방에 깔려있는 철로는 청소를 하려면 위험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철로를 물로 청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이 나오는 부분은 구리로 돼 있는데 엄청 무거워요. 꽃밭에 물 주듯이 물을 뿌려가지고는 먼지가 하나도 안 없어져요. 팔에 힘을 꽉 주고 철로에 끼어있는 먼지를 일일이 닦아 내야해요. 팔이 남아나질 않죠.”

김씨는 작년 5월 철로를 청소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기계에 이상이 있어서 팔이 감전된 것. 새로 일을 시작한지 갓 3주를 넘긴 때였다. 회사는 사전에 어떠한 위험 가능성도 알려주지 않았다. 당연히 김씨도 이러한 사고를 전혀 예상치 못했다.

산재 당하면 그 날로 ‘해고’

의사 진단 결과, 김씨는 오른쪽 어깨 인대 5개가 파열됐다. 사고 다음날도 김씨는 일을 하러 갔지만 회사측은 퇴직을 종용했다.
“그때 나랑 같이 작업했던 동료는 사고당하는 걸 보고 너무 놀라 까무러쳤어요. 다음날 바로 사표를 내고 떠나더군요. 그래도 난 끝까지 남아있겠다고 했어요. 사고 당한 것도 억울한데 해고까지 당할 수는 없잖아요.”

김씨는 지난해 11월에 결국 수술을 받았다. 병원비만 370만원을 썼지만 다섯달에 걸친 산재요양신청 심의 결과, 병원비 절반에도 못 미치는 130만원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다. 산재보험에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비급여 치료가 많았던 탓이다. 여기에 김씨가 출근하지 못하는 날은 일당을 대신 주고 ‘대타’를 불러야 했다. 사고를 당한 것도 억울한데 빚까지 져야 했다.

김씨는 “같이 일하는 사람 중에 몸이 안 아픈 사람이 없다”며 “근로복지공단이든 노동부든 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건강도 신경 좀 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소노동자 10명 중 3명은 산재 경험

이같은 사정은 비단 김씨나 박씨만은 아니다. 대다수 청소노동자들은 산업재해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으며, 사고를 당해도 마음껏 치료받지 못하고 있다. 청소노동자들의 건강권과 관련한 통계는 찾을 수 없다. 다만 지난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비정규노동센터에 의뢰해 발표한 ‘청소용역 노동자의 인권상황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일부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이에 따르면 전체 청소용역노동자들 가운데 26%는 최근 3년 동안 청소일로 인해 산업재해 사고를 당하거나 직업병을 앓았다. 공적교통기관 청소노동자는 같은 기간 동안 15.8%가 산재를 경험했는데 산재보험 처리를 받은 경우는 38.2%에 불과했다. 병원비를 노동자 본인이 처리한 경우가 절반이 넘는 52.9%에 달했다. 특히 회사측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 산재보험을 신청하지 못하는 경우는 교통기관 청소용역노동자들의 비율이 58.6%로 다른 기관 청소노동자의 비율보다 월등히 높았다.

교통기관 청소노동자의 산재사고 발생원인 중 1위는 먼지·분진·가스 등의 오염이었고, 미끄러운 바닥으로 인한 낙상(2위), 불편한 작업자세(3위), 세척제 등 화학물질취급(4위)으로 나타났다. 교통기관 청소노동자들의 직업병 종류를 살펴보면 관절통이 38.2%로 가장 많았고, 근육통(26.5%)·요통(23.5%)·위장질환(11.8%)·신경통(8.8%)·호흡기질환(2.9%) 등의 순이었다.

인권위는 지난해 10월 공공부문 청소용역 노동자들의 고용불안과 노동3권의 실질적 제약 등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부장관을 비롯한 행정자치부장관, 재정경제부장관 등에 정책개선과 보호입법을 권고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구체적인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노동부가 지난달 처음으로 지하철 일부구간의 청소노동자 작업환경 점검을 벌인 것이 전부다.

이찬배 여성연맹 위원장은 “간접고용 비정규직인 청소노동자들은 비위생적이고 조악한 작업환경에 처해있어 누구보다도 산재 위험이 크다”며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사고를 당해도 일자리를 잃을까 두려워 감추기에 급급한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불안한 고용관계로 인해 작업환경 개선은커녕 산재 은폐를 부추기고 있다는 설명이다.

상시업무인 청소업무를 용역업체에 넘겨주고 책임에서 한발 빼고 있는 원청업체와 최저입찰제로 노동자의 안전을 뒷전으로 밀어 넣고 있는 청소용역업체 사이에서 지하철 청소노동자들의 안전은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