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내 곁에 산재] 이겨보지 못한 이들의 말이 연극무대로

노동자들 다치고 죽은 이야기 다룬 연극 <산재일기> 7월 공연 앞둔 연습 현장을 가다

전수경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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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24일 노회찬재단이 기획한 연극 <산재일기>의 이철 작가 겸 연출자(맨 왼쪽)와 정혜지·양정윤 배우(가운데), 김민희 조연출이 서울 종로구 혜화동 스튜디오에서 연습 중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잠시 마스크를 벗었다. 김진수 선임기자

 

흔히 말하기를 사람으로부터 배운다고 하지만 우리는 사람의 어떤 부분만 선택한다.

이 짧은 연재글도 그러하다. ‘내 곁에 산재’라는 따뜻한 연재명을 달았지만 연재에 등장한 이들의 사연은 깊은 만남 속에 길어진 다정한 이야기는 되지 못한다. 나와 인터뷰 대상자 사이에는 짧은 시간에 전달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합의가 있다. 경제적으로 묻고 경제적으로 답한다. 자신의 노동 이야기 가운데 선택된 어떤 단면이 문자화돼 읽히는 일은 당혹스러울 수 있다. 충분히 이해받지 못하는 상황이 답답할 수 있는데도 ‘내 곁에 산재’에 등장했던 이들은 동료 노동자들과 공동체를 위해 경험을 나눠줬다.

‘노회찬재단’에서 산업재해를 소재로 연극을 제작하고 싶다고 나에게 연락했을 때도 비슷했다. 노동자들이 다치고 숨지는 일에 사회의 관심이 높아지고 문화예술에서도 이를 다루는 것은 좋은 일이다. 노회찬재단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발굴해왔기에 신뢰도 있다. 그러나 극본을 만들기 위해 노동자들을 만나는 일은 조심스럽게 생각할 일이다. 노회찬재단 요청으로 이 산재 연극의 극본을 준비하는 이철 작가를 만난 것은 2021년 2월이었다. 이 작가와 나는 같이 노동자들을 만나기로 했다.

다치고 죽어도 119 구급차는 안 와

평평한 길에 튀어나온 돌부리처럼 느닷없이 사람을 넘어뜨리는 일을 모두가 겪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만 보이던 삶이 어떤 사건을 만나면 사회적 의미가 새로 직조되기도 한다. 개인과 사회가 만나는 지점에서 자신에게 말이 생겨나는 것을 알게 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공동체가 이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는 일은 대체로 일어나지 않는다.

개인의 경험이 사회적 이유와 뗄 수 없이 연결돼 있다 해도 모든 이가 사회를 향해 말하는 건 아니다. 자신의 드라마를 들려주는 수고는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에게 도움이 되고 때로 변화를 촉진하지만 주인공은 대체로 지는 싸움을 한 경우가 많다. 이미 이긴 이들은 싸움을 선택하게 하는 현실에 놓이지 않기 때문이다. 극본을 집필할 작가와 함께 노동자를 만나는 일은 이겨보지 못한 이들의 목소리를 수집하는 일이기도 했다.

2021년 여름, 코로나19 유행과 사회적 거리두기로 승객이 줄어 항공료가 기차표와 큰 차이가 없던 때 토요일의 울산공항은 오가는 사람은 적고 공기만 후텁지근했다. 산재 연극의 극본을 쓸 작가가 단 한 명만 만나야 한다면 망설이지 않고 연락할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그는 약속시간보다 3시간이나 늦었다. 채소배달 트럭을 모는데 식당 주인이 거제도까지 갈 일을 시키는 바람에 다녀오는 길이라 했다. 여름날의 트럭 운전에 지친 그와 늦은 점심을 먹었다.

대기업의 조선소. 이곳에서 바다로 추락하고 도장(도료를 칠함)하다 가스에 질식해 죽기도 하는, 죽은 이들은 원청 대기업 직원이 아닌 하청업체 노동자. 이곳에서 죽은 이들이 해마다 두 자릿수가 됐지만 신문 사회면 단신으로도 잘 올라오지 않을 만큼 언론도 관심이 없던 날들이 있었다.

그 사람을 만나 산재는 누구에게라도 우연히 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가려 찾아오는, 편협하고 불평등한 사건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가 의도한 게 아니었다. 조선소 일이라면 자신감도 있고 일머리도 있어서 크게 신경 쓸 일만 생기지 않으면 안정적 생활을 할 수 있었던 하청업체의 관리자는 다치고 죽는 일이 생길 때마다 참지 못하고 사고를 쳤다. 조선소 안에서 다친 이들은 트럭 짐칸에 실려 병원으로 가고는 했다. 구급차가 오는 일은 없었다. 119에 사고를 알리는 것은 회사에 산재 사고가 일어났다는 기록을 남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현장에서 그는 사람이 죽으면 작업을 중단하고 장례를 치렀고, 용접하다 숨졌는데 경찰이 자살로 발표한 사고를 내려놓지 못하고 유족을 설득해 자살이 아닌 산재 사고였음을 재판에서 밝혀내기도 했다. 하청업체를 차릴 수도 있었을 사람이 하청 노동조합의 지부장이 되기에 이르렀다. 회사 정문 앞에 분향소를 차린 적도 있다. 말이 분향소지 초라한 천막이었다. 원청 노동조합은 천막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노회찬재단이 기획한 연극 <산재일기>에 캐스팅된 양정윤·정혜지(왼쪽부터)씨가 서울 종로구 혜화동 스튜디오에서 연기 연습을 하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낮은 목소리에 실린 예술의 힘

그는 이 말을 할 때 처음으로 목소리가 침울해졌다. 원청 노동조합이 하청노동자를 외면해온 시간을 흐름대로 설명해줬다. 이 시간의 끝에는 부딪치기만 하다 떨어져 나온 자신이 있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말하는 사람은 덤덤한데 듣는 이는 감정적 동요가 일어날 때가 많았다.

서울 광화문의 기자회견장이든 종로 골목의 해장국집이든 목소리 낮추는 걸 본 적이 없던 ‘경상도 아저씨’인 그가 연극을 만들겠다고 찾아온 작가 앞에서 차분하게 지나온 행로를 들려주는 모습은 새로웠다. 이것이 예술의 힘인가.

이철 작가는 그의 가족에 대해 물었다. 아버지의 거친 하청 노동조합 활동 뒤에는 여리고 복잡한 10대를 보낸 두 아들이 있었다. 작가가 아들의 연락처를 물으며 만나보고 싶다고 했을 때 “애들하고 친해요”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보면서는 당황했다. 노동운동으로만 만나는 이들은 아들의 연락처를 묻지 않는다. 예술은 사람의 마음을 말랑하게 한다.

서울 구로동으로 가서 손가락이 잘린 노동자들이 꾸린 자활공동체를 소개하면서는 역사로 쓰이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를 작가가 건져 올리길 바랐다. ‘노동자의 단결된 힘’ 같은 것은 무용한 고어가 됐고 디지털이 혁명하는 시대가 됐지만 노동하는 사람들은 모여야 한다고 아직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의 말이 빠지면 연극은 심심해질 것이다.

서울 구로공단 인근의 대형 병원이 손가락 접합 수술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가졌다는 텔레비전 뉴스가 있었다. 누군가 애써 찍고 인터뷰도 돼 있다. 그러나 1980년대, 90년대 금속을 깎고 플라스틱 바구니를 찍어내다가 손가락을, 손목을 잃은 노동자들은 어디에 있을까, 왜 보이지 않을까.

경기도 어느 도시에서 만난 청년들은 다치고 아픈 이야기의 뒤편, 가려졌던 풍경을 보게 해줬다. 산재 발생 이유를 위험해서, 안전하지 않아서라고 설명하는 것은 동어반복이다. 위험에는 여러 갈래가 있다. 도시의 ‘학교 밖 학교’로 모여든 청년들은 빈곤, 힘겨운 가족관계, 학력 중단 같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지만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 환경을 상수로 두고 노동한다. 쉬지 않고 배달노동을 하는데도 오토바이 렌털비가 줄어들지 않는다. 배달업체를 운영하는 사장님의 계산법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급한 마음에 교통사고도 잦다. 다리가 아파 치료받아야 하는데 빚이 되어가는 오토바이 렌털비는 자신을 돌볼 힘도 앗아간다.

‘견뎌냈다’는 자부심

가족과 친구와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면서 밥을 먹어본 이들은 그것이 사회생활에서 얼마나 큰 자산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사무보조로 입사한 회사에서 업무시간보다 밥 먹는 시간이 더 힘들다는 청년의 이야기를 알기 전까지는. “이게 다 산재 같아요.” 학교 밖 학교 청년들의 노동을 전하며 교사가 말한다.

울산에서 구로에서 경기도에서 만난 이들에 더해, 평택항에서 숨진 스물한 살 이선호의 장례를 치르던 친구들,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이 떠난 자리에서 싸움을 계속하는 선배 노동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엄마가 된 이, 중대재해처벌법이 가르는 처벌하는 산재와 처벌하지 않는 산재를 둘러싼 쟁투까지 듣고 또 들었다.

이렇게 만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인 극본이 나오고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로 했다고 노회찬재단에서 2022년 5월 초 알려왔다. 7월4~10일, 전태일기념관 2층 공연장 ‘울림터’로 극장도 정했다. 연출까지 맡은 이철 작가와 수개월 만에 마주 앉았다. 제본된 극본을 건네받았다. <산재일기>. 제목이 좋다. 소박하고 평이해 보여서 마음이 놓였다. 힘이 들어간 제목이면 부담스럽다.

“어떤 말을 골라 얼개를 만들어야 할까, 말을 살피는 과정이 길었어요.” 이철 작가는 20명 가까운 사람을 만났고, 극본에는 15명이 등장한다. “놀라운 경험을 했죠. 나왔다 흩어지는 말 중에 산재를 겪은 이들이 의미를 두고 하는 말이 들리기 시작했어요.” 작가는 그저 지나가는 말인 줄 알았던 말에서 삶이 거기 있구나 생각했다. “산재를 사회에서 다루는 방식이 있잖아요. 그처럼 사회구조를 설명하진 않아요. 상징적인 사건이 따로 있는 게 아니구나, 상황에 맞선 사람들, 맞서는 일 자체로 성취를 이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보였죠.”

구로에서 만난 자활공동체 노동자 두 사람이 보여준 ‘견뎌냈다는 자부심’은 작가의 마음에도 전해졌다. “사고 후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기 때문에, 이후의 삶이 메시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해본 적이 없 어요.”

몰랐던 사람들이 관객이 되길

김민희 조연출은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줬다. “김용균과 제가 동갑이에요. 대학에서 연출을 공부할 때 자연스럽게 산재를 주제로 삼아본 적이 많아요.” 본격적으로 시작된 공연 연습에서 모든 ‘허드렛일’을 담당할 김민희 조연출은 함께한다는 기대가 가득하다.

코로나19 유행 한가운데 연극도 중단됐고 랜선 공연이란 형식으로 관객을 만났지만 연극은 이미지가 아니라 몸이 움직이는 예술이다.

정혜지, 양정윤 두 배우는 15명의 인물로부터 길어 올린 말에 숨을 실어 관객에게 전달한다. “끊임없이 다쳤다는 뉴스가 나오지만 속상해하고 또 사라져요.” 양정윤 배우에게 산재는 그랬다. “나처럼 알지 못했던 사람, 나처럼 대략만 아는 사람, 이런 분들이 관객이 되면 좋겠어요. 관심을 두는 것, 산재를 겪고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소중한 삶에 대해서요.”

정혜지 배우는 산재가 ‘달걀로 바위 치기’처럼 느껴졌다. “조선소에서 싸우는 인물이 인상적이었어요. 왜 힘들어하지? 무엇 때문에 힘들지? 보는 사람이 돌아보고 생각해보면서 저마다 다르게 받아들이지 않을 까요?”

정혜지, 양정윤 배우가 그리는 <산재일기>는 무겁지 않게, 관객마다 다양하게 받아들이기가 권장되는 열린 기록이 되려나 보다.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노회찬 재단 × <한겨레21> 공동기획 ‘내 곁에 산재’: 일터에서 다치고 아픈 이들을 만난 이야기를 전하는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