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03.30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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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다, 한국전쟁 중 만든 근로기준법 ‘근로시간’

[노동시간 개악안의 함정②] 1953년에도 최장근로시간은 60시간…시대역행 윤석열 정부

 

윤석열 정부가 ‘주 최대 69시간 근로시간 개편안’을 발표했다. 여론의 반발로 대통령이 직접 재검토를 지시했지만, 정부는 사회에 ‘얼마나 오래 일할 것인가’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노동건강연대는 ‘노동시간 개악안’에 대해 더 건강한 노동을 위한 조건으로서의 노동시간을 논의하기 위해 긴급진단을 세 차례에 걸쳐 싣는다.[기자말]
민주노총대전지역본부가 29일 오후 대전무역회관 앞 선사유적사거리에서 주69시간노동제 폐기 촉구 캠페인을 펼쳤다.
▲  민주노총대전지역본부가 29일 오후 대전무역회관 앞 선사유적사거리에서 주69시간노동제 폐기 촉구 캠페인을 펼쳤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1953년 5월 10일은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날이다. 이 날짜를 처음 접한 이들은 그 연도를 다시 묻곤 한다. 6.25 전쟁이 끝나기 전이니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은 분명히 6.25 전쟁 중에 제정됐다(시행일은 1953년 8월 9일).

근로기준법 제정일을 갑작스럽게 언급하는 이유는 최근 정부가 발표한 근로시간 개편안을 접하고 한 가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은 처음 제정될 때 근로시간을 어떻게 규율하고 있었을까?

연장근로는 1주 12시간만 허용 

아마도 당시에는 ‘무제한적 근로’가 가능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전 국토가 폐허로 변하고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조달하느라 밤 새워 일 해도 부족한 상황이었을 테니 말이다.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하고 1일에 8시간 1주일에 48시간을 기준으로 한다. 단 당사자의 합의에 의하여 1주일에 60시간을 한도로 근로할 수 있다.”

제정 근로기준법 제42조 제1항의 내용이다. 당시에도 연장근로는 사용자와 노동자의 합의가 있을 때 1주 12시간까지만 가능했다.

최근 정부가 1주 최대 69시간 근로, 즉 1주일에 29시간 연장근로가 가능한 근로시간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밝힌 주요 이유는 현행 제도로는 일시적·간헐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에 노사가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2023년 대한민국과 1953년 대한민국을 비교하면, 언제가 일시적·간헐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이 더 많을까? 언제가 연장근로의 필요성이 더 클까? 깊게 고민하지 않아도 답은 나올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로기준법은 제정 당시부터 1주 연장근로의 상한을 12시간까지만 허용했다. 놀라운 사실이다. 전쟁의 한복판에서도 연장근로를 1주에 12시간만 허용했다니 말이다.

제정 근로기준법은 왜 연장근로를 1주 12시간만 허용했을까? 그 답은 근로기준법을 만든 입법자들이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1953년 제정 당시 국회 속기록을 찾아봤다.

근로기준법 제정안은 1953년 2월 2일에 처음으로 국회 본회의에 토의 안건으로 제출됐다. 당시 사회보건위원회 위원장 김용우 의원이 심사 보고를 했다. 김용우 의원은 그 제안 취지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단 속기록을 그대로 옮겨와 현재의 맞춤법과 문법에 맞지 않을 수 있다).
 

“분과로서는 우리가 이 근로시간을 제정하게 된 것을 우리 인류가 가지고 있는 능력 또는 생리적인 모든 기능에 있어서 하로에 8시간이라는 것이 무엇보다도 능률적으로 볼 수가 있고 단시일에 과로를 할 수 있는 것이지만 단시일에 과로를 함으로 장시일에 능률의 저하를 초래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역시 1일에 8시간, 1주일에 48시간을 기준으로 한 것 입니다. 만일 근로자와 사용자가 합의한다면 1주 일에 60시간, 즉 하로에 2시간을 더 연장할 수 있는 규정이 되어 있읍니다.”

 
그렇다. 당시 국회의원들이 ‘1일 8시간 근로, 1주 12시간 연장근로’를 법률로 정한 이유는 “과로”의 방지였다. 온 국토가 잿더미로 변하고 사회 재건을 위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지만 노동자 건강을 해치는 일만은 허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1년 과로사 노동자 5백명 넘어 
 

2018년 7월 2일, 문재인 정부의 주52시간 근무제 시행 첫 월요일이었던 이날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전자상거래 기업 위메프 본사에서 직원들이 정시 퇴근을 하고 있다.
▲  2018년 7월 2일, 문재인 정부의 주52시간 근무제 시행 첫 월요일이었던 이날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전자상거래 기업 위메프 본사에서 직원들이 정시 퇴근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 이후에 근로기준법은 70여 년 동안 수십 차례 개정됐다. 하지만 1주 12시간 연장근로 상한 규정은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불법적인 장시간 근로가 횡행하고 과로사가 만연한 현실 속에서 연장근로시간을 늘리는 것은 어떤 정부에서도 용인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리라.

실제로, 근로시간을 줄이려는 노력은 보수적인 정부에서든 진보적인 정부에서든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 노태우 정부 시기 : 1주 법정근로시간 48시간 → 44시간으로 감축
▲ 노무현 정부 시기 : 1주 법정근로시간 44시간 → 40시간으로 감축
▲ 박근혜 정부 시기 : 1주 평균 업무시간(발병 전 12주 동안) 60시간 초과시 업무상 과로 인정 기준 등 마련
▲ 문재인 정부 시기 : 1주 근로시간(연장근로시간 포함) 52시간으로 제한

업무상 질병으로 사망해 2021년에 산재보험에서 승인받은 노동자는 1252명이었는데, 이 중에서 과로사한 노동자가 509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 수치만 참고하더라도,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은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만약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이 진짜로 ‘성공’한다면, 우리 근로기준법은 무려 7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가 1953년 전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거꾸로 돌아가기 시작한 노동법의 시계가 다시 앞으로 돌아가도록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