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지금, 여기] 건강불평등 줄이는 비장의 도구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 예방의학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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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체불 일본의 16배, 최저임금 폭주 탓”, “최저임금 과속 인상 뒤 체불 임금 日 14배”.

주말에 발행된 유력 일간지들의 사설 제목이다. 최저임금 결정 시즌에 본격 돌입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최저임금 부담 때문에 괴로워하는 자영업자, 일자리가 사라진 노동자들의 하소연이 잇따를 예정이다. ‘알바 자리 잘리면 어쩌나’라는 기사를 쉽게 만날 것이다. 이런 기사와 마주치면 일단 날짜부터 확인해보자. 작년, 재작년, 아니면 10년 전 이맘때 기사일 수도 있다. 평소에도 영세자영업자, 저임금 노동자의 사정에 이렇듯 관심을 보여주면 좋으련만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라 했는데, 한계 상황에 처한 이들끼리 서로 싸우게 만드는 것이 전 국민 스포츠경기가 되어버렸다.

사실 법적으로 임금 최저선을 정하는 것만이 저임금 노동자의 유일한 보호수단은 아니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높고 단체협약의 효력 범위가 넓다면, 굳이 법제화 없이도 단체협약을 통해 임금 최저선을 높이고 불평등을 줄일 수 있다. 국제적으로 노조 가입률이 1% 높아질 때마다 최저임금 노동자 발생률이 1.5% 줄어든다는 통계도 있다.

하지만 한국은 노조 조직률이 낮을 뿐 아니라, 기업별 노조 체계라 효력 범위도 제한적이라 자율적 규율은 기대하기 어렵다. 기본급 이외에 부가급여를 통해 임금을 보전할 수도 있지만, 이는 오히려 불평등을 더 강화하기 십상이다. 구내식당에서 저렴하게 질 좋은 점심 먹기, 복지포인트로 가전제품 구매하기, 단체보험으로 의료비 지원받기, 가족 경조사의 특별 상여금, 팀 회식비로 근사한 곳에서 식사하기 등등. 이 모든 것은 저임금과 불안정한 일자리 종사자들에게 그림의 떡이다. 이런 상황에서 법적 강제력을 가진 최저임금 제도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최저선을 보장하는 유력한 수단이 될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제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는 임금을 늘린다는 것 이상의 사회적 의미가 있다. 20세기 초 여러 나라의 최저임금제 도입은 성별 임금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의 일부였고, 신자유주의가 휩쓸고 지나간 후 세계 각국에서 최저임금제가 확대된 것은 근로빈곤층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1980년대 보수당 집권기에 최저임금제를 철폐했던 영국이 1999년 이를 재도입했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무엇보다 아동빈곤을 줄이는 것이었다.

최저 소득을 보장하고 빈곤 위험을 줄이는 것의 효과는 경제 부문을 넘어선다. 무엇보다 소득계층에 따른 건강불평등 완화에 도움이 된다. 그 효과 역시 노동자 당사자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미국 50개 주의 최저임금 수준을 분석한 연구에 의하면, 연방 기준보다 주의 최저임금이 1달러 높아질 때마다 저체중아 출생이 1~2% 감소하며 후기 신생아 사망률은 4%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불평등을 주제로 강의나 토론을 하면 단골 질문이 있다. 건강불평등을 줄이는 비결이 뭐냐는 것이다. “이것만 하면 건강불평등 싹 다 해결됩니다!” 나도 비법을 내놓고 싶지만 아쉽게도 그런 건 없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줄이고 안정된 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정책들, ‘건강’이라는 이름은 붙지 않았지만 그 자체로 건강불평등 완화 정책이다. 최저임금제도는 일을 하고 있는 동안은 물론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 즉 실업급여나 (도입 예정인) 상병수당을 받아야 할 때에도 소득의 기준점이 된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그럼 영세자영업자의 부담은 어떻게 하냐고? 정권이 바뀌자마자 비어있다던 나라 곳간이 갑자기 풍족해지는 기적도 본 마당에 무슨 걱정인가. 임대료, 프랜차이즈·배달·신용카드 수수료, 원청기업의 부담 떠넘기기 같은 진정한 빌런들이 있지 않나. ‘을’과 ‘을’의 초라한 싸움판은 이제 접고, 진짜 ‘선수’들을 경기장에 데리고 나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