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슈_건설일용노조 탄압, 심상치 않다
우리는 가끔 잊는다. 자고 나면 요동치는 정치지형과 거대 경제담론에 묻히면서 ‘생존에 몸부림치는’ 현장의 이야기는 외면당한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일어났던 ‘건설일용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사건이 그렇다. 참여정부 시대에 벌어진 이 ‘노동조합 탄압’의 수위는 2004년의 상식을 따르지 않는다. 노동단체들은 ‘건설일용노조 사건은 그 자체로 우리나라 내 모든 비정규직 문제의 종합판’이라고 설명한다. 해마다 8백 명씩 죽어가는 ‘일용 노가다’들의 절규가 지금도 콘크리트 건물 속에 갇혀 있다.
‘그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금품갈취·협박범’으로 몰아세우는 이유
▲ ⓒ2004 말 |
“저런 곳엔 꼭 난간이 설치돼 있어야 하는데···, 4층마다 꼭 안전망이 설치돼 있어야 해요. 그렇다고 사람이 떨어졌을 경우 다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지만요.”
지난 2월 9일, 천안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 천안·아산 건설일용노조 노선균 부위원장은 공사 현장 곳곳을 지나칠 때마다 안전시설에 눈길을 돌렸다. 지난해 노조가 결성된 이래 그가 맡은 주된 임무이거니와, 현장 조합원들의 안전문제와 직결되는 탓이리라. 그런데 책상 노동자인 기자의 눈엔 4층마다 설치된 안전그물망이 턱없이 취약해 보이는데다, 안전망 설치 자체가 대단히 위험한 일로 보였다. 배부른 생각이었다.
“그래도 저게 생명줄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해도 사고가 크게 발생한단 말입니다. 무재해 1백 일, 2백 일 이런 것 다 거짓말이에요. 그런데도 노동자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산업안전 미비에 대한 고발을 공갈·협박이라고 몰아세우고 있쟎습니까.”
신도종합건설에서 일하는 한창일씨(42)는 재작년에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하루 벌어 하루 일하는 처지에 무슨 노동조합이냐고 생각했었죠. 현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노가다니까’하고 말고, 돈을 떼어먹혀도 ‘내 처지가 이렇지’하며 자포자기했었죠. 하지만, 노동조합이 생기면서 돈 떼먹는 일이 없어졌고, 근무환경도 엄청나게 좋아졌어요. 이제 하루 벌어 하루 일하는 처지이기에 더욱 노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는 오늘 현장에서 알게 된 형님 한 분을 노동조합에 가입시켰다.
이종문씨(47)는 화순분 건설에서 지난해 9월부터 올 1월까지 일했지만 노임 7백만 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십장’이 “본사에서 대금을 못 받아서 돈을 못 주겠다”며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20여 년간 노가다판에서 잔뼈가 굵은 동안 워낙 숱하게 겪은 일인 까닭일까? 그의 얼굴엔 어떤 분노도 억울함도 어려 있지 않다. 이런 ‘임금 체불’ 혹은 ‘착복’ 그리고 안전시설 ‘보완’을 호소하기 위해 오늘도 노동조합 사무실 문을 두드려야 하는 건설노동자들의 숫자는 전국적으로 1백30만명에 이른다.
노조전임비 지급이 금품갈취로 몰린 까닭
하지만, 이제 건설노동자들은 이런 일로 누구를 찾아야 할지 막막하다. 그들을 위해 사측과 교섭을 벌이고 현장 안전활동을 진행했던 노조 전임자들 상당수가 사법당국에 의해 구속·수감되는 제재를 받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부터 검·경은 대전을 시작으로 천안·아산에 이어 경기 서부 지역노조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시작했다. 특이한 것은 이 사건의 초동수사를 경찰 강력과에서 담당했다는 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노조 전임자들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갈·협박) 구속한 까닭이다. 경찰은 건설노조가 건설회사로부터 노조 전임비를 받는 과정에서 산업안전 미비 등을 빌미로 사측을 고발하겠다는 공갈과 협박을 통해 전임비를 갈취했다고 보고 있다. 즉, 단체협약을 통해 사측이 지불하는 노조 전임비가 협박에 의해 갈취된 금품으로 뒤바뀐 것이다.
▲ ⓒ2004 말 |
이 같은 이유로 구속·수배된 이들이 현재 전국적으로 20여 명에 이르고 있고, 경기 서부지역의 수배자 11명은 지난해 12월 10일부터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부당한 수사 중단과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며 70여 일째 농성을 벌이고 있다.
건설현장에선 산업안전과 관련, 늘 크고 작은 잡음들이 끊이질 않는다. 산업안전 미비가 곧 현장 노동자들의 목숨을 빼앗는 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방노동사무소에선 노조 전임자들을 ‘명예산업안전감독관’으로 위촉하여 현장안전감독을 독려하고 있기도 하다. 이들은 과연 경찰의 주장대로 사측을 공갈·협박했던 것일까?
“단체교섭 과정에서 협박·강요는 전혀 없었다. 당국에서 노조에 전임비를 지급하는 회사법인 통장으로 바로 계좌추적이 들어갔기 때문에 조사를 받았을 뿐이다. 오히려 건설노조와는 업무협조 관계가 컸다. 복리후생, 안전 부분, 현장운영 문제에 있어서 노조의 역할이 크다. 전임비의 경우도 몇백, 몇천억짜리 공사규모에서 월 50만원 정도 지출되는 건데 그게 뭐가 문제가 되겠나. 우리는 건설노조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
천안·아산지역의 한 건설업체 현장관리소 직원들의 말이다. 이들은 사안의 민감함 때문에 실명이나 업체명을 밝히진 않았지만 “정당한 단체협약을 체결해 전임비를 지급했을 뿐, 일체의 협박·강요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검·경의 수사와는 전혀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실제로 이와 같은 현장 직원들의 진술이 줄을 잇고 있다. 사법당국에선 건설일용노조 활동가들이 금품을 갈취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정작 현장관리소 직원들은 이를 부인하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 ⓒ2004 말 |
현장직원들, “노조 협박 없었다”
결국 최근 불안정노동철폐연대 등 노동·인권단체들은 이 사건의 ‘진상조사단’을 꾸려 대전, 천안, 안산지역 등에 대해 현지조사를 착수하기에 이른다. 조사 결과는 놀라웠다. 거의 모든 지역의 현장 직원들이 노조에 의한 협박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경찰로부터 협박사실을 진술하라는 강요를 받았다고 밝힌 것이다. 특히 대전지역 모 업체의 경우 재판과정에서 “경찰이 질문뿐 아니라 답변 내용도 미리 준비해 왔는가”라는 질문에 “어느 정도 그렇다”고 진술하기까지 했다. 검·경의 수사가 미리 기획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이는 부분이다.
더욱이 쟁점이 되고 있는 산업안전 문제와 관련해 건설노조측은 “검찰은 오히려 안전시설 문제를 고소·고발한 이들에게 무고죄로 잡아넣기 전에 고소를 취하하라”는 말까지 해오고 있는 실정이었다며 이를 미끼로 노조가 협박·강요를 저질렀다는 주장은 앞뒤가 맞는 않는다는 반응이다. 윤애림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국장은 이 수사가 “노조의 산업안전 활동을 무력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노동자들이 산업안전시설 문제와 관련해 시정을 요구하거나 고소·고발한다는 건 실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사법당국은 산업안전 문제가 100% 완전히 지켜질 수는 없다면서 노조가 이를 고발하면 사용자를 무혐의로 처리하고 있다. 반면 이를 고발한 쪽을 협박·강요라고 몰아세우는 것이다. 1년에 8백 명씩 건설노동자가 죽어나가는 현실 속에서 행정단속하는 곳은 눈을 감고 있고 검찰은 건설사측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그렇다면 건설노조에 대한 당국의 수사가 시작된 까닭은 무엇일까. 경찰은 피해자들의 고소·고발에 의한 자연스런 수사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고소·고발이 있었는지는 밝히지 못하고 있다. 건설노조측의 생각도 다르다. 건설연맹 비상대책위 김종태씨는 “행정수도 이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대전·충청지역의 건설붐이 일고 있는 가운데 대전을 시작으로 건설노조에 대한 탄압이 시작된 점이 심상치 않다”며 “그 규모가 수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마당에 건설사들로선 원활한 공사진행을 위해 사전정지작업을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건설연맹측이 입수한 건설업체측의 자료들은 이런 노조 측의 주장을 일정 부분 뒷받침하고 있다. 업체들은 2, 3년 전부터 건설일용노조의 현황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했다. 지난 2002년 11월 27일엔 ‘전국 각 건설회사 인사노무담당자’들이 노동부장관에게 보낸 진정서에선 노조의 전임비 요구를 중지해달라고 건의했다. 또 2003년 8월, ‘건설업인사관리자협의회’ 노사대책협의위원들은 조합원이 없는 경우 노조전임비 지급중단 및 부당하게 지급한 노조전임비 반환 공동소송을 하기로 건의한 바 있다.
검·경의 기획수사 의혹이 불거지고, 현장직원들의 진술이 엇갈리는 등 수사에 어려움을 겪자 사법당국의 초점은 건설노조가 원청업체(종합건설사)와 맺은 ‘단체협약이 무효’라는 방향으로 옮아가고 있다.
검찰은 건설일용노동자와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있지 않은 건설 원청업체 및 현장관리소장을 상대로 한 단체교섭은 법적 근거가 없고 따라서 ‘협박이 성립’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노조측은 건설현장의 특수성을 감안해 볼 때 하도급업체와 근로계약을 체결했을지라도 사용자 책임을 인정하고 있는 법 규정에 비추어 이를 반박하고 있다. 더욱이 원청업체와 단체교섭을 맺지 못할 경우 노조 전임자의 현장출입이 하도급업체에 의해 통제되는 등 노동조합 활동이 ‘불가능’하다는게 노조측의 주장이다.
▲ ⓒ2004 말 |
건설노조 유죄판결은 비정규직들에게 핵폭탄
노동·인권단체들은 건설노조 건을 다루는 사법당국이 원청업체와의 단체교섭을 인정하지 않고 건설노조에게 유죄판결을 내릴 경우 파장이 엄청나리라고 보고 있다. 윤애림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국장은 “법원판결이 유죄로 나올 경우 비정규직들에겐 엄청난 핵폭탄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원청업체들이 단협에 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현재 5백여 개 정도 체결된 단협을 파기하겠다고 할 것이다. 노동조합 조직활동가들의 현장출입도 무단침입 고발 등 사법적·물리적으로 봉쇄하고 나설 것이다. 미력하나마 노조에 의해 보호 받아 온 건설노동자들의 임금체불, 산재처리, 복리후생 등의 권리가 다시 사각지대로 갈 수 밖에 없다. 정부가 최근 비정규직 보호대책을 세우겠다고 중점적으로 선전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가장 오래된 비정규직인 건설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해선 눈을 감고 있다.”
윤애림 정책국장은 “더욱 우려되는 건 건설노조의 사례가 각종 파견·사내하청업체들에게 급속히 확산되리라는 점”이라며 “이미 30%가 사내하청인 현대자동차처럼 전국적으로 간접고용된 수십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개탄했다.
그리고 이 기사를 작성하고 있는 오늘 2월 14일 새벽 5시,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또 한 명의 사내하청 노동자 박일수씨(50)가 분신·자살했다. 그는 “이 암울한 하청 비정규직 문제를 개선해 줄 곳은 아무 곳도 없다”며 유서를 남겼다. 이 유서는 1백30만 건설일용노동자들에게도 강요되고 있다. 건설노동자들은 오늘도 ‘강요된 유서’를 콘크리트 건물 속에 묻어둔 채 어두운 작업장으로 향하고 있다.
월간 말 2004. 3.월호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