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민 23호

의약품과 민중 23호-2004년 4월 12일(월)

미-호주FTA가 호주의약품급여제도(PBS)를 위협하다!


2004년 2월 8일, 호주무역장관 마크바일과 미무역대표부 쥘릭은 미-호주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 초안에 합의했다. 합의된 초안은 최소한의 원칙을 담고 있고, 양국간의 비공식 서신 교환작업을 통해 구체화를 꾀하고 있다. 합의된 초안과 비공식 서신에는 무역협정의 협상대상이 되어서는 안되는 사회적 평등 정책과 생명에 관한 보건정책이 포함되어 있다.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FTA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세계무역기구(WTO)와 미국 국내법보다 더 강력한 지적재산권 보호를 요구하면서 의약품접근권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미 제약산업에 있어서 무역장벽이라고 인식되는 것을 붕괴시키기 위한 다양한 요구를 하고 있다. 브라질의 경우는 제네릭(카피)의약품 사용 활성화를 제한하는 방식을 통해 ‘에이즈무상공급프로그램’의 붕괴를, 호주는 의약품 등재, 가격결정과정에 있어서 미제약사의 권리를 강화하는 방식을 통해 ‘의약품급여제도(PBS)’의 원리를 파괴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호주의약품급여제도(PBS)

호주의 의약품 공급과 조제는 의약품급여제도(Pharmaceutical Benefit Scheme, PBS)에 의해 시행 된다. 의약품급여제도(PBS)는 1950년에 도입되었으며, 의약품의 안전한 공급과 함께 연방 정부와 환자에게 가장 낮은 가격으로 공급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2001년 현재 PBS에 의해 593성분, 1,469의 제형과 2,351개의 다양한 브랜드 제품을 공급하고 있고, 이는 처방의약품의 90%이상을 차지한다. 지역사회의 거의 모든 구성원들이 의약품급여제도(PBS)의 지원을 받고 있고, 일반환자(general patient)와 특별환자(concession patient)로 구분이 된다. 2003년 현재 매 처방마다 일반환자는 최고 23.1달러(약 2만원), 특별환자는 3.7달러(약 3,200원)를 지불한다. 게다가 만성질환자들이 지속적으로 의약품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안전망제도(safety net arrangement)를 실시하여 일반환자 가족이 708.4달러(약 613,000원)를 초과한 후부터는 매 처방마다 3.7달러(약 3.200원)를 지불하고, 특별환자나 연금수령자 가족이 192.4달러(약 166,000원)를 초과한 후부터는 무상공급을 받게 된다. 즉 글리벡같이 비싼 약이라도 의약품급여제도(PBS)하에서는 일반환자는 2만원, 특별환자는 3천원이면 복용할 수 있고, 연간비용 또한 안전망제도에 의해 엄격히 통제된다.

호주정부가 의약품급여제도(PBS)를 통해 누구나 쉽게 의약품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본인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핵심적인 요소는 의약품 등재와 가격결정방식에 있다. 시판허가 된 의약품은 호주 의약품급여자문위원회(PBAC)에서 상환 여부를 결정한 후에 의약품가격결정기구(PBPA)에서 상환가격을 결정한다. 독립적 전문가들로 구성된 의약품급여자문위원회(PBAC)는 제약회사에 비용효과성에 대한 자료를 요구하고, 의약품의 효과가 상당히 개선되었거나 기존의약품보다 부작용이 월등히 감소하지 않았을 경우, 목록에 등재시키지 않았다. 1997년에 새로운 등재신청의 40%를 거절했고, 1998년에는 59%를 거절한바 있다. 등재가 되면, 의약품가격결정기구(PBPA)는 경쟁상품의 가격, 제조가, 처방량, 해외시장에서의 가격 외에 새로운 투자, 생산과 연구개발 등 그 회사가 호주 내에서 수행할 수 있는 활동정도까지를 감안하여 상환가격을 설정하고 정부에 권고한다. 제너릭 의약품도 신약과 동일한 약가산정 방식에 의해 규제되나 오리지널 의약품에 비해 5% 저렴한 범위 내에서 가격이 결정된다.

따라서 처방의약품의 90%를 구매하여 공급하는 독점적인 능력과 비용효과성 평가를 통한 의약품등재, 가격결정방식은 호주의약품 가격을 미국보다 최소 160% 싸게, 캐나다와 스웨덴보다 50%싸게 만들었다. 이러한 의약품급여제도(PBS)는 제약회사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제약자본의 압력과 의약품 비용증가

의약품을 싸게 공급하기 위한 호주의약품급여제도(PBS)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호주의약품비용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것의 핵심적인 이유는 더 새롭고 더 비싼 의약품과 의약품급여제도(PBS)에 등재되지 못한 의약품 처방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제약회사의 압력과 의약품급여제도(PBS)의 변화가 있었다. 제약회사는 신약연구개발비의 두배가 넘는 마케팅비를 들이면서 자사의 비싼 의약품을 처방하도록 유도하고, 의약품급여자문위원회(PBAC)의 등재거부결정에 관여한 위원들을 고소하고, 제약산업 로비스트로 교체하도록 압력을 가하여 결국 교체시켰다. 그리고 연방정부가 전자처방패드에 의약품광고를 삽입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의사들은 전자처방패드에 광고된 의약품을 더 많이 처방하게 되었다. 또한 호주제약회사연합은 연방정부에 처방의약품을 소비자에게 직접광고 할 수 있도록 허용하라고 로비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들은 ‘제약회사가 원하는’ 비싼 의약품을 의약품급여제도(PBS)에 등재시키고 의사들이 처방하도록 만들었다. 따라서 의약품 비용과 환자의 본인부담이 증가했다. 호주비평가들은 이러한 변화의 최종결과가 가난한 시민들이 더 이상 필수의약품을 사용할 수 없는 미국 방식의 의약품 시스템이 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미제약협회의 요구만을 반영한 미-호주FTA

미제약협회의 요구는 더욱 분명하고 강력하다. 미제약협회는 호주의약품급여제도(PBS)가 지적재산권을 파괴하고, ‘혁신’을 평가절하하고, 신약개발에 대한 투자를 단념시킨다고 주장하면서 미무역법을 통해 호주를 ‘감시대상국’으로 지정할 것을 요구했다(2003). 구체적으로 1)등재방식, 의약품급여자문위원회(PBAC)의 변화, 2)가격제도, 의약품가격기구(PBPA)의 변화 3)비용효과성 분석의 수정을 요구해왔다. 즉, 특허의약품일지라도 제약회사 맘대로 가격을 높게 책정할 수 없고, 기존의약품보다 효과가 뛰어나지 않으면 등재되지 않기 때문에 호주의약품급여제도(PBS)가 신약의 시장진입을 차단하고, 지적재산 보호를 파괴하며, 신약 개발에 대한 투자를 억제시킨다는 것이다. 미제약협회는 이러한 요구를 미호주FTA에 포함시키기 위해 호주의약품급여제도(PBS)를 협상대상으로 삼아야한다고 주장했다. 호주 보건장관 토니 애보트는 호주의약품급여제도(PBS)는 무역이슈가 아니고, 협상의 한부분조차 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2003.11) 그러나, 호주 하워드(Howard)정부는 의약품 비용에 대한 정부의 부담을 줄이는 대신 환자의 부담을 늘리기를 바라기 때문에 호주의약품급여제도(PBS)를 미-호주FTA 협상대상에 포함시켰다. 협정문 초안에는 ‘의약품'(ANNEX 2-C)조항이 있고, 비공식 서신을 통해 의약품급여제도(PBS)에 대한 합의를 확정해나가고 있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1)의약품급여자문위원회(PBAC)가 미제약사의 의약품을 등재시키지 않도록 결정할 경우 미제약사가 독립적인 재조사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한다.
2)미국과 호주 간의 ‘의약품워킹그룹’을 설립한다.
3)온라인 의약품 정보 유포에 관한 규정을 포함한다. 이는 현재 호주에서는 불법인 ‘소비자에게 직접 광고’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이다.

이에 대해 ‘호주소비자연합’과 ‘의사개혁사회’는 의약품급여제도(PBS)에 제안된 변화는 거의 확실히 의약품비용과 환자부담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미호주FTA는 호주에서 의약품 등재에 관한 미제약사의 권한을 강화시키고, 미제약사의 비싼 의약품소비를 촉진시키며, 의약품워킹그룹을 통해 미제약사의 이익을 지속적으로 요구할 수 있도록 한다. 필연적으로 미제약사는 높은 가격으로 자사의 의약품을 등재시킬 것이고, 평등한 의약품 접근권은 파괴될 것이다. 게다가 의약품에 관한 Annex 2-C조항이 아닐지라도, 미호주FTA17조(지적재산권)조항은 비용효과적인 제네릭 의약품의 도입을 지연시키도록 호주특허법의 변화를 요구한다. 미국은 스스로 ‘미호주FTA협상은 국제적으로 의약품가격을 상승시키기 위한 시작이다’라고 말한다. 미호주FTA를 요약하자면, 호주 공중보건연합 의장 Peter Sainsbury의 말을 인용하는 것이 가장 적합할 것 같다. ‘그것은 우리의 건강이 아닌 제약사의 이익을 더욱 증가시킬 것이다. 우리는 호주의 아프고 늙고 가난한 사람에게서 미국의 제약사, 미국의 CEO, 미국의 주주들에게 돈을 전달해야할 것이다. 호주의 가난한 사람들은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의약품을 살 수 없어 못 먹게 될 것이다'(2003년.11월)

생명에 관한 보건정책,제도는 무역협상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미국은 FTA와 미무역법 슈퍼301조, 스페셜301조를 통해 각국의 의약품정책, 의료제도을 미국식으로 바꿀 것을 요구한다. 혹은 미제약자본과 미보험자본이 각국의 의료시장에서 제한없이 돈을 벌 수 있도록 요구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미국은 미무역법 슈퍼301조에 따라 발표하는 무역장벽보고서를 통해 의약품가격제도, 의약품정보 보호, 의약품의 시판승인 시에 특허를 보호할 것, 임상시험의 간소화 등을 요구해왔다. 이것의 핵심은 미 제약회사의 의약품의 특허보호와 높은 가격 인정을 위한 것이다. 글리벡과 이레사의 약값이 비싼 이유도 미국이 요구한 ‘혁신적 신약의 가격결정제도’ 때문이다. 거대 다국적제약사들이 어마어마한 돈을 버는 대신 우리에게 남는 것은 약을 못 먹고 죽어가야 하는 환자의 피눈물이다. 생명에 관한 보건정책과 제도를 무역협상대상에 포함시킨다는 것은 환자의 생명권을 제약자본에게 넘겨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