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2003년 7월10일

자살을 선택한 산재노동자

[앵커멘트]
최근들어 울산에서는 산재와 관련된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과연 무엇때문에 이들이 목숨까지 끊어야 했는지 황보연 기자가 중점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도저히 아파 참기가 힘듭니다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해 어쩔 수 없이 이 길을 택합니다 ”

울산에 사는 44살 이종만씨는 이 유서를 남기고 농약을 마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지난 1월 회사일을 하다 허리를 다친 이씨는 산재신청을 하려 했지만 회사가 이를 인정하지 않아 신청을 못하게 됐고 결국 자비로 치료를 받던 상태였습니다.

유족들은 이씨가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생활고에 시달리다 자살을 선택했다며 울분을 터뜨립니다.

[인터뷰:유족 문모씨] “이용만 당한거예요.

아픈 몸으로 일을 끝내려고 최선을 다했는데 사장은 우리 회사에서 그런게 아니다 산재가 안된다”

지난 3일에 아침에는 울산 염포동 54살 김모씨가 자기집에서 목을 매 숨졌습니다.

김씨는 지난 2월 작업장에서 무릎을 다쳐 계속 치료를 받아왔지만 정작 산재 신청 서류는 죽기 이틀전에야 접수시켰습니다.

동료들은 회사가 산재신청 절차를 지연시켜 마음 고생이 심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터뷰:회사 노조 관계자] “산재신청을 한달안에 하는 것을 만들려고…지금도 저희는 두세달 지연되는 게 많이 있거든요.

그런 것을 노동조합이 문제제기 하는데….”

지난해 연말에는 이미 산재를 인정받은 울산의 한 노동자가 자살을 했습니다.

다친 부위는 고쳤을지 몰라도 산재로 인한 마음의 병을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로 절박한 사정은 모두 산재와 관련이 깊습니다.

이 때문에 산재관련 제도나 정책이 크게 잘못된 게 아니냐는 문제의식이 강하게 일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재해를 입은 당사자가 산재임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

몸도 아프고 회사보다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노동자가 산재를 입증하기는 여러모로 쉽지 않은 게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뷰:현미향,산재추방운동연합 사무국장] “노동자가 산재입증하는 현 재도를 철폐하고 사업주가 산재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도록 해야하며 까다로운 절차도 간소화해야 합니다”

산재신청과 판정이 크게 지연되는 것도 문제입니다.

회사는 회사대로 재해 인정을 미루고 산재를 판정하는 근로복지공단은 규정된 7일을 넘겨 판정하기가 다반사.

이렇게 고무줄처럼 늘어난 기간은 산재대상자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인터뷰:이종철,근로복지공단 보상부장] “일반적인 사고성 재해는 처리기한이 7일 이내지만 직업병이나 특별한 사고여서 조사가 필요한 경우에 그 기간은 제외됩니다”

산재를 인정받았다해도 문제는 남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병은 치료됐지만 이로 인한 정신적 공황은 거의 치료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산재를 입고 이를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고난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는 노동자들 잘못된 제도와 관행은 산재를 입은 노동자들을 결국 죽음으로까지 내몰고 있습니다.

YTN 황보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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