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2003년 7월13일

노조탄압 7년, 180명 노조원이 19명 된 사연

서울 은평구 청구성심병원(이사장 김학중) 노동자 중 10명이 심한 스트레스를 겪은 뒤 발생하는 적응장애 진단을 받고 이중 9명이 산재 인정 신청을 냈다. 이들이 스트레스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7년 간이나 지속된 사측의 노동조합 탄압이다

노동조합에 대한 악선전

이명 청구성심노조 교섭위원은 “2000년 7월 입사 당시, 중간 관리자로부터 병원이 적자인데 이는 노동조합 때문이라며 조합에 가입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신입사원 수련회와 입사 후 부서장 주관의 1주일 훈련기간부터 집중적으로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는 것.

노조에 따르면 각 부서 책임자가 직원들에게 “모든 일에 모든 것을 부정으로 일삼는 노조, 밖의 힘에만 의지하는 노조를 믿고 여러분의 직장생활을 걸 것입니까?”라는 글을 읽어 주며 조합 탈퇴를 종용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집단 따돌림과 감시

수간호사 중 유일한 조합원인 임우숙씨는 수간호사 회의 때마다 따돌림을 당한다고 호소했다. “조합원들의 병동 배치 등 중요한 결정은 나 없이 소집된 비공식 회의에서 한다”며 “수간호사 고유의 행정업무 외에 다른 병동에서는 평 간호사가 하는 임상 차트 업무까지 배정 받았다”고 말했다.

임씨는 또 “작년 6월 남편과 함께 우연히 어느 음식점에 들어갔다가 간호부 회식 장면을 목격했다”며, “조합원들에게는 회식 사실을 알리지도 않는 등 왕따 시키고 있다”고 어이없어 했다.

한편 임씨는 “98년부터 CCTV를 조합 사무실 앞에 설치해 사무실 출입자들을 체크해 왔다”고 소개하고 이에 항의하자 카메라 방향을 복도 쪽으로 돌려놓기만 한 채 여전히 감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합원 김모씨는 “환자 치료 중에도 동료 보조원이 커튼 뒤에서 수시로 감시하고 있다”며 “2002년 8월에는 물을 마시다가 미처 컵을 치우지 못하고 환자를 치료했는데, 5분만에 다른 층 사무실의 진료지원 부장이 ‘왜 물 마신 컵을 지저분하게 치우지 않고 책상 위에 올려놓나’며 전화했다”고 당시의 섬뜩함을 전했다.

이런 탄압 결과, 한때 180여명에 이르렀던 조합원이 19명으로 줄어들었고, 지난 3년 여 사이 노조 신규 가입자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 노조의 설명이다.

폭언· 폭행과 업무 비협조

또 노조에 의하면, 99년에는 야간 근무자에게 인사하러 온 한 조합원을 관리자 4명이 둘러싸고 “너 여기 뭐 훔치러 왔지”, “이 병신새끼,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등의 폭언을 하며 얼굴을 때리고 멱살을 잡아 내동댕이쳤다는 것이다. 이에 겁에 질린 조합원이 112에 신고했으나, 경찰 조사 과정에서 쌍방과실로 처리되었다. 그런가 하면 아침 친절조회 시 관리자가 조합원에게 귓속말로 “개XX 죽인다”, “XX놈아 까불면 죽인다”며 아무 이유 없이 모욕감을 주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명 노조 교섭위원은 “조합에 가입하기 전에는 친절했던 관리자들이, 이제는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 않는다”며 “같이 근무하는 비조합원에게 환자 투약 상황 등 업무상 중요한 질문을 해도 마치 없는 사람 취급하듯 대답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에 따른 업무 지연을 보고 관리자들은 경위서를 요구해, 해고 요건을 만들려 했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서울 ㅇ병원 서모 간호사는 “우리병원 노조도 탄압을 받지만 청구성심병원처럼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며 “노동조합에 대한 거부감을 업무로 연결시키다가 사고가 발생하면 그 피해가 환자들과 병원에 고스란히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결책은?

노조원들은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산재 인정 신청이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노무법인 참터의 김태영 노무사는 “90년대 말부터 부서 동료 또는 직장 상사로부터 받은 스트레스에 의해 생긴 적응장애에 대해 산재로 인정되기 시작했다”며 “이번 사건은 개인적 이유가 아니라 노조를 탄압할 목적으로 폭언·폭행과 집단 따돌림이 일상적으로 발생했으므로 산재 인정 가능성이 높다”고 희망적인 전망을 피력했다.

하지만 산재 인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정상은 보건의료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은 “산재 인정도 중요하지만 요양 후에 조합원들이 노조 탄압 없는 병원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사태를 이 지경까지 몰고 간 이사장의 구속과 처벌, 사태를 방치해 온 노동부 책임자 문책 등 근본적인 원인 제거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청구성심노조 이선우 지부장 역시 “탄압이 있을 때마다 노조의 법적 대응으로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받아 왔지만, 벌금 정도로는 사측의 태도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며 산재인정과 더불어 경영진 교체 등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노조측이 밝힌 탄압 사례에 대해, 청구성심병원 측은 “사실과 다르다”며 “아직 병원의 공식 입장은 정해지지 않았고, 추후 보건복지공단으로 제출할 반박보고서에 실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강성준 기자 (humanrights@sarangbang.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