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시사쟈키 칼럼 – (하종강) 정신질환을 만든 병원 이야기
청구성심병원에 근무하는 직원들 중에서 10 사람이 수년간에 걸친 병원의 노동조합 탄압에 시달리다가 정신질환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모두 병원에서 간호사, 임상병리사, 물리치료사로 근무하는 보건의료인들이고 그 중에 9 명이 여성입니다.
이들을 진찰한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조합원들이 우울이나 불안 반응을 보이는 등 적응장애를 보이고 있다”고 판정하고 “상당 기간 유해한 환경을 벗어나 전문적 치료를 받아야 한다. 정신질환 증세를 보인 조합원들에게 가장 우려되는 점은 자살”이라고 사태의 심각성을 경고했습니다.
적응장애란 심한 스트레스로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울 때 붙이는 병명입니다. 청소년이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해 자살하거나, 매 맞는 아내가 남편만 보면 무서워하는 경우가 바로 적응장애입니다.
청구성심병원은 오래 전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노동조합 탄압행위를 계속해왔습니다. 노동조합 임시총회 행사장에 똥물을 뿌리거나, 식칼을 휘두른 사건으로 널리 알려진 적도 있습니다. 조합원들은 심한 욕설과 폭력에 일상적으로 시달렸고, 승진에서 차별 받았으며, 업무량이 과하게 주어졌고, 회식에도 끼워주지 않았고, 인사를 해도 받지 않았고, 부서 내에서는 집단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그러한 일을 겪는 동안 조합원 숫자는 180명에서 19명으로 줄었습니다. 정신질환 판정을 받은 노동자가 전체 조합원의 절반인 셈입니다.
치료를 위해 현재 백병원에 입원 중인 김명희 부지부장은 기자회견장에서 “청구성심병원에서 노동조합원들은 인간이 아니라 짐승입니다. 믿지 못하겠지만 사실입니다. 병원 얘기만 나오면 가슴이 뛰고, 몸이 떨리고, 하루에도 몇번씩 쓰러집니다.”라고 터져 나오는 울음으로 말을 잇지 못하면서도 “정년퇴직 할 때까지 환자를 위해 일하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사람들을 오래 전부터 만나왔으므로 대부분 알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얼마나 착한 사람들인지, 자기만의 행복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는 사람들인지,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는 사람들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조합원들이 병원의 탄압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지금이라도 청구성심병원에서 퇴사하고 다른 병원에 취업하거나, 노동조합에서 탈퇴하면 그뿐입니다. 그런데 왜 노동조합을 포기하지 않고 그 많은 어려움들을 견디어내고 있는 것일까요? 이 조합원들이 만일 자신과 자기 가족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이었다면, 일찍이 병원을 그만두거나 노동조합에서 탈퇴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주변에 죄 없이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는, 그들의 몫을 누군가 부당하게 빼앗아 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행복을 되찾는 일은 그 행복을 빼앗아간 부당한 사람들과 맞서는 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때로 탄압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노동조합은 부당한 자본의 횡포에 맞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는 훌륭한 도구입니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신성한 기본권으로 존중하고 있는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남의 몫까지 빼앗아 부자가 된 사람들은 노동조합을 극도로 혐오할 수밖에 없습니다.
청구성심병원 관계자는 “비조합원들이 더 많은데 노조가 주장한대로 차별 대우, 인권 침해 등 탄압을 했다면 동정이나 불합리한 측면 때문에 조합원들이 오히려 늘었을 것”이라며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현 정부가 노무현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노사 어느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행정”을 펴는 것이 사실이라면, 불법파업을 이유로 노동자들을 처벌하는 것만 열심히 할 것이 아니라, 노동자 권리에 대한 인식의 천박함으로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사업주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처벌도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과거와 달리 진실로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정부라고 사람들이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의도 SBS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시사자키 칼럼 하종강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