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노동자의 정신건강을 해쳤는가
백도명/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노동건강연대 대표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정신병은 금기의 대상이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정신질환을 앓는다는 것은 단순히 신체기능을 상실한다는 의미를 넘어 자아정체성과 존재가치의 상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정신질환을 소속 조합원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앓고 있는 사업장이 있다. 이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단적으로 정신질환에 대한 산업재해보상을 신청하였다. 더 이상 정신질환이라고 해서 감추기만 하거나 개인적으로 고통을 참아내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생각에서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집단적 정신질환이 발생한 사업장이 사람의 건강을 돌보는 병원이라는 점이다.
서울 은평구 주민의 주 의료기관인 청구성심병원 사쪽은 노조가 결성된 지난 1998년 이후 소속 조합원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노조에 가입하는 경우에는 보직변경과 왕따는 물론이고 똥물투척, 식칼위협 같은 물리적 폭력까지 휘두르면서 노조활동을 방해해왔다. 물론 이러한 사업장이 우리 사회에 하나 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청구성심병원에 사태가 언론에 보도되고 정부에서도 개입한 적도 있다. 그러나 수년간에 걸쳐 전혀 노사간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청구성심병원의 경우는 노동조합문제를 다루는 우리 사회의 수준을 엿볼 수 있는 사례라고 할 것이다. 이들의 문제는 단순히 인격적 모독을 통한 노조활동에 대한 탄압에 그치는 정도가 아니다. 노조탄압은 해당 노조원들에 대한 신체적, 정신적 안녕을 저해해 실제 사회적 기능에 장애가 초래될 정도로 심각한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50%가 넘는 청구성심병원 노조원들에게 발생한 정신질환의 원인이 노조활동, 즉 업무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은 다음의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 진단이 주로 ‘적응장애’로서 환경적인 요인이 작용하는 질환이라는 점, 그 질병의 경과가 그 동안의 노조탄압에 따른 진행과 부합한다는 점, 그리고 일반인에게서는 나타나기 어려운 높은 확률로 다수에게서 집단적으로 발생하였다는 점이 그것이다. 청구성심병원은 우리 사회에서 노조활동을 하는 것이 경우에 따라서는 정신건강에 얼마나 유해한 핍박을 초래하는가에 대하여 주목할 만한 사례가 되고 있다.
지난 19세기 말을 전후로 하여 서구에서 도입되기 시작한 산업재해보상제도는 그 동안 사고성 재해 이외에 여러 질병으로 확대되었고, 이제 웬만한 나라에서는 정신질환 또한 그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1998년 산재요양 과정에서 자살한 이상관씨 사건을 계기로 산재의 범위를 정신질환까지 확대시키자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이 사건 이후로 일부 직장 내에서의 왕따 등으로 인한 정신질환이 보상되는 사례가 있었지만, 개별적인 대인관계가 아니라 집단적인 노사관계에서 비롯되는 직업성 정신질환에 대한 문제제기는 청구성심병원의 사례가 처음이다.
직업병은 불필요한 질병이다. 우리 사회의 건전한 생리현상이 아니라 무책임과 과욕이 빚어내는 고름종기라 할 것이다. 늦었지만 이러한 종기가 터져 나오고 있는 이 시점에라도 정상적인 노사관계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여 발생하게 된 직업병으로서의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여 전향적인 방향에서 직업병으로 인한 보상을 인정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다. 우선 잘못된 점을 인정하여야 그에 따른 조사를 통해 그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대책수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청구성심병원의 사례는 개별적으로 발생한 단순한 정신적 스트레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횡행하고 있는 왜곡된 집단적 노사관계로 빚어진 문제이다. 따라서 정부가 이 사례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앞으로 우리 사회가 노사관계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잣대가 된다고 할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다음 주에 예정된 청구성심병원에 대한 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 진행과정을 우리는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