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2003년 9월4일

[미국 사례를 통해 본 근골격계 질환 대책]

(워싱턴.디트로이트=연합뉴스) 김희선기자 = 최근 근골격계 질환 발생이 급증하고 정부가 근골격계 부담 작업에 대한 사업주의 예방의무를 법제화하면서 근골격계질환이 국내 노사문제의 쟁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일부 대규모 사업장에서는 근로자들이 근골격계 질환의 산업재해 인정을 집단적으로 신청하면서 산재인정에 압박을 가하고 있으며 단체협상에서도 노동계가 근골격계 질환문제를 들고 나오면서 요구수위를 높이고 있다.

사측 역시 근골격계 질환의 예방에 힘쓰기 보다는 이 질환의 산재인정 및 관리상 문제를 주로 부각시키면서 관련기관에 엄격한 산재 인정 및 관리 기준 마련을 요구, 이 문제가 노사간 갈등을 격화시키는 요인이 됐다.

산업안전보건의 선진국으로 평가받고 있는 미국에서는 이와 대조적으로 노사간협력을 통해 이 질환 예방을 위해 노력을 기울인 결과 근골격계 질환 발생을 성공적으로 감소시키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 81년부터 근골격계 질환이 급증하기 시작하면서 안전보건 분야의 주요 이슈로 등장했으며 여전히 근골격계 질환이 전체 직업병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여년간 이를 감소시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인 결과 매년 20%가량 증가했던 근골격계 질환은 지난 94년 33만2천건을 정점으로 감소세를 지속하고 있다.

미국이 이처럼 근골격계 질환 발생을 감소시킬 수 있었던 것은 산재인정, 치료및 보상 등 사후관리보다 작업장의 유해요인 조사와 개선, 교육 및 훈련 등 사전 예방에 중점을 둔 결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노동계는 근골격계 질환의 산재인정과 이에 대한 보상을 끌어내는데 주력하고 재계는 이 질환의 산재인정으로 인한 기업부담을 줄이는데에 주력하고 있는 국내 현실과 대조되는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예방의무가 법제화되지 않고 노사정 협력을 바탕으로 자율적으로실시되면서 사업장간 확산되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자발적 질환 예방에 중점 = 미 노동부 산하 산업안전보건청은 90년대 이후 근골격계 질환을 예방을 위한 기본적인 지침을 마련하면서 개별 사업장이 이를 토대로자발적으로 예방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행토록 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청은 이의 일환으로 90년 시범적으로 포드사, 자동차산업 노동조합등과 협약을 체결하고 근골격계 질환 예방 프로그램 정착을 위해 노사정이 공동 노력한 결과 포드사의 근골격계 질환 유발 위험을 96% 줄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같은해 GM사는 포드사 사례를 바탕으로 노조와의 협약을 통해 예방 프로그램을마련, 전세계 사업장에 걸쳐 이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으며 현재 자동차 업종의 모범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GM의 인간공학연구소 존밀 박사는 “GM의 근골격계 질환 발생의 예방 프로그램은타 자동차 업체의 벤치마킹 대상일 뿐만 아니라 산업안전보건청도 참고할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안전보건청은 예방 프로그램을 자율적으로 적용하는 사업장에 대해서는 지도 감독을 강화하지 않고 실시하지 않는 경우에만 감독을 강화하는 차별화 정책을통해 자발적 도입을 확산시키고 있다.

◆업종별, 사업장별 특화된 대책 실시 = 업종에 관계없이 포괄적으로 예방의무를 법제화한 우리나라와 달리 근골격계 질환 발생현황을 감안해 다발 업종과 직군별로 특화된 예방지침을 마련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산업안전보건청은 현재 가택간호(Nursing Home)에 대한 지침을 마련해 발표했고야채 소매상, 가금류 취급업종(Poultry Processing Industry)에 대한 시안을 마련해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이와 함께 상대적으로 열악한 소규모 작업장을 위해서는 예방 프로그램 개발과교육 훈련에 대한 지원을 실시하고 있으며 소수 민족, 이민자 등에 대한 지원도 강화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노조가 강한 일부 대기업에서는 단협을 통해 근골격계 질환의산재 인정으로 의료기관에서 요양을 받을 경우 보상으로 통상 임금의 120-130%수준까지 임금을 지급받게 돼 불필요한 요양을 유발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위험에 더 노출돼 있는 하청업체 근로자의 경우 여건상 산재신청자체가 힘들 뿐만 아니라 산재 요양에 대한 법적 보상금(임금의 70%)도 지급받기 어려운 실정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중소사업장에 대한 배려는 눈여겨 볼 대목이다.

◆노사간 자발적 협력이 성공의 비결 = 이처럼 오랜 기간 자율적인 근골격계 질환 예방시스템을 정착시켜 온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아직 사업주의 예방의무가 법으로 규정돼 있지는 않다.

주정부 차원에서도 예방의무를 법제화한 사례는 워싱턴과 캘리포니아 두 곳 뿐이며 나머지 주에서는 지침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와 달리 사업주의 예방의무가 법으로 강제되지 않고 있음에도불구하고 예방 프로그램이 확산되면서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근로자와 사업주의인식 전환에 기인한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산업안전보건청 정책담당자 엘레나 질(Eleanor L. Gill)씨는 “20년 전에는 종업원을 보호하면서 생산성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사측의 인식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예방 프로그램이 발생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발휘하면서 이같은 인식은 전환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GM의 존밀 박사도 “근로자의 불편한 작업환경으로 인해 근골격계 질환이 발생하면 제품 하자 발생율이 높아지는 등 일의 효율성과 생산성이 떨어진다”며 “인간공학적인 작업환경을 통해 근골격계 질환 발생을 줄이는 것이 종업원과 회사 모두 윈윈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