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일하는 ‘불안과 설움’을 알까?

홍콩 가사노동자들의 고단한 노동

지난 11~13일 아시아여성위원회(CAW) 주최로 홍콩에서 열린 ‘비공식경제 여성노동자의 권리’ 포럼과 홍콩지역 내 다양한 여성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을 살펴봤던 본 꼭지가 3회분 연재를 끝으로 마무리된다.

홍콩이 초행길인 기자와는 달리 수년 전까지 홍콩소재 국제단체 스텝으로 일했던 한 선배는HKCTU(홍콩노동조합총연맹)을 방문하러 가는 길에 “거리가 너무나 깨끗해졌다”고 놀라워한다. 하기는 길거리에서도 교복 입은 여학생조차도 담배를 피우며 걸어갈 정도로 흡연은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있었고 전체적인 흡연율도 높아 보였으나 길거리 어느 곳에서도 담배꽁초를 보기가 쉽지 않았다.
홍콩에 있는 AMRC(Asia Monitor Resource Center)에서 일하는 한국인 스텝 장대업씨 역시 담배를 피우며 함께 걷다가 꽁초를 꼼꼼히 챙기며 말한다. “작년부터 홍콩정부가 쓰레기를 거리에 무단 투척하면 1,500홍콩달러(약 23만원) 벌금을 내게 하고 있어요. 그 뒤부터 몰라보게 깨끗해진 거죠. 사실 이것 때문에 홍콩 가사노동자(가정부) 여러 명이 눈물을 뺐습니다. 한 달 내내 일해야 겨우 4,000~5,000 달러를 받는데 실수로 음식쓰레기 같은 거를 아무데나 버렸다가 월급의 반이 날아가니까요.”

중년 여성 노동자들의 최후의 보루

홍콩에서는 흔히 ‘여성 파트타이머 = 가사노동자’로 인식될 정도로 가사노동자는 여성들이 가장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전통적 비공식 영역의 직업이다. 그도 그럴 것이 긴 경제불황을 겪으면서 기혼 중년 여성들은 하루아침에 기존의 직장에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폭풍에 휩쓸려 나왔다가 재취업이 쉬운 가사노동자를 택했다.
또는 집안에서 전업주부로 있다가 경제위기로 남편이 실직상태에 놓이자 생계를 직접 꾸리기 위해 가사노동자로서 노동시장에 들어온 경우도 많다.
대부분 40대 여성인 이들은 자신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청소나 간병, 아이돌보기 등이라고 스스로 여겨 이 직업을 택하기도 했지만 더 많은 경우가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택하는 경우다.
하지만 사회에서는 가사노동자들을 보는 시각 또한 매우 편협해서 직업인으로 대접을 받지 못한다.
‘자신 집’ 식구들에게는 집안일의 연장선에서 ‘소일거리’를 하고 있는 정도로 이해되고 ‘남의 집’이자 자신들의 작업장에서는 불합리한 대우를 당해도 제대로 불만을 표시하기 어렵고, 개선방향을 스스로 찾을 용기를 선뜻 내기가 힘들다.
쓰레기를 잘못 버려서 벌금이 부과되면 눈물이 찔끔거리면서도 스스로 벌금을 내야하고 고용주가 노동법 의무조항을 회피하기 위해 4주 이상을 고용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보내더라도 당연한 줄 알아야 한다. 노동시장의 끝자락까지 몰린 이들은 대항할 힘도, 자신감도 없기 때문이다.

아이러니 한 것은 경제가 불황일수록 가사노동자가 증가한다는 사실이다. 더 이상 가정부는 부유층에서 고용하는 ‘옵션’이 아니라 부부가 맞벌이를 해야만 생계가 가능하기 때문에 잠깐이라도 고용해야 하는 ‘필수조건’이 되어 버린 것이다.

노조, 가사노동자의 자신감 키우기에 주력
홍콩가사도우미노조(Domestic help Trade Union)도 조합원들이 이런 현실을 다양한 방법으로 극복해 보려고 하고 있다. HKCTU에 소속돼 있는 이 노조는 개별사업장에 한 명씩 근무하는 형태인 가사노동자 조직을 위해 재교육프로그램을 활용했다.

노조사무실은 야메떼 HKCTU 건물 안에 있지만, 이들을 위한 재교육센터는 이스턴피크에 따로 마련되어 있다. 재교육센터 운영기금은 홍콩의 사회복지펀딩기구인 옥스팜에서 보조받고 있다.

노조 사무국장 피쉬씨는 “재교육프로그램으로 요리나 간병 등의 실무적 교육도 있지만 무엇보다 노동자로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데 주력한다. 전업주부였거나 이미 실업의 고통을 겪었던 이 중년 여성들은 큰 소리로 말하는 것조차 서툴고 노동자로서의 의사소통법을 잘 모른다.

재교육과정에서는 ‘논리적으로 말하기’, ‘큰소리로 말하기’ 등의 시간을 배치에 무엇보다 이들의 자신감을 키우는데 힘쓴다”고 말한다.

재교육프로그램은 1일 8시간씩 8일간 진행되는데, 고용주들도 이곳 교육과정을 수료한 가사노동자를 선호하고, 노조를 통해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 일자리를 다시 찾는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경우이더라도 수료기간을 마치면 대부분 노조에 가입한다.

때문에 홍콩의 노조 조직률이 매우 낮은 상황임을 감안하면, 지난해 설립된 이 노조가 벌써 1,500명 이상을 조합원으로 가입시킨 것은 교육프로그램과 조직화를 연계시킨 덕분이라 할 수 있다.

‘남의 집’이 작업장인 사람들, 그들도 다치고 아프고 해고된다.
가사노동자들이 받는 급여는 하루 50~60홍콩달러 정도다.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약 7,500원~8,000원 사이. 그러나 일이 고정적이지 않은데 문제가 있다.

홍콩에서는 4주일 연속 1주일 18시간 이상을 일해야 노동법 상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데(4.18룰) 고용주들은 사회보험 적용을 해주지 않고 해고를 쉽게 하기 위해 4주 전에 그만두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가끔씩 대청소를 위해 한 달에 한두 번만 오는 것을 요구하는 사용자들도 많기 때문에 아무리 이 집 저 집을 뛰어다녀도 일정정도 수입을 보장받기가 힘들다. 가사도우미노조의 한 조합원은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열쇠꾸러미가 무겁다고 느껴질 정도로 집집마다 돌아다녀도 한 달에 4,000홍콩달러(약 60만원) 벌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집에서 일하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하려면 한 시간도 쉬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때문에 노조에서는 ‘일과 중 한 시간 휴식시간 갖기’를 권하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또한 조리나 간병, 청소를 하다 보면 다치는 경우도 많지만 산재보험 적용이 쉽지 않다.

물론 4.18룰을 교묘히 어기는 고용주들 때문에 노동법상 보호에서 제외돼 있기도 하지만 홍콩보험공단이 모두 민영화돼서 산재보험이 아닌 의료보험에서조차도 가사노동자를 받기를 꺼린다.

노조 피시 사무국장은 “노조가 연중 진행하는 캠페인에서 가사노동자 사회보험 적용과 최저임금 마련을 주장하고 있는데 오히려 정부정책으로 고용된 가사노동자가 더 저임금을 받는 현실이다”라고 말한다.

홍콩은 전통적으로 연초가 되면 ‘중국대청소’기간을 정해 며칠간 모든 공공건물과 빌딩들을 청소하는데, 이 때 고용되는 가사노동자들은 오히려 민간에서 고용하는 임금보다 절반에 가까운 금액만 받고 있다는 것이다.

피셔 국장은 “홍콩에는 아직 최저임금제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데 정부가 이를 악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주노동자들 23만 명, 외교적 문제까지 번져
지난 3월 홍콩과 필리핀 정부간 벌어졌던 이른바 ‘가정부 전쟁’을 기억할 것이다. 홍콩 정부가 외국인 가정부들에 대해 근로소득세 부과 방침을 확정하자 필리핀 정부가 가정부 송출 중단령을 내리는 등 홍콩과 필리핀의 외교 갈등이 깊어졌던 사건이 있었다.

홍콩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필리핀 여성 8만9천여명이나 된다. 오죽했으면 홍콩의 부재자 투표가 필리핀 대선 판도에 영향을 크게 미친다는 분석이 나왔을 정도. 홍콩에서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이주노동자를 송출 받고 있는데 여성 이주노동자들은 일부 전문직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가사노동자로 고용허가를 받는다. 이주 가사노동자 수는 6월말 현재 집계로 23만9,410명에 이른다.
이주 가사노동자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인권유린과 사업장 이탈이다.
가사노동자들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홍콩 내국인인 경우는 출퇴근하는 파트타임으로, 이주노동자들은 입주 가정부로 취업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입주 이주노동자들은 노동시간이 하루 종일이어서 노동강도가 센 데다 거주 장소가 마땅치 않으면 부엌이나 현관에서 잠을 자게 하기 때문에 건강을 심하게 해치고 폭행과 강간의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이들은 피해를 당해 고용장소에서 이탈하면 본국으로 송환되기 때문에 유흥가로 아주 불법취업을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CAW(아시아여성위원회)는 지난 11~13일에 연 ‘동아시아 여성노동 포럼’을 통해 한국, 홍콩, 태국, 일본, 필리핀 등에서 공동캠페인이나 교육 등을 배치 이주 여성노동자의 노동권과 인권 침해에 대해 공동으로 대처하기로 하기로 했다.

홍콩 = 김경란 기자 eggs95@labornews.co.kr

ⓒ매일노동뉴스 2003.10.23 09:1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