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2.4%의 노조들

만들기도 어렵고, 지키기도 어려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부소장이 올 8월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결과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노조 조직률은 2.4%였다.
97년 IMF 경제위기 이후 임금노동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으로 채워진 지는 오래지만, 여전히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인 51.6%이고 시간당 임금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48.6%에 불과하다. 그런데 노조 조직률은 정규직이 22.7%(631만명 가운데 143만명)이고 비정규직이 2.4%(784만명 가운데 190만명)로, 무려 열 배 가까운 차이가 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어렵게 조직된 2.4%의 비정규직 노조들이 기존의 정규직 노조에 비해 사용자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이란 극히 제한적일 뿐 아니라 법제도와 인식의 차별 속에서 노조를 유지하기도 힘들다는 사실이다. 실질적인 ‘노동3권’을 보장받는 확률은 ‘2%보다 부족한’ 비정규직노조들의 현실을 살펴보자

자생적 조직화 물결, 높은 현실의 벽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실 주진우 실장은 “민주노총이 비정규노동자들의 조직률을 정확히 집계해 본 적은 없지만 신생노조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음에도 전체적인 조직률은 답보상태에 있다고 본다”고 말한다.
비정규직들로 조직된 노동조합은 80년대 후반 결성되기 시작한 각 지역건설(일용)노조가 그 시발이다. 지난 90년 지역건설노조로는 처음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한 포항지역건설노조와 소강기를 극복하고 지난해 50일이 넘는 파업을 하면서 조직재건에 성공한 여수지역건설노조 등은 공사기간에 따라 계약기간이 정해지는 전형적인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조직이다.

90년대 후반부터 건설노동자들 이외 다른 고용형태, 다른 직종으로까지 비정규직노조 결성이 확산됐고, 99년 12월 특수고용형태 노동자인 학습지교사들이 만든 재능교육교사노조가 그 도화선이 됐다.

그러나 2.4%라는 조직률은, 비정규직들이 노조를 만들기도 힘들지만 유지하기도 힘들다는 것을 말해준다. 고용불안과 저임금을 개선하기 위해 노조를 만들지만 설립과 동시에 고용계약이나 도급계약이 해지되거나 노조 자체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일상’적이다.

방송사 차량을 운전하는 파견노동자들로 조직된 방송사비정규노조는 2000년 4월에 설립됐고, 당시 조합원은 407명이었다. 그러나 파견노동자를 2년 이상 쓸 경우 사용사업주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법 조항 때문에 직접 고용의무를 회피하고 싶은 각 방송사들은 2년이 지나기 직전 조합원들은 하나둘 해고했고, 결국 노조 설립 2년이 지난 2002년 6월, 사실상 노조는 소멸될 위기까지 처했다. 주봉희 위원장을 중심으로 처음부터 다시 조직에 나서 지금 현재 조합원은 200여명에 이르지만, 노조 활동이 녹록치만은 않다.

사내하청노동자들의 경우는 노조를 설립하면 아주 도급계약 자체가 해지되는 방식으로 해고자가 됐다. 2000년 10월 울산의 INP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들은 울산 동구청에 ‘INP중공업 사내하청노조’ 설립신고를 내고 필증을 받았다. 그런데 원청인 INP중공업은 생산공정 지연 등의 이유로 이들 노동자들이 소속된 하청업체와의 도급계약을 해지했고 하청업체는 자진폐업했다. 따라서 노조는 그 근거지를 잃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도 노조활동 힘들어

공공부문 비정규직들도 노동3권을 행사하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 한국통신 계약직노동자들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7천명이 한꺼번에 해고되는 것에 반발하며 노조를 결성하고 517일간 장기 투쟁을 했지만 ‘한국통신으로의 고용’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서울시 소유의 서울대공원에서 청소 일을 하고 있는 고령의 노동자들로 구성된 전국시설관리노조 서울대공원지부 역시 노조설립과 동시에 도급계약이 해지됐지만 서울시는 도급계약해지일 뿐 정리해고가 아니라는 것만 강조하고 있다.
중고등학교 급식을 담당하는 영양사들 가운데에도 정규직이 오면 당장 보따리를 싸야하는 일용직들이 있다. 이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 인상과 정규직과의 차별해소 등을 요구하며 노조를 조직했지만 교육청은 행정자치부의 공무원 수요 지침과 예산 등을 이유로 어렵다는 것만 확인시키고 있을 뿐이다.

2002년 7월에는 6개 지방노동청 관할 168개 고용안정센터에서 1년 단위 계약직으로 일하는 직업상담원들이, 2003년 5월에는 노동부 산하 근로복지공단 계약직들이 각각 노조를 만들었다.

직업상담원노조는 정부 부처 소속 비정규직으로는 처음으로 진행된 8일간의 파업 끝에 사실상의 고용안정을 약속받았지만 근로복지공단비정규직노조의 경우 고 이용석 본부장의 분신사망과 함께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고용안정 등 핵심 쟁점에 대한 논의는 진행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들 공공부문 비정규직들은 소속 기관들이 정부 방침을 이유로 들며 노조의 요구에 난색을 표명하는 것으로 일관하기 때문에 더더욱 노조활동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2%를 끌어올리기 위해서 만들어져야 할 것

비정규직노조들은 지금도 어디선가 결성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한 관계자는 “요즘 노조 결성 상담은 주로 비정규직 아니면 희귀 업종에서 들어온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들 비정규직 노조들이 많이 생겨나지만 생명력이 짧은 것은 법제도가 이들 노동자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워커힐호텔 한식당 명월관에서 근무하던 계약직들이 만든 명월관노조는 복수노조 금지 조항에 걸려 3번이나 노조 설립신고서를 냈지만 그때마다 반려됐고, 그런 과정에서 조합원들은 하나둘 떠나 노조는 존폐위기에 처했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들로 이루어진 노조들은 결성단계에서는 그 어떤 비정규직노조들보다 영향력을 발휘하지만 ‘노동자성’ 시비 때문에 현장에서 사소한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

재능교육교사노조가 1,500명의 조합원을 조직하며 비정규직으로서는 처음으로 대규모 전면파업을 했고, 건설운송노조가 100일이 넘는 당산철교 파업을 이어가며 건설현장을 마비시켰고,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던 화물연대의 파업은 정말 대한민국의 물류동맥을 틀어막았다.

그렇지만 특수고용노동자들은 노동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함으로써 노조를 유지하기조차 힘든 상황이 됐다. 많은 골프장 경기보조원 노조들이 자진해산을 했고 재능교육교사노조의 조합원 숫자는 급속히 감소했으며 노조로 인정받지도 못하면서 물류체계에 차질을 가져왔던 화물연대 지도부들은 대부분 구속됐다. 노사정위원회에서는 특수고용형태 노동자들의 보호방안을 논의할 방침이지만, 방안이 나오기도 ‘전’에 이들 노조들은 상태가 악화될 만큼 악화됐다.
민주노총 주진우 실장은 “민주노총도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조직화를 위해 제조업, 대공장에서 벗어나서 서비스, 중소 영세 사업장에 전략적으로 조직활동을 계획하고 있다”며 “노동계가 비정규직들의 조직화에 주력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들 노동자들이 실질적으로 노동3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법제도적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김경란 기자 eggs95@labornews.co.kr

ⓒ매일노동뉴스 2003.11.20 09:2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