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부안서 공격적으로 폭력 행사”
[보건의료단체 공동 실태조사] 부안주민 정신피해도 심각
2003-12-19 오후 3:39:01

5개월간 부안 주민들에 대한 경찰 폭력은 경찰 주장과 달리 방어적인 것이 아니라 상당히 공격적으로 이뤄졌던 것으로 드러났다. 부안 주민들 상당수는 신체적 피해뿐만 아니라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정부의 책임자 문책과 정밀 피해 조사가 시급한 것으로 밝혀졌다.

“주민 상처로 판단했을 때, 경찰이 적극적으로 폭력 행사”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등 보건의료단체는 19일 오전 ‘부안군민 공권력 폭력피해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 단체들은 11월30일부터 12월14일까지 부안에서 직접 진찰, 설문조사, 환자들의 주 병명 조사 등 다양한 방법으로 환자들과 부안 주민들의 피해 실태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7월22일에서 11월20일까지 공권력 폭력으로 부상을 입어 병원에서 진료 받은 총 환자는 3백25명이나 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 부안 성모병원에서 치료한 환자 2백81명 중에서 열상(피부가 찢어져 피부 봉합 치료를 받은 환자) 환자가 92명으로 32.7%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2주 이상의 치료를 요구하는 부상이 전체 부상의 50%를 차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보고서는 “열상 환자의 92.5%가 머리와 얼굴이 찢어진 환자들”이라면서 “특히 부상 환자 중 26명을 직접 진찰하고 면담을 한 결과, 이들 열상 부상은 방패를 전경이 방어용으로 막으면서 머리를 쳐 발생한 것이 아니라 공격적으로 세로방향에서 위에서 아래로 내려친 것으로 판단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직접 진찰을 한 열상 환자의 경우 4명중 3명이 머리 꼭대기에서 뒤로 넘어가는 부위 한 가운데에 세로로 상처가 난 경우였다.

보고서는 “대부분의 얼굴의 상처가 왼쪽에 생긴 것도 오른쪽에 든 곤봉으로 시위대의 왼쪽을 후려침으로써 생긴 것임을 시사한다”면서 “이것은 경찰이 적극적으로 폭력을 행사한 증거”라고 지적했다.

부안 주민들 정신적 피해도 극심해

의료진 20명이 부안 주민 총 1백6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및 면접에 의해 조사한 결과를 보면 부안 주민들의 피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조사 대상자의 85.4%인 1백29명이 부상 등 신체적 피해를 당했다고 대답한 것은 물론, 대부분인 96.7%인 1백45명이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응답했다. 경제적 피해를 입은 사람도 83.2%로 1백24명이나 됐다.
인의협, 건치 등 보건의료단체는 11월30일부터 12월14일까지 부안 주민들의 공권력 폭력 피해 실태조사를 벌였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심한 공권력 피해를 당한 부안 주민들은 부상 치료 후에도 상담과 약물치료 등이 요구될 정도로 심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 결과 상당수의 부안 주민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우울증’ 증세를 보였다. ‘전·의경들의 군화발 큰 소리를 내며 덤벼드는’ 악몽에 시달리거나, 낮에도 폭행 장면이 떠올라 일상생활을 하기가 어렵거나, 정신과 입원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중증 상태의 ‘우울증’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응답자들의 과반수인 54.3%는 무방비 상태에서 여러 명의 경찰에 의해 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응답해, 방어를 할 수 없는 상태의 주민들에 대한 폭력적 진압이 광범위하게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것은 부상 부위가 1사람에게서 3.5개로 다발성으로 나타난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건치 전성원 공동대표는 “피해 주민들 중 치과 환자의 진료 기록을 조사한 결과, 방패·곤봉으로 얼굴을 후려치거나 쓰러진 후 전·의경들에게 집단 구타당해 이빨이 부러지는 등 부상을 입은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이런 설문 조사 결과가 사실인 것으로 확인된다”면서 “상부 지시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폭력 진압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찰, 주민 부상자 대부분 모른 척해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진압 전·의경들은 주민들이 부상당했을 때 병원에 옮기는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응답자 1백61명 중 경찰에 의해 병원에 옮겨진 사람들은 단 2명뿐으로, 부상자에 대한 경찰의 대처는 사실상 전무했다.

경찰들의 폭력은 노인과 여성을 가리지 않고 일어난 정황도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부상자 중 골절과 열상을 입은 비율은 60세 이상이 14.5%나 됐고, 60세 이상의 88.0%가 신체적 피해를 입었다고 답했다. 여성 중 신체 피해가 있는 응답자가 85.0%나 됐다.

주민들의 90.0% 이상은 “정신적·신체적·경제적 피해에 대한 정부와 경찰의 사과와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민 시위 무질서’-‘경찰도 부상 심했다’, 사실과 달라

한편 보고서는 ‘주민들의 시위가 무질서했고 폭력적이었다’거나 ‘경찰의 부상도 주민만큼 심했다’는 경찰과 일부 언론의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매번 시위 때마다 2천명 이상의 다수 군중이 참여한 시위였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군중이 모였을 때 흔히 발생하는 무질서에 의한 증후군은 보이지 않았다”면서 “이것은 경찰이나 일부 언론의 주장과 달리 ‘부안 주민의 시위가 매우 잘 통제됐고, 질서 있게 진행돼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조사를 주도한 응급의학과 전문의 김승열 인의협 회원은 “일부 언론에 크게 보도된 ‘경찰의 부상이 주민만큼 심하다’는 지적은 현실을 은폐하는 것”이라며 “잘 훈련되고 통제되는 경찰이 어떻게 주민보다 부상이 심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김승열 회원은 “이번 조사를 통해 경찰이 사전에 폭력을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을 대상으로 자행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보건의료단체들의 조사 결과 부안 주민들 부상은 상당수가 경찰의 공격적인 폭력에 의한 것으로 판명됐다. ⓒ프레시안

정부가, 공식 사과하고 책임자 문책해야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정경진 대표는 “정부는 부안군민에 대한 공권력에 의한 폭력을 공식으로 사과하고, 그 책임을 물어 책임자를 문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정경진 대표는 또 “정부는 공권력에 의한 폭력 피해 실태조사를 공신력 있는 기구를 통해 실시하고, 부안군민에게 신체적·정신적·경제적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안대책위 이현민 정책실장도 “정부는 부안군민이 5개월 동안 입은 피해에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사과와 함께, 부안 사태가 하루 빨리 해결될 수 있도록 핵폐기장 유치 시도를 철회하고 조속히 주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양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