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 1/25, 163호]

한해 3천여명 사망·20여명 산재 비관 자살

개혁도 산업재해는 피해간다

올들어 현대중공업서 4명 죽어…’기업살인법’ 제정해야

새해 벽두부터 4명의 현대중공업 노동자가 산업재해(산재)로 죽었다. 1명은 낙하물에 머리를 맞아, 또 한 명은 튕겨진 탱크커버에 하복부를 맞아 사망했다. 2명은 사측의 안전장비 점검 소홀로 인한 추락사였다.

계속되는 노동자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중공업 원청은 여전히 “하청문제까지 책임질 수는 없다. 우리와는 상관없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한 사업장에 3건 이상 산재사망 사고가 났을 경우, 해당 사업주를 구속수사 한다는 ‘삼진아웃제’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현대중공업 사업주를 비롯해 책임자가 구속 처벌된 일은 없었다.

“죽거나 다치는 일에 정부는 물론 노조조차 너무 무딘 것 같다”는 한 산재노동자의 지적처럼 산재(사망)는 20년 전과 다를 바 없고 오히려 노무현 정부 들어 증가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하루에도 7∼8명 꼴로 죽어 나간다. 노동부의 산재통계에 따르면 산재사망자수는 1998년 2천2백12명 이후 2002년 2천6백5명, 지난해는 2천8백72명(추정치, 노동건강연대)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94년 이후 조금씩 감소하던 업무상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도 지난해에는 1천4백54명으로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2002년 전체재해의 71%는 50인 미만의 영세사업장에서 나타났고, 지난해도 비슷한 수치를 보일 전망이다. 유해하거나 위험한 작업을 하청, 비정규, 외국인 노동자들이 수행하기 때문이다. ‘산업안전’ 시계는 거꾸로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노동건강연대의 상근자 최은희씨는 “1980년 이후 산재(사망)율은 완만히 떨어지다가 경제위기 직후인 1998년과 2003년 급격한 증가를 보였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결과 고통은 노동자에게 전가되고 특히, 이주노동자와 중소·영세·하청·여성 비정규 노동자의 산재율 증가를 낳고 있다”고 분석했다.

노무현 정권의 대통령 후보시절 산재관련 공약은 2006년까지 산재율을 절반으로 감소시키겠다는 거창한 목표만 있을 뿐이었다. 최씨는 “노무현 정권의 산재감소를 위한 구체적인 산업안전보건정책은 워낙에 없었고, 그나마 지난해의 산재(사망) 증가는 공약에서 말한 산재 절반감소 구호를 무색하게 한다”고 말했다. 산재정책의 후퇴는 계속된다.

산재보험에서 산재예방기금 출연율도 5%에서 8%로 올리겠다고 약속했지만 지난해 기금은 오히려 전년에 비해 0.4%포인트 깍인 5.3%(3천여억원)였다. ‘삼진아웃제’와 관련 노동부 산재 관련 담당자는 “사업주에게 경각심을 주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고 강제규정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인가. 노동부의 2002년 구속요청 건수는 제조와 건설 총7건, 지난해 제조업의 경우 3건에 그쳤다. 그러나 이마져 모두 검찰에 의해 기각됐다. 현대중공업건은 현재까지 구속요청도 하지 않았다.

추락사 같은 전근대적이고 원시적인 산재발생률이 높다는 것은 노동현장을 통제하는 자본가들의 ‘반생명적 이윤추구’ 현실을 잘 보여준다. 리프트 추락 사고나 난간이 없어 추락하는 경우가 다반사지만 사업주와 기업의 민·형사상 처벌은 대단히 미약한 수준이다. 오히려 정부와 자본측은 노동자의 안전의식 미흡이 산재의 주원인으로 파악, “그러기에 안전모 쓰랬지”라는 공익광고처럼 ‘노동자 책임론’을 끊임없이 전파한다.

따라서 민주노총과 노동건강연대 등에서는 호주처럼 ‘기업살인법’을 제정해야 하고, 최소한 ‘산업안전보건범죄자의 처벌을 강화하는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과도한 산재와 산재사망은 ‘기업의 살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산재를 당한 노동자들의 치료나 요양, 그리고 재취업 구조는 더욱 형편없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산재 노동자 10명 가운데 7명은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위기가 심화된 1998년을 전후해 산재요양 중 자살하는 사건도 급증해 한해 평균 20여명에 이른다.

산재 노동자들의 단체인 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에는 완치에 대한 불안감, 장애에 대한 두려움, 재취업에 대한 걱정이 끊이질 않는다. 협의회의 김재천 회장은 “영세·소규모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산재를 당하면 폐인 취급을 당하고, 대부분 신문·우유배달 등 밑바닥 삶을 전전한다. 변변한 일자리 확보는 하늘에서 별따기이다”며 “‘보여주기식’ 정책에 불과한 산재치
료와 재활 규정을 뜯어고쳐야 하며, 특히 산재보험의 ‘사전승인제’ 철폐와 치료이후 ‘노동권 확보’ 등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수현open@kdlpnew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