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하청업체 비정규직 실태] 임금등 차별 … “인생도 하청”
“비정규직 근로자들 사이에선 ‘직장이 하청이면 인생도 하청이다’ ‘한번 하청은 영원한 하청이다’라는 자조적인 말이 돌고 있습니다. 임금은 물론 모든 면에서 정규직에 비해 차별받고 있기 때문이죠. ”
현대중공업에서 8년간 하청업체 비정규직 근로자로 일했다는 李모(40)씨의 말이다. 그는 정규직 근로자와의 차이를 ‘현대판 골품제’라고 표현했다.
16일 오전 ‘비정규직 근로자들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라’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자살한 박일수(50)씨의 빈소가 차려진 울산시 울산현대병원 영안실. 이곳에는 울산지역 사업장에 근무하는 비정규직 근로자와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들로 붐볐다. 이들이 말하는 비정규 하청노동자들의 실상은 당초 예상보다 훨씬 열악했다.
울산지역 조선소의 하청노동자들이 받는 시간당 급여는 3천7백~6천원 정도. 한달 동안 잔업과 야근 등 3백여시간을 일해야 2백20만원 정도 손에 쥔다고 한다. 정규직 노동자 임금의 60% 정도다.
일당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상여금은 물론 고용.의료.산재보험과 국민연금 등 이른바 4대 사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헌구 민주노총 울산본부장은 “하청업체 사장이 일당제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해 사회보험을 가입하지 않거나 퇴직금을 떼어먹는 경우가 흔하다”고 주장했다.
숨진 朴씨도 자신이 다니던 하청업체 인터기업에 동료직원들의 퇴직금 체불에 대해 진정을 냈다가 회사의 해고압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근무 환경도 정규직에 비해 열악한 경우가 많다. 지난해 8월 이후 현대중공업에선 11명의 산재 사망사고가 났는데 이중 8명이 비정규직이었다.
지난해 하청 근로자의 산재 사망사고를 보면 생명 줄을 설치하지 않은 채 고공 곤돌라 작업을 하다 추락사 하거나 환기장치도 설치하지 않은 밀폐된 공간에서 독극물 성분이 있는 유기용제 작업을 하다 질식사 하는 사례도 있었다. 계속되는 야간작업에 심근경색으로 숨지는 등 열악한 작업환경으로 인한 사고가 많았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조합 조성웅 위원장(해고)은 “근로기준법에 어긋나는 경우가 많지만 비정규직은 항의조차 하기 어렵다”며 “지난해 하청노조를 결성한 집행부 8명도 모두 해고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하청 근로자는 엄밀히 말해 우리 직원이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회사 측은 “산재 사망 사고가 많은 것도 대개 비숙련공인 하청업체 근로자가 안전조치를 제대로 지켰는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반박했다.
같은 노동자인 현대중공업 노조도 15일 성명을 내고 “각 노동단체들이 朴씨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짙다”며 민주노총 울산본부가 주도하는 분신대책위와는 별도로 대응할 방침을 밝혔다. 이 때문에 현중 노조와 하청노조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서로 비난하는 댓글이 붙는 등 ‘노노 갈등’으로 비화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한편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16일오전 김대환 노동부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으면 비정규직 노동자의 자살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텐데 안타깝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