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산업 ‘만악의 근원’, 불법 다단계 하도급
부실시공·건설비리 ‘구조악’으로…임금체불·산재 등 온갖 피해 노동자들에 떠
넘겨
건설산업기본법 재하도급 금지 규정 ‘유명무실’, 정부 해결의지도 안 보여
우리 사회는 건설현장과 그 속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들에 대해서 어떤 생각들을
갖고 있을까. 속칭 막노동, 노가다, 인력시장, 부실시공, 산재사고….
건설업은 GDP의 10% 내외를 차지하고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180만을
웃돈다. 경제적으로나 종사자 규모로 보나 그 비중이 결코 적지 않음에도 2004년
오늘의 한국에서 건설현장은 그야말로 ‘근로기준법 최후의 사각지대’,
‘무법천지의 철옹성’이다. 이러한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구조적인
문제 중 가장 심각한 문제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불법 다단계 하도급’을
꼽는다.
2004년 전태일 열사가 부활한다면 아마 ‘건설현장의 불법 다단계 하도급을
철폐하라’ 라고 외치며 건설산업기본법과 근로기준법을 동시에 불태우지
않았을까.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 뭐길래
건설산업은 원·하청 구조를 갖는데 제조업과 달리 대체적으로는 공사를
수주하고, 총체적인 공사를 관리 감독하는 종합건설회사와 골조, 철근, 설비 등
시공을 하는 ‘전문건설업체’의 구조를 갖고 있다. 다른 나라도 이와 비슷하다.
그런데 결정적인 차이는 다른 나라의 경우 전문건설업체가 건설일용노동자를 직접
고용하여 공사를 진행하고 그 이상의 하도급은 일어나지 않는데 비해, 우리나라의
경우 7~8단계의 재하도급이 발생하고 건설 노동자는 그 어디에도 정식화된
고용관계를 갖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단계 하도급의 유형으로는 첫째, 전문건설업체에서 전문건설업체로 수평적
재하도급을 주는 것인데 건설업 면허를 대여하거나, 임원에 이사로 등재시키거나,
위장직영, 이면계약, 핸드폰만 가지고 공사를 수주해서 넘기기만 하는
공사브로커의 경우 등이 있다. 둘째, 전문건설업체에서 소위 ‘십장’에게
하도급을 주고, 그 십장이 다른 십장에게 공사 전부를 넘기거나, 공사를 맡은
물량중의 일부를 넘기는 재하도급이 있다. 마지막으로 단종에서 십장으로
하도급을 주고 십장이 맡은 공사 중에서 공정의 일부를 분할하여 재하도급을 주는
경우이다.
이러한 불법 다단계 하도급은 마치 배추가 밭에서는 수백 원하던 것이 시장에
오면 수천 원으로 둔갑하듯이 수십 수백억의 공사가 실제로는 30~40%의 금액으로
공사를 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공사비가 중간 브로커나 수차례 단계를
거치면서 줄줄이 새 나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고, 이는 바로 부실시공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에서는 2단계 이상의 재하도급은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이러한 금지조항은 ‘깡그리’ 무시되고 있다.
노동자 울리고 비리업체 살찌우는 다단계 하도급
건설현장에 만연한 음성적인 수차례의 다단계 하도급은 결국 건설일용노동자에게
십장 말고는 누가 과연 사용자인지, 지금 하고 있는 일의 공사대금은 과연 어디서
어떻게 흘러서 결국 임금으로 지급되고 있는지를 모호하게 한다. 결국
건설노동자중 열에 아홉이 임금 체불의 경험이 있으면서도, 결국 아무런 법적
보호도 없이 임금을 통째로 떼이는 결과로 귀착된다. 또한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주 월차수당, 초과 근로수당, 퇴직금부터 시작해서, 고용보험, 퇴직공제제도
등이 현장에서 정착되지 못하는 주요원인이 되고 있다.
이는 현행의 근로기준법이나 건설노동자에 대한 보호책, 사회보험은 모두
고용관계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현장에서는 불법 다단계 하도급으로
고용관계가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또한, 건설 노동자들이 실제로는 건설업 평균
근속기간이 13년에 달하고, 1개월 미만으로 일하는 노동자는 16%밖에 되지
않음에도 계속 일용노동자라는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 것도 결국은 수차례의
하도급 구조로 인해 고용관계가 정식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건설 회사들은 불법 다단계 하도급으로 인한 비공식적인 고용구조를
이용하여 탈세를 하고, 비리자금을 마련하는 원천으로 삼고 있다. 임금대장에는
실제 현장에서 일하지 않거나, 심지어 죽은 사람까지 올라가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전혀 사업주로서 권한이나 능력이 없는, 성과급 근로자에 불과한
십장에게 도급계약 형식으로 체결하고 있는 계약서에는 1개월 미만 혹은 3개월
미만의 산재에 대해서는 십장이 보상하도록 규정하고 있어서, 산재은폐를 구조화
시키고 있다. 고용보험, 국민연금, 세금 등의 책임을 십장에게 떠넘기고 있어,
고용보험 제도 등이 실제 현장에서 정착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불법 근절, 안 하는가 못하는가?
현행 건설산업기본법 제29조 ‘하도급 제한’에서는 재하도급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다단계 하도급에 대해서는 그
처벌규정이 과태료 수준이다. 수 천만원짜리 공사를 불법으로 하도급 주면서
과태료는 공사 진척정도에 따라 부과하게 되어 있어서 대체로 70만원대
수준인데다가, 그나마 정부가 나서서 조사하고 처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더욱이 ‘시공참여자 제도’ 라는 것을 두어서, 하도급이 아니라 시공참여자
형태로 하도급을 하면 ‘발주처 미통보’ 행위에 불과하게 돼 그 처벌이 더욱
미미해진다. 특히 시공참여자 제도의 경우에는 ‘공사 실명제를 통한 부실시공
근절’ 이라는 제도 설립의 취지가 상실되고, 불법다단계 하도급을 양성화 하고
있어 폐지되어야 한다는 연구보고서가 나와 있으나, 여전히 건재하다.
혹자는 건설현장에 다단계 하도급은 관행이라 어쩔 수 없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단연코 아니다. 실제로 다단계 알선이 문제가 되었던 화물운송사업의 경우
2003~2004년에 걸쳐 국무조정실 주관 하에 여러 부처와 국세청까지 포함된
단속사업을 벌인바 있고, 1차 단속 시에는 190개 업체를 적발한바 있다.
처벌의 경우에도 한 번 적발되면 360만 원대의 과태료, 2회 이상 적발되면
사업정지나 등록 취소 등의 처벌규정이 있다. 그리고 정부차원에서 신고센터를
운영하여 화물운송사업의 다단계 하도급과 관련한 적극적인 근절대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건설업의 경우 불법다단계 하도급을 고발하면 처리해야할
실무주체인 지자체에서 관련법이나 처리규정도 모를 정도로 철저히 방치되어
왔다.
정부는 문제해결에 즉각 나서라
현행 근로기준법에는 근로계약서 작성, 임금 직접지급 등을 포함한 각종 규정이
있고, 고용보험법, 건설근로자고용개선에 관한법등에서 건설 일용노동자에 대한
법적 보호 장치가 있다. 그러나 노동부는 비정규직 보호차원에서 진행한다는 각종
점검에서 건설현장에서 근로기준법위반사례가 적발되어도 시정명령 외에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으며, 노동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진행하는
원·하청실태조사 계획에도 건설현장에 대한 계획은 찾아볼 수가 없다.
더욱이 노동부는 체불임금이나 산재보상 등의 유권해석에 있어서 십장을 사용자로
보는 해석까지 내리고 있어, 과연 노동부가 건설현장에 만연한 불법 다단계
하도급을 근절하고, 건설일용노동자에 대한 보호대책을 실시하고자 하는 지조차
의심스럽다.
180만명에 달하는 건설노동자가 임금체불로 한해에 800명씩 죽어나가는 산재에 수
십 년째 고통 받고 신음하고 있을 때 정부와 이 사회는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
마치 건설업의 숙명인 것처럼 포장해 왔고, 건설노동자의 탓으로 애써 돌려왔다.
그리고 180만의 절망과 고통을 덮은 채, 비정규직 대책을 떠들어 왔다.
그러나 건설현장의 불법다단계 하도급을 근절하고, 건설노동자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지 않은 채 전개되는 모든 비정규대책은 절반의 대책이며,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대책에 불과하다. 이미 이 땅 건설노동자들의 분노는 폭발하고
있다. 정부는 시공참여자 제도를 폐지하고, 불법다단계 하도급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근절대책에 나서야 한다.
다단계 하도급 외국은? – 독일
시공업체가 직접고용, 90% 이상 정규직…건설업 발전 위한 정책적 노력
다단계 하도급을 건설업의 필연적인 숙명으로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건설산업의 특성상 외국의 경우에도 원청과 하청이라는 기본적인 구조는 있지만,
하청업체에 의한 다단계 재하도급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고용구조인데, 외국의 경우에도 시공업체의 70-80% 이상이 20인
이하의 중소규모이지만, 90% 이상의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있다. 즉
우리와 같은 불법다단계 하도급과 그로 인한 일용직 고용구조는 세계적으로 찾기
힘든 기형적인 구조인 것이다.
독일의 경우에는 다단계 하도급이 없을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직접
시공비율이 70%에 달한다. 대부분의 발주처가 아예 30-50% 정도의 직접시공을
입찰의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입찰시 하도급업체의 사회보험료 납부
서류까지 요구하고, 제시한 서류와 현장 실태가 일치하는지 발주처가 직접
감독한다.
독일이 다단계 하도급이 없고 직접 시공의 비율까지 높은 이유는 부실시공으로
인한 하자보수를 원청이 책임져야 하고, 숙련 노동력을 직접 고용하여 양질의
건축물을 생산하는 것이 결국 회사의 이익이 된다는 기업들의 인식과 함께
건설노동자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육성정책이 제도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독일도 처음부터 이같은 제도가 뿌리내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건설 붐이 한창이던 때에, 정부가 제도적으로 건설노동자와 건설산업에 대한
각종 제도와 보호 장치를 마련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심지어 악천후 수당 등의
제도를 통해 동절기를 비롯한 건설노동자의 실업기간에도 해고를 제한하고 고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산업기금을 조성하여 사용자에게 보전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건설노동자의 고용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이러한 결과 독일의 건설노동자는 90% 이상이 정규직이며, 50% 이상의 전문숙련공
구조, 평균연령 30대라는 기본골격을 튼튼히 갖추고 있다. 이것은 건설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이었을 뿐만 아니라 독일 건설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최명선 건설산업연맹 정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