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오영환] “가족을 소중히 한 아버지였습니다. 저녁은 늘 가족과 단란하게 보냈어요. 휴일엔 엄마가 만든 도시락을 싸들고 야외로 놀러갔습니다. 그런데 30여 년 다닌 회사를 퇴직한 지 10년 후. 아버지는 가슴이 아파 입원했어요. 병명은 악성 중피종(中皮腫.암)이었습니다. 마지막엔 마약을 쓰지 않고선 고통을 참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일본 효고(兵庫)현의 주부 가타야마가 지난해 9월 아사히(朝日)신문에 투고한 글이다. 그의 아버지가 근무한 곳은 같은 병으로 사망자가 잇따랐던 기계공장. 원인은 석면(石綿)이었다. 그것도 바로 옆의 건축자재 공장에서 나온 석면을 흡입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난해 일본 열도를 덮친 석면 공포의 한 단면이다.
석면(asbestos)은 화산활동 때 용암이 응고하면서 생기는 천연 광물. 머리카락의 약 5000분의 1 정도 되는 가늘고 긴 섬유의 결정체다. 손으로 문지르면 보풀이 일어 면(綿)처럼 되지만 불에 타지도 잘 마모되지도 않는다. ‘영구 불멸’을 뜻하는 그리스어 어원 그대로다. 그래서 4000년 전 발견 이래 기적의 광물로 통했다. 제품화돼 생활 속에 파고든 것만도 3000여 종이다. 건물을 지을 땐 약방의 감초 격이었다. 브레이크 부품은 석면만한 대체품을 찾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석면은 두 얼굴을 가졌다. 인체에 다량 들어가면 죽음의 섬유로 둔갑한다. 석면 섬유가 분해되지 않고 수십 년간 체내에 남아 폐와 장기를 둘러싼 막을 자극한다. 이 막을 덮고 있는 것이 중피. 석면은 주로 이곳에 종양을 일으킨다. 이 질환은 잠복기가 30~40년인 데다 아직 확립된 치료법이 없다. 석면이 조용한 시한폭탄으로 불리는 이유다.
일본에선 지난해 석면으로 인한 사망자가 700명을 넘었다. 환경성은 환자가 더 늘어나 5만 명이 중피종으로 사망할 것이란 추산을 내놓았다. 1960~70년 고도성장기 건축 붐 때 석면을 대량 사용한 점을 감안한 분석이다. 후화석면(後禍石綿)이란 4자성어가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프랑스 해군의 자랑이던 핵 추진 항모 클레망소가 97년 퇴역 이래 해체 일정을 잡지 못하고 2년 넘게 공해를 떠돌고 있다고 한다. 보온 단열재로 석면을 다량 사용해 폐선소마다 받기를 꺼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지난달 15일 귀환 명령을 내렸다는 소식이다. 클레망소를 취역 때보다 더 무섭게 만든 석면, 우리나라에도 아직 망령처럼 곳곳에 남아 있을 터인데….
오영환 정치부문 차장 ▶오영환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hwasan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