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건강연대는 서울 성수동지역에서 지역노조와 함께 노동안전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서울지역인쇄노조,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와 같이 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 그리고 복지까지 생각하면서 2002년부터 활동해 왔다. 사업장을 방문하면서 자신의 작업환경을 노동자가 직접 조사해보고,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참여노동안전활동(일명 포지티브활동)”이나 무료 건강검진과 건강실태조사 등을 펼쳐 왔는데,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지역노조와의 연대가 없었다면 하기가 어려운 일들이었다.
지역노조와 함께 사업을 하면서 재정이든, 사람이든, 규모가 작은 사업장과 함께 하는 활동의 어려움을 느끼며, 내가 일본에서 해온 지역노조활동과 비슷한 점이 있는 것을 상기했다.
일본에서는 80년대에 들어와서 “코뮤니티유니온”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지역노조가 생기기 시작했다. 코뮤니티유니온은 해당지역에 거주하거나 직장이 있으면 노동자 혼자서도 가입할 수 있는 기업을 넘는 노동조합이다. 기존에 있던 ‘지역합동노조’가 기업별단위로 분회를 만들어 결합하고 있던 것에 비해 코뮤니티유니온은 개인을 조직대상으로 한다.
물론 개인만 조직하는 것은 아니지만, 불이익을 당한 노동자가, 개인으로서는 회사와의 싸움이 어려울 때 노동조합의 이름으로 싸우는 방법이 열린 것이다.
지역합동노조나 일반노조도 개인 가입을 허용해 왔지만 보다 다양한 고용형태에 있는 노동자가 가입하기 쉬운 형태로 코뮤니티유니온은 시작됐다.
이 코뮤니티유니온 운동이 전국 곳곳에 생겨 작은 규모지만 지역마다 미조직 노동자의 노동문제를 해결하는 조직으로 성장했다. 일본의 노조가 기업별로 되어 있는 것에 비해 코뮤니티유니온은 기업을 넘어 같은 노동자로 단결할 수 있다. 또 기존의 노조가 조직화를 안 했던 부분, 파트타임노동자, 파견노동자, 이주노동자, 고용에 기한이 있는 노동자, 노인들의 생활도우미 “개호 노동자” 등 새로운 고용형태, 비정규노동자를 적극적으로 조직하고 있다.
1989년 “총평”이라는 일본의 노총이 해산되면서 “동맹”이라는 노총과 합쳐 “연합”이라는 새로운 노총이 만들어졌다. 노동전선통일이라고 불리는 이 조직통합을 통해 지역노동운동 변화가 코뮤니티유니온 결성의 계기가 된 지역도 적지 않다.
총평은 60년대에 중소사업장에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전국에 300명의 조직전담자를 배치하였다. 조직전담자를 둔 지역에는 “**지구노동조합협의회”가 결성되어 사무실을 설치해 지역노동운동을 조직-구축해왔다. 지역에 노동분쟁이 생기면 기업을 넘어 지역에 있는 노조가 지원하러 가고 노동행정에 대한 행동으로부터 반전평화운동까지 이 “지구노”가 견인했다.
지구노는 선거 때도 그 힘을 발휘했다. 지방선거, 국회의원선거 때는 돈과 사람을 공급하고 “사회당-총평 블록”을 유지해왔는데, 지금 총평은 해산하였고 사회당은 사라졌다. 일본사회에서 대항세력이 없어졌다는 이야기이기도 한다.
어쨌든 그러한 지구노 운동을 경험한 사람들이 그 정신을 계승하고 기존노조가 못하는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를 위해 코뮤니티유니온을 만들었다.
일본은 한 기업 내에 복수노조 건설이 허용되어 있기 때문에 정규직노조가 보호하지 않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코뮤니티유니온에 조직해 투쟁하는 경우가 많다. 정규직노조가 조직대상으로 간주하지 않고 처우에 관한 차별이 있어도 아무 대응도 하지 않는 사업장에서 일했던 노동자가 코뮤니티유니온에 가입한 것이다.
지금 한국노동운동이 큰 과제로 비정규직노동자 확산을 저지하고 차별철폐를 두고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일본노동운동과도 비교가 된다. 최대노총인 “연합”은 미조직노동자의 조직화를 말하지만, 기업노조 주변에 있는 비정규직노동자부터 조직할 수 있는데도, 기존 노조는 그야말로 자기 보신에 급급하다. 해마다 떨어지는 조직율은 2004년 드디어 20%를 밑돌았다. 그러한 연합 속에 들어가 비정규노동자 보호를 위한 법제정을 하자고 그동안 독자적인 움직임을 해온 코뮤니티유니온 운동 안에서, 새로운 시도를 택한 일부 코뮤니티유니온도 있다.
개인가입으로 이루어진 코뮤니티유니온은 특징이 있다. 지역에 있는 기존 노조 활동가가 개인으로 지원하는 구조다. 조합원이 되는 경우도 있고 참조회원, 후원자로 있는 경우도 있다. 원래 재정적으로 어려운 코뮤니티유니온을 재정적으로 도와주고 자기 노동운동의 경험으로 노동상담, 회사교섭, 쟁의 지도 등에 나서기도 한다. 지구노 운동의 경험을 살리는 셈이다.
노동상담을 위해서 조합원이 되는 것이 코뮤니티유니온의 현실이기도 하다. 해고, 산재, 직장내 왕따 등 여러 상담이 있는데 노조가 재정을 만드는 기회가 된다. 불이익을 당한 노동자가 코뮤니티유니온 등 합동노조에 가입하면 노조는 사업주하고 교섭을 시작한다. 사건은 최종적으로는 협정을 맺고 마무리되는데 협정서에는 “사업주는 노조에 해결금을 지급한다”라는 문항이 들어간다. 노동사건에 노조가 가입하고 사태를 수습하는 것에 대한 수수료를 요구하는 것인데 노동분쟁을 해결한 것에 대한 보수라고 할 수 있는 성격이다.
물론 해결금을 얻기 위해서는 노동사건에서 “승리”해야 한다. 극단적으로는 노조사무실이 총알에 맞거나, 노조책임자가 테러를 당하는 사례도 있는 정도로 목숨을 걸고 이겨야 한다.
여러 노동상담 속에서 산재보상상담은 비교적 쉬운 편이다. 산재를 당한 노동자가 산재신청을 요구해도 사업주 쪽이 응하지 않아 상담에 이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회사 대신 노조가 산재신청을 도와주고 산재승인이 되면 원래 소득분과 산재보상액과의 차액을 사업주에게 요구한다. 휴업급여가 평균임금 80%라서 나머지 20%를 사업주에게 요구한다. 장애가 생기면 교통사고 민사처리에서 사용되는 계산식을 이용해서 평생 손실에 대한 보상과 위자료를 청구한다. 재판에 가서 얻을 수 있는 내용이다. 여기에 산재신청을 처음부터 회사가 도와주지 않고 노조가 개입할 때까지 방치한 부분에 관한 “해결금”이 생긴다.
이것은 건설업 같은 산재은폐를 많이 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개인 상담을 조직하는 코뮤니티유니온에 대해 “노동조합이 아니다”라는 비판도 있다. 사실 자기 문제가 해결되면 노조를 떠나는 조합원도 적지 않다. 그래도 그런 개인의 노동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조직은 코뮤니티유니온 같은 형태의 노조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코뮤니티유니온은 조직 대상을 지역으로 하는 지역유니온부터 시작해 관리직유니온, 파견유니온, 청년유니온, 여성유니온, 실업자유니온 등등 여러 가지가 있다.
기업별, 정규직으로 이루어진 일본 노동운동의 현실에서, 노동운동의 미래를 이러한 코뮤니티유니온에서 찾고 싶다는 것이 그 운동 속에 있던 사람으로서 기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