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징벌적 손해배상의 개념
가해자의 불법행위가 특히 강한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고 여겨지는 경우에 법원은 가해자를 징벌하여 타인에게 보여주고자 다액의 배상금 지불을 명할 수 있는데, 이를 징벌적 손해배상(懲罰的 損害賠償, Punitive Damages)이라고 한다.
즉, 일반적인 손해배상의 요건인 고의 또는 과실을 넘어 악의에 가까운 고의를 요건으로 하여 가해자에게 발생한 손해배상을 전보함과 동시에 가해자 및 사회 일반에게 억제적 효과를 갖도록 하는 제도를 말하는 것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특히 악의에 가까운 고의 혹은 결과 발생을 의도적으로 용인하는 정도의 고의로 인한 불법행위에 대하여 통상의 손해배상 이상의 손해배상을 함으로써 법치주의를 달성할 수 있는 일반적인 효과가 있으며, 나아가 현대 사회가 국가 공권력, 대기업, 기타 힘 있는 조직과 일반 시민 혹은 소비자, 근로자 등 다수의 분산된 개인의 대결이 일상화되는 가운데 구조적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다수의 시민들의 힘을 강화하여 이들을 보호하고 나아가 사회의 실질적인 평등을 이루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2. 외국의 입법 사례
이러한 제도가 처음 실시된 곳은 영국인데, 1763년에 법원은 집행관이 불법구금을 한 사건에서 배심원이 현실의 재산적 손해를 넘는 금전손해배상을 평결할 수 있다고 판결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의 법리가 처음 판례로 나타났으나, 찬반론을 거쳐 1964년 이후에는 제한적으로만 인정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경우 1784년 징벌적 손해배상이 언급된 최초의 판결이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이에 관한 법리가 인정된 것은 19세기 중엽 이후로서 징벌적 손해배상의 법리가 법원의 판결을 통하여 적용되기 시작하였다. 현재 루이지애나, 매사추세츠, 네브라스카 및 워싱턴 4개주를 제외한 전역에서 판례에 의해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되고 있으나(루이지애나와 매사추세츠 주에서는 법률에서 명시적으로 규정한 경우에 한하여 인정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각 주마다 달라서 현재까지도 일부 주는 원고의 소송비용에 한하여 인정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의미 및 요건도 각기 다른 것이 현실이다. 최근에 들어와서 과다한 배상액 부과의 제한이 문제로 되면서 찬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3. 산재사망에서의 징벌적 손해배상의 도입 필요성
산재 사망의 경우 현재 유족들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으로 보상을 받고, 사용자는 관련 법규의 위반으로 형사처벌(주로 벌금) 되거나 보험료가 인상되는 정도로 처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사망 사고의 위험이 매우 높고 더 나아가 이미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자가 이를 그대로 방치하여 사망 사고가 발생한 경우 사용자의 고의 또는 과실을 넘어 악의에 가까운 고의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 강력한 제재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이 일정액의 벌금이 부과되고 보험료가 일부 인상되는 것으로 끝난다면(물론 위 금액은 산재사망의 보상금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 이는 근로자의 보호나 산업안전을 위해 존재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가 거꾸로 근로자의 보호나 산업안전을 훼손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한편, 2002년에 장애인이 지하철 휠체어리프트의 오작동으로 사망한 발산역 사건의 경우 사망피해자는 1급 장애인으로서 경제활동을 할 수 없어 수입이 없었으므로 일실수입에 대한 배상이 전무하였고 따라서 가해자 측의 과실이 크다고 인정됨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손해배상으로는 장례비와 일정정도의 위자료만 배상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나, 법원이 위자료를 대폭 인정하여 상당한 정도의 손해배상을 결정하였고(대법원 2005. 1. 28. 선고 2004다58338 판결), 국가공권력에 의한 불법행위의 피해자였던 수지 김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는 위자료를 대폭 인정하여 징벌적 손해배상과 유사한 결과를 낳기는 하였으나, 이러한 사례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이고 전적으로 법원의 재량에 따른 것이므로 보다 제도적인 문제해결로서 현재의 손해배상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사용자 또는 감독기관의 고의 또는 과실을 넘어 악의에 가까운 고의에 해당하거나 지속적이고 구조적인 원인에 기한 것이 분명함에도 이를 방치하여 발생한 산재 사망의 경우 관련 법규 위반에 의한 불법행위를 근절시켜 법치주의의 수준을 제고하고 사회적 약자인 근로자의 소송을 통한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것은 매우 필요하고 그 대안 중의 하나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라고 할 수 있다.
4.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시 쟁점
가.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반대론
우선, 징벌적 손해배상이 도입될 경우 기업 활동이 위축되고, 손해배상의 범위를 실제 발생하였거나 발생이 확실시되는 경제적 손실로 한정하고 있는 현재의 손해배상 제도와 상치되며(입법과정에서 가장 많이 제기되는 쟁점입니다), 현재의 손해배상 제도에서 위자료 액수의 상향 조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비판을 근거로 한 반대론이 제기되고 있다.
(1) 기업 활동 위축의 측면
기업 활동이 위축되는 측면이 있을 수 있으나 기업의 입장에서 항상 소액의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다면 일정한 정도의 불법행위를 감행할 유혹이 있기 때문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현재 한국사회의 기업에서 가장 필요한 준법의식을 제고하고 투명성을 높이는데 기여를 할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에서 발달한 징벌적 손해배상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기업 중 상당수가 미국 기업이라는 점은 기업 활동 위축이라는 비판이 부분적인 비판이라는 것을 말해는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 법률체계상 문제점이 있다는 비판
우리나라 법제는 민, 형사 책임이 분리되어 있고 징벌적 손해배상에 형사벌적인 요소가 있다는 점은 무시하기 어려우나 앞으로 기업 활동의 많은 부분이 자유화됨으로써 비형사범죄화되므로 손해배상으로 이를 규율해야 할 필요성은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일부에 한정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게 된다면 법률체계상의 문제점은 없을 것이다.
(3) 위자료 액수의 상향 조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비판
최근 위자료 액수가 상향 추세에 있는 것은 틀림없으나 아직도 지나치게 소액일 뿐 아니라 특히 다수에 대한 경미한 피해인 경우에는 위자료를 아무리 많이 인정해주어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점이 있다. 결국 위자료의 인상은 해결방식이 되지 못할 것이다.
나. 도입의 구체적 내용에 관한 쟁점
(1) 도입범위
도입에 찬성하는 측에서도 쟁점 중의 하나는 손해배상 일반에 대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할 것인가 아니면 특정한 분야에 한정하여 개별적으로 도입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며, 도입 대상을 특정 영역에 한정한다면 어떤 영역에 도입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함께 제기될 수 있다.
우선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손해배상 일반의 제도로 도입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왜냐하면 현재 손해배상 제도는 고의 또는 과실에 근거하여 책임을 묻고 있는데 그 정도가 매우 다양하므로 강화된 요건이 아니면 법관에 따라 엄청난 편차가 발생할 수 있고 나아가 소송 당사자들의 예측가능성을 낮추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우리의 손해배상 제도가 대륙법계이므로 이질적인 제도임은 틀림없으며, 따라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손해배상제도의 일반적 원칙으로 수용하는 것은 문제점이 있을 수 있으므로 그 목적에 따라 제한된 범위 내에서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된다.
대상 범위는 크게 나누어 첫째, 사회적인 강자의 고의적 불법행위에 대한 제재의 목적, 둘째, 사회적 약자가 보다 쉽게 소송제도를 통하여 손해를 전보 받고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목적 등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한편, 우리 사회에서도 사회적 강자에 의한 계속적이고 고의적인 불법행위에 대하여 제도적으로 방지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꾸준하게 논의하여 왔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특별히 도입되어야 할 분야로는 제조물 책임분야, 기업에 의한 환경 침해, 증권거래 분야, 특허?지적재산권 침해 분야, 의료과오 소송, 인권침해 소송, 소비자 소송, 언론에 의한 명예훼손, 기타 음주운전 관련 부분 등이 거론되고 있으며, 노동법 분야에서는 특히 지속적인 부당노동행위 및 악질적인 부당 해고, 고의적인 임금 체불의 경우에 그 필요성이 제기될 수 있다. 현재 제조물 책임분야, 기업에 의한 환경 침해, 노동법 분야(특히 지속적인 부당노동행위 및 악질적인 부당 해고, 고의적인 임금 체불), 증권거래 분야, 특허?지적재산권 침해 분야, 의료과오 소송, 인권침해 소송, 소비자 소송, 언론에 의한 명예훼손 등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특별히 도입되어야 할 분야로 거론되고 있다. 산재 사망에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아마도 위에서 거론한 특정 영역 중 노동법 분야에 도입하는 것이 될 것이다.
(2) 손해배상액수
손해배상액수에 대해서는 미국의 예와 같이 일정한 한도를 정하는 것이 예측가능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구체적으로는 손해배상 액수의 2배 내지 3배를 원칙으로 하고, 구체적인 개인의 손해 액수가 적은 경우는 일정한 금액을 한도로 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2배와 3배 사이에서 법관이 소송자료를 보고 판단하는 방안을 채택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또한 인권관련 소송이나 소비자 소송의 경우에는 변호사 보수를 패소자 측에서 전액 부담하는 방식을 도입하여야 하며, 여기에서 변호사 보수란 원고 측에서 실제로 지급하는 구체적인 액수가 아니라 변호사의 노력에 대한 실비용 정산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며, 변호사 보수로 변호사의 활동이 가능하도록 할 정도여야 할 것이다.
(3) 손해배상금 수령자
징벌적 손해배상의 수령자가 구체적인 개인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이 있는데, 이는 소송이라는 행위를 감행하는 위험은 있으나 그 위험이 손해배상의 수배에 이르는 금전적인 보상과 같은 수준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에 대해서는 제한된 금액만을 지급하고 나머지는 사회단체나 혹은 지방자치단체, 법률관련 단체의 공공기금 등 공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도입하여야 할 것이다.
5. 산재사망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의 구체적인 방향
가. 산재 사망에 대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는 경우
첫째, 징벌적 손해배상에 관한 특별법을 만들어 그 산재 사망에 특별법이 적용되도록 하는 방법과 둘째, 근로기준법 제8장 재해보상 부분에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한 규정을 신설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특별법을 만드는 경우 특별법의 적용범위에 산재 사망이 포함되도록 하면 될 것이나, 모든 산재 사망에 대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할 것이 아니라 그 중에서도 특별히 고의 또는 과실을 넘어 악의에 가까운 고의에 해당하거나 지속적이고 구조적인 산재 사망 위험이 있는 것이 분명함에도 이를 알면서 방치하여 발생한 산재 사망의 경우에 한정하여 적용되도록 하는 규정을 두어야 할 것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한 규정을 신설하는 경우에도 위에서 검토한 내용들을 새로운 규정으로 만들어 추가하여야 할 것이다.
나. 구체적인 방안
어느 경우에나 손해배상액수의 상한은 실손해액의 2 내지 3배로 하고, 실손해배상액수가 적을 경우 최고액으로 결정하도록 하고, 당사자(유족)는 일부분(실손해액의 1.5배 정도)만 수령하고 나머지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소정의 과 같은 공공기금으로 활용하도록 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근로기준법에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한 규정을 신설하는 경우 다른 재해보상 규정들-특히 제85조(유족보상) 및 제86조(장의비)에 구애받지 않고 손해배상액을 산정하도록 규정되어야 할 것이다. 제90조(다른 손해배상과의 관계)는 징벌적 손해배상의 징벌적 의미를 고려하면 배제하여야 할 것이나, 이중 부담을 초래할 수 있고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취지에 비추어 징벌적 손해배상에도 적용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