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체류자 단속에 가스총ㆍ그물총 동원”

[프레시안 2006-08-18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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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권태욱/기자] 이주 노동자의 지위와 근로조건을 개선하려는 의도에서 도입된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지 2 년이 지났지만, 국내 이주 노동자들은 여전히 열악한 근로조건과 불안한 법적지위에 시달리고 있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국제앰네스티는 1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이 2003년 8월에 고용허가제를 도입해 아시아 최초로 법적으로 이주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려고 한 것은 높이 살 만하지만 아직도 이주 노동자들의 지위 개선은 기대만큼 이루어지지 않았다”면서 △ 산업연수제도의 즉각적인 폐지 △ 사업장 이동제한 해제 △불법이주노동자 단속 중단 △이주 노동자 권리보호를 위한 국제협약 비준 등의 조치를 한국 정부가 즉각 시행할 것을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선 각계 인사 1014명이 참여한 ‘이주 노동자 단속 추방 중단, 노동권 쟁취, 전면 합법화를 위한 1000인 선언’이 발표되기도 했다.

이주 노동자 34만명 중 불법체류자 18만명

앰네스티 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 현재 국내 이주 노동자의 숫자는 34만4000명. 이중 55퍼센트에 달하는 18만9000명이 소위 불법체류자로 불리는 ‘미등록 외국인노동자’의 신분으로 지내고 있다.

우리나라에 이주노동자들이 공식적으로 취업하기 시작한 것은 1993년. 하지만 이들은 노동자가 아니라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해 노동자로서의 기본적인 법적 보호를 받지 못했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고자 도입한 것이 고용허가제다. 하지만 기존의 산업연수생 제도를 폐지하지 않고 두 제도를 함께 시행함으로써 정부는 새 제도 도입의 효과를 약화시켰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산업연수생 제도의 존치로 인해 이주 노동자의 열악한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있으며, 고용허가제도의 도입이 원래 의도했던 이주 노동자의 입국 비용 절감, 불법체류자 감소, 근로조건 개선 등의 효과는 기대치에 훨씬 못 미친다는 것이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 일하는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공통된 평가다.

앰네스티 보고서는 국내 이주 노동자들은 여전히 임금체불, 열악한 근로조건에 시달리고 있으며, 많은 여성 노동자들은 성폭력과 성추행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주 노동자의 3분의 1이 여성 노동자들이다.

사업장 이동 제한 때문에 정당한 권리 주장 못해

특히 이주 노동자 단체 관계자들은 사업장 이동제한이 현행 고용허가제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천응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대표는 “고용주의 부당 노동행위로 이주 노동자가 회사를 옮기려고 해도 고용주의 잘못을 입증하지 못하면 거꾸로 고용주가 ‘근무지 이탈’로 신고해 불법체류자가 된다”며 “이 때문에 많은 이주 노동자들이 정당한 권리주장을 포기하고 지낸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주 노동자들이 자기 비용을 들여 한국어 교육은 받는데 노동자로서 자신들의 권리에 대해서는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하고 입국하는 것도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최준기 대표는 “이주 노동자들의 한국어 교육도 매우 부실하다”며 “한국어 학원을 수료했지만 자신의 월급도 계산할 줄 모르는 이주 노동자들을 무수히 만났다”고 밝혔다.

또 이주 노동자들이 한국에 취업하는 과정에서의 비용을 줄이는 게 고용허가제 도입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였지만 지금도 그 폐단은 여전하다.

안와르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조합 위원장은 “한국에 취업하기 위해서 1000만 원의 비용을 들인 사람도 있다”며 “많은 노동자들이 1인당 400만~500만 원의 비용을 들여 한국에 취업한다”고 말했다.

박천응 대표는 또 정부가 고용허가제 이행의 사후관리기관으로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농협, 수협 등 기존 산업연수 추천업체를 지정하려고 하는 움직임에 대해 비판했다. 그는 “지난 13년간 이주 노동자 인권 침해에 무관하다고 할 수 없는 연수추천업체가 고용허가제 사후관리기관으로 지정되는 것은 도로 산업연수생제로 돌아가는 것”이라면서 정부가 고용허가제의 사후관리업무를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년 동안 5만명 이주 노동자 강제 추방”

이들은 또 정부의 외국인 불법체류자에 대한 체포와 강제 추방 과정에서 인권 침해가 일어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지난 2003년 11월부터 불법체류자에 대한 체포와 강제 출국 작업을 지속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안와르 위원장은 “가스 총, 그물 총을 동원해 이주 노동자들은 짐승처럼 잡아가는 등 단속 과정이 매우 야만적”이라면서 “체포 과정에서 부상을 입은 사람이 치료도 받지 못하고 비행기에 태워지는 사례도 있다”고 주장했다. 안안와르 위원장은 “올해만 2명의 이주 노동자가 단속 추방 과정에서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주 노동자 단속 추방 중단, 노동권 쟁취, 전면합법화를 위한 1000인 선언’도 “법무부는 지난 2년 동안 무려 5만여 명의 이주 노동자를 강제 추방했다”면서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단속 추방을 즉각 중단하고 모든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합법화할 것”을 요구했다.

이날 선언에는 전재환 금속산업노조연맹 위원장을 포함한 노동계 535명, 문성현 대표를 비롯한 민주노동당 90명, 김세균 교수 등 학계 106명, 김정헌 문화연대공동대표 등 문화예술계 34명, 이영 민가협 상임의장 등 시민사회단체 73명,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백승헌 회장 등 법조계 152명, 권오성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공동의장 등 종교계 24명 등이 참여했다.

권태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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