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을 가다] 퀵서비스 노동자들을 만나
매일노동뉴스 김미영 기자
퀵서비스 노동자만 아는 전문용어
“79번 구내바리 45”/“48”
해석하면 “79번 기사가 가까운 곳에서 대기 중”/“정확히 못 들었다. 재송신하라”는 뜻이다.
속도와 정확성은 퀵서비스 노동자들에게 필수적인 요소다. 무전기와 핸드폰을 이용해 회사로부터 업무지시를 받다보니 퀵서비스 노동자들만 사용하는 은어가 따로 있다. 대표적인 몇가지만 소개하면 △구내바리→가까운 지역 △45→대기 중 △46→정확히 수신했는가 △47→정확히 수신했다 등이 있다.
퀵서비스 노동자의 직업병과 산재보상
퀵서비스 노동자들은 주로 교통사고로 인한 상해, 반복작업에 의한 근골격계질환, 매연노출에 따른 폐질환과 호흡기질환 등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의 직업병에 대한 국내 연구는 전무하다. 근로실태조사도 찾아보기 어렵다. 시민단체인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좋은기업만들기팀이 지난 2006년 퀵서비스 노동자 60명에 대한 설문조사와 심층면접을 실시한 게 유일한 근로실태조사다. 이에 따르면 10명 중 9명이 교통사고를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대전환경운동연합의 조사에 따르면 이산화질소 인체노출 정도가 가장 심한 직업이 퀵서비스 기사로 나타났는데, 배기가스는 퀵서비스 노동자의 생식기계통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2004년 6월 KBS 추적60분(‘서울 탈출 러시, 그들은 왜 서울을 떠나는가’)에 의해 공해 노출빈도가 높은 퀵서비스 노동자의 경우 정자 활동성이 현저히 저하되고 형태도 기형적인 사실이 보도되기도 했다.
직업병 노출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퀵서비스 노동자들은 산재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오는 7월부터 골프장 경기보조원과 레미콘기사 등 4개 직군 특수고용직들은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지만 퀵서비스 노동자들은 여전히 제외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난해 서울행정법에서 ‘오토바이 퀵서비스 기사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근로복지공단이 산재요양을 불승인한 것은 위법하다’는 판결(서울행법 2006구단10552)을 내려 주목된다. 이 사건은 내려 주목된다. 이 사건은 공단의 항소로 현재 서울고등법웝에 계류 중이다.
퀵서비스업 영업실태와 노동조건은?
“사각지대에서도 사각지대”
“퀵서비스 노동자들은 법의 사각지대 안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김창현(44) 서비스연맹 퀵서비스노조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현행법에서 퀵서비스 운송업에 대한 규정은 단 한 줄도 찾아볼 수 없다.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에서는 화물자동차의 종류를 규율하고 있지만 이륜자동차는 빠져 있다. 따라서 엄격한 의미에서 이륜자동차를 이용해 소화물을 배송하는 것은 무법상태에서 영업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함께하는시민행동 좋은기업만들기’ 신태중 팀장에 따르면 현재 영업 중인 회사 10개 중 9개는 사업자 허가를 내지 않고 불법영업을 하고 있다.
퀵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도 없다. 사업주와 관계도 매우 불평등한 구조다. 보통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작성하는 근로서약서(지입약정서)를 작성하는데 물품파손이나 분실, 운송지체로 인한 책임을 기사가 부담하며, 일정기간에 따라 납부하는 알선료도 일방적으로 액수만 정해져 있을 뿐 그에 따른 배송물량 확보는 규정하지 않고 있다.
또한 중간에 일을 그만둘 때, 선불로 납입한 알선료를 반환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결근시 벌금과 퇴사 등의 벌칙조항도 두고 있다. 심지어 서약서상에 배송책임 부담과 약정사항을 어길시 모든 민·형사상 책임을 기사가 진다는 조항을 둔 업체도 있다. 김창현 위원장은 “부당대우를 받고 있어도 퀵서비스 노동자들은 조직적으로 뭉치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같은 지입차주인 덤프나 화물노동자들은 차값으로 1억원을 넘게 투자하기 때문에 유일한 생계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는 반면 오토바이 하나로 시작하는 퀵서비스 노동자들은 잘못된 관행을 고쳐나가기보다 이곳에서 빨리 탈출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