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다중의 활력과 지성 그리고 희망을 담아내는 [도서출판 갈무리]입니다. 『비물질노동과 다중』 출간 안내와 관련 정보를 담았습니다. 더 상세한 정보가 필요하시면 02)325-1485로 연락주세요. 감사합니다.

물질적 생산물의 생산에서 사회적 주체성의 생산으로 변화한
우리 시대의 노동과 그것의 정치철학적 의미에 대한 심원한 분석서

비물질노동과 다중

‘정보사회, 탈산업사회, 주목경제, 포스트포드주의란 무엇인가?’
에 대한 자율주의의 응답

정동은 행동 능력의 연속적인 변이이다. -질 들뢰즈
정동이 ‘행동할 능력’으로 정의되는 한에서, 노동은 정동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한다. -안또니오 네그리
비물질노동의 개념은 의사소통의 생산과 재생산, 주체성의 생산과 재생산, 생산적 협력의 확장을 전제하고 또 초래한다. -마우리찌오 랏짜라또
대중지성은 살아 있는 주체들의, 그리고 그들의 언어적 협력의 분할불가능한 지식의 저장고이다. -빠올로 비르노
정동적 노동이 생산하는 것은 사회적 네트워크들, 공동체의 형태들, 삶능력이다. -마이클 하트
구성의 시간에서 영원의 살은 새로운 몸으로 구성되고 뜻은 새로운 때와 곳으로 실현된다. -조정환
재특이화란, 모든 것이 계속적으로 재창안되고 처음부터 시작되는 원리이다. -정남영
‘우리 모두 함께 결정합시다!라고 말하는 시간’, 이것이 혁명의 시간이자 코뮤니즘의 시간이다. -승준

□ 도서명 : 『비물질노동과 다중』
□ 지은이 : 질 들뢰즈, 안또니오 네그리, 마우리찌오 랏짜라또, 빠올로 비르노, 마이클 하트, 조정환, 정남영, 승준
□ 옮긴이 : 서창현, 김상운, 자율평론번역모임
□ 판형 : 변형신국판(145*215mm) | 제본 : 무선| 쪽수 : 400쪽 | 정가 : 16,000원
□ 발행일 : 2005년 5월 20일 | ISBN : 89-86114-79-8 04300

포괄적 소개 : 비물질노동은 ‘제국’과 ‘다중’의 생산 조건이다.

『제국』의 출간 이후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려는 노력들은 늘어났다. ‘제국주의에서 제국으로’, ‘민중에서 다중으로’의 이행은 명백하게 선언되었다. 하지만 아직 그 구체적 실상은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 작업은 수많은 사람들의 공동작업과 정신적 협력을 통해서 비로소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삶정치(biopolitics), 보장소득(guaranted income), 전 지구적 시민권 등에 정치적이고 실천적인 주제에 대한 상세한 규명이 필요한데, 이 주제들은 현대의 생산조건인 노동과정에 대한 해명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는 깊이 있게 해명될 수 없다.
근대화 과정에서 삶으로부터 극단적으로 분리되었던 노동이 탈근대화 과정에서는 오히려 삶과 중첩되고 있다. 물질노동(산업노동)은 삶과 대립하면서 발전되었지만 비물질노동(탈근대의 노동)은 물질노동이 노동 밖으로 배제함으로써 이용했던 삶의 미시적 활동들을 노동 속으로 끌고 들어왔다. 그리하여 이제 노동은 인간의 ‘활동적 삶’과 ‘정신적 삶’ 모두를 포괄하는 보편적 범주로 확장되었다. 이 책은 비물질노동의 두 축인 정동노동(1부)과 지성노동(2부)을 다각도로 분석한 후 ‘다중’이라는 새로운 주체성의 형성에 비물질노동이 미치는 영향관계를 탐사한다(3부).

상세한 소개 : 이 책의 특징

1) ‘신자유주의, 포스트포드주의, 정보사회, 탈산업사회, 위험사회, 네트워크 사회, 블러경제, 신경제, 주목경제’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의 응답을 보여준다.
1980년대 이후 자본의 지배전략은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 사이에서 진동하며, 생산과정은 포스트포드주의에 의해 주도된다. 많은 주류 경영학자와 경제학자들은 현대 경제에 신경제, 주목경제, 블러(blur)경제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사회학자들은 현대 사회를 정보사회, 탈산업사회, 위험사회, 네트워크 사회 등으로 부른다. 이 책은 이 지배전략과 생산전략, 그리고 경제체제와 사회체제의 비밀을 사회의 저 깊은 심층에서 출현하고 있는 변화에서 찾는다. ‘물질노동의 헤게모니에서 비물질노동의 헤게모니’로의 노동형태의 변화가 그것이다. 이것은 비물질노동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양적으로 물질노동을 수행하는 사람들보다 많다는 뜻이 아니라 비물질노동이 부상하면서 물질노동조차도 서비스화되면서 비물질노동화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비물질노동화는 흔히 서비스노동, 지식노동, 소통노동, 감정노동 등의 증대로 나타난다. 노동의 헤게모니적 형태의 이러한 변화가 정보사회, 탈산업사회, 위험사회, 네트워크 사회를 가져오며 노동구획, 생산물 구획, 소유구획 등 다양한 근대적 구획들이 흐려지는 블러경제를 출현시키고 생산물보다는 시선을 끄는 유혹과 주목이 경제행위의 초점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자본의 신자유주의화는 노동형태의 이런 변화를 추적하면서 포획하기 위한 전략형태로 출현하게 된다. 그러므로 비물질노동의 부상이야말로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거대한 변화의 비밀인 셈이다.

2) ‘정동(affect)’이란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며 그것의 사회적 의미를 밝힌다. 집안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며, 남편과 가족을 뒷바라지하는 활동은 우리 삶의 거대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가사’라고 불려온 이 활동이 노동으로 편입된 것은 여성운동의 발전과 가사의 사회화 때문이었다. 이 돌봄의 노동은 흔히 ‘감정노동’으로 불려져 왔다. 이 책은 감정, 정서, 정감, 감화, 감응 등으로 불려온 것들이 실은 affect(정동)의 경험적이고 현실적인 현상형태들이었음을 규명한다. 이를 통해 이 책은 역사적으로 오래되었으나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이 감정노동에 대한 논의를 잠재성과 현실성의 이중운동 속에 위치짓고 이 노동의 심원한 잠재력을 규명한다. 질 들뢰즈의 120여 쪽에 달하는 「정동이란 무엇인가?」는 스피노자를 통해 ‘정동’ 개념을 철학사적으로 조명하며 매우 쉬운 강의조의 설명을 통해 누구나 정동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한 설명을 제공한다. 마이클 하트의 「정동적 노동」은 철학사적으로 조명된 정동 개념에 기초하여 현대의 정동적 노동의 의미를 규명한다.

3) 비물질노동의 부상과 더불어 ‘가치법칙’이 더 이상 자본주의 사회를 정당화하는 기능을 하지 못함을 밝힌다. 전통적으로 노동시간은 가치의 척도로 간주되어 왔고 이것은 그 내부의 등가원리에 의해 자본주의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일한 만큼 번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그러나 생산의 주체가 직접적으로 집단적이며 사회적인 노동주체인 다중으로 변하면서 더 이상 노동시간을 측정할 수 없고 척도가 무용해지고 있다. 이것이 안또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빠올로 비르노, 마우리찌오 랏짜라또, 조정환 등 여기에 실린 대부분의 글들이 한결같이 밝히고 있는 바이다. 더 이상 가치론을 경제적 질서의 맥락 속에서 발전시킬 가능성은 없다. 즉 가치를 구체적 노동의 척도로 고려할 가능성은 사라졌다. 이러한 변화로 인한 어려움의 경제적 결과들은 그것의 인류학적이고 사회학적인 전제들 만큼이나 중요하다. 이 책은 가치법칙을 벗어나서 삶의 밑바닥으로부터 가치론을 변형시킬 인류학적이고 사회학적인 전제들을 규명한다.

4) 지식, 정보, 소통이 사유재나 공공재와는 다른 공통재를 창출하고 있음을 밝힌다. 비물질노동의 대표적 이론가인 랏짜라또의 글들은 맑스가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서 제시한 ‘일반지성’ 개념이 현대에 현실화되었다고 보면서 그것을 ‘정신들의 협력’으로 재정의한다. 지성들 사이의 협력은 무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내고 배포하는 것에서 보이듯 공동-창조와 공동-실현의 힘을 표현한다. 랏짜라또는 이러한 협력이 스스로를 표현하기 위해 더 이상 회사나 자본가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오히려 과학기술적인 장치들과, 소통네트워크들의 개발과 보급, 교육과 부 및 ‘주민’과 관계되는 여타의 서비스 체계들의 확장에 의존할 뿐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오늘날 창조하고 실현하는 협력의 힘은 ‘공통재’(과학, 지식, 인터넷, 건강 등등)의 이용가능성과 접근가능성에 의존함을 밝힘으로써 새로운 세계가 나아갈 길을 밝혀준다.

5) 새로운 주체성의 형성 동력을 밝힌다. 다중은 이제 비물질노동을 통하지 않고는 설명될 수 없다. 일반지성과 대중지성, 공통재, 비물질노동의 네트워크 등은 영원히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재특이화(re-singularization)[정남영], 새로운 시간의 화살[조정환]의 바탕이 된다. 공통성과 특이성의 이 역동적 결합 속에서 다중은 우리 시대의 계급 개념이자 새로운 조직화의 기획으로 제시된다. 이 책은 이 새로운 주체성 형성의 동력이 바로 물질노동에서 비물질노동으로의 이행 속에 있음을 밝힌다. 탈근대사회가 더 이상 ‘상품들의 더미’로 파악될 수 없고 ‘상품들의 네트워크’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전제 위에서 ‘상품들의 네트워크’를 어떻게 상품형태를 벗어난 ‘정동들과 지성들의 네트워크’로, ‘협력의 자율적이고 확장적인 운동’ 그 자체로 전환시킬 것인가가 이 책에 수록된 모든 글들에서 탐구되고 있다.

6) 집단적이고 공동적인 이론형성의 모범을 보여준다. 이 책은 ‘맑스, 왜 희망인가’라는 주제로 열리는 제2회 맑스코뮤날레(2005년 5월 27일∼29일, 건국대 법과대학)에 맞추어 출간됐다. 이 책의 주제인 이 자율평론 주관하에 심층토론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이 대회에서 발표될 논문들과 필수적으로 참고해야 할 논문들이 번역 수록되어 있는데 이것들은 지난 1년 반 동안 자율평론 회원들이 공동으로 작업한 성과이다. (1)주제의 실천적 긴급성에 따라 공동으로 주제를 결정하고[2004년 1월] (2)관련 주제에 대해 7개월 이상의 공동학습을 진행했으며[2004년 1월 ∼7월] (3)주요 문헌에 대한 전문강의를 듣고[2004년 7월∼8월], (4)집필자를 결정 한 후 집필을 위한 심화학습을 수개월간 진행하고[2004년 8월∼2005년 1월] (4)집필초고를 가지고 대중강의를 조직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청취하고[2005년 1월∼2월] (5)단행본 발간을 위한 게릴라 모임을 만들어 원고를 수정하는 한편, 누구에게나 반드시 필요한 필수적인 글들을 번역하는 과정을 거쳐[2005년 3월∼5월] 이 책은 탄생되었다. 이 책은 집단적이고 공동적인 이론 작업의 하나의 모범적 사례를 보여줄 것이다.

이 책의 구성

이 책은 『제국』 제3부 생산의 이행에서 스케치되었지만 구체적이고 상세한 논의가 부족하여 아쉬움을 더해주던 ‘비물질노동’에 대한 구체적이고 다각적인 분석이다. 이 분석을 위해, 칼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가브리엘 타르드의 경제심리학, 질 들뢰즈의 포스트구조주의철학, 안또니오 네그리의 자율주의 정치철학, 페미니즘의 가사노동이론, 그리고 정보사회론과 네트워크 이론 등이 광범위하게 동원된다.
1부의 첫머리에는 ‘정동’에 관한 질 들뢰즈의 연속강의가 배치되었다. 이 강의는 비물질노동의 핵심주제인 ‘정동’이 무엇인가를 철학적 맥락에서 구체적이면서 알기 쉽게 설명해 준다. 이에 이어지는 마이클 하트의 글은 여성노동으로부터 삶정치적이고 해방적인 힘을 읽어내면서 정동적 노동의 의미를 설명하며 안또니오 네그리의 글은 정동의 문제에서 전통적 가치론이 직면하는 한계를 분석한다.
2부에는 비물질노동의 대표적 이론가인 마우리찌오 랏짜라또와 『다중』(갈무리, 2004)으로 주목을 끈 빠올로 비르노의 글이 배치되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의 재독해를 통해 탈근대사회를 이해하려는 이탈리아 자율주의 운동의 이론적 고투를 읽어볼 수 있다. 일반지성이라는 맑스 개념의 재해석으로부터 현대 생산의 새로운 특질과 새로운 주체성의 잠재력을 탐구하려는 노력 속에서 지적 생산의 문제는 초미의 화두가 된다. 하지만 1부와 2부를 양자택일적 선택의 문제로 읽기보다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읽도록 권하고 싶다. 왜냐하면 2부의 마지막 줄인 「자본-노동에서 자본-삶으로」(마우리찌오 랏짜라또)에서 우리는 이 두 경향의 내밀한 접근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3부에는 새로운 주체성, 미적 생산, 시간의 재구성의 문제를 실마리로 비물질노동 개념을 발전시켜 보려는 우리 나름의 이론적 개입을 담았다. 승준의 글은 객관주의에 의해 침윤된 전통적 맑스주의 관점들이 비물질노동 개념을 이해할 수 없게 되는 이론적 메커니즘을 드러내면서 비물질노동 개념이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담론과 맺는 연관성을 밝히는 한편, 비물질노동이 코뮤니즘적 주체성의 잠재력임을 규명한다. 정남영의 글은 ‘전례 없는 존재의 질을 생성하는 것’이며 ‘모든 것이 처음부터 시작되는 원리’로서의 ‘재특이화’를 미적 생산의 핵심 원리로 제기한다. 조정환의 글은 ‘힘’으로서의 시간에 대한 이중의 부정―시간의 공간화(사물화)와 시간의 초시간화(신비화)―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시작을 부단히 가능케 하는 영원의 화살로서의 ‘때(時)’에 기초한 구성의 시간을 제안한다.

글쓴이와 옮긴이 소개

[글쓴이]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95)
소르본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1969년부터 파리 제8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주요저서로 『베르그송주의』, 『주름』, 『차이와 반복』, 『의미의 논리』,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 『안티오이디푸스』, 『천 개의 고원』 등이 있다.

안또니오 네그리(Antonio Negri, 1933∼ )
소르본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1969년부터 파리 제8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주요저서로 『베르그송주의』, 『주름』, 『차이와 반복』, 『의미의 논리』,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 『안티오이디푸스』, 『천 개의 고원』 등이 있다.

빠올로 비르노(Paolo Virno, 1950∼ )
이탈리아의 나뽈리 출생으로 1970년대의 자율주의 운동에 참가했다. 1997년부터 이탈리아 깔라브리아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 윤리학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습관과 유물론』, 『말 중의 말: 언어의 힘과 한계』, 『현재의 기억: 역사적 시간에 관한 시론』, 『엑소더스의 실행』, 『다중』 등이 있다.

마우리찌오 랏자랏또(Maurizio Lazzarato)
1980년대 초에 프랑스로 망명하여 파리 제8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패러다임, 정보기술, 그리고 비물질적 노동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다중』지의 창간 발기인이자 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비디오 철학』, 『비물질적 노동과 주체성』, 『발명의 힘들』, 『자본주의의 혁명』 등이 있다.

마이클 하트(Michael Hardt, 1960∼ )
1990년 질 들뢰즈 연구로 워싱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듀크대학 문학과 소설 연구학부 교수로 있다. 주요저서로는 『들뢰즈 사상의 진화』 외에 안또니오 네그리와 공저한 『디오니소스의 노동』, 『제국』, 『다중』 등이 있다.

조정환(Joe Jeong Hwan, 1956∼ )
서울대학원 국문과에서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전공하고 노동해방문학운동에 참가했다. 현재 성공회대에서 맑스주의 역사와 탈근대사회이론을 강의하고 있다. 주요저서로 『노동해방문학의 논리』, 『지구제국』, 『21세기 스파르타쿠스』, 『아우또노미아』, 『제국기계 비판』 등이 있다.

정남영(Chung Nan Young, 1958∼ )
서울대학원 영문학과에서 디킨즈 소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경원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주요저서로 『리얼리즘과 그 너머』가 있고 『현대철학의 두 가지 전통과 마르크스주의』를 번역했으며 『문학이론입문』, 『전 지구적 자본주의에 눈뜨기』를 공역했다.

승준(Seung-Jun, 1976∼ )
동국대학교와 동국대학원에서 현대철학을 전공했고 안또니오 네그리의 시간 개념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 다중네트워크 탈근대맑스주의세미나 길잡이, 자율평론 간사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논문으로 「성매매금지와 여성해방」, 「현대의 역설과 다중의 자율적 삶」 등이 있다.

[옮긴이]
서창현(Seo Chang Hyun, 1966∼ )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교원대학교 대학원에서 현대문학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 다중네트워크센터에서 들뢰즈미학세미나 길잡이 넷터로 활동하고 있다. 공역서로 『서유럽 사회주의 역사』, 『들뢰즈의 철학사상』, 『사빠띠스따』 가 있고 웹저널 『자율평론』에 여러 편의 번역글을 발표했다.

김상운(Kim Sang Woon, 1969∼ )
경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맑스, 푸코, 들뢰즈-가따리, 네그리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현재 학술모임 ‘자유정신’의 회원. 공역서로 『들뢰즈 사상의 진화』가 있고 웹저널 『자율평론』에 여러 편의 번역글을 발표했다.

자율평론번역모임
정남영 교수의 지도하에 2001년 이후로 칼 맑스, 안또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해리 클리버, 스티브 라이트 등 자율주의적 맑스주의 문헌들을 번역하여 웹저널 『자율평론』에 기고하고 있는 모임이다.

[서문]

이 책에서 우리는 탈근대성을 ‘비물질노동’의 개념을 통해 이해하려고 한다. 제국과 다중은 종종 마주보고 달리는 두 열차처럼 오해되곤 했다. 이 책에서 우리는 비물질적 노동의 헤게모니하에서 이루어지는 노동과정의 탈근대적 재구성 과정이 제국 및 다중과 맺고 있는 복합적 관계를 해명하려고 한다. 이 시도는 불가피하게 기존의 두 가지 통념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로, 비물질노동 개념은 가치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노동형태의 출현을 시사하며 가치 관념 그 자체의 전환을 예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가치법칙의 운명과 맑스주의의 운명을 동일시하려는 20세기의 주류 맑스주의 전통들의 통념과 충돌한다. 정당이나 대학의 현실주의적 요청에 따라 오랜 시간에 걸쳐 ‘정치경제학화’한 결과, 철학 비판이자 정치학 비판으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치경제학 비판으로 정립된 맑스의 비판적 영혼을 묻어버린 이 전통적 관점으로부터의 분리 없이 맑스주의의 혁신은 불가능하다. 둘째로, 비물질노동 개념은 탈근대에 노동이 수행하는 근본적 역할을 탐구한다. 따라서 이것은 노동의 종말 혹은 역사의 종말이라는 입장에서 맑스주의 일반의 시효상실을 주장하는 탈근대주의적 통념과 충돌한다. 오늘날 탈근대주의는 지구제국의 환타지적 요청에 따라 시간과 역사를 신비화하면서 명령으로서의 가치를 정당화하는 것에 복무한다. 이 탈근대적 신비주의의 동력학의 규명과 그것으로부터의 탈출 없이는 ‘무엇을 할 것인가?’의 문제에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비물질노동’에 대한 논의의 역사는 오래 되었다. ‘비물질적 생산’에 대한 맑스의 분석을 제외하더라도, 실제로는 1950년대의 탈산업사회 논쟁부터 이 문제가 토론되어 온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물질노동’이라는 개념으로 새로운 노동형태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1980년대 이후 이탈리아 자율주의 운동의 이론적 발전 맥락 속에서 실험적으로 논의되어 왔다. 이 책의 편집체제 속에서 우리는 그간 지식(knowledge)과 정보(information)와 소통(communication) 활동을 중심으로 논의되어 온 비물질노동에 대한 논의구조를 정동(affect)을 중심으로 재편성할 필요가 있음을 암시했다. 역사적 실천과정에서 정보매체운동과 페미니즘운동의 긴장으로 나타났던 이 긴장은 일반지성인가 대중지성인가를 둘러싼 논의 속에서 부분적으로 표현되어 왔던 것이다. 이 긴장 속에서 우리가 정동에 좀더 강조점을 두려고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이 측면이 소홀히 되어 왔다는 점 외에도 오히려 정동이 지식, 정보, 소통, 정감 등을 아우르는 깊이의 층위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이다.
1부의 첫머리에 정동에 관한 질 들뢰즈의 연속강의를 배치한 것은 이러한 생각과 무관하지 않다. 이 강의는 비물질노동의 핵심주제인 ‘정동’이 무엇인가를 철학적 맥락에서 구체적이면서 알기 쉽게 설명해 준다. 이에 이어지는 마이클 하트의 글은 여성노동으로부터 삶정치적이고 해방적인 힘을 읽어내면서 정동적 노동의 의미를 설명하며 안또니오 네그리의 글은 정동의 문제에서 전통적 가치론이 직면하는 한계를 분석한다.
2부에서는 마우리찌오 랏짜라또와 빠올로 비르노의 글을 배치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의 재독해를 통해 탈근대사회를 이해하려는 이탈리아 자율주의 운동의 이론적 고투를 읽어볼 수 있다. 일반지성이라는 맑스 개념의 재해석으로부터 현대 생산의 새로운 특질과 새로운 주체성의 잠재력을 탐구하려는 노력 속에서 지적 생산의 문제는 초미의 화두가 된다. 하지만 1부와 2부를 양자택일적 선택의 문제로 읽기보다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읽도록 권하고 싶다. 왜냐하면 2부의 마지막 줄인 「자본-노동에서 자본-삶으로」(마우리찌오 랏짜라또)에서 우리는 이 두 경향의 내밀한 접근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3부에는 새로운 주체성, 미적 생산, 시간의 재구성의 문제를 실마리로 비물질노동 개념을 발전시켜 보려는 우리 나름의 이론적 개입을 담았다. 승준의 글은 객관주의에 의해 침윤된 전통적 맑스주의 관점들이 비물질노동 개념을 이해할 수 없게 되는 이론적 메커니즘을 드러내면서 비물질노동 개념이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담론과 맺는 연관성을 밝히는 한편, 비물질노동이 코뮤니즘적 주체성의 잠재력임을 규명한다. 정남영의 글은 ‘전례 없는 존재의 질을 생성하는 것’이며 ‘모든 것이 처음부터 시작되는 원리’로서의 ‘재특이화’를 미적 생산의 핵심 원리로 제기한다. 조정환의 글은 힘으로서의 시간에 대한 이중의 부정―시간의 공간화(사물화)와 시간의 초시간화(신비화)―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시작을 부단히 가능케 하는 영원의 화살로서의 ‘때(時)’에 기초한 구성의 시간을 제안한다.
이 책의 키워드 중의 하나는 ‘정동’(情動)이라는 용어이다. 우리는 이것을 라틴어 affectus, 영어와 불어의 affect에 상응하는 말로 사용했다. 네그리․하트와 들뢰즈․가따리의 저작에서 주요하게 사용되어 온 이 용어는 ‘변양’(『천 개의 고원』), ‘정서’(『제국』), ‘감화’(『시네마․1』), ‘정감’(『영화․1』), ‘감응’(『질 들뢰즈』) 등 여러 용어로 번역되어 왔다. 이런 가운데 ‘정동’이라는 용어를 더하는 것이 혼란을 부채질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는 이 가중되는 해석상의 혼란을 전진을 위한 디딤돌로 만들고 싶다. 우리가 주로 정신분석학이나 심리학에서 사용되는 ‘정동’이라는 다소 거친 용어를 선택하는 이유는 잠재성의 술어인 affectus=affect와 현실성의 술어인 affectio=affection을 엄격히 구분하지 않고는 스피노자, 니체, 베르그송, 들뢰즈, 네그리 등에 의해 발전되어온 잠재성(virtuality)의 사유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고 또 새로운 개념창조에 커다란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게다가 affect-affection은 percept-perception과 actaction을 연결하는 존재론적 의미망 속에서 파악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정동’을 ‘비재현적 사유양식’으로, ‘확장적인 행동의 힘’, ‘자유의, 존재론적 개방의, 전 방위적 확산의 힘’으로 이해한다. 이에 비추어보면 지금까지 affect에 해당하는 용어로 선택되어 온 대부분의 용어들은 affect의 현실화의 형태인 affection에 더 가까운 뜻을 갖는 술어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급적이면 다음과 같은 용어표에 따라 용어를 사용하려고 노력했다.

또 하나의 문제적인 용어는 영어 power이다. 불어에서 그것은 pouvoir/puissance로 분화되어 사용된다. 다양한 생각들을 담고 있는 책에서 용어를 통일하는 것은 어려우며 또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다. 우리는 power 역시 affect의 경우에서처럼 최소한 현실성과 잠재성이라는 두 개의 차원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우리는 이 두 차원을, 문맥이 허용하는 한에서, 철학적 맥락에서는 힘(pouvoir)/능력(puissance)이라는 용어쌍으로 정치학적 혹은 정치경제학적 맥락에서는 권력/능력, 혹은 권력/활력의 용어쌍으로 구분하려고 노력했다. 이 구분이 큰 의미를 갖지 않는 맥락에서는 단순히 ‘힘’으로 표현한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virtual/virtuality는 많은 경우에 actual/actuality와 대비되는 철학적 맥락에서 사용되었다. 이 때 우리는 그것을 잠재적/잠재성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우리말 ‘잠재’는 virtual의 넓은 의미를 모두 다 포괄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때로 우리는 가상실효적/가상실효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이 때는 virtual/virtuality가 자본 및 권력의 기능 혹은 그 테크놀로지로 포섭되어 나타날 때이다.

25년 전, 광주, 그 코뮨의 시간을 생각하며
2005년 5월 18일
자율평론 대표집필 조정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