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 운전, 차 속 새우잠…심혈관·관절염 ‘골골’ 화물차운전자
기사입력 2008-06-17 10:06
【서울=메디컬투데이/뉴시스】
최근 화물연대의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생계유지를 위해 파업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던 화물운송업자들의 생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들은 하루 평균 11시간 이상의 고된 노동과 주·야간을 구별하지 않는 장시간 운행으로 인해 차 안에서 숙식까지 해결하는 것으로 알려져 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화물운송업자들은 과도한 업무로 인해 만성피로와 뇌심혈관 질환, 요통, 관절염 등을 호소하고 있어 이는 또다른 교통사고로 이어지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 만성피로, 심혈관질환등 직업병 시달려
광주에서 9.5t 화물차를 운행하고 있는 이형원(42·가명)씨는 아침 8시에 집에서 나와 11시까지 상차작업을 한다. 주로 전남에서 농산물을 싣고 와 서울 가락동 공판장까지 배달해야 하기 때문에 점심도 거른 채 서둘러 출발하지만 화물차의 특성상 속력을 낼 수 없어 6~7시간이 지난 후에나 목적지에 도착한다.
이후 야간에 하차 작업을 하고 여관비를 아끼기 위해 차에서 3~4시간 정도 새우잠을 자고 다음날 출발지로 돌아오는 생활을 매일 반복하고 있다. 이런식으로 이씨는 하루 꼬박을 차에서 생활하는 셈.
이씨는 “차가 밀리는 경우도 있고 야간에는 고속도로 통행료를 50%할인해주니깐 밤낮 구별 없이 운전을 하고, 휴일에 쉬면 그만큼 벌이가 줄어들기 때문에 쉬는 날도 없이 일을 할 수밖에 없다”며 “무릎도 삐거덕거리고 허리도 아프지만 궁핍한 살림에 병원비가 아까워 치료받을 엄두도 나지 않는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장시간 운전과 좁은 차안 생활로 인해 화물운송업자들은 뇌심혈관 질환과 요통, 관절염 등 근골격계 질환에 노출돼 있으며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에 빠질 확률도 높다고 지적했다.
을지대 산업의학과 김수영 교수는 “좁은 차안에서 장시간 앉아 있어야 하기 때문에 추간판탈출증(디스크)등과 같은 요통 증상을 느끼거나 잦은 기어 변속으로 인해 무릎 연골이 닳아져 통증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다”며 “이들은 열악한 근무 환경 속에서 심각한 스트레스 상황에 노출돼 있기 때문에 과로로 인한 뇌심혈관계 질환 발생률과 우울증 발생 가능성도 높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처럼 열악한 근무환경은 작업 능률을 떨어뜨려 교통사고의 발생 요인이 되기도 한다.
한양대 교통공학과 임상진 교수가 2007년 발표한 ‘버스운전자 근로시간 개선방안 연구’를 보면 2시간 연속으로 운전했을 때를 1이라고 볼 때 5시간 정도 쉬는 시간 없이 운전할 경우 교통사고 증가율이 1.23, 8시간 정도는 1.29, 8시간 이상의 경우 1.80정도 위험비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운송업자들은 수면 부족이나 졸림 등으로 인해 대사, 호르몬 분비, 자율신경계 기능이 저하되므로 교통사고 발생 위험이 높다”고 강조했다.
즉 하루 평균 8시간 이상 운전하는 화물운송업자들은 직업병에 해당하는 각종 질환에 노출돼 있을 뿐 아니라 교통사고 위험이 산재해 있다는 설명이다.
◇산재보험 적용도 못받아
2007년 노동부가 발표한 산업별 재해 현황을 보면 산재가 많기로 유명한 ‘건설업’의 경우 사망만인율(근로자 1만명당 재해사망자 수)이 2.18명인 것에 비해 ‘자동차여객운수업’은 2.56명, ‘수상운수업·항만하역·화물취급사업’은 건설업에 비해 2배 가까이 많은 4.35명이었고, 화물자동차운수업은 무려 4배에 가까운 7.9명이었다.
이처럼 화물운송업자는 각종 위험에 노출된 직군이지만 업무 중 사망 하더라도 산재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2005년 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운수업 특수근로형태 종사자 278명 가운데 31%인 86명이 교통사고를 경험했으며 이들 가운데 45%는 건강보험으로 처리했고 자동차 보험을 이용한 처리는 33%, 산재보험을 통해 의료비를 지불한 것은 단 1건에 불과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현재 화물운송업자들은 지입차로, 소속 업체가 없이 개인 사업주에 해당하기 때문에 임의적으로 산업재해보험에 가입을 해야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제적 현실을 고려했을 때 여러 가지 보험을 들 수 없는 화물운송업자들은 민간 보험을 드는 경우가 많아 산재 보험 가입자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와 함께 7월부터 레미콘운전자, 학습지 교사 등 4개 업종에 한해 시행되는 ‘특수직군 산업재해 인정제도’에 화물 운수업자들은 제외돼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화물연대 관계자는 “레미콘도 지입차임에도 불구하고 특수직군으로 인정해주면서 화물운수업자들만 뺀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며 “특수 직군으로 인정받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보라 기자 rememberbora@md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