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 일하는 자의 ‘슬픔’
이상윤 건강연구공동체 상임연구원·노동건강연대 사무국장
사람은 서서 걷게 됨으로써 여러 가지 이득을 얻었다. 그러나 서서 걸으면서 잃은 것도 많다. 건강 문제도 그 가운데 하나다. 서서 적당한 시간만 걷는 것은 건강에 이롭지만, 오랜 시간 서 있는 것은 건강에 해롭다. 오랜 시간 서 있으면 혈액순환에 문제가 생기고, 척추와 무릎, 다리 등에 무리가 생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몸에 무리가 갈 만큼 서 있지는 않는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힘들어도 서 있을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문제다.
오래 서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가장 흔한 건강 문제는 다리의 통증과 혈액순환 장애다. 발과 다리가 붓고, 발바닥에 물집이나 티눈이 생기며, 심하면 통증이 생기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발바닥 근육을 둘러싼 막에 생기는 염증, 아킬레스건염 등 발바닥과 다리 등의 근육과 인대에 염증 질환이 생기기도 한다. 나이 든 이들은 무릎과 발목 등의 관절에 이상이 나타날 수 있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고 근육이나 관절이 약한 사람들일수록 이런 문제는 더 심각하다.
허리 근육과 인대 등에 무리가 가서 허리 통증이 생기는 사람도 흔하다. 오랜 시간 서서 움직임 없이 일하다 보면 다리의 피부 정맥이 굵어지는 하지정맥류가 생길 가능성도 커진다. 여성은 유산과 조산의 위험이 높아진다는 보고도 있다. 최근에는 일부 학자들이 오래 서서 일하는 것이 고혈압이나 심장질환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2007년에 조사한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전체 취업자 가운데 근무시간 내내 또는 거의 온종일 서서 일한다고 응답한 이들은 24.1%에 이르렀다. 숙박 및 음식점업 노동자, 농림어업 노동자, 건설업 노동자 등은 30% 이상이 거의 온종일 서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의 특성상 어쩔 수 없이 서서 일해야 하는 상황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은 굳이 하루 종일 서서 일할 필요가 없는데도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서서 일할 수밖에 없다. 우선은 인력 부족 문제가 가장 큰 문제다. 몇몇 서비스업은 직원이 앉아서 일하는 것을 고객이 싫어한다는 이유를 대기도 한다.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법을 보면, 사업주는 계속 서서 일하는 노동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의자를 비치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의자가 비치돼 있는 경우는 드물고, 의자가 있다고 해도 정작 앉을 수 없을 때가 더 많다. 노동자가 근무시간에 앉아서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둘러싼 논의는 사업주의 노동자 관리통제 방식, 노동에 대한 사회적 존중, 고객 서비스에 대한 문화적 인식 등이 복합적으로 관련돼 있다.
최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서비스연맹을 중심으로 여러 시민·사회·노동단체가 모여 ‘서서 일하는 서비스 여성 노동자에게 의자를’이라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서서 일하는 노동자 건강을 두고 많은 논의가 이뤄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