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가면 말도 잘 안해요. 짜증나서요”
‘친절 스트레스’에 매몰된 서비스 여성노동자의 ‘감정노동’
매일노동뉴스 박인희 기자
백화점이 친절해질수록 노동자들의 감정 스트레스는 커진다. 저마다 ‘서비스 1등’을 내세우고 있는 백화점들은 CS·고객소리함·모니터 제도 등으로 서비스노동자들의 감정을 감시한다. 백화점에 들어서면 제품에 눈길만 줘도 미소를 띄며 “안녕하세요. 어서오십시오. 고객님!”이라는 밝은 인사가 들려온다. 서비스연맹의 조사결과(681명) 무려 97%가 ‘내 기분과 관계없이 항상 웃거나, 즐거운 표정을 짓는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90% 이상은 ‘솔직한 내 감정을 숨기고 일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해 불만을 표시하는 고객이 늘고 있다. 고객불만이 접수되면 해당직원은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는다. 백화점판매원 하아무개(33)씨는 “고객이 아무리 부당한 요구를 해도 마음으로 삭혀야 한다”고 털어놓았다.
“고객들이 백화점에서 무조건적 교환·환불을 요구할 때가 많아요. 아무리 부당해도 고객의 목소리가 커지면 브랜드 이미지가 나빠지지 않겠어요. 참아야 합니다.”
관리자에 대한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특히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화장품 판매의 경우 외모에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다. 노출이 있는 옷을 입어야 하고, 화려한 화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화장품판매원 이아무개(34)씨는 “조금이라도 살이찌면 본사 관리자들이 ‘왜 저렇게 부어 있나’, ‘자기관리 못하는 것 같다’고 한다”며 “설사 농담이라도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비스의 질’을 평가하는 업체의 관리·감독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일부 회사들은 1년 단위로 고객불만이 접수된 횟수를 연봉에 반영하기도 한다. 신세계백화점에서 판매직으로 일하는 박아무개(33)씨는 얼마전 CS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3개월마다 금요일과 토요일에 직원통로에 서서 직원들에게 인사를 해야 했다.
서비스 여성노동자들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성격 변했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저도 모르게 뒤돌아서서 혼자서 욕을 하곤 해요. 일 끝나고 집에 가면 말도 잘 안해요. 말 시키면 짜증나요. 가끔 자다가 깨어나 막 화를 내기도 합니다.”
정진주 이화여대 교수는 “고객과 서비스제공자와의 ‘적절한’ 예의를 전제로 상거래를 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확산돼야 한다”며 “소비자는 구매에 있어 보다 정확한 정보와 인간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보다 신명나는 일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