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기관사의 애환
사람만 보여도 가슴 ‘철렁’…첨단장비도 사고 못막아
‘안전’이 최우선인 국민들의 ‘발’ … 불규칙한 생활에 극도의 스트레스
매일노동뉴스 김학태 기자 08-09-08
선로 옆에서 호박잎을 따고 있는 할아버지, 아슬아슬하게 철길을 따라 걸어가는 아이들, 공사를 하다말고 부리나케 안전지대로 뛰어가는 선로보수원들…. 그때마다 철도 기관사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선로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는 열차라지만 그들은 잠시도 한눈을 팔 수가 없다.
핸들이 없는 운전석. 그래도 기관사들의 손과 발은 쉴 틈 없이 움직인다. ‘혹시나 사람을 칠까’ 하는 걱정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머리를 쭈뼛 서게 할 정도다. 아내의 출산도 지켜보지 못하는 불규칙한 생활. 기관사들은 기관실과 선로를 ‘삶의 터전’이라고 부른다.
가 지난 5일 기관사를 동행취재했다. 내려갈 때는 충북 제천행 화물열차를, 올라올 때는 서울행 무궁화호 여객열차를 탔다.
15시간은 쉬어야 ‘출무’
오전 9시에 청량리역 기관차승무사업소로 출근한 기관사 김광수(34)씨와 부기관사 마성현(28)씨. 운행을 나가기 위한 출무신고를 9시22분에 시작했다. 출발시간을 기준으로 여객열차는 1시간10분 전, 화물열차는 1시간 전에 출무신고를 해야 한다. 이날 김씨가 충북 제천까지 운전할 화물열차는 오전 11시3분에 출발한다.
“출발하기 전에 점검할 게 많아요. 기관차 제동상태도 봐야 하고 고장난 곳은 없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한 시간 정도 걸립니다.”
평소 같았으면 기관차운영과장 앞에서 일지에 사인하지만, 우연찮게 이날부터 전산입력 방식으로 바뀌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사원번호와 비밀번호를 입력하자 출무신고는 물론이고 인사기록과 근무평점 매뉴얼까지 뜬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전사적자원관리시스템(ERP)이다.
출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15시간 이상 휴식 여부. 김씨와 마씨가 전날 퇴근한 시각은 오후 6시다. 15시간20분을 쉬었으니 통과. 원주행 화물열차를 타기 위해 기관사 김씨와 부기관사 마씨, 취재진이 함께 무궁화호 객차에 올라 성북역으로 향했다. 최근 청량리역 내부공사로 열차공간이 줄어들어 화물차는 인근 성북역이나 망우역에 입고돼 있다. 기관사 김씨는 부기관사(5년)를 포함해 8년 동안 열차를 몰았다고 했다. 이제 익숙할 법도 하건만 그는 벌써부터 긴장하는 듯했다.
“편안하지는 않지요. 요즘은 가을이라서 밤이나 도토리 주우려는 사람들이 선로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내색은 하지 않아요. 부기관사 앞에서는 여유를 보여야 하니까요.”
15분 뒤 성북역에 도착했다. 선로에 8054호 기관차가 보인다. 취재진이 동승할 전기기관차다. 디젤기관차가 경유를 사용해 발전기를 돌린다면, 전기기관차는 전선에서 전기를 끌어다 동력을 만든다. 전기기관차의 힘이 디젤보다 좋기 때문에 화물열차는 일반적으로 전기기관차를 사용한다.
김씨는 기관차 바퀴 밑에 있던 고임목을 빼고 모래가 충분히 저장됐는지 확인했다. 모래가 충분해야 바퀴가 선로 위에서 헛도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기관실에 오르자 부기관사 마씨가 물수건으로 운전석을 닦았다. 이어 기관실 뒤에 있는 기계실에 들어가 전기제어시스템을 점검했다.
오전 10시25분. 기관차가 끌고 갈 26량의 벌크화물열차가 건너편 선로에 도착했다. 충북 제천에 가서 시멘트를 채워야 하는 벌크차량이다. 주황색 작업복을 입은 수송팀 직원이 기관차 옆에 매달렸고 기관차는 수백미터 앞으로 갔다가 다시 뒤로 돌아왔다. 기관차나 열차는 ‘유턴’을 못하니 어쩔 수 없다.
“3량(거리 남았다), 2량, 1량.” 수송팀 직원이 무전기로 알려준다. “3미터, 2미터, 1미터.” ‘쿵’ 소리가 났다. 화물차와 기관차가 결합된 것이다. 부기관사 마씨가 “연결완료”를 외쳤다. 입환작업이다.
수송팀 직원의 철저한 통제와 지휘에 따라 작업이 진행된다. 검수직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관차 제동상태를 점검했다.
20여분 지났을까, 드디어 “발차하라”는 관제팀 지시가 무전기로 떨어졌다. 예정됐던 시간(11시3분)보다 빠르다.
“준비가 됐다 싶으면 빨리 출발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빠지면 입고공간이 늘어나거든요. 화물차는 손님들이 없으니 좀 빨리 출발해도 상관없어요.”
이중삼중 안전장치, 마무리는 사람이
열차는 성북역을 벗어나 망우역 쪽으로 향했다.
“삐삐삐.”
갑자기 빨간 불과 함께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기관사가 ‘운전경계장치’라고 적힌 버튼을 누르자 꺼졌다. 기관사의 졸음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로 2분마다 울린다고 했다. 5초 내로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열차는 자동으로 멈춘다. 기관실 안에는 사고를 막기 위한 이중삼중의 장치가 있다. 운전경계장치 외에도 ‘ATS’로 불리는 장치가 있다. 앞쪽에 정지신호가 켜졌다는 것을 미리 알려준다. 역시 소리가 난 뒤 5초 안에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열차운행이 중단된다.
기관사 왼쪽 옆에는 방호장치가 있다. 사고가 났을 때 이 장치를 작동시키면 반경 400미터 이내에 운행하는 다른 열차가 자동으로 멈춘다. 제2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의 역할이 필요없는 건 아니다.
“감속! 감속!” “주의! 주의!” “출발 정지! 출발 정지!”
부기관사가 마씨가 외칠 때마다 기관사 김씨는 오른손 검지를 들어 앞쪽을 가리키며 부기관사의 말을 똑같이 반복했다. 앞쪽 신호등에 파란불과 노란불이 함께 들어오면 ‘감속’이라는 뜻으로 시속 65킬로미터까지 줄여야 한다. 노란색 불만 들어오면 ‘주의’라는 뜻으로 시속 45킬로미터로, 빨간 불만 들어오면 정지해야 한다.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간다면? 열차는 본선 옆에 만들어 놓은 몇 미터에 불과한 예비 선로를 타면서 옆으로 탈선하게 된다. 다른 열차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한 마지막 조치다.
ATS기가 있다지만 부기관사는 앞쪽에 있는 신호를 예의주시한다. 자동차의 가속페달 역할을 하는 주간제어기,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공기제어기, 운전경계장치 등 기관사가 쉴 새 없이 기기에 손발을 대는 동안 부기관사는 기관사의 눈을 대신한다. 김씨는 “기관사와 부기관사는 마누라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호흡이 척척 맞아야 한다”고 말했다.
열차가 곡선구간을 지나 망우역 근처로 향할 무렵, 중랑천 철교 앞쪽에 갑자기 사람이 나타났다. 기관사와 부기관사는 “뭐야?”라고 외치며 동시에 기적을 울렸다. 지나가면서보니 철길 옆에서 호박잎을 따는 할아버지였다.
“호박잎 따고 있잖아. 노인네 참….” 김씨는 “위험천만한 행위”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만큼 곡선구간은 위험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상사고가 발생하는 데다 과속을 했다가는 열차가 전복될 수도 있다.
철로의 모든 구간에 속도가 정해져 있는 이유다. 기관사와 부기관사들은 각 구간의 속도를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특히 무거운 화물을 실은 화물열차는 제동이 힘들다. 중앙선(청량리-경주)을 기준으로 시속 70킬로미터를 초과할 수 없다. 여객열차는 시속 110킬로미터로 제한돼 있다.
“사고가 났을 때 제한속도를 1킬로미터라도 초과한 것이 확인되면 기관사들은 예외없이 가해자가 됩니다.”
가슴아픈 사고의 흔적들
열차는 수도권 도심을 지나 한적한 곳으로 들어섰다. 경부선이 주로 직선위주의 평야지대를 지난다면, 중앙선은 곡선과 고개·터널이 많아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고 한다.
경치가 좋은 팔당호를 지날 찰나, 김씨가 갑자기 기적을 울렸다.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곡선구간이었다.
“팔당호 경치가 좋으니 사람들이 많이 오거든요. 이쪽 곡선구간을 돌면 음식점이 바로 보이는데 자동차와 사람들이 많이 왔다갔다 해요. 보이고 나서 기적을 울리면 이미 늦거든요.”
시민들만 사상사고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열차가 지나다니는 중간중간에는 ‘공사중’이라고 쓰인 표지가 심심찮게 보였다. 철도공사 소속 선로보수원들이 공사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표지가 보이면 김씨는 기적을 울렸고 얼마 안가 모습을 나타낸 주황색 조끼의 선로보수원들이 선로 옆에서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터널 안에서 공사 중이던 선로보수원들이 비상대피소로 미처 피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분들은 얼굴을 한쪽으로 돌린 채 벽에 바짝붙어 열차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려요. 아슬아슬하지요. 그분들 보면 열차 타고 지나가기가 미안해 죽겠어요.”
사상사고에 대한 기관사들의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김씨는 다행히 그런 사고를 경험한 적이 없다. 하지만 부기관사 마씨는 2005년 입사 3개월만에 끔찍한 사고를 경험했다. 칠흙 같이 어두운 밤에 사고가 났고, 열차에 치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숨졌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사고처리와 시신수습은 기관사와 차장이 맡았다. 마씨는 기관실 안에 있었다.
“사고를 당하면 충격이 엄청나요. 안피우던 담배도 피우고, 며칠 동안 술만 마시는 선배들도 있어요.”
김씨와 마씨가 근무하는 철도공사 청량리기관차승무사업소에는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언젠가, 한 기관사가 몰던 열차가 철로를 무단횡단하던 노인을 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런데 사망한 그 노인이 얼마 전까지 같은 사업소에서 일한 선배 기관사의 아버지였다. 자신이 매일같이 다니던 선로에서 아버지를 잃은 선배 기관사나, 평소 절친했던 선배 기관사의 아버지를 자신의 열차로 친 후배 기관사의 충격과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열차를 모는 기관사들도 사상사고를 당한다. 2004년 2월 신도림-구로역 구간에서 하청 건설노동자가 전동차에 치여 숨졌는데, 당시 사체를 수습하던 전동차 기관사가 뒤따라온 새마을호 열차에 부딪혀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최악의 사상사고 중 하나로 분류된다.
‘생리현상’ 참는 게 가장 힘들어
“아! 못 참겠다. 사진 찍지 마세요.”
열차가 성북역을 출발한 지 두시간쯤 지났을까, 빨간 신호등에 정지한 상태에서 기관사 김씨가 선로에 내려 뒤쪽으로 뛰어갔다. 소변이 급했던 것이다. 기관사들에게 또 하나의 고민거리는 ‘생리문제’다. 김씨와 마씨는 지난해 12월 서울메트로 부기관사가 열차 문을 열고 용변을 보다가 떨어져 뒤따라온 열차에 치여 사망한 사건을 알고 있었다.
마씨는 “부기관사가 된 뒤 가장 큰 애로사항이 배변문제였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가방에 항상 넣고 다닌다며 ‘급한 순간에 쓰는 신문’을 보여줬다. 이들은 “화물열차는 그나마 낫다”고 입을 모았다. 화물열차는 승객의 시간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에 필요하면 중간에 열차를 멈춰 일을 보면 된다. 아니면 기관실 뒤쪽 기계제어실에 들어가 신문지를 펴고 해결할 수도 있다.
반면에 여객열차의 경우 기관실과 객실 화장실이 통하지 않는 데다, 각 역마다 출발시간과 도착시간이 정해져 있어 중간에 열차를 멈출 수도 없다. 김씨는 “며칠 전 여객열차를 운행하다가 배탈이 났는데 하늘이 노래졌다”며 고개를 저었다.
열차가 성북역을 출발한지 3시간을 약간 넘겨 원주역에 도착했다. 오후 1시58분. 10분 정도 일찍 출발했지만 예정시간보다 5분 빨랐다. 통행 우선권이 있는 여객열차에 선로를 양보하면서 운행해야 하기 때문에 늦어질 수밖에 없다.
김씨와 마씨는 제천기관차승무사업소에서 올라와 대기 중이던 기관사들에게 기관차를 인수인계했다. 그리고 원주역 승무원숙사로 향했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청량리로 향하는 제천발 화물열차를 오후 4시43분부터 운행해야 한다. 근처 식당에서 30분 정도 식사하고 난 이들에게 남은 시간은 두 시간 정도. 청량리역에서 내려온 동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면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간다.
결국은 사람이 필요하다
오후 4시3분. 기자들을 서울까지 태우고 갈 안동발 무궁화호 열차가 도착했다. 여객열차는 확실히 빨랐다.
제한속도가 화물열차보다 시속 40킬로미터가량 높았고, 각 역마다 출발·도착시간이 정해져 있어 지체하지도 않는다. 곡선구간마다 속도를 줄이고, 신호까지 지키면서 제때 가야 한다.
여객열차는 디젤기관차다. 전기기관차와 내부 구조도 달랐다. 전기기관차는 왼쪽에 기관사, 오른쪽에 부기관사가 있지만, 디젤기관차는 정반대다. 게다가 기관사 좌석이 각종 기기와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부기관사도 무전기를 만졌던 전기기관차와 달리 모든 것을 기관사가 통제한다. 기관사 남욱진(37)씨의 손발이 정신없이 움직였다.
왼쪽 부기관사 자리 옆에 보조거울이 보였다. 기관사 바로 옆에 조그만 모니터가 보였지만 켜지지 않았다. 무엇에 쓰는 물건일까.
“거울은 원래 왼쪽 전후방을 감시하라고 나온 거거든요. 근데 별로 효과를 못봐서 모니터가 나왔어요. 그런데 모니터로는 신호등이 잘 안보이더라고요. 금방 고장나고. 사람이 하는 게 가장 정확합니다.”
남씨는 “둘다 부기관사를 없애기 위해 고안됐는데 결국은 소용없게 됐다”고 웃었다. 연신 좌측 전후방을 감시하는 부기관사 김정일(33)씨도 바빴다. 좌측 시야가 완전히 가려진 기관사를 대신해 신호등과 표지판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연달아 외쳤다. “서행예고” “출발정지” “정차역” “무정차역”.
원주역을 출발한지 30분쯤 지났을 때 ‘호박잎 할아버지’가 기관사들을 놀라게 했다면, 이번에는 ‘철없는 아이들’이 기관사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했다.
곡선구간을 돌자마자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학생 두 명이 나타났다. 선로 옆을 아슬아슬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놀란 부기관사 김씨가 기적을 울리자 옆으로 물러난 얘들은 장난기 어린 눈으로 기관석을 올려다 봤다.
“원래 선로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기차 무서운 걸 몰라요. 저런 얘들은 선로 위에 돌도 올려놓는다니까요.” 기관사 남씨가 혀를 찼다.
화물차보다 빠른 속도에 승객들이 뒤에 타고 있어서인지, 남씨와 김씨는 중간에 정차할 때마다 담배를 빼물었다. “은근히 긴장되는 거는 어쩔 수가 없네요.”
드디어 열차가 서울시내로 들어왔다. 청량리역 도착 예정시간보다 6분 정도 늦었다. 그런데 열차는 계속 신호에 걸렸다.
“여기 구간에는 전동차도 다니잖아요. 전동차 지연에 대해서는 민원이 빈발하기 때문에 무궁화호보다 전동차에 우선권을 줘요. 신호에 계속 걸릴 수밖에 없지요.”
열차는 도착 예정시간인 오후 6시04분보다 5분 늦게 청량리역에 도착했다. 남씨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다시 담배를 찾았다.
5분도 안 돼 기관차 뒤에 객석이 분리됐고, 기관차는 입고하기 쉽게 후진시켜 다른 선로로 옮겨졌다. 남씨와 김씨는 차량운영과에 들러 기관차 상태를 인수인계했다. 이어 승무사무소에 들러 일지에 서명했다. 하루일과가 끝난 것이다.
“불규칙한 생활, 그래도 내 삶의 일부”
청량리기관차승무사업소는 중앙선뿐만 아니라 중앙선과 경춘선, 서울 근교 도회선도 운행한다. 15시간 이상 쉬어야 운행할 수 있다는 규정만 지키면 언제든지 운행에 투입된다. 때문에 업무시간이 들쑥날쑥하다. 주 40시간 근무를 초과하면 수당이 나오고,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비번이지만 업무시간이 불규칙한 것은 어쩔 수 없다.
며칠 지나면 민족의 명절 한가위다. 그러나 김광수씨는 부기관사 시절부터 명절에 ‘제사’를 지내본 기억이 없다. 운이 좋아 고향 단양에 내려간 적은 있지만, 제사시간을 맞추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김씨는 두 딸이 태어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때마다 항상 운행 중이었다.
부기관사 마성현씨는 선배의 전철을 밟을까 걱정이다. 마씨의 아내도 같은 사업소에서 부기관사로 일하고 있다. ‘기관사 부부’다. 아내가 임신 5개월째지만 출산 당일 아내 옆을 지켜줄 것이라고 장담하지 못한다.
그래도 기관사는 이들에게 천직이다.
김씨는 “가족들한테 미안하고 사고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대신 다른 사람들이 내차를 타고 간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며 “나중에 KTX 기관사에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IMF때 실직하고 철도공사에 입사했다는 남욱진씨는 “처음에는 불규칙한 생활에 불평했지만 이제는 내 삶의 일부이자 천직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조금 있으면 기관사 시험을 쳐야 하는 부기관사 김정일씨는 “KTX가 처음에 개통된 걸 보고 기관사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며 “꼭 KTX 기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철도에는 어떤 사람들이 일하나
철도 관련업무는 크게 운전·운수·차량·시설·전기로 나뉜다. 운전직은 말그대로 운전을 하는 기관사를 말한다. 운수직은 역무·수송·차장으로 분류된다.
역무는 각 역사에서 매표 등의 업무를 맡고 수송은 주요 역사에서 기관차와 열차의 입환작업을 한다. 역무와 수송직은 순환보직시스템이다.
차량직은 차량의 정비를 맡는다. 매일 차량을 점검하고 정비하는 검수직, 정기적인 정비를 담당하는 중정비직으로 나눠진다.
시설은 선로의 유지나 보수업무를 맡고 있으며 전기는 전기와 신호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이들 직종 가운데 수송과 시설직의 산재사고율이 가장 높다. 수송직의 경우 열차나 기관차를 입환하기 위해 뛰어서 올라타고, 뛰어서 내리는 과정을 반복하기 때문에 열차에서 떨어지거나 끼이는 사고가 잦다.
선로 위에서 직접 일하는 시설직은 달려오는 열차에 치이는 경우가 많다.